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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장. 사회에 대한 광물학적 시각 ===
=== 16장. 사회에 대한 광물학적 시각 ===
바르데슈에 따르면, 발자크는 통계에 대한 흥미로부터 다양한 부르주아 인간 군상에 대한 파노라마로 나아갔다. 발자크의 『결혼의 생리학』(1826/1829)의 도입부에는 '부부 통계'란 제목의 고찰이 있었는데, 1826년 "정실부인"은 "사륜마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으나, 1829년에는 "남편의 소득, 교육수준, 주거지 위치, 사회적 위치 및 삶의 스타일"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그 사이에 통계가 세밀해진 덕분이다. 그리고 바르데슈는 통계 출판물에 대한 관심이 발자크로 하여음 『인간 희극』을 저술하도록 이끌었다고 암시한다. 1842년 『인간 희극』 서문에는 "동물학적인 관점의 종이 있는 것처럼 일련의 사회적 종이라는 것도 항상 존재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인간 종은 한 권에 담을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개개의 인간이 저마다 독특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20권이나 내놓은 것이다.
르 플레는 발자크처럼 인간 다양한 유형들에 대한 파노라마식 연구를 1829년 시작했다. 그는 인간을 혼인 상태, 가족 관계, 주거지, 가계 생활비 규모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다만 부유계층 대신 유럽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소설이 아닌 개별 가족의 지출 규모에 대한 계량적 연구의 형태로 출판했다. 또한 평균치 대신 박물학자들의 암석 또는 식물 표본처럼 대표성을 때는 구체적 개인을 묘사했다. 우랄 산맥의 유목민, 셰필드의 칼장수, 스웨덴의 대장장이, 카스티야의 소작농, 모로코의 목수들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모노그래피를 작성했다. 그의 작업은 가정의 소득과 지출 등의 수치로 가득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의 작업을 통계적 저술로 인정하기 주저할 것이다.
르 플레는 자신을 콩트의 후계자로 보았다. 다만 도덕을 자연과학에 동화시킨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덕을 되살리고자 하는 비전을 지녔으며, 유산 강제 분할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재산을 장자에게 대물림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를 높이 평가하며, 다양한 지역의 가족제도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유럽의 직계가족 제도에 탄복했다. 그의 가족 유형에 대한 파노라마식 연구의 동기는 여기서 온 것일 수 있다.
르 플레의 현대적 기여는? 그의 대표 가구 추출 방법론? 혹시 그의 방법이 베버의 이상형 이론의 효시라고 보아야 할까? 그런데 르 플레의 확실한 기여는 바로 가구당 경비로, 이는 오늘날 생활비 지수의 기원이다. 그리고 이는 엥겔의 법칙으로 발전한다. "개인, 가구 또는 국민이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물리적 생계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지기 마련이고, 이 비용 중에서도 대다수는 식료품비에 할당된다."
원래 르 플레의 가구 경비는 한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개별 가구들에 대한 묘사였다. 이 수치는 해당 가구의 삶의 방식, 욕구, 즐거움, 가능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르 플레는 가구 경비로부터 해당 가구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전망을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엥겔의 경비는 이와 완젼히 달랐다. 그것은 '사회적 종'이 아니라 집단에 대한 측정치였다. 즉 누군가 개별성을 반영하고 우주의 확률화에 저항하기 위해 반통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더라도, 그러한 아이디어는 다음 세대에 정보와 통제에 대한 표준적인 통계 절차의 일부로 흡수되고 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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