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ngest Run: Public Engineers and Planning in Fre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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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같은 상업적, 산업적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워털루 전쟁의 패배를 거치면서 국가재건 및 영토 방위의 관점에서 전 국토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수송기술 발달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효율적인 국경 방어를 위해 요새마다 지하갱도를 통해 연결하고자 했고, 물자보급로, 부대별 행진 속도에 따른 가장 합리적인 행진경로를 찾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영토에 대한 전체적인 시야 속에서 수송기술의 발전을 도모했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을 사고하더라도 직접적이고 사적인 이윤회수보다는 간접적이고 공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를 우선에 두었다.

프랑스는 ① 보편적 이익(general interest)를 위한 ② 국가적 규모(national scale)의 공공사업을 선호했다. 프랑스는 이를 위해 공병대를 체계적으로 재조직하고, 교육시켰다. 그것이 바로 Corps of Civil Engineers Pouts et Chaussees & Mines 와 Ecole Polytechnique academy. 그리고 이들은 전 국토를 잇는 도로, 수로 건설을 기획했다. 그러나 경제학자, 자유주의자들은 영국과 미국의 성공/실패 사례를 근거로 국가주도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반대하였고, 개별 기업들도 보조금 또는 이익보장 없이는 참여하기를 꺼려했다. 그럼에도, 군대는 자신들의 대규모 토목공사가 국가 전체의 장기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개별 기업가들의 개별적인 이윤 추구 행위에 대해서 감독, 통제하려 했다. 이러한 대립 구도 속에서 몇 번의 부침이 있긴 했지만, 공병대는 꾸준히 개별 기업에 대한 유인책 없이 국가적인 규모의 도로, 수로 공사를 추진했다.

공병대는 항상 체계적이고, 위계적인 방식의 설계를 선호했다. 수로에 대해서도 국소적인 독립된 수로들의 건설보다는 국토 전체의 물길을 연결하는 ― 바다 또는 큰 강과 연결되는 ― 위계적인 수로 건설을 추진했으며, 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수로(무거운 화물 운송)와 철도(가벼운 화물 운송) 사이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대규모의 공사에서는 항상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었는데, Navier로 대표되는 공병대 내 과학기술자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과학이론’의 적용을 통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에 대한 기대는 공병대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다. 공병대는 사적 기업들의 국소적․임시방편적인 방법론을 지양하고, 전체적이고 영구적으로 최적의 효율성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과학이론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을 통해 공병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체계적인 공학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