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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Okruhlik, “Gender and the Biological Sciences”, in {{C&C}}, pp. 192-208; originally from ''Biology and Society, Canadian Journal of Philosophy'', Supplementary vol. 20 (1994), 21-42. | Kathleen Okruhlik, “Gender and the Biological Sciences”, in {{C&C}}, pp. 192-208; originally from ''Biology and Society, Canadian Journal of Philosophy'', Supplementary vol. 20 (1994), 21-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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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의 생물학과 젠더 연구 그룹(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이 작성한 “현대 세포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중요성”이란 제목의 1988년 글을 보자.<ref>The 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 “Importnace of Feminist Critiques for Contemporary Cell Biology”, in ''Feminism and Science'', Nancy Tuana, ed.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 172-87.</ref> 이 글은 어떻게 현대의 연구가 여전히 생식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가 맺는 관계에 대한 낡은 모델에 의해 구속받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난자와 정자에 대한 '잠자는 공주/완벽한 왕자(Sleeping Beauty/Prince Charming)' 모델에 대한 믿음은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에게 인간 생식에 관한 일부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했을지 모른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성은 능동적으로 보이듯이, 난자와 정자도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정자는 영웅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대적인 자궁과 맞서 싸운 후, 난자에게 구애하고, (만약 성공적이라면) 모든 경쟁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뚫고 들어가는 반면, 그동안 난자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이 영웅담 속 난자의 유일한 역할은 어느 구혼자가 성공할지 맞추는 것뿐이다. | 우선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의 생물학과 젠더 연구 그룹(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이 작성한 “현대 세포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중요성”이란 제목의 1988년 글을 보자.<ref>The 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 “Importnace of Feminist Critiques for Contemporary Cell Biology”, in ''Feminism and Science'', Nancy Tuana, ed.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 172-87.</ref> 이 글은 어떻게 현대의 연구가 여전히 생식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가 맺는 관계에 대한 낡은 모델에 의해 구속받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난자와 정자에 대한 '잠자는 공주/완벽한 왕자(Sleeping Beauty/Prince Charming)' 모델에 대한 믿음은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에게 인간 생식에 관한 일부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했을지 모른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성은 능동적으로 보이듯이, 난자와 정자도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정자는 영웅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대적인 자궁과 맞서 싸운 후, 난자에게 구애하고, (만약 성공적이라면) 모든 경쟁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뚫고 들어가는 반면, 그동안 난자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이 영웅담 속 난자의 유일한 역할은 어느 구혼자가 성공할지 맞추는 것뿐이다. | ||
남자의 정액이 잠자는 난자를 깨운다는 생각은 이미 1795년부터 등장해서 그 이후로 줄곧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15년 사이에, 몇몇 대안적인 견해들이 난자를 생식과정의 활동적인 동반자로 여기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정자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난자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에, 난자는 세포 표면에 작은 손가락 같은 돌기를 성장시켜 정자를 '''움켜잡고서''' 천천히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자에게 뻗어 나오는 이 미세융모 돌기는 성게의 생식에 대한 최초의 사진이 발표된 1895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최근까지 거의 무시되었다. | 남자의 정액이 잠자는 난자를 깨운다는 생각은 이미 1795년부터 등장해서 그 이후로 줄곧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15년 사이에, 몇몇 대안적인 견해들이 난자를 생식과정의 활동적인 동반자로 여기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정자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난자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에, 난자는 세포 표면에 작은 손가락 같은 돌기를 성장시켜 정자를 '''움켜잡고서''' 천천히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자에게 뻗어 나오는 이 미세융모 돌기는 성게의 생식에 대한 최초의 사진이 발표된 1895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최근까지 거의 무시되었다.<sup>[[#역자주1]]</sup> | ||
여기서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이론인지가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보다 확립된 견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는 오래된 모델의 의심스러운 가정들을 선명하게 돋보이게 해준다. 새 이론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이론적 가정들에 의해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할지, 무슨 가설을 탐구할지, 어떤 자료를 증거로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하기로 결정할지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고려들은 때때로 발견의 맥락으로 격하되고 실제 과학의 내용과는 인식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얘기되는데, 이 문제는 우리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그 사이에, 자료의 증거적 중요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즉 같은 자료가 서로 다른 이론적 믿음에 따라 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 여기서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이론인지가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보다 확립된 견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는 오래된 모델의 의심스러운 가정들을 선명하게 돋보이게 해준다. 새 이론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이론적 가정들에 의해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할지, 무슨 가설을 탐구할지, 어떤 자료를 증거로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하기로 결정할지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고려들은 때때로 발견의 맥락으로 격하되고 실제 과학의 내용과는 인식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얘기되는데, 이 문제는 우리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그 사이에, 자료의 증거적 중요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즉 같은 자료가 서로 다른 이론적 믿음에 따라 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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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에서 그 질문은 상당히 자주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 이것은 과학철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과학철학에서 그 질문은 상당히 자주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 이것은 과학철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
두 질문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는 둘을 함께 다루고 싶다.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여성주의 인식론에 대한 샌드라 하딩(Sandra Harding)의 3가지 분류는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ref>Sandra Harding, ''The Science Questions in Feminism''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6) [한국어 번역본 : 이재경, 박혜경 옮김, {{책|페미니즘과 과학}}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2)]. S. Harding, ''Whose Knowledge? Thinking From Women’s Live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1)도 보라.</ref>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혼란스러운 다양성을 다루기 위해, 하딩은 이를 여성주의적 경험주의(feminist empiricism), 관점 인식론(standpoint epistemology)<sup>[[# | 두 질문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는 둘을 함께 다루고 싶다.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여성주의 인식론에 대한 샌드라 하딩(Sandra Harding)의 3가지 분류는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ref>Sandra Harding, ''The Science Questions in Feminism''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6) [한국어 번역본 : 이재경, 박혜경 옮김, {{책|페미니즘과 과학}}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2)]. S. Harding, ''Whose Knowledge? Thinking From Women’s Live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1)도 보라.</ref>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혼란스러운 다양성을 다루기 위해, 하딩은 이를 여성주의적 경험주의(feminist empiricism), 관점 인식론(standpoint epistemology)<sup>[[#역자주2]]</sup>, 여성주의적 포스터모더니즘(feminist postmodernism)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 ||
‘여성주의적 경험주의’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실패를 과학이 자기 자신의 이상에 부응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진단한다. 남성중심적 편향은 과학적 방법의 엄격한 적용을 방해해 왔다. 그러나 과학의 규율(canon)이 충실히 지켜졌다면, 위와 같은 일들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주의적 경험주의의 입장에서, 인식 주체의 관점은 인식적으로 무관하며, 그 관점에서 유래한 어떤 편향도 객관적 방법의 적절한 적용으로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 ‘여성주의적 경험주의’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실패를 과학이 자기 자신의 이상에 부응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진단한다. 남성중심적 편향은 과학적 방법의 엄격한 적용을 방해해 왔다. 그러나 과학의 규율(canon)이 충실히 지켜졌다면, 위와 같은 일들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주의적 경험주의의 입장에서, 인식 주체의 관점은 인식적으로 무관하며, 그 관점에서 유래한 어떤 편향도 객관적 방법의 적절한 적용으로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 ||
이러한 가정은 지식 주장의 자격이 부분적으로 인식 주체의 상황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관점 인식론자들’에 의해 거부된다. 헤겔의 노예가 주인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성(또는 여성주의자)도 남성(또는 비여성주의자)에 비해 인식적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관점 인식론에 따르면, 여성의 관점에 기초한 과학은 현재 과학을 넘어서는 진보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여전히 ‘계승자 과학(successor science)’<sup>[[# | 이러한 가정은 지식 주장의 자격이 부분적으로 인식 주체의 상황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관점 인식론자들’에 의해 거부된다. 헤겔의 노예가 주인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성(또는 여성주의자)도 남성(또는 비여성주의자)에 비해 인식적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관점 인식론에 따르면, 여성의 관점에 기초한 과학은 현재 과학을 넘어서는 진보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여전히 ‘계승자 과학(successor science)’<sup>[[#역자주3]]</sup> 프로젝트이다. 왜냐하면 그 목적은 세계에 대한 '''더 나은''' (인식적으로 우월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접근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들이 지적되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단일한 여성주의 관점이 없다는 문제제기였다. 여성의 관점이 남성의 관점과 다른 것처럼, 가난한 여성의 관점 역시 부유한 여성의 관점과 다르고, 흑인 여성의 관점은 백인 여성의 관점과 다르고, 레즈비언의 관점은 이성애자 여성의 관점과 다르고, 등등. 어떤 근거에서 이들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세계를 기술하는 관점으로서의 특권을 가질 수 있겠는가? | ||
이러한 정체성의 균열과 그로 인한 관점의 균열로 인해, 일부 이론가들은 더욱 더 객관적이 되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대안적인 서술들의 환원불가능한 다원성의 존재를 수용함으로써 하딩이 ‘여성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 접근을 수용하게 되었다. 문화, 시간,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줄 것 같은 과학적 방법의 관념은 여성주의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완전히 거부되었다. 합리성과 객관성에 대한 이론초월적인 기준은 남성적 신화의 산물로 기각되고, ‘계승자 과학’ 프로젝트는 폐기된다. | 이러한 정체성의 균열과 그로 인한 관점의 균열로 인해, 일부 이론가들은 더욱 더 객관적이 되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대안적인 서술들의 환원불가능한 다원성의 존재를 수용함으로써 하딩이 ‘여성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 접근을 수용하게 되었다. 문화, 시간,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줄 것 같은 과학적 방법의 관념은 여성주의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완전히 거부되었다. 합리성과 객관성에 대한 이론초월적인 기준은 남성적 신화의 산물로 기각되고, ‘계승자 과학’ 프로젝트는 폐기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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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주 == | == 역자주 == | ||
#<span id='역자주1'>‘입장 인식론’이라는 번역이 존재한다. ‘standpoint’라는 영어 단어는 원래 ‘서 있는 지점’이라는 뜻으로 ‘처지’, ‘견지’, ‘입장’이라는 번역이 잘 어울리긴 하나, ‘입장’이라는 우리말이 때로는 ‘주장’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문맥에 따라 ‘standpoint’를 ‘입장’으로 번역하면 오해를 초래할 만한 부분들이 있기에, 이 글에서는 ‘standpoint’의 번역어를 ‘관점’이라는 말로 통일했다.</span> | #<span id='역자주1'>난자의 능동적 역할에 주목한 최근 연구들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Carrie Arnold, [https://www.quantamagazine.org/choosy-eggs-may-pick-sperm-for-their-genes-defying-mendels-law-20171115/ Choosy Eggs May Pick Sperm for Their Genes, Defying Mendel’s Law], ''Quanta Magazine'' (2017); John L. Fitzpatrick, Charlotte Willis, Alessandro Devigili, Amy Young, Michael Carroll, Helen R. Hunter and Daniel R. Brison,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pb.2020.0805 Chemical Signals from Eggs Facilitate Cryptic Female Choice in Humans], ''Proceedings of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287 (10 June 2020).</span> | ||
#<span id=' | #<span id="역자주2">‘입장 인식론’이라는 번역이 존재한다. ‘standpoint’라는 영어 단어는 원래 ‘서 있는 지점’이라는 뜻으로 ‘처지’, ‘견지’, ‘입장’이라는 번역이 잘 어울리긴 하나, ‘입장’이라는 우리말이 때로는 ‘주장’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문맥에 따라 ‘standpoint’를 ‘입장’으로 번역하면 오해를 초래할 만한 부분들이 있기에, 이 글에서는 ‘standpoint’의 번역어를 ‘관점’이라는 말로 통일했다.</span> | ||
#<span id='역자주3'>샌드라 하딩에게, ‘계승자 과학’이란 현재의 (남성중심적인) 과학의 목표와 이상을 그대로 계승한 과학을 의미한다.</span> | |||
[[분류:번역]] | [[분류:번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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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과학적 방법]] | [[분류:과학적 방법]] | ||
[[분류:과학과 젠더]] | [[분류:과학과 젠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