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생명과학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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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사회적 영향이 과학의 내용을 형성할 수도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많은 저자들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출신이며, 철학자 출신도 있다. 과학철학의 경우, 과학의 성차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편향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많은 과학 분야의 발전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해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증하는 증거를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방식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사회적 영향이 과학의 내용을 형성할 수도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많은 저자들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출신이며, 철학자 출신도 있다. 과학철학의 경우, 과학의 성차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편향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많은 과학 분야의 발전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해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증하는 증거를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방식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성평등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생물학적 결정론적인 논변들은 여성의 억압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무척 자주 인용되기 때문이다. 그 논변들은 왜 여성이 사회적으로 종속적인[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왜 남성은 여성보다 더 똑똑하고 더 공격적인지, 왜 여성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기 마련인지, 왜 남성은 강간을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유전자, 호르몬, 진화 과정들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순리에 대한 결정요인으로 인용되며, 궁극적으로는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들이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증거로 인용된다.<sup>[[#역자주1]]</sup>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성평등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생물학적 결정론적인 논변들은 여성의 억압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무척 자주 인용되기 때문이다. 그 논변들은 왜 여성이 사회적으로 종속적인[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왜 남성은 여성보다 더 똑똑하고 더 공격적인지, 왜 여성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기 마련인지, 왜 남성은 강간을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유전자, 호르몬, 진화 과정들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순리에 대한 결정요인으로 인용되며, 궁극적으로는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들이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생물학에 대한 비판들은 '''인식적으로'''(''epistemically'')도 중요한데, 이는 생물학이 과학의 통상적인 위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 물리학과 사회과학 양쪽 사이의 어딘가 ― 때문이다. 사회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사회과학은 아예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과학철학자들의 고려 대상에서 매우 빈번히 제외되곤 한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비판들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과학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으로 얘기됐다. 그러나 생물학을 사이비과학으로 일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며, 따라서 이 분야에서의 비판들은 추가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다. 만약 우리가 여성주의적 비판의 시각에서 과학의 본성에 대한 무언가(과학의 합리성, 객관성, 사회적 영향으로부터의 단절 정도, 개인적 혹은 집단적 활동으로서의 성격)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생명과학은 아마도 최선의 출발지점이 될 것이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작성되었다. 이 글은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절에서는, 생명과학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몇 가지 사례 연구들을 검토할 것이다. 여기서의 검토는 논의를 위한 일반적인 사례들을 제공하는 한편, 그것들에 대해 과학철학의 표준적인 입장이 얼마나 부분적인 해명만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절에서는, 이 사례 연구들(과 그와 같은 다른 사례들)의 가능한 인식적 중요성이 여성주의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과학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방식들의 시각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이 에세이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발전시킴으로써, 젠더 편향에 의해 예화되는 과학에 대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영향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상당히 튼튼한 객관성과 합리성의 관념을 위한 여지도 허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 속하는 다른 견해들과 비교하여 이 이해방식을 위치지우는 시도를 할 것이다.
생물학에 대한 비판들은 '''인식적으로'''(''epistemically'')도 중요한데, 이는 생물학이 과학의 통상적인 위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 물리학과 사회과학 양쪽 사이의 어딘가 ― 때문이다. 사회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들은 사회과학은 아예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과학철학자들의 고려 대상에서 매우 빈번히 제외되곤 한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비판들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과학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으로 얘기됐다. 그러나 생물학을 사이비과학으로 일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며, 따라서 이 분야에서의 비판들은 추가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다. 만약 우리가 여성주의적 비판의 시각에서 과학의 본성에 대한 무언가(과학의 합리성, 객관성, 사회적 영향으로부터의 단절 정도, 개인적 혹은 집단적 활동으로서의 성격)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생명과학은 아마도 최선의 출발지점이 될 것이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작성되었다. 이 글은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절에서는, 생명과학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몇 가지 사례 연구들을 검토할 것이다. 여기서의 검토는 논의를 위한 일반적인 사례들을 제공하는 한편, 그것들에 대해 과학철학의 표준적인 입장이 얼마나 부분적인 해명만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절에서는, 이 사례 연구들(과 그와 같은 다른 사례들)의 가능한 인식적 중요성이 여성주의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과학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방식들의 시각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이 에세이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발전시킴으로써, 젠더 편향에 의해 예화되는 과학에 대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영향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상당히 튼튼한 객관성과 합리성의 관념을 위한 여지도 허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에 속하는 다른 견해들과 비교하여 이 이해방식을 위치지우는 시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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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의 생물학과 젠더 연구 그룹(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이 작성한 “현대 세포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중요성”이란 제목의 1988년 글을 보자.<ref>The 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 “Importnace of Feminist Critiques for Contemporary Cell Biology”, in ''Feminism and Science'', Nancy Tuana, ed.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 172-87.</ref> 이 글은 어떻게 현대의 연구가 여전히 생식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가 맺는 관계에 대한 낡은 모델에 의해 구속받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난자와 정자에 대한 '잠자는 공주/완벽한 왕자(Sleeping Beauty/Prince Charming)' 모델에 대한 믿음은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에게 인간 생식에 관한 일부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했을지 모른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성은 능동적으로 보이듯이, 난자와 정자도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정자는 영웅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대적인 자궁과 맞서 싸운 후, 난자에게 구애하고, (만약 성공적이라면) 모든 경쟁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뚫고 들어가는 반면, 그동안 난자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이 영웅담 속 난자의 유일한 역할은 어느 구혼자가 성공할지 맞추는 것뿐이다.  
우선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의 생물학과 젠더 연구 그룹(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이 작성한 “현대 세포 생물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중요성”이란 제목의 1988년 글을 보자.<ref>The Biology and Gender Study Group, “Importnace of Feminist Critiques for Contemporary Cell Biology”, in ''Feminism and Science'', Nancy Tuana, ed.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 172-87.</ref> 이 글은 어떻게 현대의 연구가 여전히 생식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가 맺는 관계에 대한 낡은 모델에 의해 구속받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난자와 정자에 대한 '잠자는 공주/완벽한 왕자(Sleeping Beauty/Prince Charming)' 모델에 대한 믿음은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에게 인간 생식에 관한 일부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했을지 모른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성은 능동적으로 보이듯이, 난자와 정자도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정자는 영웅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대적인 자궁과 맞서 싸운 후, 난자에게 구애하고, (만약 성공적이라면) 모든 경쟁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뚫고 들어가는 반면, 그동안 난자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이 영웅담 속 난자의 유일한 역할은 어느 구혼자가 성공할지 맞추는 것뿐이다.  


남자의 정액이 잠자는 난자를 깨운다는 생각은 이미 1795년부터 등장해서 그 이후로 줄곧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15년 사이에, 몇몇 대안적인 견해들이 난자를 생식과정의 활동적인 동반자로 여기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정자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난자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에, 난자는 세포 표면에 작은 손가락 같은 돌기를 성장시켜 정자를 '''움켜잡고서''' 천천히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자에게 뻗어 나오는 이 미세융모 돌기는 성게의 생식에 대한 최초의 사진이 발표된 1895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최근까지 거의 무시되었다.  
남자의 정액이 잠자는 난자를 깨운다는 생각은 이미 1795년부터 등장해서 그 이후로 줄곧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15년 사이에, 몇몇 대안적인 견해들이 난자를 생식과정의 활동적인 동반자로 여기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정자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난자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에, 난자는 세포 표면에 작은 손가락 같은 돌기를 성장시켜 정자를 '''움켜잡고서''' 천천히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자에게 뻗어 나오는 이 미세융모 돌기는 성게의 생식에 대한 최초의 사진이 발표된 1895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최근까지 거의 무시되었다.<sup>[[#역자주1]]</sup>


여기서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이론인지가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보다 확립된 견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는 오래된 모델의 의심스러운 가정들을 선명하게 돋보이게 해준다. 새 이론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이론적 가정들에 의해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할지, 무슨 가설을 탐구할지, 어떤 자료를 증거로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하기로 결정할지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고려들은 때때로 발견의 맥락으로 격하되고 실제 과학의 내용과는 인식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얘기되는데, 이 문제는 우리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그 사이에, 자료의 증거적 중요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즉 같은 자료가 서로 다른 이론적 믿음에 따라 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이론인지가 아니다(그것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보다 확립된 견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 자체는 오래된 모델의 의심스러운 가정들을 선명하게 돋보이게 해준다. 새 이론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이론적 가정들에 의해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할지, 무슨 가설을 탐구할지, 어떤 자료를 증거로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하기로 결정할지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고려들은 때때로 발견의 맥락으로 격하되고 실제 과학의 내용과는 인식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얘기되는데, 이 문제는 우리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그 사이에, 자료의 증거적 중요성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즉 같은 자료가 서로 다른 이론적 믿음에 따라 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