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군 사고와 인간 본성
피터 고드프리-스미스 지음, 정동욱 옮김, "개체군 사고와 인간 본성". 원문 : Peter Godfrey-Smith, Philosophy of Bi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Ch. 8, Section 4 (pp. 139-143).
저자에 따르면, 진화론 하에서 인간 본성 개념은 더이상 보편적 성격과 규범적 성격을 가질 수 없고 단지 '사후적'(post hoc) 성격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약화된 인간 본성 개념은 실존주의적 견해와 연결될 수 있다.
본문
개체군 사고와 인간 본성
피터 고드프리-스미스(Peter Godfrey-Smith) 지음
정동욱 옮김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은 우리 종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생물학 외부의 많은 이론적 프로젝트들이 만나는 지점이다. 진화론적 관점은 이 개념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한 가지 가능성은 심리학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이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Pinker 2002). 그 반대편에 서있는 생물학자 마이클 기셀린(Michael Ghisel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화는 인간 본성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줄까? 그것은 인간 본성이 미신이라고 알려준다."(1997, p. 1)
이러한 불일치 중 일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개념과 약한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이고 강한 개념에 따르면, 인간 본성이란 인간들에 보편적(universal)이면서 그들에게 독특한(distinctive) 속성들의 조합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사고, 행동, 물리적 형태의 특성들이 포함된다. 그러한 관찰가능한 특성들은 내적 속성들의 집합의 발현이며, 이들은 모든 인간 전체에 걸쳐 공유된다. (심각한 장애가 있는 인간들은 이 속성들의 일부를 결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정상적" 인간들은 그 속성들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관점에서, 인간 본성은 시간적으로 안정적이며 교정하기 어렵다. 인간 본성에 대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도덕적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적어도 그것들은 무엇이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며, 어쩌면 무엇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지를 올바름(proper) 또는 적절성(appropriate)의 의미에서 결정해준다. 이는 기셀린과 데이비드 헐(David Hull 1986)과 같은 사람들이 신화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 본성이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의 신화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쉽게 식별되는 종으로, 누군가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당신은 그/그녀에 대해 예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가능한 특성들은 대체로 인간 전체에 걸쳐 공유된 유전적 프로파일에 의해 기인한다. 만약 당신이 왜 인간은 침팬지와 철갑상어와 그러헥 다르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면, DNA는 그것의 전부를 결정하진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차이 제조자(difference maker)이다(책의 6.2절). 만약 화성인이 와서 지구상의 동물들에 대한 『휴대용 가이드북』이 필요하다면, 다음은 우리 종에 대한 유용한 가이드 항목이 될 수 있다. 이족 보행을 하고, 비교적 털이 적으며, 사교적이고, 수다스럽다.[1] 그 화성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 우리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인간 본성 개념에는 분명 신화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다.
이 문제를 정리하는 데 나는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의 글에서 온 유형적 사고(typological thinking)와 개체군 사고(population thinking)의 구분을 사용할 것이다(1959).[2] 유형적 사고는 종 내 변이들을 이상적 "유형"의 불완전한 현실화로 간주한다. 마이어는 이러한 관점의 기원으로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체군 사고는 이러한 관점을 뒤집는다. 자연은 저마다 고유한 개체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지며, 유형들은 우리가 이 복잡성을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대략적인 개념적 도구이다. 마이어는 다윈이 생물학에서의 유형적 태도를 개체군 사고로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다윈 이전의 사고를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마이어의 "개체군 사고" 개념은 새로운 관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관점은 적어도 진화론에 의해 매우 강화된 동시에, 진화론과 잘 부합하면서, 많은 주제들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한 주제들 중 하나가 인간 본성이다. 앞의 장에서 다루었듯이, 종이라는 개념에는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서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유기체들을 비교할 때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문제를 잠시 제쳐둔다면, 절제된 방식으로 인간 종의 "본성"을 얘기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우리의 진화적 역사의 결과로서, 우리 종을 특성화하는 유전적 프로파일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많은 특징적인 형질들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공통적인 특성들을 보다 불변적인 뜻의 "본성"으로 보고 싶은 유혹이 있긴 하지만, 진화는 끝이 열려있다. 현재 인간에 적용되는 프로파일은 아마도 변화중일 것이다. 새로운 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변이들은 처음엔 "비정상"을 간주되겠지만, 오늘의 비정상이 내일의 정상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인간을 특징짓는 형질들은 매우 다른 모습의 (과거의) 개체군에서 희귀한 비정상적 특성들로 시작되었다. 유형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한 유형 내 변이[차이]는 불완전 또는 비정상을 반영하며, 그 사고방식은 유형들 사이의 특징적 차이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사실 전자의 차이를 후자의 차이로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유기체의 "유형들" 사이의 차이는 개체군 내의 변이[차이]에서 유래하여, 걸리지고 확대되어 결국 대규모의 변화를 낳는 것이다.
인기를 끌어온 한 가지 그림은 우리와 같은 종에서 내적 원인들에 의해 정해진 안정적인 특성들의 집합이 있고, 환경이 이 특성들을 교란하여 다양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특수성들은 학습 등의 가변적인[세심한] 방법을 통해 그 흔적을 남긴다. 이때 우리의 특성들 중 무엇이 안정적인 내적 원인에 기인한 것이고 무엇이 환경에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발생한다(본성 대 양육). 학습은 그들 환경의 세부 사항에 대한 유기체의 행동을 미세조정하는 진화적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 종의 사회적 성격은 내적 원인 및 안정적 특성들과 외적 원인 및 가변성 사이의 (앞에서 언급한 방식의) 제휴를 교란한다. 인간의 삶은 안정적으로 전수된 행동과 관습에 의해 특성화되는데, 이는 부모 등에 의한 교육과 행동 본보기를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우리의 많은 형질들은 학습되지만, 변덕스럽기보다 반복적이며, 이는 — 킴 스티렐니(Kim Sterelny)의 책 제목 『진화된 도제(The Evolved Apprentice)』(2012)에서 표현되었듯이 —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여러 독특한 특성들의 진화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내적 원인들에 의한 형질들이 대체로 변화에 대한 저항성을 동반하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유전적 원인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변하기 어려움을 함축하진 않는다. 형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적 영향은 자연 환경에서는 드물지도 모르지만, 일단 우리가 그러한 영향이 무엇일지 알기만 하면 만들어내기 쉬울 수도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들은 도덕적 문제의 여러 논의를 위한 틀을 제공한다. 기독교 전통에서처럼, 인간 본성을 나쁜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인간 본성을 통해] 긍정적인 가이드를 찾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도덕적으로 관련된 의미에서 우리에게 본성적인(natural), 즉 "자연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즉 정보를 찾는 것이다. 이는 4장의 목적론에 대한 논의와 연결된다. 만약 어떤 형질이 자연 선택 하에서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그것의 기능(function), 즉 그것이 원래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지를 통해 기술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렇게 자연 선택으로부터 나오는 "원래(supposed)"와 "정상(normal)"이라는 개념은 도덕적 함의를 갖지 않는다. 만약 어떤 행동이 진화된[또는 진화에 기여한] 기능을 가진다면, 이는 그 행동이 번식의 성공과 결부되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보존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습관이나 특성이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적/본성적(natural)"이라는 사실은 그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지 않으며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금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와 "개체군 사고" 내에서 유지될 수 있는 인간 본성이란 개념은 보다 전통적인 관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 계통 내에서의 진화가 실제로 당분간 특정한 경로를 취했다면, 우리는 그 계통에서 확립된 "진화된 본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물론 그중 다수는 (하나의 시대 안에서도)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진화는 끝이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에 대한 이런 얘기는 사후적(post hoc) 성격을 가진다. 현재 "비정상적"인 새로운 특성은 어쩌면 미래의 새로운 본성을 위한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종에게 참이다. 인간의 학습과 문화적 전수 능력은 이러한 진화적 개방성에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철학의 역사로 돌아가보자. 인간 본성의 지위에 대해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 20세기의 몇몇 실존주의자들은 매우 다른 길을 거쳐 이와 비슷한 생각에 도달했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실제 사실들이 정말로 따르거나 따라야 하는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간들은 그들 각자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했듯이, 인간 본성에 대한 얘기는 사후적일 뿐이다. 실존주의적 용어를 사용한다면, 존재(인간 삶의 실제 사건들)가 본질(인간의 각인된 본성 또는 "개념")에 앞선다. 실존주의자들은 이러한 요점을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난해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정말로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을 창조자로서 생각할 때, 우리는 대체로 그를 신성한 장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 즉, 신의 마음 속에 있는 인간의 개념은 장인의 마음 속에 있는 종이 자르는 칼의 개념과 대응될 수 있다. 장인이 정의와 공식에 따라 종이 자르는 칼을 만들듯이, 신은 어떤 절차와 개념에 따라 인간을 만든다. ... 18세기 철학적 이신론에서, 신의 개념은 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는 생각은 억제되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의 일부는 여전히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디드로(Diderot)에게서, 볼테르(Voltaire)에게서, 심지어 칸트(Kant)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인간 본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 본성"은 인간 개념으로서,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며, 각 인간은 보편적 개념, 즉 인간이란 개념의 특수한 사례이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보다 먼저 존재하고, 자신을 마주하고, 세계 속에서 출렁거린다. 그런 다음 나중에 스스로를 정의한다.(Sarte 1946/1956, p. 349)
더 읽을거리
Oyama (2000), Dupré (2001), Pigliucci and Kaplan (2003), Buller (2005), Machery (2008), Downes and Machery (2013), Prinz (2012).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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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pré, J. (2001), Human Nature and. he Limits of Scien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Ghiselin, M. (1997), Metaphysics and the Origin of Specie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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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항목
- 생물 종 개념
- 에른스트 마이어, 유형적 사고 대 개체군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