Taylorismus Fordismus Amerikanismus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 Thomas P. Hughes, "Taylorism+Fordism=Amerikanismus" in American Genesis (Penguin, 1989), pp. 249-294.

소비에트의 혁명가들

  1. 생산성, 효율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 (원래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높은 생산력을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2. 미국의 생산시스템,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옴.
  3. 미국의 효율적인 생산시스템과 볼셰비키 혁명을 결합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

1921년 신경제정책

  • 혁명직후부터 1921년까지의 전시공산주의는 내외의 사정에 의해 실패하였고, 국가전체의 산업과 경제는 피폐해졌음.
  • 중앙집중적인 정부통제를 일시적으로 철회하고, 사유재산 허용. 서구식 공장의 도입을 적극 장려함으로써 공업화와 함께 경제성장 도모. 당시 소련의 서구기술이전에 대한 열망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였음. 당시 1920년대 소련을 방문했던 미국 기술자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소련은 기술의 필요성과 그 내용을 소련의 기술자, 노동자, 일반인에게 설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
  • 엔지니어와 경영자에 대한 대우 향상. 생산품 수입보다는 생산방식의 수입 추구.

레닌의 테일러 읽기

  • 생산에서의 낮은 생산비용과 빠른 생산을 위해 (기계)공학이 중요함을 인식. 엔지니어에 의한 작업의 지도와 계획이 소련에서도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정치적으로 신뢰할 만한 전문(경영)가의 중앙집권적 감독을 통해 부르주아적 반동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 ‘제2의 산업혁명은 기계, 공정, 설비가 아니라 명령, 집중화, 통제, 시스템과 연결된다’고 생각.
  • 한편, 길베르트의 견해에 감명. 길베르트는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재촉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 사회주의에서는 테일러리즘을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며,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서만 사용될 것임.

즉. 미국의 테일러리즘을 사회주의의 목적에 맞게 적용할 것을 추구. 미국의 엔지니어들을 적극 영입.

소련에서의 테일러주의 도입

  • 트로츠키 : 오히려 국유화된 산업에서 테일러주의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
  • 국가적 차원의 테일러주의 : 국가에 대한 과학적 관리(경영). 이를 맑스주의의 교의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자 함.
  • 가스체프 : 기계와 같은 인간이 사회주의적 인간의 이상형?

문제점

  1. 노동자 : 갓 노동자가 된 대다수의 사람들로서, 시간관념 없고 기술 이해 못함.
  2. 간부들의 테일러주의 이해 부족 : 테일러주의에 따른 시간단축이 이루어지려면 모든 공정에서 함께 시간단축이 일어나야 함. 왜냐하면 전체 공정의 속도는 가장 느린 파트의 속도가 결정하기 때문. (테일러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태업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했음. 즉, ‘내가 빨리 해봐야 다른 사람이 속도를 맞추지 못할텐데 뭘. 괜히 혼자 빨리해서 욕먹기보단 다른 파트의 속도랑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하는 게 좋지’ 식의 사고가 태업의 원인이라 생각) 그러나 소련의 간부들 이러한 점에 대한 이해 부족. 결국 역돌출부, 병목현상 많이 발생. → 비체계적인 속도 증가와 비합리적인 할당량 부과라는 소련식 테일러주의의 특징이 만들어짐.

국가적 규모의 설비구축과 대량생산

  • 전기산업 :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경쟁 때문에 전국토의 전기화 실패할 것임. 오히려 소련의 국유화된 에너지 생산 유리하다고 생각. 소련의 산업은 대규모의 전기생산 ― 세계최대규모의 수력발전소 건립 ― 에 힘입어 빨리 발전할 것으로 기대. 서구의 기술자 대거 투입. 기술이전의 장.
  • 트럭과 트랙터 : 포드의 대량생산에 열광. 트럭과 트랙터의 대량생산을 위해 포드 공장 설립. 엄청난 수의 트랙터. 그러나 소련의 사정과는 잘 안맞았음. 점차 자체개발쪽으로 선회.
  • Magnitogorsk : 시베리아 마을의 우랄산맥 뒤편에 복합 산업단지 건립. 미국을 비롯한 서구 기업의 광범위한 참여. 그러나 무자비한 추진과 수입기계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희생자 따름.

위의 기획 모두 외국(특히 미국)의 기술의 힘을 빌어서 설비를 구축하려 시도한 것이었음. 그러나, 비현실적인 추진과 이해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1937년 이후에는 국내기술자에 의한 직접생산으로 방향을 전환함.

바이마르와 미국식 모형

1차대전 이후, 미국의 기술 문명 모방하기 시작. 여러 이해관계의 당사자들과 여러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마다 해석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에 긍정적이었음. 즉, 미국의 생산성에 대한 높은 평가와 그것이 만들어줄 무언가(계급갈등의 해소, 풍요, 민주주의 등)에 대한 기대가 있었었던 것.

  • Taylorismus(과학적 경영) + Fordismus(대량 생산)으로 대표되는 Amerikansmus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