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sent and the Past in the English Industrial Revolution, 1880-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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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 Cannadine, "The Present and the Past in the English Industrial Revolution, 1880-1980," Past and Present 103 (1984): 131-72.

“모든 역사는 당대(현재)의 역사이다”라는 Croce의 말은 사실인가? Canadine은 ‘산업혁명사’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경제사가들이 정말로 당대의 선입관에 의한 글쓰기를 했는지 검토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추측하고자 했다. 그는 역사의 관점이 당대의 관심에 의해 완전히 규정된다는 뜻은 아니며, 자신의 관심은 어떻게, 왜, 특정해석이 당대의 주류가 되는지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산업혁명사의 역사를 네 단계로 나누었다. ① 1880년대 ~ 1920년대 : 사회적 문제, 빈곤의 문제가 관심 → 산업혁명의 비인간적 귀결이라는 관점이 주류 형성 ② 1920년대 중반 ~ 1950년대 초 : 전쟁과 경기변동(요동)이 관심 → 산업화 과정의 주기적 성격에 관심 ③ 195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 전후 서유럽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에 주목 → 산업혁명의 개발과 성장이란 측면에 주목 ④ 1974년 이후 : 경기 후퇴, 성장 둔화 등에 주목 → 산업혁명에 대한 덜 혁명적, 점진적 성격 강조.

1880년대 ~ 1920년대

빈곤, 건강, 주거 등의 문제가 이슈화되었고, 국가의 세금정책 등 경제개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논변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의 학계 및 지식인 사회에서는 빈곤의 문제가 개인의 탓이 아닌 시스템의 풍토병으로 지적하면서,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문제를 당시의 매우 중요한 문제로 간주했다. 토인비를 비롯한 몇몇 저술가들은 당시의 문제의 근원을 산업혁명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자유방임에 대한) “역사적 가정”을 깨고 사기업 규제, 정부개입, 노동조합 보호 등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고자 산업혁명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산업혁명을 과거와 현재를 구분짓는 혁명적 시기로 간주하였지만, 동시에 매우 소름끼치는(terrible) 것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자본가, 지주를 매우 극악하게 묘사했으며, 개인의 이기심과 자유경쟁에 대한 방조를 현재적 문제의 원인으로 보았다.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입장이 당대의 급진적인 입장을 가지지 않은 다른 역사가들에게도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가 전부는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별로 없었으며, 매우 점진적이었으며, 지역적이었으며,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식의 반론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은 ①당대 주류 역사가들의 입장에 대한 방어용이었다는 점에서, ②이미 경제학계에서 했던 얘기라는 점에서 그 시기의 독특한 입장이라 말하기 어렵다.

1920년대 중반 ~ 1950년대 초

경제에 대한 이전의 비관론적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지만, 전쟁과 공황을 겪으면서 그 비관적 견해는 규모와 관심 면에서 변화를 겪었다. 전쟁 등의 불안정성, 예측불가능한 공황과 대량실업, 폭력적인 경제변동 등 당대 지식인의 관심이었다. 즉, 관심의 규모는 ‘세계적’으로 확장되었고, 관심의 초점은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경제학계 내에서는 ①현재의 경제변동 주기를 산업혁명기까지 추적해보고자 하는 욕구나 ②경제변동 이론을 과거 속에서 검증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문제를 과거 속에서 탐구함으로써 미래의 해결책을 찾아내고자 하는 희망에서’ 경제사를 연구했다.

연구의 범위, 적용하는 경제변동 이론은 연구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당대의 연구는 대부분 ‘경제의 주기적 변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장기적인) 낙관적 견해가 소수 있긴 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은 20년간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되고, 마샬플랜 등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은 ‘경제변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해주는 듯했다. 한편, 전후 새로 생겨난 제 3세계도 자신의 개발계획(막대한 자본의 투입)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정부의 경제개입도 긍정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개발경제학은 이렇게 탄생하였고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밝히게 된다. 그들의 메시지는 “산업혁명에 대한 연구는 미래의 경제개발을 위한 최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의 두 세대와 달리, 과거를 현재의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적 노력의 길잡이로 간주하였고, 그것을 지침 삼아 (제3세계의)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단기적 (요동치는) 역사보다는 장기적 (성장의) 역사를 선호했고, 당대의 성장기의 많은 나라들이 18세기의 영국의 전철을 밝고 있다고 보았다. 즉, 그들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극적인 성장의 성공적인 본보기”로 간주하면서, 그 성장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들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선험적 비관론을 버리고,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업가는 ‘경제요동의 근원’이 아니라 ‘성장의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상세한 연구가 진행되자,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는 힘을 잃기 시작한다. 혁명(revolution)은 점진적 진화(evolution)로 재기술되고, 산업혁명의 추동력으로 간주되었던 은행, 철도, 증기기관 등의 역할이 축소되었으며, 영국을 개발의 본보기로 보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오히려 ‘낙관적 결론’을 염두에 둔 연구결과였다는 점에서 당시의 주류적 견해로 보긴 어렵다.

1974년 이후

1970년 중반 이후 경제상황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고, 유럽 경제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태크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케인즈주의적 처방은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었고, 경제성장에 대한 확신은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경제성장을 ‘더이상 하면 안된다’는 생태적 문제제기도 등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신좌파는 개발이 후진국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신제국주의를 성장시킬 뿐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신우파는 개발이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처음 접하게 된 경제상황을 포스트-산업사회로 보는 관점이 등장하면서, 산업혁명기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짧은 에피소드’ 정도로 취급하는 견해가 등장했다. 이 시기,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에 대해서 더욱 부정적인 입장 - 별일 일어나지 않은 현상 - 을 취했다. 이들은 성공한 기업가보다 실패한 기업가들에 주목했고, 실패가 더 전형적이라 주장했다. 던지는 역사적 질문 또한 변화했다. “왜 그렇게 많은 성장을 했는가”에서 “왜 그것밖에 성장을 못했는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1770년대에서 1815년 사이의 시기는 도약의 시기가 아니라 스태그플래이션의 시기로 규정짓는 극단적인 견해까지도 등장했다. 산업혁명기라 규정짓는 시기를 지나서도 영국은 여전히 농경사회였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즉, 이 시기의 주류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분명, 당대의 경제상황과 역사가들의 산업혁명에 대한 관점은 우연 이상으로 일치한다. 물론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를 우연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일까?

첫째, 수요의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적 저작물들은 수요에 의한 창조물로 볼 수 있다. 입장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일단 당대 수요의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Clapham의 낙관적 견해는 1950년 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둘째, 공급의 측면에서 보자면, 조금 복잡해진다. 선행연구는 후속연구에 영향을 미치며, 연구진행의 문화는 당대의 관심의 연구결과물의 발표 사이에 시간적 간극을 만들어낸다. 한편, 젊은 연구자들은 전대의 관심을 가졌던 전대의 연구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러 학자들 -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졌더라도 - 에게 비슷한 상황인식을 만들어내며, 질문의 선택은 특정한 결론과 해석(구체적인 지점에서의 불일치는 있더라도)에까지도 일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낸다.

쿤의 패러다임과 비교해볼 때, 각각의 시기는 정상과학의 면모를 띠고 있으며, 시기의 변화는 패러다임 쉬프트의 면모를 띤다. 물론 자연과학에서는 변화의 추동력이 내적인 원인(anomaly, 비정합성)에 주로 존재한다면, 역사학에서는 사회적인 관심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는 아마도 경제사가들이 현실과 덜 격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역사학의 맥락에서, 쿤의 “패러다임이 변할 때, 세계도 그와 함께 변한다”는 말은 “세계가 변할 때, 패러다임도 변한다”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