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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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행성들의 문제]]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행성들의 문제]]
*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분류:과학사]]
[[분류:과학철학]]
[[분류:천문학사]]

2023년 3월 10일 (금) 10:07 기준 최신판

작성자 : 정동욱

그림 1. 별의 일주 운동

지구상의 관찰자의 입장에서 하늘에는 별(항성)과 행성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천체가 있다. 별들은 하루(정확히는 23시간 56분)에 한 바퀴씩 도는 일주 운동을 하며, 그들은 마치 하나의 판에 박혀 있는 것처럼 항상 단체로 움직인다(그림 1). 우리가 하늘에서 별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덕분이다. 그래서 고대의 학자들은 그 별들이 하나의 항성 천구에 고정되어 있으며, 항성 천구의 회전을 통해 모든 별들이 함께 회전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뜨고 지는 운동을 하면서도(일주 운동), 별자리 사이에 그려진 가상의 길인 ‘황도’를 따라 매일 조금씩 이동한다(연주 운동). 그래서 이 일곱 천체는 떠돌이별, 즉 ‘행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달은 황도상의 한 별자리에서 시작해 한 바퀴를 돌아 동일한 별자리로 돌아오는 데 약 27.3일이 걸리고, 태양은 1년이 걸리며, 수성과 금성 역시 평균 1년이 걸린다. 그리고 화성, 목성, 토성의 평균 황도 주기(sidereal period)는 각각 687일, 12년, 30년이다. 고대인들은 황도 주기가 짧은 행성일수록 지구에 가깝다고 가정하여, 달, 수성-금성-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순으로 행성들의 순서를 결정했다. 수성-금성-태양의 순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었으나, 가장 표준적인 견해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안했던 수성, 금성, 태양의 순서였다(쿤 2016, 94-100쪽).

그림 2. 외행성의 겉보기 역행 운동

달과 태양은 황도를 따라 항상 서쪽에서 동쪽으로만 ‘순행’하였다. 반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황도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순행’하지만, 때로는 방향을 바꾸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역행 운동’을 했다(그림 2). 역행 운동은 대략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데, 수성은 대략 116일, 금성은 584일마다 역행하며, 화성, 목성, 토성은 각각 780일, 399일, 378일마다 역행 운동을 했다.[1] 또한 이 다섯 행성은 역행 운동을 할 때마다 가장 밝아졌는데, 화성과 금성은 그 밝기 변화가 특히 심했다.

역행 운동을 하는 다섯 행성은 태양과의 관계에 따라 ‘내행성’(inferior planets)과 ‘외행성’(superior planets)으로 구분되었다.[2] 소위 ‘내행성’으로 불린 수성과 금성은 절대로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즉 두 행성은 해가 뜨기 직전 동쪽 하늘 또는 해가 진 직후 서쪽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이 행성들이 태양으로부터 벌어질 수 있는 최대의 각도를 ‘최대 이각’이라고 불렀는데, 수성의 최대 이각은 28°였고, 금성의 최대 이각은 45°였다. 그 결과 내행성들은 태양 앞뒤의 최대 이각 사이를 왕복하는 셔틀처럼 운동했는데, 내행성의 역행 운동은 행성이 태양과 만나는 두 종류의 ‘합’ 중에서 지구와 가까워 보이는(즉, 행성이 밝아지는) ‘내합’의 위치에서만 일어났다.[3]

소위 ‘외행성’으로 불린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과의 거리에 제한이 없었다. 즉 외행성들은 태양 부근뿐만 아니라 태양 정반대편에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운동 역시 태양과 연결되어 있었다. 외행성들은 오직 태양 반대쪽인 ‘충’의 위치에 있을 때에만 역행을 했다. 즉 역행 중인 외행성은 해가 질 무렵 그 정반대편인 동쪽에서 떠서 밤 12시에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 관찰할 때) 남중한 후 다음날 해가 뜰 무렵 그 정반대편인 서쪽에서 진다. 반대로 외행성이 가장 빠른 속도로 순행 중일 때에는 언제나 태양과 같은 방향인 ‘합’의 위치에 있다.[4]

그림 3. 지구 중심의 주원-주전원 체계. 주전원이 주원보다 더 빨리 돌기 때문에, 행성이 주원 안쪽을 도는 1번 위치 부근, 2번 위치 부근에서 역행이 일어나게 된다. 주원의 회전 속도는 1/Td이고, 주전원의 회전 속도는 1/Te이며, 1번 역행 위치에서 2번 역행 위치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역행 주기인 Tr과 같다. 그 시간 동안 주원은 Tr/Td 바퀴를 도는 반면, 더 빨리 도는 주전원은 Tr/Te 바퀴를 돈다. 이때 주전원은 주원보다 1바퀴를 더 돌아야 2번 위치에 오게 된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항성 천구를 통해 별의 운동을 설명했듯이, 행성 천구들을 도입하여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했다. 다만 행성의 운동은 별보다 복잡했기에 행성마다 여러 개의 천구가 도입되었는데, 그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주원-주전원 체계였다(그림 3). 이 체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균일하게 회전하는 원인 주원(周圓, deferent)과 그 원주 위의 한 점을 중심으로 균일하게 회전하는 또 다른 작은 원인 주전원(周轉圓, epicycle)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행성은 주전원의 원주 위에 있었다. 주전원은 주원과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지만 그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가정되었다. 따라서 주전원이 주원의 바깥쪽을 돌 때는 주원과 주전원의 회전 속도가 합해져 평균보다 빨리 회전하게 되고, 주원의 가장 안쪽을 도는 도중에는 주전원의 회전이 주원의 회전을 상쇄함으로써 역행 운동을 보이게 된다. 또한 이러한 체계는 행성이 역행 운동을 할 때마다 지구와 가까워진다는 점을 통해 행성의 주기적인 밝기 변화도 설명할 수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드리아 지방에서 활동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AD 83?-168?)는 각 행성들에 대한 관측 결과를 이용하여 각 행성들의 주원과 주전원의 회전 주기와 두 원의 크기 비율을 결정했는데, 이렇게 완성된 체계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이다. 이 체계에서 주원의 주기(Td)는 각 행성의 황도 주기(Ts)로 간단히 결정되었으며, 주전원의 회전이 주원의 회전을 한 바퀴 따라잡을 때마다 행성의 역행 운동이 일어난다는 점을 이용하면, 주전원의 주기(Te)는 황도 주기(Ts) 및 역행 주기(Tr)와 아래와 같은 관계를 만족해야 했다(그림 3과 그 캡션을 참고할 것).

그림 4.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a) 내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내행성의 주원은 태양과 동일한 주기로 운동한다. 그래서 내행성 P의 주전원의 중심 C는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 위에 위치한다. 이러한 설정은 내행성이 태양과 최대 이각 이내에서만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b) 외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 외행성의 주전원은 태양과 동일한 주기로 운동한다. 그래서 주전원의 중심과 외행성을 잇는 선분 CP는 언제나 지구와 지구를 잇는 선분 ES와 평행을 유지하며 돈다. 이러한 설정은 외행성이 역행을 할 때마다 행성이 태양 정반대편인 ‘충’의 위치에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림은 Martens 2000에서 가져옴.)

행성들에 대한 실제 관측 결과와 위의 관계식을 이용한 주전원의 주기에 대한 계산 결과는 표 1에 나타나 있다. 표 1은 앞서 언급했던 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를 보다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내행성은 그 주원의 주기가 태양의 황도 주기와 같은 1년이며, 외행성은 그 주전원의 주기가 태양의 황도 주기와 같은 1년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그림 4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내행성인 수성과 금성의 주원은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한다(그림 4a). 즉 태양과 동기화된 주원은 주전원의 중심 C를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 위에 위치하도록 유지시켜주며, 주전원의 회전은 행성을 태양 앞뒤로 왕복하도록 만든다. 수성과 금성의 최대 이각 차이는 주원에 대한 주전원의 크기 비율 차이로 설명되는데, 수성은 금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주전원/주원 비율을 가지기 때문에 작은 최대 이각을 가진다. 한편 외행성인 화성, 목성, 토성은 그 주전원이 태양과 동기화된 운동을 한다(그림 4b). 즉 주전원의 중심으로부터 행성을 잇는 선분 CP는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분 ES와 평행을 유지하며 회전함에 따라, 행성이 주원의 가장 안쪽을 도는 순간 그 행성은 역행을 하는 동시에 태양 정반대편인 ‘충’의 위치에 있게 된다. 이로써 외행성이 역행을 할 때마다 태양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표 1. 지구 중심 체계에서의 행성의 주기.
관측 주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황도 주기(Ts) 역행 주기(Tr) 주원의 주기(Td) 주전원의 주기(Te)
수성 1년 116일 1년 88일
금성 1년 584일 1년 225일
태양 1년 - 1년 -
화성 687일 780일 687일 1년
목성 12년 399일 12년 1년
토성 30년 378일 30년 1년
그림 5.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이심(C)과 대심(Q). 주원 위의 점 F는 이심 C를 중심으로 하는 주원을 돌지만, Q를 기준으로 한 각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됨에 따라 A에서 가장 느려지고 B에서 가장 빨라지는 부등속 운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구성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행성마다 주원-주전원의 크기와 회전 주기를 조정함으로써 각 행성 운동의 정성적인 특징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원-주전원 체계만을 이용한 행성 위치 예측은 여전히 상당한 오차가 있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러한 오차를 없애기 위해 미세 주전원과 이심원(eccentric), 대심(equant) 등의 미세 조정 도구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도구들을 추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제 주원의 중심은 지구(E)에서 살짝 벗어난 이심(C)이 되었고, 주원은 대심(Q)을 기준으로 동일한 각속도로 회전함에 따라 ‘부등속’ 원운동을 하게 되었다(그림 5). 그 결과 천체들의 운동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균일한 원운동의 이상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러한 도구들 덕분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모든 천체 운동에 대한 완전하고, 상세하고, 정량적인 설명을 제공”(쿤 2016, 133쪽)할 수 있었고, 이러한 성취 덕분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이후 약 1500년 동안 서구 세계에서 표준적인 우주 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석

  1. 단, 내행성의 역행은 행성이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을 때에만 일어나기 때문에, 즉 내행성이 낮에 뜰 때에 일어나기 때문에, 뚜렷하게 관찰하기 어렵다.
  2. 원래의 이름이 내행성(inner planet)과 외행성(outer planet)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의할 것.
  3. 천문학에서 ‘합(conjunction)’은 두 천체가 지구에서 볼 때 같은 방향에 있을 때를 뜻하고, ‘충(opposition)’은 두 천체가 지구에서 볼 때 정반대 방향에 있는 있을 때를 뜻한다. 행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합’은 행성이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을 때를 뜻하고, ‘충’은 행성이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정반대 방향에 있을 때를 뜻한다.
  4. 이러한 이유로 다섯 행성의 역행 주기는 각 행성이 태양과의 만남을 반복하는 주기인 ‘회합 주기’와 같았으며, 이 회합 주기(synodic period)는 행성이 황도 한 바퀴를 도는 황도 주기(siderial period)와 함께 중요한 천문학적 의미를 부여 받았다. 이는 태양 중심 체계가 수용되기 전부터 태양은 천문학에서 기준의 역할을 담당하는 특별한 천체로 취급되었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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