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길들이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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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케틀레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스코틀랜드 군인 5738명의 가슴둘레 분포의 평균은 약 40인치인데, 그에 따르면, 이는 가슴둘레가 거의 40인치에 해당하는 한 명의 스코틀랜드인을 '인체 측정에 대해 숙달이 거의 되지 않은 사람'이 측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해킹의 논평에 따르면, 이러한 초보 재단사의 비유는 설득력이 없다(227쪽). 어떻게 여러 명에 대한 정교한 측정 결과들의 분포가 한 명에 대한 어설픈 측정 결과들의 분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케틀레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스코틀랜드 군인 5738명의 가슴둘레 분포의 평균은 약 40인치인데, 그에 따르면, 이는 가슴둘레가 거의 40인치에 해당하는 한 명의 스코틀랜드인을 '인체 측정에 대해 숙달이 거의 되지 않은 사람'이 측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해킹의 논평에 따르면, 이러한 초보 재단사의 비유는 설득력이 없다(227쪽). 어떻게 여러 명에 대한 정교한 측정 결과들의 분포가 한 명에 대한 어설픈 측정 결과들의 분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제시된 적이 없지만, 해킹은 개념 상의 불편함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설명은 있다고 소개한다. 그 설명은 라플라스적 결정론을 가정하되 미지의 기저 원인들을 도입한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가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오도록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에 의존한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은 전체 원인들 중에서 앞면을 촉진하는 원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될 것이고, 그 분포는 그 비율을 중심으로 한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천문 관측의 결과들이 +/- 오차를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으로 산출된다면, 그 오차 곡선은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이제 인간의 질병, 자살, 신체적, 사회적 특징 역시 수많은 미미한 원인들의 결과로 간주한다면, 이로부터 케틀레의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각 병사의 가슴둘레는 모종의 미지의 원인들로 인해 결정된다. 샘플의 크기가 큰 상황에서, 상호작용하는 개별 원인들의 총합은 가우스 곡선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로써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특성도 오차 법칙과 같이 분포되어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제시된 적이 없지만, 해킹은 개념 상의 불편함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설명은 있다고 소개한다. 그 설명은 라플라스적 결정론을 가정하되 미지의 기저 원인들을 도입한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가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오도록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에 의존한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은 전체 원인들 중에서 앞면을 촉진하는 원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될 것이고, 그 분포는 그 비율을 중심으로 한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천문 관측의 결과들이 +/- 오차를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으로 산출된다면, 그 오차 곡선은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이제 인간의 질병, 자살, 신체적, 사회적 특징 역시 수많은 미미한 원인들의 결과로 간주한다면, 이로부터 케틀레의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각 병사의 가슴둘레는 모종의 미지의 원인들로 인해 결정된다. 샘플의 크기가 큰 상황에서, 독립적인 원인들의 총합에 따른 결과는 가우스 곡선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로써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특성도 오차 법칙과 같이 분포되어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오차 법칙은 케틀레의 '평균인' 개념 창안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나중에 골턴은 이러한 이해방식에서 더 이상 '오차'(error)라는 단어가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를 산출하는 미세한 기저 원인들은 그저 자연적 원인들일 더이상 오차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차 법칙은 주로 천문학자들에게 중요했다. 케틀레는 이를 미세한 기저 원인이라는 모호한 체계로 포장하여 인문사회과학에 전파했다.   
오차 법칙은 케틀레의 '평균인' 개념 창안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나중에 골턴은 이러한 이해방식에서 평균으로부터의 편차(deviation)를 '오차'(error)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평균으로부터의 편차 역시 자연적 편차일 오차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차 법칙은 주로 천문학자들에게나 중요했다. 케틀레는 이를 미세한 기저 원인이라는 모호한 체계로 포장하여 인문사회과학에 전파한 셈이었다. 
 
케틀레는 이 체계에 천문학적 인과관계가 지닌 또 하나의 요소를 추가했다. 천체 운동은 엄격한 법칙을 따르지만 근접한 천체에 의해 교란될 수 있고, 근접했던 천체가 멀어지면 원래의 안정적 패턴이 회복된다. 케틀레는 이 아이디어를 통계적 규칙성이 가끔 깨지는 경우를 설명하는 데 활용했다. 프랑스의 유죄 판결률 변동(1832년) 및 같은 시기 벨기에의 더 극심했던 유죄 판결률 변동에 대해, 케틀레는 심각한 정치적 사건으로 인한 간섭으로 통계적 안정성이 깨진 일로 해석했다. 또한 그에게 문명의 정도는 통계적 불변성의 이탈의 정도가 낮을수록 높았다. 
 
해킹의 총평 : 위의 설명들은 조리있지 않다. "결정론적 세계관은 새로운 통계학이 제시하는 현상들에 의해 다방면에서 위협을 받았으며, 급증하는 현상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일관된 방법은 당시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저 원인에 대한 담론은 개념상의 결함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개념상 불안요소 중 하나는 통계적 숙명론과 자유의지의 문제였다. 만약 통계학이 범죄에 미리 할당된 총량이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 범죄자는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면, 범죄자의 자유의지란 어디에 있으며, 그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14장. 사회가 범죄를 예비한다 ===
=== 14장. 사회가 범죄를 예비한다 ===

2025년 8월 11일 (월) 12:44 판

이언 해킹, 『우연을 길들이다 : 통계는 어떻게 우연을 과학으로 만들었는가?』, 정혜경 옮김 (바다출판사, 2012).

요약

13장. 표준적인 가슴둘레(Regimental Chests)

아돌프 케틀레(Lambert Adolphe Jacques Quetelet, 1796-1874)는 벨기에의 왕실 천문학자이자 "평균인"(l'homme moyen, the average man)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통계학자이다. 그는 사회에 대한 통계가 보여주는 분포 곡선을 (동전 던지기의) 이항 분포 또는 (천문 관측의) 오차 곡선에 빗댐으로써, 통계적 평균값을 편리한 요약이 아닌 실재하는 양으로 탈바꿈시켰다. 동전에는 앞면이 나올 객관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고, 천체의 위치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 동전을 여러 차례 던져 만들어지는 앞면 수의 분포와 천체 위치의 측정값들의 분포는 실재하는 값이 오차들과 함께 나타난 결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처럼, 케틀레는 인간에 대한 통계치 역시 집단의 실재하는 성향이나 특징을 보여주는 값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 케틀레의 '평균인'은 인류 전체가 아닌 민족이나 국가에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1844년 논문에서 케틀레는 이를 좀더 자세하게 논증한다. 그는 확률 오차가 있는 측정값들로부터 물리량을 측정하는 이론이 집단의 특징들을 측정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고 논증했는데, 집단의 특징들 역시 물리량과 형식적으로 동일한 기법에 의해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며(양쪽 모두 반복 측정, 다양한 측정값들이 평균을 중심으로 한 정규분포를 이룸), 따라서 집단의 특징들 역시 실재적인 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측정 대상이 실재하는 양인지 여부를 모르는 경우, 측정값들이 한 명의 개인에 대한 측정들로부터 도출된 수치의 분포와 충분히 유사한 경우 그리고 오직 그러한 경우, 그 측정 대상이 되는 실재하는 양이 존재한다. 이로써 "이전에는 거대한 규모의 질서에 대해서만 묘사하던 통계적 법칙은 자연과 사회의 기저에 내재된 진실과 원인을 다루는 법칙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223쪽)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케틀레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스코틀랜드 군인 5738명의 가슴둘레 분포의 평균은 약 40인치인데, 그에 따르면, 이는 가슴둘레가 거의 40인치에 해당하는 한 명의 스코틀랜드인을 '인체 측정에 대해 숙달이 거의 되지 않은 사람'이 측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해킹의 논평에 따르면, 이러한 초보 재단사의 비유는 설득력이 없다(227쪽). 어떻게 여러 명에 대한 정교한 측정 결과들의 분포가 한 명에 대한 어설픈 측정 결과들의 분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제시된 적이 없지만, 해킹은 개념 상의 불편함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설명은 있다고 소개한다. 그 설명은 라플라스적 결정론을 가정하되 미지의 기저 원인들을 도입한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가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오도록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에 의존한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은 전체 원인들 중에서 앞면을 촉진하는 원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될 것이고, 그 분포는 그 비율을 중심으로 한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천문 관측의 결과들이 +/- 오차를 촉진하는 미지의 개별 원인들의 총합으로 산출된다면, 그 오차 곡선은 이항분포의 형태를 띨 것이다. 이제 인간의 질병, 자살, 신체적, 사회적 특징 역시 수많은 미미한 원인들의 결과로 간주한다면, 이로부터 케틀레의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각 병사의 가슴둘레는 모종의 미지의 원인들로 인해 결정된다. 샘플의 크기가 큰 상황에서, 독립적인 원인들의 총합에 따른 결과는 가우스 곡선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로써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특성도 오차 법칙과 같이 분포되어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오차 법칙은 케틀레의 '평균인' 개념 창안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나중에 골턴은 이러한 이해방식에서 평균으로부터의 편차(deviation)를 '오차'(error)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평균으로부터의 편차 역시 자연적 편차일 뿐 오차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차 법칙은 주로 천문학자들에게나 중요했다. 케틀레는 이를 미세한 기저 원인이라는 모호한 체계로 포장하여 인문사회과학에 전파한 셈이었다.

케틀레는 이 체계에 천문학적 인과관계가 지닌 또 하나의 요소를 추가했다. 천체 운동은 엄격한 법칙을 따르지만 근접한 천체에 의해 교란될 수 있고, 근접했던 천체가 멀어지면 원래의 안정적 패턴이 회복된다. 케틀레는 이 아이디어를 통계적 규칙성이 가끔 깨지는 경우를 설명하는 데 활용했다. 프랑스의 유죄 판결률 변동(1832년) 및 같은 시기 벨기에의 더 극심했던 유죄 판결률 변동에 대해, 케틀레는 심각한 정치적 사건으로 인한 간섭으로 통계적 안정성이 깨진 일로 해석했다. 또한 그에게 문명의 정도는 통계적 불변성의 이탈의 정도가 낮을수록 높았다.

해킹의 총평 : 위의 설명들은 조리있지 않다. "결정론적 세계관은 새로운 통계학이 제시하는 현상들에 의해 다방면에서 위협을 받았으며, 급증하는 현상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일관된 방법은 당시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저 원인에 대한 담론은 개념상의 결함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개념상 불안요소 중 하나는 통계적 숙명론과 자유의지의 문제였다. 만약 통계학이 범죄에 미리 할당된 총량이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 범죄자는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면, 범죄자의 자유의지란 어디에 있으며, 그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4장. 사회가 범죄를 예비한다

15장. 사회에 대한 천문학적 시각

16장. 사회에 대한 광물학적 시각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