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Need a Philosophy of Engineering: A Work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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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양의 철학자들은 필연적인 것, 확실한 것, 보편적인 것, 맥락독립적인 것, 시간에 무제약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반면, 우연적인 것, 개연적인 것, 개별적인 것, 맥락적인 것, 일시적인 것에는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필연성 기반의 합리성 모델'에 따르면, 삶과 행위는 근본적으로 합리성과 무관하다. 그들의 구도 하에서 행위의 '과학(지식 science)'은 있을 수 없다. (철학자 또는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지식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이고, 확실한 반면, 행위는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지식은 행위를 결정할 수 없다. 이는 연역 추론으로는 다리 놓을 수 없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깊은 골을 만든다.

위와 같은 합리성 모델에 대한 비판과 함께, 몇몇 철학자들은 우연성 기반의 합리성 모델을 개발했다. 그럼에도 20세기 놀라운 기술적 성취는 과학의 승리로 오해됐고, 과학으로 대표되는 필연성 기반의 합리성이 경험을 이해하고 실재를 드러내는 열쇠라는 편견은 오히려 강화됐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몇몇 STS 연구를 통해, 공학이 과학과는 대별되는 독특한 형태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음이 나타났다.

공학 문제의 해답으로서의 공학적 디자인은 유일한 '참'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공학 문제는 정치, 사회, 경제, 기술적 맥락에 따른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해답으로서의 공학적 디자인 또한 유일하지 않고 맥락에 따른 가치판단이 개입된다. 공학적 디자인은 끝이 열려있다. 이러한 공학은 우연성 기반의 합리성 전통에 속한다. 존 듀이를 비롯한 실용주의는 공학의 합리성을 해명해주는데, 쉽게 말해 공학의 합리성은 목적-방법의 도구적 합리성이다.(사실 존 듀이는 과학도 일종의 공학적 방법으로 수행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합리성은 필연성 기반의 합리성이 해결하지 못하는 행위와 삶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공학의 특징

공학 문제는 (그리고 그것의 수용할만한 해답은) 엔지니어가 가진 기술적 전문성 외부에 있는 매우 우연적인 가치 판단에 명시적으로 의존하여 정의된다. 이들 가치 판단은 공학 문제의 해답의 구현이 가져올 경제, 사회, 정치적 귀결로부터 따라나온다. 이러한 귀결의 (감정)평가는 공학적 실천이 항상 매우 구체적이고,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행위 맥락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즉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로서 기능하기 위해, 사장 혹은 적어도 고객을 필요로 한다. 이는 사심없는 지식 추구자로서의 과학자의 상황과 대별된다. 과학의 문제는 자연에 의해서만 주어지며 자연은 올바른 해답의 유일한 권위자(arbiter)이다.

공학자는 자신의 문제를 푸는 데 과학과 수학을 사용하지만, 그 사용 방식은 과학자의 방식과 다르다. 과학자가 자신의 문제를 푸는 데 수학과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 사용 방식이 수학자나 기술자와 다르듯이 말이다. 과학자는 수학을 자신의 문제 풀이 도구로 사용한다. 수학자는 과학자들이 수학을 사용하는 방식을 맘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으며, 과학자들에게는 수용되는 해답이 수학자들에게는 올바른 해답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는 과학자에게 별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공학자는 과학을 자신의 문제 풀이 도구로 사용하며, 그 방식은 과학자들의 방식과 다르다. 과학이 응용 수학이 아니듯이, 공학도 응용 과학이 아니다.

공학적 디자인과 과학적 이론화 작업은 구별된다. 과학 이론은 원리적으로 하나만 '참'이지만, 공학적 디자인은 다원적이며, 여기에는 우연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 성능 스펙, 크기, 무게, 생산 비용, 신뢰성, 재료, time to market, 제조가능성, 서비스가능성에 관한 명세로 구체화되는 가치 판단은 공학 문제와 그에 대한 수용할만한 답이 정의될 변수(parameters)를 정의한다. 더 나아가, 디자인은 open ended이다. 디자인은 문제와 해답 변수 가중치의 변화에 따라 함께 진화한다.

디자인은 맥락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이다. 반면 과학은 그것이 참이라면 진화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볼 때, 과학은 닫혀있고 유일하다. 과학자는 자연의 참을 목적으로 하지만, 공학적 디자인은 허버트 사이먼이 경영 결정을 묘사하면서 '제한된 합리성'과 '만족화'라고 부른 것을 반영한다. 부분적 정보 조건 하에서의 작동 및 최적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만큼은 충분한 해답을 위한 행위에 관한!

공학 문제는 명시적으로 가치 판단에 의해 이끌어지는 행위이다. 반면 과학 이론은 명시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17세기 자연 연구에서의 방법론적 '혁명'은 지식에서 지식의 주체인 사람을 제거했다. 과학적 지식은 행위에 관해 결정적이지 않다. 즉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은 과학적 지식에 관한 물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은 본래적으로 행위 지시적이다. 자동차는 몰기 위해서이지만, 핵 이론은 핵 이론일 뿐, 폭탄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에 행위를 기초시키는 것은 가치 판단을 필요로 한다.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과학적 지식이 우리에게 자연을 지배할 힘을 주고 그것을 통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전까지 과학적 지식과 인간 조건의 개선은 분리된 분야였다.

우연성 기반의 합리성과 공학의 지적 위치

우연성 대 필연성의 싸움으로서의 철학. 수사학 vs. 철학. 르네상스 시기 개별성, 수사학, 공학 함께 부흥. 곧이어 데카르트 등의 합리주의 철학자에 의해 다시 억압. 19세기 말, 존 듀이의 실용주의. 존 듀이의 실용주의는 행위 중심의 철학으로, 합리성 개념과 경험에 대한 개념화에 우연성을 핵심으로 만듬. 필연성과 우연성을 명시적으로 대비시킴. 흥미로운 점은, 존 듀이를 비롯한 실용주의자들은 과학, 과학적 방법, 삶의 문제에 대한 과학적 추론의 적용을 옹호. 그러나 듀이에게 과학을 이해하는 열쇠는 공학에 있음! 듀이는 과학을 일종의 공학이라고 주장. 즉 과학은 가설적으로 추상적, 보편적, 필연적, 확실한 것이다. 사실, 과학은 공학만큼 가치적재적이며 'interested'이며, 따라서 맥락적이다. 과학과 공학은 실제로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둘 모두 하나의 과정, 즉 행위와 실제의 의도된 결과와 체계적인 상관관계의 과정이다. 문화적 이유로, 과학은 오해되어 왔을 뿐이다.

공학 철학을 향해

공학은 우연성 기반의 합리성 모델과 강한 친화력 가짐. 수사학의 지적 전통은 공학과 연결될 수 있음. 행위는 필연성 기반의 합리성에 심각한 문제 제기. 철학은 공학과 유관. 공학을 실천으로 또 추론의 형태로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공학의 자리를 특정한 철학적 전통 속에서 평가하는 것을 필요로 함. 공학은 우연성 기반의 합리성 모델의 좋은 예가 됨.

공학은 사회정치적 맥락 하에서 (의제의 실현) 과정. 공학을 단지 기술(technical)한 문제 풀이로만 이해하는 것은 공학자의 사회적 책임 전가를 승인하는 결과 낳음. 공학적 추론이 본성상 행위 맥락에 내장되어 있다면, 공학자는 해우이에 대한 책임 공유를 피할 수 없을 것. 이는 공학자가 하는 행위에 합리적으로 가치 판단을 적용할 수 있는 행위 철학의 틀 속에서만 가능하다. '합리적인' 기술 정책 결정과 기술 평가는 새로운 철학적 틀 필요. 즉 '실용주의' 필요.

실용주의의 핵심 개념 - '도구주의'. 우리가 경험에 숙의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복잡한 과정의 이름. 실재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의식의 과정. 의식의 자기-능동적 측면은 주의의 선택성과 구조의 투사와 관련.

탐구의 논리. 그것은 도구주의가 지시하는 논리.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