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불가능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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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에 따르면,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탐구의 성공적인 모범사례와 그것이 미래의 탐구에 제공하는 청사진 모두를 의미한다. 확립된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자들은 근본적인 의심을 삼가고 틀에 박힌 문제 풀이 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쿤은 이러한 활동을 '[[과학혁명의 구조/정상과학 (발췌)|정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빠른 속도로 많은 수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지만, 미해결의 문제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패러다임은 위기에 빠진다. 위기를 감지한 연구자들은 드디어 대안들을 내놓게 되는데, ‘과학혁명’은 이때 등장한 대안들 중 하나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사건으로, 혁명이 완료되면 승리한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 | 토머스 쿤에 따르면,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탐구의 성공적인 모범사례와 그것이 미래의 탐구에 제공하는 청사진 모두를 의미한다. 확립된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자들은 근본적인 의심을 삼가고 틀에 박힌 문제 풀이 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쿤은 이러한 활동을 '[[과학혁명의 구조/정상과학 (발췌)|정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빠른 속도로 많은 수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지만, 미해결의 문제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패러다임은 위기에 빠진다. 위기를 감지한 연구자들은 드디어 대안들을 내놓게 되는데, ‘과학혁명’은 이때 등장한 대안들 중 하나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사건으로, 혁명이 완료되면 승리한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 | ||
쿤에 따르면, 혁명 전후의 두 패러다임은 양립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약불가능하다. 원래 ‘공약불가능’이라는 말은 수학에서 두 길이가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없을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예를 들어, 1/2cm와 2/3cm는 1/6cm라는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있기에 공약가능하다. 그러나 1cm와 cm는 그러한 공통된 단위 길이를 찾을 수 없으므로 공약불가능하다. 그런데 쿤은 이 말을 과학에 적용하여, 경쟁하는 두 패러다임이 공통된 잣대를 통해 비교될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 쿤에 따르면, 혁명 전후의 두 패러다임은 양립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약불가능하다. 원래 ‘공약불가능’이라는 말은 수학에서 두 길이가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없을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예를 들어, 1/2cm와 2/3cm는 1/6cm라는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있기에 공약가능하다. 그러나 1cm와 <math>\sqrt {2}</math>cm는 그러한 공통된 단위 길이를 찾을 수 없으므로 공약불가능하다. 그런데 쿤은 이 말을 과학에 적용하여, 경쟁하는 두 패러다임이 공통된 잣대를 통해 비교될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 ||
‘공약불가능성’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경쟁하는 패러다임은 그중 적어도 한 가지 차원에서 공약불가능하다. 첫째는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이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바뀌면 적절한 문제와 적절한 문제 풀이에 대한 판단 기준도 함께 바뀐다. 예컨대 17세기의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모든 현상을 인접한 입자들 사이의 충돌과 같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중력 현상에 대해,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우주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돌의 본성에 호소하던 과거의 설명을 배격하고, 철저하게 기계적인 설명을 추구했다. 그러나 뉴턴은 중력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 대신 중력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과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수학적 법칙만을 가정했다. 뉴턴은 이 법칙을 이용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수많은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성공했으나, 뉴턴의 문제 풀이 방식은 모든 현상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 ‘공약불가능성’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경쟁하는 패러다임은 그중 적어도 한 가지 차원에서 공약불가능하다. 첫째는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이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바뀌면 적절한 문제와 적절한 문제 풀이에 대한 판단 기준도 함께 바뀐다. 예컨대 17세기의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모든 현상을 인접한 입자들 사이의 충돌과 같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중력 현상에 대해,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우주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돌의 본성에 호소하던 과거의 설명을 배격하고, 철저하게 기계적인 설명을 추구했다. 그러나 뉴턴은 중력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 대신 중력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과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수학적 법칙만을 가정했다. 뉴턴은 이 법칙을 이용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수많은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성공했으나, 뉴턴의 문제 풀이 방식은 모든 현상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 ||
2025년 9월 18일 (목) 14:55 기준 최신판
토머스 쿤에 따르면,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탐구의 성공적인 모범사례와 그것이 미래의 탐구에 제공하는 청사진 모두를 의미한다. 확립된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자들은 근본적인 의심을 삼가고 틀에 박힌 문제 풀이 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쿤은 이러한 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빠른 속도로 많은 수의 문제들을 해결해 가지만, 미해결의 문제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패러다임은 위기에 빠진다. 위기를 감지한 연구자들은 드디어 대안들을 내놓게 되는데, ‘과학혁명’은 이때 등장한 대안들 중 하나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사건으로, 혁명이 완료되면 승리한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
쿤에 따르면, 혁명 전후의 두 패러다임은 양립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약불가능하다. 원래 ‘공약불가능’이라는 말은 수학에서 두 길이가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없을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예를 들어, 1/2cm와 2/3cm는 1/6cm라는 공통된 단위 길이의 개수를 통해 비교될 수 있기에 공약가능하다. 그러나 1cm와 cm는 그러한 공통된 단위 길이를 찾을 수 없으므로 공약불가능하다. 그런데 쿤은 이 말을 과학에 적용하여, 경쟁하는 두 패러다임이 공통된 잣대를 통해 비교될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공약불가능성’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경쟁하는 패러다임은 그중 적어도 한 가지 차원에서 공약불가능하다. 첫째는 방법론적 공약불가능성이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바뀌면 적절한 문제와 적절한 문제 풀이에 대한 판단 기준도 함께 바뀐다. 예컨대 17세기의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모든 현상을 인접한 입자들 사이의 충돌과 같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중력 현상에 대해, 데카르트 패러다임은 우주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돌의 본성에 호소하던 과거의 설명을 배격하고, 철저하게 기계적인 설명을 추구했다. 그러나 뉴턴은 중력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 대신 중력의 크기가 두 물체의 질량과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수학적 법칙만을 가정했다. 뉴턴은 이 법칙을 이용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수많은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성공했으나, 뉴턴의 문제 풀이 방식은 모든 현상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둘째는 의미론적 공약불가능성이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바뀌면 일부 개념의 의미도 함께 바뀐다. 예컨대 돌턴에게 ‘화합물’은 서로 다른 원소들이 일정한 질량비로 결합한, 즉 일정성분비를 만족하는 물질만을 의미하기에, 소금물처럼 소금과 물이 다양한 비율로 섞일 수 있는 용액은 화합물이 아니었지만, 돌턴과 동시대에 살았던 화학자 베르톨레는 소금물도 소금과 물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있는 화합물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오늘날의 화학에서 소금물은 증발이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해 ‘분리’되기에 ‘혼합물’로 간주되지만, 베르톨레가 보기에 증발은 소금물 속의 물이 열과 화합하여 증기가 되어 날아가고 소금이 분해되는 ‘화학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즉 돌턴의 패러다임과 베르톨레의 패러다임에서 ‘화합물’, ‘화학적’과 같은 기초 개념들은 그 의미가 달랐다.[1]
셋째는 관측 세계 변화로서의 공약불가능성이다. 이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바뀌면 과학자가 관측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 그 자체도 함께 바뀐다. 예컨대 1500년대 이전의 유럽인들은 신성 출현에 대한 관측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다수의 신성 관측 기록을 남겼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은 천상계는 완벽하기에 그곳에서는 생성과 소멸이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하늘을 관찰한 반면, 동양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견해가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에 충격을 준 이후에야 유럽에서 신성이 관측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공약불가능성에 따르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결코 논리와 시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을 비교 평가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인 판단 기준, 개념의 의미, 관측 세계가 패러다임 사이에 공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뉴턴 패러다임은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문제 풀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기준의 부당함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지지자를 설득하기 어려웠다. 또한 돌턴은 ‘화합물’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베르톨레에게 소금물이 화합물임을 설득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왜 ‘화합물’의 정의를 자신처럼 바꾸어야 하는지도 설득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은 그에 반하는 관측을 방해하기에 경험적 시험을 통해 교체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쿤에 따르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의 요구 조건 중 일부를 만족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존 패러다임에서도 인정할 만한 장점들도 가지고 있기에 지지자를 확보하며, 운이 좋다면 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단점을 보완하여 더 많은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함에 따라, 결국 소수의 반대자들만 남아 저항하게 된다. 그러나 쿤에 따르면 그러한 저항도 과학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의 요구 조건 중 일부를 만족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요구 조건은 패러다임의 전환 이후 점차 잊혀질 뿐이다.
주
- ↑ 이 사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고하라. 과학혁명의 구조/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