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tionality of Discovery
Joseph Agassi, “The Rationality of Discovery”, in Thomas Nickles (ed.) Scientific Discovery, Logic, and Rationality.
어떤 발견은 인정받고, 어떤 발견은 무시당한다. 이는 합리적인가? 어떤 발견을 너무 진부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오류가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무시하는 것은 합리적인가? 그렇다면 전자의 발견은 합리적이고, 후자의 발견은 비합리적인가? 우리가 그 구획선을 그어야 하는가? 아마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어떤 합리적 발견이라도 거의 그 발견이 이루어지자마자 그것을 인식할 테니 말이다. 정말? 저자는 아니라고 답변.
1. 합리성에 대한 주류 이론은 알고리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엄격한 알고리즘적 합리성 개념을 진지하게 채택한 사람은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수분해 또는 기하학을 배우는 학생들의 좌절은 문제를 푸는 데 추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는데, 이는 알고리즘적 합리성 개념의 대표적인 해악이다.
2. 알고리즘적 합리성의 개념을 완화시켜 조심스런 추측 또는 informed guess를 허용하는 알고리즘을 합리성으로 진지하게 채택하는 사람도 상처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추측이 좋은 추측(성공적일 가능성이 높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사소한 추측이 아닌 그런 추측?)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방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순한 시행착오의 방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e.g., 박사 학위를 받고자 노력하는 학생과 지도교수의 예)
3. 결정 이론은 아주 간단한 문제 외에는 합리적 (가설의 [사전]) 선택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회 개혁 이론은 고려사항이 너무 많은 누더기이다. 그럼에도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개혁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많은 의견 중에 어떤 의견을 채택할 것인가? 좋은 의견을 채택하면 된다. 그러나 좋은 의견이라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시행될 수 없다. 나중에 좋은 것으로 판명난 아이디어가 한동안 전문가나 대중들로부터 무시 받은 사례를 (특히 예술의 경우에서) 우리는 많이 찾을 수 있다. 과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과학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없다고 흔히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에서는 모든 발견은 타당성과 함께 발표되고 그 가치가 평가된다고 얘기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학적 합의의 생각은 매우 강하다. 정말 과학에서는 그런 만장일치의 합의가 일어날까?
4. 쿤은 합의된 패러다임의 존재를 과학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된 패러다임에 대한 혁명을 합리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가? 폴라니는 20세기 초에 발견됐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물리화학 이론을 60년대에 재발견했고, 이제 그 발견은 완전히 인정받았다. 쿤이나 폴라니에게 발견의 합리성은 사회의 인정에 의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 왜 합리적인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합리적이니까? [이 노선은 하버마스의 노선 - 끊임없는 논증을 통한 합리적 합의 절차를 밟았다면 그 결정은 합리적이다] 쿤이나 폴라니에게 이는 불명료. 그들에게 합리성은 배경에 존재. 사회적 합의는 그 합리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증거처럼 간주됨. 그러나 이는 잘못. 왜냐하면 사회적 합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그 점 인정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도 인정. 그렇다고 우리는 [알고리즘의 존재와 같은] 합리성의 명시적인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로 돌아갈 수는 없다. (좋은) 발견에 대한 기준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법은? 합리성에 대한 계속된 논쟁. 이는 민주적 개혁 방법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