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정상과학의 성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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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적 탐구의 세 가지 유형 ===
=== 사실적 탐구의 세 가지 유형 ===


“첫 번째는 패러다임이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특히 뚜렷하게 흥미롭다고 밝히는 사실들의 부류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 사실들을 적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그런 사실들의 정확도를 높이고 그 사실들을 더욱 다양한 상황 속에서 확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93쪽) 예를 들면 이런 사실에는 어떤 것이 포함될까? 별들의 위치와 광도, 행성의 주기, 물질의 비중, 열 전도도, 전기 전도도, 유전율, 투자율, 스펙트럼의 파장과 강도, 화학 조성과 분자량, 용액의 끓는점과 어는점 등등에 대한 측정과 조사가 이에 포함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장치들이 고안되어야 했고, 이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과거의 천문대부터 현대의 입자가속기는 바로 그러한 장치들이다. “이들 과학자들은 무슨 신기한 새로운 발견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알려진 종류의 사실을 재정립하는 데에 필요한 매우 정밀하고, 신뢰도가 크며, 적용 범위가 넓은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93-94쪽)
“첫 번째는 패러다임이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특히 뚜렷하게 흥미롭다고 밝히는 사실들의 부류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 사실들을 적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그런 사실들의 정확도를 높이고 그 사실들을 더욱 다양한 상황 속에서 확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93쪽) 예를 들면 이런 사실에는 어떤 것이 포함될까? 별들의 위치와 광도, 행성의 주기, 물질의 비중, 열 전도도, 전기 전도도, 유전율, 투자율, 스펙트럼의 파장과 강도, 화학 조성과 분자량, 용액의 끓는점과 어는점 등등에 대한 측정과 조사가 이에 포함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장치들이 고안되어야 했고, 이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과거의 천문대부터 현대의 입자가속기에 이르는 복잡한 장치들은 바로 그러한 장치들이다. “이들 과학자들은 무슨 신기한 새로운 발견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알려진 종류의 사실을 재정립하는 데에 필요한 매우 정밀하고, 신뢰도가 크며, 적용 범위가 넓은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93-94쪽)


“두 번째 사실의 결정은 패러다임 이론으로부터 유도되는 예측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사실의 결정이다. 이는 일상적이지만 첫 번째 것보다 작은 규모로 행해지며 그 자체로서의 흥미는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다.”(94쪽)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의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연주시차의 측정을 위해 특별한 망원경을 만든다든가, 뉴턴의 제2법칙의 논란 없는 증명을 위해 애트우드 기계를 만든다든가, 빛의 속도가 물과 공기 중 어디에서 빠른지에 대한 논란을 종식하기 푸코의 장치를 만드는 등의 활동은 단지 사실의 축적을 위해서 행해진 활동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연과 이론을 점점 더 가깝게 일치되도록 만드는 데에 엄청난 노력과 발명의 재능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95쪽)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부류의 시도는 앞서의 문제 유형보다 더 패러다임 의존적이다. 예컨대 {{책|프린키피아}}가 없었더라면 애트우드 기계를 이용한 측정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사실의 결정은 패러다임 이론으로부터 유도되는 예측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사실의 결정이다. 이는 일상적이지만 첫 번째 것보다 작은 규모로 행해지며 그 자체로서의 흥미는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다.”(94쪽)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의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연주시차의 측정을 위해 특별한 망원경을 만든다든가, 뉴턴의 제2법칙의 논란 없는 증명을 위해 애트우드 기계를 만든다든가, 빛의 속도가 물과 공기 중 어디에서 빠른지에 대한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푸코의 장치를 만드는 등의 활동은 단지 사실의 축적을 위해서 행해진 활동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연과 이론을 점점 더 가깝게 일치되도록 만드는 데에 엄청난 노력과 발명의 재능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95쪽)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부류의 시도는 앞서의 문제 유형보다 더 패러다임 의존적이다. 예컨대 {{책|프린키피아}}가 없었더라면 애트우드 기계를 이용한 측정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실험과 관찰의 세 번째 부류는 ... 패러다임 이론을 명료화하기 위해서 수행된 경험적인 연구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패러다임 이론에 남아있는 일부 모호한 점들을 해결하고, 이전에는 단지 관심을 끄는 것에 그쳤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허용하게 된다.”(96쪽) 이런 것으로는 (i) 중력 상수, 아보가드로 수, 줄의 상수, 전자의 전하 등의 물리 상수를 결정하기 위한 실험이나, (ii) 보일의 법칙이나 쿨롱의 법칙 등의 정량적 법칙을 얻기 위한 시도, (iii) 패러다임을 주변 영역에 적용하는 대안적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한 실험 등이 포함된다. 이 모두 패러다임 이론 없이는 수행될 수 없는 것들로, 순수히 실험만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정량 법칙들도 대부분 (정성적인) 패러다임의 가이드를 필요로 했고, 실제로 그러한 법칙들은 실제 실험 장치를 통해 발견되기 전에 추측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쿨롱이 성공을 거둔 것은 점전하들 사이의 힘을 측정하는 특별한 장치(비틀림 저울)을 스스로 고안해냈기 때문이지만, 그런 장치의 고안은 사실 전기 유체의 각 입자들이 서로 [거리에 의존한] 원거리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ref>코멘트 : 97쪽에 소개된 보일의 사례나 줄의 사례는 다소 어색한 점도 있다. 두 법칙의 발견 모두 정성적인 아이디어(기체 입자의 탄성, 열과 일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 발견이 패러다임에 의존한 정상과학적 활동이라는 주장은 어색하다. 압력과 부피 사이의 관계를 밝힌 보일의 실험이나 열과 역학적 일 사이의 전환을 밝힌 줄의 실험 모두 뚜렷한 패러다임에 기반한 활동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의 활동이 어떤 패러다임에 속한 것이었는지 명명할 수 있는가? 어떤 면에서 둘의 실험은 각각 새로운 정상과학을 낳는 혁명적인 실험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ref>
“실험과 관찰의 세 번째 부류는 ... 패러다임 이론을 명료화하기 위해서 수행된 경험적인 연구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패러다임 이론에 남아있는 일부 모호한 점들을 해결하고, 이전에는 단지 관심을 끄는 것에 그쳤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허용하게 된다.”(96쪽) 이런 것으로는 (i) 중력 상수, 아보가드로 수, 줄의 상수, 전자의 전하 등의 물리 상수를 결정하기 위한 실험이나, (ii) 보일의 법칙이나 쿨롱의 법칙 등의 정량적 법칙을 얻기 위한 시도, (iii) 패러다임을 주변 영역에 적용하는 대안적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한 실험 등이 포함된다. 이 모두 패러다임 이론 없이는 수행될 수 없는 것들로, 순수히 실험만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정량 법칙들도 대부분 (정성적인) 패러다임의 가이드를 필요로 했고, 실제로 그러한 법칙들은 실제 실험 장치를 통해 발견되기 전에 추측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쿨롱이 성공을 거둔 것은 점전하들 사이의 힘을 측정하는 특별한 장치(비틀림 저울)을 스스로 고안해냈기 때문이지만, 그런 장치의 고안은 사실 전기 유체의 각 입자들이 서로 [거리에 의존한] 원거리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ref>코멘트 : 97쪽에 소개된 보일의 사례나 줄의 사례는 다소 어색한 점도 있다. 두 법칙의 발견 모두 정성적인 아이디어(기체 입자의 탄성, 열과 일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 발견이 패러다임에 의존한 정상과학적 활동이라는 주장은 어색하다. 압력과 부피 사이의 관계를 밝힌 보일의 실험이나 열과 역학적 일 사이의 전환을 밝힌 줄의 실험 모두 뚜렷한 패러다임에 기반한 활동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의 활동이 어떤 패러다임에 속한 것이었는지 명명할 수 있는가? 어떤 면에서 둘의 실험은 각각 새로운 정상과학을 낳는 혁명적인 실험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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