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Should Not Reject the Value-Free Ideal of Science

PhiLoSci Wiki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Robert Hudson, "Why We Should Not Reject the Value-Free Ideal of Science", Perspectives on Science 24(2) (2016).

허드슨은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에 반대하는 논변을 "불확실성 논변"과 "도덕적 책임" 논변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대해 반론을 펼치고 있다. 주된 공격 대상은 러드너(Richard Rudner 1953), 더글라스(Heather Douglas 2009), 가(Gaa 1977)이다. 논문을 훑어 읽고서 드는 두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허드슨의 암묵적인 전략은 결합된 형태로 제시되어 있던 "귀납적 위험" 논변을 "불확실성 논변"과 "도덕적 책임" 논변으로 잘라내어 각개격파하는 것인데, 그러한 분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허드슨의 공격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겠지만 그러한 분해가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보인다. 둘째, 이 논문을 포함해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을 변호하는 시도의 성공 여부는 결국 과학자가 "과학자로서(qua scientist)" 기능할 때의 이상화된 모습을 실제 모습과의 연속선상에서 그려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확실성 논변에 대한 비판

허드슨은 레비(Levi 1960)가 정리한 버전의 러드너(Rudner 1953)의 불확실성 논변을 아래와 같이 정식화한다.

  1.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가설들을 수용하거나 거부한다. [가설 수용/거부은 과학자로서의 활동]
  2. 증거는 아무리 많더라도 어떠한 (경험적) 가설도 완전히 입증하거나 반입증하지 못하고, 좀 더 혹은 좀 덜 개연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증거의 불확실성]
  3. (1)과 (2)의 귀결로, 과학자의 보증된 가설 수용이 이루어지기 앞서 과학자는 증거에 대한 가설의 확률이 얼마나 높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증거적 뒷받침의 수준 결정 필요]
  4. (3)에서 필요한 결정은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데서 잘못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중요할 것인지에 의존하는 함수이다.

몇 가지 가벼운 지적(최소주의 대응의 소개 및 규범적 이념으로서의 과학의 가치중립성)

허드슨은 전제 (1)의 거부 가능성을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과학자의 일차적 임무는 가설의 수용/거부가 아니라 가설의 확률을 제시하는 것이 된다(Jeffrey 1956). 이러한 최소주의적 대응에 대한 반론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이것이 과학자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확률 부여 방법 자체가 논란거리라는 것이다. 더글러스 등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이러저러한 가설에 커밋되어 있고, 그러한 커미트먼트(commitment)이 다양한 가치적 고려에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허드슨은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은 기본적으로 규범적 이념이라는 점에 호소하여, 과학자들의 이러저러한 믿음과 결정이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과적 사실들이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입증적 간극의 해결이 가치적 고려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허드슨의 논변

허드슨에 따르면, 불확실성 논변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증거와 가설 수용 사이의 입증적 간극(confirmatory gap)이 있음을 보이는 부분과 둘째, 입증적 간극을 채우기 위해 가치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부분이다. 허드슨이 요약하는 론기노, 루니, 쿤 등의 견해에 따르면, 가설 수용/거부의 결정에서 배경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어떤 배경이론을 채택하느냐는 가치 문제에 달려 있다. 그러나 허드슨에 따르면, 배경 이론 또는 가정의 채택 문제 역시 사실의 문제이다!

허드슨에 따르면, 약의 안전성과 관련된 과학자의 결정도 모두 사실의 문제 내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p. 170). 즉 과학자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과 데이터만으로 가설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1. 그 약은 아동용 약이다.
  2. 정부의 안전 규제는 약의 부정적인 부작용의 범위가 아동에게 투여될 때 미리 정해진 특정 수준 아래여야만 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가설 수용 여부 결정 과정에서 가치적, 도덕적 고려는 불필요하다. 과학자는 정부가 정한 기준에 데이터가 부합하는지만을 따져 약이 안전하다는 가설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과학자가 정부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이에 대해 허드슨은 그 문제는 불확실성 논변과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의를 뒤로 돌린다. (내가 보기에 어색한 점들 : (1) 2를 '사실'이라고 할 수 있나? (2) 기준 제정도 과학자의 일 아닌가? (3) 정부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과학자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나?)

허드슨은 다른 두 사례에서도 똑같은 전략을 취한다. 선형-호르몬 모델과 선택주의 모델 사이의 증거 판단 과정에서 젠더 이형성을 믿는 과학자는 선형-호르몬 모델을 수용한다. 이 스토리는 특정한 가치 개입 없이도 사실의 문제 내에서 완성된다.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 사이에서의 과학자의 선택은 외적 일관성이나 단순성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언급 없이도 완전하게 기술될 수 있다. 물론 과학자가 특정한 가치 체계를 마음에 품고 있을지라도, 특정한 가치적 중요성 때문에 어느 가설을 수용해야 한다는 식의 논변은 논리적 오류 아닌가?

결국 허드슨의 핵심 논변은 다음과 같이 정리 : 가치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입증적 간극 해결 사례들 모두 배경이론 또는 가정의 참 수용으로 설명 가능하고 가치에 대한 고려는 불필요. 그러나 입증적 간극의 해결을 과학자가 무언가를 사실로서 수용하고 있었다는 점에 호소하여 설명하면서, 그 사실의 수용에 대해 왜 메타적 분석이나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는가? 유력한 분석인 가치에 호소하는 분석은 논리적 오류를 낳기 때문. 또한 인과적 영향과 증거적 뒷받침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pp. 171-172). 증거는 그것이 가치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신뢰할만해지지도 않고 정보적이 되지도 않는다. 물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가치가 증거적 추론의 형성적 역할(formative role)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치료되어야 할 문제 상황이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인식적 요소와 비인식적 요소 구별 불가능성 논변 비판

허드슨은 자신의 대응이 인식적 요소와 비인식적 요소의 지속가능한 구별에 의존한다는 점을 의식하고, 이를 부정하는 세 가지 근거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첫째, 인식적 기준의 애매함(looseness)에 기반한 논변. 루니(Rooney 1992)에 따르면, 가치는 과학적 추론에 두 가지 방식으로 들어온다. 첫째는 이론 평가에 무슨 기준을 사용할 것인지를 통해, 둘째는 이 기준들을 얼마나 중시하느냐를 통해. 이러한 애매함 때문에, 비인식적 가치들이 이론 평가의 인식적 가치의 사용에 끼어들 수 있고, 이는 인지적 간극 때문에 인식/비인식 구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앞에서 허드슨이 거부한 입증적 간극 논증의 한 버전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비인식 구별 붕괴는 쿤도 받아들이지 못할 결론이다.

둘째, 인식/비인식 요소가 결합된 가정에 기반한 논변. 맥멀린의 '비표준 인식적 가치들'의 사례로서, 형이상학적 가정들을 생각해보자. 이 가정들은 사실적이고, 인식적으로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시험불가능할 정도로 추상적이다. 예컨대, 뉴턴의 신학적 세계관, 우주의 정합성과 질서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서로 다른 견해, 론기노가 언급한 젠더 이형성 가정들. 그런데 맥멀린은 이 가정들에 반영되어 있던 비인식적 요소들이 걸러질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러한 낙관에는 근거가 있다. 오늘날 뉴턴의 물리적 추론과 뉴턴의 신학적 세계관 분리 가능하며, 론기노 역시 "과학자들의 젠더 편향이 이러한 편향들을 열린, 공적, 포괄적 논쟁의 엄격한 검토에 부침으로써 드러내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루니는 왜 인식/비인식 구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나? 그는 관찰의 이론 의존성 및 그것의 가치 의존성에 호소. 그러나 허드슨이 보기에, 관찰의 이론의존성이 곧장 가치 의존성을 함축하진 않음.

셋째, 과학자/정책가의 지식 간극에 기반한 논변. 과학자는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사실들만 제공해주고, 정책가가 그것을 이용해 의사결정한다는 역할 구분 모형이 성립한다면 인식/비인식 구별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크레노어(Cranor 1990)에 따르면, 이는 비현실적이다. 정책가는 과학자가 제공한 상세한 사실들을 이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이용가능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그들의 결과를 단순화해야 하고(예컨대, 이 물질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 식의), 이러한 결정의 증거 표준에 사회적 가치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드슨에 따르면, 이러한 지식 간극을 인정하여, 과학자의 보고서에 가치가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는 여전히 과학의 가치중립성 이념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자의 보고서 작성 활동은 일종의 의사결정자로서의 활동으로, 그 활동이 가치에 의존한다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리적으로 과학자는 자기 자신을 과학자로서의 나와 의사결정자로서의 나를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엘리엇은 "과학자로서의 나"의 활동에서도 증거 판단은 가설 수용에 미결정적이기 때문에 비인식적 가치가 들어오는 것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앞서 허드슨이 거부한 불확실성 논변에 불과하다.

요컨대, 인식적인 것과 비인식적인 것의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호소하는 가치의존성 옹호 논변들은 결국 배경 가정들의 가치화된 본성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그렇다면 결국 과학에 가치가 들어오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은 증거에 기반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과학자가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도덕적 책임 논변에 대한 비판

더글라스 비판

더글라스는 연구주제나 방법론의 선택에서 과학자가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서 "과학은 가치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더글라스는 과학자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이는 뤼브(Lubbe)와 브리지만(Bridgman)의 견해로부터 탈피하여, 과학자도 자신의 과학 활동의 예상되는 부정적 귀결을 고려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가설에 대한 믿음이나 수용도 부분적으로는 도덕적 요인에 의존하는가? 이는 연구주제나 방법론의 선택과는 달리 훨씬 미묘한 문제로서, 그의 직관을 그대로 확대해선 안 되는 문제이다.

첫째, 과학의 권위(신뢰) 추락 위험에 근거한 반론 : 의사가 HIV 환자에게 그 악영향을 고려하여 진실을 숨겨야 할까?[1] 도적적 책임 논변은, 극단적으로(그 위험이 매우 클 경우), 가설 수용이 증거와는 상관 없이 그 결과에 따른 행복과 불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허용하고, 그러한 결정이 인식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과학의 (인식적) 권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과학의 권위를 무시하고 과학의 불확실한 본성을 강조한다면? 그러나 도덕적 가치 중립성으로부터 얻는 장점 분명히 있다. 의사는 과학자로서의 나와 조언가로서의 나를 분리하여, 조언가로서 가지는 고뇌와 구별하여, 과학자로서 환자의 HIV에 대해 믿는 것이 가능하며 객관성의 측면에서 필요하다.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또한 허드슨은 더글라스가 과학의 권위를 깡그리 포기하는 입장을 취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더글라스가 과학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의 정책적 중요성 때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중요한 과학이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은 더글라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과학의 객관성 약화 위험에 근거한 반론 : 도덕적 의무는 진리를 왜곡하도록 이끌 수 있으며, 결국 과학은 덜 객관적이 될 것이다. 물론 더글라스는 이 문제에 때문에 도덕적 가치가 증거적 추론에서 직접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금지하고, 간접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따른 "사심없는 객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가치의 간접적 개입 허용만으로도, 위험이 큰 사안을 가정할 경우, 과학적 탐구는 도덕적 가치에 의해 독점될 수 있고, 이는 객관성의 상실을 뜻하게 된다. 더글라스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여러 해법을 모색한다 하더라도, 더글라스의 구도 내에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가(Gaa) 비판

제임스 가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반대하는 두 가지 논변을 제시했다. 첫째, 인식적 요인만 고려하라는 과학 교육의 목적은 그 자체로 인식적일 수 없다. 그것은 도덕적 가치에 의존하는 권고이다. (허드슨의 반론) 그러나 X가 가치화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가치가 X의 구성요소라고 말할 수는 없듯이, 과학의 궁극 목적이 비인식적이라고 해서, 가치가 과학을 구성하는 일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둘째, 과학자의 연구는 공공재원 및 공적 허가에 의존하기에, 도덕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허드슨의 반론) 이 논변은 연구주제나 방법의 선택에는 적용되더라도, 가설 선택의 문제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

첫째, 보상이 큰 경우, 수용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진다.

둘째, 수용 당시 윤리적 함의를 가지지 않는 과학적 가설도 있다. 가와 더글라스는 가치가 가설 평가에서 증거적 역할을 한다는것을 보이지 못했다. 그들은 가설 수용 결정에서 도덕적 가치가 수행하는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그것이 증거로서 역할을 하는지는 무시한다. 결국, 가치가 증거가 아니라면, 어쨌든 가설 평가에서 가치의 영향은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결론.

셋째, 과학이 필연적으로 가치의존적이라면, 과학적 방법은 온갖 윤리적 고려를 다루어야 하지만, 현재의 과학 교육은 그러지 않으며,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인 부담이다. 현재의 과학교육은 과학적, 기술적 문제 풀이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윤리 교육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왜 그런가? 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판단은 매우 복잡하고, 그 자체로 전문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예컨대 "맨하탄 프로젝트에 가담한 과학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가?"와 같은 질문에 우리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윤리적 문제는 과학자의 일차적인 문제일 수 없으며, 오히려 과학과 윤리의 분업이 더 현실적이다.

주석

  1. 원래 더글라스의 논변은 증거에 기반한 결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영향을 고려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확실한 상황을 가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