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ses of analogy: James Clerk Maxwell’s ‘On Faraday’s lines of force’ and early Victorian analogical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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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Lambert, “The uses of analogy: James Clerk Maxwell’s ‘On Faraday’s lines of force’ and early Victorian analogical argument,” BJHS 44(1) (March 2011), 61-88.


맥스웰이 1855-56년 논문 ‘패러데이의 역선에 관하여’에서 사용한 유비 논증을 19세기 신학과 자연철학에서 유비 논증이 사용되던 넓은 맥락에 비추어 봄으로써, 그의 유비 논증이 가진 새로운 측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논문.

맥스웰의 논문 ‘On Faraday's lines of force’(1855-1856)는 패러데이의 연구에서 발견되는 추론 방식에 수학적 형태를 부여하는 논문으로서, 패러데이의 물질적 추론(physical reasoning, 실험실에서 물건을 가지고 하는 추론?)과 종이 위에서 수학적 기호를 가지고 하는 추론 사이의 유비에 의존하고 있다. 즉 이 논문은 Maxwell's attempt to think on paper with theoretical objects in a way analogous to Faraday's thinking with objects in the laboratory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맥스웰의 논문에 등장하는 유비 논증의 방식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패러데이의 실험실 활동을 physical reasoning이라고 부른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에 답하기 위해 183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케임브리지에서 사용되던 유비 논증의 방식을 Birks, Whewell, Maurice, Boole [Peacock & Gregory], Thomson, Maxwell 순으로 훑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했던 1850년대 이전 영국 사회에서는 페일리식의 조화로운 설계자로서의 신 관념이 쇠퇴하고 (심판자로서의 신 관념이 부상하여) 보수적인 속죄 신학[자연과 애초에 타락. 가난은 부도덕한 정신에 대한 심판의 결과. 속죄한 정신만이 구원받을 수 있음?]이 발전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유비논증은 정신과 물질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케임브리지의 높은 도덕적 권위와 고난이도의 수학적 훈련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컨대 Birks(1833)는 불변의 수학적 확실성과 불변의 도덕적 원칙을 유비하여 공리주의적인 도덕관을 비판하는 동시에 케임브리지의 수학적 훈련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물질 이분법적인 분위기와 높은 수학적 권위로 인해 패러데이의 역선 이론은 케임브리지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Whewell의 ‘the fundamental antithesis of philosophy’(1844)는 맥스웰의 에세이 ‘Are there real analogies in nature?’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글로 알려져 있으나, 그 글은 맥스웰에게 풀어야할 문제를 제공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며, 우리는 Whewell이 이 글에서 사실(귀납)과 관념(연역) 사이의 커다란 갭을 강조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귀납이 천재의 상상을 통한 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역보다 더 힘든 일이라거나, 선험적 형태의 법칙 발견을 통해 경험적(우연적) 진리가 필연적 진리와 만날 수 있다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휴얼의 강조는 분명 사실(경험)과 이론(관념) 사이의 대립에 있었다. ‘이론이 사물과 떨어져 있다’는 휴얼의 아이디어는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활동을 ‘physical reasoning’이라고 이해한 것과 매우 다른 태도이다.

Whewell은 케임브리지의 도덕적 권위를 보호하기 위해 Birks와 마찬가지로 유비를 통해 정신과 육체, 정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예컨대 뇌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은 적법한 자연철학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관념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자연철학이 정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정신은 자연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즉 ‘the fundamental antithesis’에 나온 휴얼의 과학철학은 정신과 세계 사이의 구분을 유지하면서 귀납적 과학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1830-40년대 정치적 격동기 동안 영국국교회와 케임브리지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맥스웰이 케임브리지에 입학한 1850년대, 케임브리지의 속죄 신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1850년대 사회적 갈등이 약화되고 번영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속죄 신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정신-육체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incarnation 운동[예수는 (신의) 말씀이 육체화된 것으로서, 그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이 확산되었다. 그의 대표 주자이자 맥스웰이 속한 Apostles의 전 리더였던 Maurice(1853)는 노동자 또는 모든 육체에도 정신[진리]이 깃들어있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사고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 사이의 유비의 가능성을 낳았다. 신발공의 아들이자 Maurice에 동조적이었던 Boole은 논리학에 수학적 형태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수학적 법칙과 정신의 수학적 법칙 사이의 유비 관계를 강조했으며, 또한 (휴얼에 반대하여) 과학법칙의 발견은 사고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 사이의 깊은 대응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Boole에게 영향을 준 Peacock 역시 경험적인 산술대수와 경험불가능한[순수 정신적인?] 기호대수 사이의 연결을 주장한 바 있으며, Boole 및 Thomson의 멘토였던 Gregory는 CMJ를 설립함으로써 여러 현상 사이의 수학적 형식상의 유비를 탐구하는 연구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저널의 연구 프로그램은 Thomson과 Maxwell의 연구에 테크니컬한 맥락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Thomson은 latitudinarianism이지만 토머스 차머스의 속죄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수학적 기술(description)을 넘어선 형이상학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그는 패러데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거시적 수학적 기술만을 추구해서는 당시 그가 풀고자 하는 문제(힘의 전환 문제)를 풀 수 없었다. 순수 수학적 유비의 한계를 인식한 그는 미시적인 동역학적 기술을 통해 여러 현상을 통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즉 latitudinarianism의 의미가 살짝 바뀐 것! 이제 수학적 이론은 역학적 표상에 의해 가능해졌다. 이후 그는 점점 패러데이를 존경하게 되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도 패러데이의 역선 개념을 완전히 수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완전한) “역학적 표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 사이의 ‘mutual embrace’와 같은 수학적 구조가 물질과 유사한 정도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mutual embrace와 같이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의 법칙은 자연에 존재하는 아이디어인 셈. 톰슨과 달리 맥스웰은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여 그것을 정신에 의해 재구성된 물질의 법칙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Maurice의 영향으로 인한 새로운 신학적 관점과 새로운 유비 논증 사용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바로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 있다.

Maxwell은 수학 트라이포스 시험 직후 매우 아팠다. 완전히 망가진 육체로 인해 그는 속죄 신학을 따르게 되었다. 그 직후 육체의 구원 문제를 다룬 Maurice의 Theological Essays를 읽고 또다시 변화가 발생했다. 그는 Maurice의 논쟁적인 주장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그의 진정성에는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천과 일을 사회적, 개인적 육체 모두를 구원하는 방법으로서 강조했다는 점과 그가 모리스가 설립한 Working Men's Colleges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Maxwell의 에세이 ‘Are there real analogies in nature?’(1855-56)는 ‘사고의 구성물과 외부세계의 구성물 사이의 진정한 유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과학과 철학에서 광범위한 주제 영역에 걸쳐, 또는 매우 다른 지식 영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인간의 지적 구성물 자체에 눈을 돌려, 우리가 이 통일성의 이유를 fundamental law of the right action of the intellect의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유사한 법칙이 존재하는 이러한 자연의 영역들이 진정한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관계는 단지 외양만 그럴 뿐 인간 사고의 필수 조건에 따른 것뿐일까?’라는 긴 인용문에서 Boole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이 에세이는 휴얼에 매우 많이 기댄 글로 얘기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 에세이는 ‘사고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 사이에 동일성은 아니지만 유비가 존재’한다는 맥스웰의 생각과 둘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과 장벽이 있다는 휴얼의 생각(1844)을 화해시키려는 시도로서, 휴얼에 대한 이런 접근은 맥스웰이 1850년대 새로운 유비 사용 방식을 접한 결과이다. 맥스웰은 도덕적 질서와 역학적 질서 사이의 유비의 한계를 탐색함으로써 둘 사이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분명 이 노력은 전통적인 속죄 신학의 관점에 속하는 것이지만, 맥스웰이 Boole처럼 둘 사이의 유비를 탐색했다는 점은 그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유비 논증[도덕과 수학을 유비하는 것이 아닌 도덕과 역학을 유비했다는 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맥스웰의 유비 에세이는 크리스털의 이차적 형태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된다. 그에 따르면 크리스털의 이차적 형태는 설계에 의한 조화도 아니며, 유용성이나 도덕적 함의도 없다. 다만 그것은 spherical trigonometry of Napier's analogies일 뿐이다. 이로부터 맥스웰은 다음의 결론을 내린다. “물질의 법칙이란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며, 정신의 법칙은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이러한 맥스웰의 견해는 정신과 물질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는 휴얼과도 다르며, 정신과 물질의 법칙 사이의 관계를 매우 추상적인 유비 관계로 이해하는 불과도 다르다. 크리스털의 이차적 형태나 패러데이의 상호 둘러쌈(mutual embrace)은 모두 자연에 존재하는 수학적 관계로서, 자연에 존재하는 아이디어이자,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의 법칙이다. 왜냐하면 분명 물질적 대상에 붙어있기 때문이며, 물질적 조작에 의해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는 인간 정신에 의한 표현을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정신이 만들어내야만 하는 물질의 법칙이다. 맥스웰의 ‘On Faraday's lines of force’는 바로 패러데이가 실험실에서 발견한,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의 법칙인 mutual embrace에 수학적 형태를, 즉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의 법칙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판적 고찰

1) 맥스웰이 사용한 physical reasoning이라는 표현이 당시 맥락에서 형용모순과 같이 매우 이상한 언급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 논문은 매우 가치가 있는 논문일 듯.

2) 패러데이의 역선 이론이 잘 수용되지 않은 것과 1830-40년대 정신/물질 이분법적인 문화를 연결시키는 것은 그럴듯하긴 하지만, 패러데이의 역선 이론 자체가 1850년대에 완성된 것을 고려하면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1830-40년대에 수용되지 않은 패러데이의 이론은 역선 이론이라기보다는 다른 이론이라고 해야 마땅할 듯. 또한 수학적 권위 때문에 패러데이의 실험적 활동 전체가 무시된 것은 아님. 패러데이의 실험적 활동과 여러 발견은 높이 평가 받았지만 그의 이론만은 무시되었음. 정신/물질, 머리/손 사이의 이분법만으로는 패러데이의 발견에 대한 높은 평가가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음.

3) 1830-40년대 사용되던 도덕적 확실성-수학적 확실성류의 유비 논증과 1850년대 새롭게 사용된 유비 논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음. 사실 1830-40년대의 유비 논증이 1850년대 새로운 유비 논증으로 바뀐 것도 아니고, 둘은 거의 무관해 보임. 다만 1830-40년대 사용된 유비 논증은 당시 케임브리지의 높은 도덕적, 수학적 권위와 정신/물질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긴 함. 또는 맥스웰이 도덕적 질서-역학적 질서 사이의 유비(의 한계)를 탐색했다는 점을 통해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유비 사용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데 사용되는 건가?

4) ‘are there real analogies in nature’의 길게 인용한 구절이 어떻게 Boole과 직접 연결되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음. 에세이에서, 사고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 사이의 유비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자연의 여러 영역 사이에 유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논문만으로는 알 길이 없음. 또한 겉보기의 유비 관계에 있는 물질의 법칙과 정신의 법칙이 결국 이런 상호 fabricate 관계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이 논문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 패러데이의 mutual embrace와 맥스웰의 ‘On Faraday's lines of force’를 이 대칭적인 구절을 이용해 해석한 것은 솔깃하긴 하지만, 그 해석의 적절성을 판단할 근거를 논문이 제공해주지 않고 있음. 정신의 법칙이 물질에 의해 fabricate된다고 하면 그 법칙은 마치 물질이 인과적으로 만들어낸 느낌이 생기고, 물질의 법칙이 정신의 법칙에 의해 fabricate된 것이라고 하면 그 법칙은 마치 정신이 제멋대로 창조해낸 느낌이 생긴다. 저자도 그와 비슷한(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느낌으로 해석하고 있음. 그러나 이런 결론이 사고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 사이에 유비가 존재하냐 아니냐 또는 그 유비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애초의 질문에 어떤 함의를 가졌던 것인지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맥스웰의 에세이를 직접 읽어봐야만 이해가 될 것 같고, 그래야만 저자의 주장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을 듯.

5) 맥스웰의 On Faraday's lines of force 논문이 mechanical specificity를 결여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동의하기 어려움. 근거가 필요한데 제시되어 있지 않음. 또한 mechanical specificity가 결여된 수학적 공식에 대한 얘기를 그것이 패러데이가 물질적 대상을 조작함으로써 자연에서 발견한 순수한 관계,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의 법칙을 표상하고 있다는 얘기로 넘어가기 위한 연결고리로 사용하는 것도 무리한 논리. 역학적인 세부사항이 결여된 수학적 공식 덕분에 패러데이가 발견한 순수한 관계를 표상할 수 있었다는 논리인데, 세부사항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덕분에 그 표상이 가능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순수한 관계이니까 아이디어, 그러니까 정신의 법칙,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맥스웰의 논문과 맥스웰의 유비 에세이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솔깃하긴 하지만, 그 적절성을 평가할 근거가 전혀 없어 보임.

6) 맥스웰이 모리스에 동조적이었다는 근거가 부족함. 맥스웰이 실천과 일을 사회적, 개인적 육체 모두를 구원하는 방법으로서 강조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각주가 없음.

7) 톰슨과의 차이... 톰슨은 역학적 표상이 필요했던 반면 맥스웰에겐 역학적 표상이 필요없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발견한 순수한 관계에 대해 그것이 자연에 존재하는 아이디어, 혹은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의 법칙으로서 물질과 같은 정도의 존재론적 지위를 지닌다고 생각함으로써 역학적 표상의 필요성을 거부했다? 사실 맥스웰이 역학적 세계관을 가졌는지, 어떤 역학적 세계관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음. 이 논문은 맥스웰이 역학적 설명 없이도 자연에서 발견된 수학적 관계 자체를 수용하고 중시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더 많은 근거가 필요. 내 짐작으로는, 맥스웰이 인식론적으로는 불가지론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역학적 세계관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미시적인 역학적 가설을 배제한 역학적 세계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