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조화
순수하게 실용적인 근거로만 판단하자면,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행성 체계는 실패작이었다. 그 체계는 그것의 프톨레마이오스적 선배들보다 더 정확하지도 훨씬 단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 새로운 체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일부 코페르니쿠스 후계자들에게 태양 중심의 천문학이 행성들의 문제를 푸는 열쇠임을 정말로 확신시켰고, 이들은 결국 코페르니쿠스가 찾던 단순하고 정확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들의 작업은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우선 우리는 왜 그들이 코페르니쿠스주의자가 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즉 경제성이나 정확성의 향상이 없었던 상황에서, 지구와 태양의 자리를 바꿀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가득 채운 전문적인 세부 사항들로부터 쉽게 분리되지 않는데,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깨달았듯이, 태양 중심 천문학의 진짜 호소력은 실용적인 면이 아닌 미적인 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에게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사이의 선택은 처음에는 단지 취향의 문제일 수 있었고, 취향의 문제는 정의하거나 논쟁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혁명 자체가 보여 주듯이, 취향의 문제는 무시할 수 없다. 기하학적 조화를 식별할 능력을 갖춘 자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천문학이 가진 새로운 깔끔함과 정합성을 감지할 수 있었고, 만약 그 깔끔함과 정합성이 인식되지 않았다면 혁명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가진 미적 장점들 중 하나를 이미 살펴보았다. 그 체계는 행성 운동의 주요 정성적 특징들을 주전원을 사용하지 않고서 설명해 준다. 특히 역행 운동은 태양 중심 궤도의 기하학적 구조에 따른 자연스럽고 직접적인 귀결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정량적인 정확성보다 정성적인 깔끔함을 훨씬 더 중시하는 천문학자들(그런 천문학자는 소수였으며, 갈릴레오는 그중 하나였다)만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정교하게 발전시킨 주전원과 이심원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를 보고서도 이를 설득력 있는 근거로 간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새로운 체계를 옹호하는 논증 중에는 다른 것도 있었는데, 이들의 수명은 더 길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체계는 내행성의 운동에 대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보다 단순하고 훨씬 더 자연스러운 설명을 제공한다. 수성과 금성은 절대로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이러한 관찰을 설명하기 위해 수성, 금성, 태양의 주원들을 한데 묶어 둠으로써 각 내행성의 주전원 중심이 항상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 위에 놓이도록 했다(그림 35a). 주전원의 중심을 이렇게 맞추는 것은 “별도의” 장치로, 지구 중심 천문학의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임시방편적 부가물이며,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는 그러한 가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림 35b처럼, 행성의 궤도가 완전히 지구 궤도 안쪽에 놓여 있을 경우 그 행성은 절대로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최대 이각은 다이어그램에서처럼 지구에서 행성을 잇는 직선이 그 행성의 궤도와 접할 때, 즉 각 SPE가 직각일 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그 이각 SEP는 내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질 수 있는 최대각이 된다. 이 체계의 기본적인 기하학적 구조는 수성과 금성이 태양에 묶여 있는 방식을 완전하게 설명해 준다.
코페르니쿠스식 기하학적 구조는 내행성의 운동에 대한 한층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바로 궤도의 순서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들은 지구 중심의 궤도로 정렬되었기 때문에 행성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는 그 행성이 황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과 함께 증가했다. 이 장치는 외행성과 달에 대해서는 잘 작동했지만, 수성과 금성과 태양은 모두 황도를 한 바퀴 도는 데 평균 1년이 걸리고, 따라서 그들 궤도의 순서는 언제나 논쟁의 원천이 되어 왔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비슷한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는데, 이 체계에서는 어떠한 두 행성도 똑같은 공전 주기를 가지지 않는다. 달은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달은 중심의 태양 대신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이다. 외행성인 화성, 목성, 토성은 새로운 중심에 대해서도 그들의 옛 순서를 유지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공전 주기는 그들이 황도를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평균 시간과 똑같기 때문이다. 지구의 궤도는 화성의 궤도 안쪽에 있는데, 왜냐하면 지구의 공전 주기인 1년은 화성의 주기인 687일보다 짧기 때문이다. 이제 이 체계에 수성과 금성만 배치하면 되는데, 그들의 순서는 비로소 유일하게 결정된다.
이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금성은 584일에 한 번씩 역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행 운동은 오직 금성이 지구를 지나칠 때만 관찰될 수 있기 때문에, 584일은 그들이 태양 주위의 궤도를 도는 동안 금성이 지구를 한 번 따라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제 584일 동안 지구는 궤도를 번 돈다. 금성은 이 시간 동안 지구를 한 번 따라잡기 때문에, 금성은 궤도를 번 돌 것이다. 그러나 584일에 궤도를 번 도는 행성은 궤도를 한 번 도는 데 일이 걸릴 것이다. 금성의 주기 225일은 지구의 주기보다 짧고, 따라서 금성의 궤도는 지구 궤도 안쪽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비슷한 계산으로 수성의 궤도는 금성 안쪽에 놓이고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게 된다. 수성은 116일에 한 번씩 역행을 하고, 즉 116일에 한 번씩 지구를 앞지르기 때문에, 수성은 궤도를 116일에 정확히 번 돌아야 한다. 따라서 수성은 궤도를 일에 딱 한 번 돌 것이다. 그 주기 88일은 모든 행성 중 가장 짧고, 따라서 수성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톨레마이오스주의 천문학자들이 지구 중심의 궤도를 정렬하는 데 사용했던 똑같은 장치를 가지고 태양 중심의 행성 궤도들을 정렬했다. 즉 우주의 중심에서 더 멀리 있는 행성은 중심을 한 바퀴 도는 데 더 오래 걸린다는 원리를 사용했다. 궤도의 크기가 공전 주기와 함께 증가한다는 가정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더 완전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두 체계 모두에서 그것은 애초에 자의적이다. 비트루비우스의 원반 위의 개미들처럼, 행성이 이런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들이 그래야 할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 가정은 모조리 쓸데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 거리를 직접 계산할 수 있는 태양과 달을 제외한 행성들은 다른 순서를 가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재정렬 가능성에 대한 대답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사이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며, 이는 우리가 그의 서문에서 보았듯이 코페르니쿠스 본인이 특히 강조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임의의 행성의 주원과 주전원은 다른 행성 궤도들의 크기나 (중심의 지구에서 바라볼 때 별들 사이에서 보이는) 행성의 위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자유로이 축소시키거나 확대시킬 수 있다. 궤도의 순서는 궤도의 크기와 궤도의 주기 사이의 관계를 가정하면 정해질 수도 있다. 또한 궤도의 상대 크기들은 한 행성과 지구 사이의 최소 거리가 지구와 그 안쪽 행성 사이의 최대 거리와 똑같다는 (3장에서 살펴본) 추가적인 가정의 도움을 받으면 계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자연스러운 가정으로 보이긴 하지만, 어느 것도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둘 다 사용하지 않고서도 행성들에 대해 똑같은 겉보기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그 겉보기 위치들은 행성 궤도들의 순서나 크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비슷한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대략 원형으로 돈다면, 궤도들의 순서와 상대 크기들은 모두 추가적인 가정 없이도 관찰에 의해 직접 결정될 수 있다. 궤도들의 순서나 상대 크기조차 조금이라도 변하면 전체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림 36a는 내행성 P가 태양과 최대 이각 상태에 도달했을 때 지구에서 바라본 모습을 보여 준다. 그 궤도를 원으로 가정하면, 이각 SEP가 최댓값에 도달할 때 각 SPE는 직각이 되어야 한다. 행성, 태양, 지구는 하나의 직각삼각형을 형성하며, 그 예각 SEP는 직접 측정될 수 있다. 그런데 직각삼각형의 한 예각을 알면 그 삼각형의 변의 길이비들이 결정된다. 따라서 지구의 궤도 반지름 SE 대 내행성의 궤도 반지름 SP의 비는 각 SEP의 측정값으로부터 계산될 수 있다. 즉 지구의 궤도와 두 내행성의 궤도 사이의 상대 크기가 관찰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계산은 외행성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단, 그 계산 기법은 더 복잡하다. 가능한 한 가지 기법은 그림 36b에 그려져 있다. 어떤 알려진 순간에 태양, 지구, 행성 모두가 직선 SEP상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그 행성이 황도상에서 태양과 정반대 방향에 있을 때이며, 역행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구는 자기 궤도를 어떤 외행성보다도 빨리 돌기 때문에, 얼마 후에 지구 E'와 행성 P'가 태양과 직각삼각형 SE'P'를 형성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각 SE'P'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과 그 외행성 사이의 각이기 때문에, 그것은 직접 결정될 수 있고 그 지점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측정될 수 있다. 이제 각 ESE'가 계산될 수 있는데, 360° 대 그 값의 비는 지구가 자기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365일 대 지구가 E에서 E'로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의 비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 PSP'는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결정될 수 있는데, 그 행성이 자기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미 알고 있고, 그 행성이 P에서 P'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구가 E에서 E'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시 한 예각 P'SE'를 알고 있는 직각삼각형 SE'P'를 얻게 되고, 따라서 지구 궤도 반지름 SE' 대 행성 궤도 반지름 SP'의 비는 내행성 때와 똑같이 결정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법들을 통해 모든 행성들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으며, 스타드를 비롯해 지구의 궤도 반지름을 측정하는 데 사용했던 어떤 단위로도 측정될 수 있다. 이제 비로소, 코페르니쿠스가 서문에서 얘기했듯이, “모든 행성들과 천구들 … 의 순서와 크기가 서로 너무도 밀접하게 묶여 있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다른 모든 부분과 우주 전체를 교란시키지 않고선 변경될 수 없다”. 행성 궤도들의 상대 크기가 태양 중심 천문학의 첫 번째 기하학적 전제의 직접적인 귀결이기 때문에, 새로운 천문학은 코페르니쿠스가 보기에 이전의 지구 중심 버전에서는 결여되어 있던 자연스러움과 정합성을 지닌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는 충만성과 같은 별도의 혹은 임시방편의 가정들을 더 적게 사용하고서도 하늘의 구조를 도출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코페르니쿠스가 서론에 해당하는 제1권 10장에서 그토록 강조하며 보여 준 새로운 미적 조화로, 이제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체계에 대해 일단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코페르니쿠스의 일반 독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 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10. 천체들의 순서에 대해
항성 천구가 눈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아무도 없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행성들의 순서를 그 회전 주기에 따라 정하고 싶어 했다. 그 근거로 그들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멀리 있을수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유클리드의 『광학』에서 증명된)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작은 원을 돌기 때문에 가장 짧은 시간에 궤도를 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큰 원을 도는 토성을 가장 높은 곳에 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목성을, 또 그 아래에는 화성을 둔다.
금성과 수성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 이 행성들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태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얘기한 것처럼 금성과 수성을 태양 위에 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현대의 많은 이들처럼 그것들을 태양 아래에 두었다. 알페트라지우스[Alpetragius/ Al-Bitruji(12세기 이슬람 천문학자)]는 금성은 태양 위에, 수성은 태양 아래에 두었다. 플라톤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모든 행성은 원래는 어두운 물체이지만 햇빛을 받아 빛나게 된다. 이것이 맞을 경우, 만약 어떤 행성들이 태양 아래 있다면, 그 행성들은 태양과의 각이 크게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반원이나 일정 정도 이지러진 원형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초승달이나 그믐달 때처럼 그들이 위에서 받는 빛의 대부분은 태양 쪽으로 반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장의 금성의 위상에 대한 논의를 보라. 이 효과도, 다음 효과도 망원경 없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태양은 이따금씩 이 행성들에 의해 가려져 그 크기만큼이라도 햇빛이 차단되는 일이 발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기 때문에, 플라톤의 추종자들은 그 행성들이 결코 우리와 태양 사이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이후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내행성들의 상대적인 순서를 정하는 데 흔히 사용된 논증들의 많은 난점들을 계속 지적한다. 그다음 이렇게 이어 나간다.]
태양이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 있는 행성들과 그렇지 않은 행성들 사이에서[즉, 모든 이각을 가질 수 있는 외행성과 최대 이각이 제한된 내행성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증명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것의 오류는 달도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명백하게 드러난다. 또한 태양 아래 금성을 두고 그 아래 수성을 두는 사람들이든 모종의 다른 순서로 두는 사람들이든, 수성과 금성이 [자신의 주원이 태양의 주원과 묶여 있지 않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의 궤도와 독립된 궤도를 돌지 않는 것에 대해 무슨 이유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행성들의 상대 속도에 따라 그 순서가 결정된다는 원리를 위반하지 않고서는 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대안은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지구가 행성들의 정렬 기준이 되는 중심이 아니란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그 행성들의 정렬 순서도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왜 가장 높은 곳에 목성이나 다른 어떤 행성이 아닌 토성이 배치되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 헤라클레이데스에 의해 아마도 처음 제안된 내행성 이론을 기록한 5세기의 로마 백과사전 집필자]와 몇몇 다른 라틴어 책의 저자들의 기발한 견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 따르면, 금성과 수성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지구를 돌지 않고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이 행성들은 자신들의 천구 반지름이 허용하는 범위 이상으로 태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된다. … 이 말은 이 천구들의 중심이 태양에 가깝다는 뜻이 아니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수성 천구는 분명 금성 천구 안에 들어 있어야 할 텐데, 모두가 동의하는 바에 따르면, 금성 천구는 수성 천구의 2배 이상으로 크다.
이제 우리는 이 가설을 토성, 목성, 화성에까지도 확장해서, 그들의 천구가 금성, 수성, 지구의 천구를 모두 포함할 만큼 크다는 전제 아래 그들도 같은 중심을 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 외행성들은 저녁에 뜰 때, 다시 말해 행성이 태양의 반대편에 있고 지구가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있을 때마다 지구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행성이 저녁에 질 때, 즉 행성이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고 태양이 행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때는 지구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그들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에 있으며 그들이 금성과 수성의 회전 중심과 똑같은 중심을 돈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얘기는 사실 ‘증명’이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이 현상들을 코페르니쿠스 체계만큼 완전하게 설명해 주지만, 또다시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이 더 자연스러울 뿐이다. 왜냐하면 내행성들의 최대 이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처럼, 그 설명은 태양 중심의 천문학 체계의 기하학적 구조에만 의존할 뿐, 그 행성들의 특정한 공전 주기에는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얘기는 그림 32a를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외행성은 지구가 그 행성을 따라잡을 때 역행하고, 이 조건에서 그 행성은 동시에 지구에 가장 가까워져야 하고 태양과 황도 반대편에 있어야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역행 중인 외행성은 반드시 지구와 가장 가까워져야 하고,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행성이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단지 그 주전원이 행성을 중심에 있는 지구에 가까이 데려다줄 때마다 행성이 태양 맞은편에 있게 되는 특별한 회전 속도로 그 행성의 주원과 주전원을 돌게 했기 때문일 뿐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주전원이나 주원의 주기가 소량만 달라져도 역행 중인 외행성이 태양과 하늘 반대편에 놓이는 정성적인 규칙성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이 현상이 행성의 공전 속도와 무관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 천구들은 모두 하나의 중심을 가지므로, 금성 천구의 바깥 면과 화성 천구의 안쪽 면 사이의 공간 역시 두 천구와 같은 중심을 가진 천구로 간주해야 하며, 이 천구는 지구와 그 위성인 달, 그리고 달 천구에 포함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을 지구에서 떼어 낼 수 없는 데다, 그 공간은 달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히 넓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의 중심이 달의 궤도와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다른 행성들 사이에 있는 커다란 원을 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주의 중심은 태양 근처에 있고, 태양은 정지해 있기에 태양의 모든 겉보기 운동은 지구의 운동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다른 행성 천구들의 크기에 비해 무시할 만한 크기가 아니지만, 우주의 크기가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항성 천구의 크기에 비해서는 무시할 만하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게 되면 수많은 천구가 필요해져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보다는 이것을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 여러 작용에 하나의 원인을 부여하길 좋아하는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낫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어렵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분명 상충한다. 그러나 다음의 논의를 통해, 별 문제가 없는 한 적어도 수학자들은 이를 아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천구의 크기가 그 주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위의 견해가 유지된다면(그보다 나은 원리가 없으므로), 천구들의 순서는 가장 높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가장 높이 있는 것은 항성 천구로, 이 천구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이 천구는 다른 모든 천체의 운동과 위치의 기준이 되는 천구다. … 그다음은 행성인 토성으로, 30년에 한 바퀴를 회전한다. 다음으로는 목성이 12년에 한 바퀴를 돌고, 그다음에는 화성이 2년에 한 바퀴를 돈다. 넷째 자리[의 천구]는 1년에 한 바퀴를 도는데, 이곳에는 지구와 그 주전원인 달 천구가 들어 있다. 다섯째 자리에는 9달마다 한 바퀴를 도는 금성이 있고, 마지막 여섯째 자리에는 80일 주기로 회전하는 수성이 있다.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태양이 왕좌 위에 앉아 있다. 이 가장 아름다운 사원에서 이 빛나는 옥체가 전체를 한꺼번에 밝힐 수 있는 곳이 이곳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우주의 등불, 우주의 정신, 우주의 통치자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히 적절한 이름이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그에게 ‘보이는 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그를 ‘모든 것을 보는 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태양은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그의 자식들, 즉 행성들을 통치하는 왕좌에 ‘앉아 있다’. 지구는 언제나 달의 시중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말했듯이,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그러는 사이 지구는 태양과 관계를 맺으며, 해마다 새 생명을 잉태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러한 천체들의 배열 아래 놓여 있는 우주의 놀라운 대칭성과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천구의 운동과 크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덕분에 우리는 왜 목성의 순행과 역행은 토성보다는 크고 화성보다는 작게 보이는지, 어째서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그림 32를 보면 행성의 궤도가 지구에 가까울수록 그 행성의 겉보기 역행 운동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또 다른 조화다], 어째서 이런 방향 전환이 목성보다 토성에서 더 자주 일어나지만 수성에 비해 화성과 금성에서는 덜 자주 일어나는지[지구는 빠르게 도는 외행성보다 느리게 도는 외행성을 더 자주 따라잡을 것이고, 내행성의 경우엔 그 반대일 것이다], 또한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에 가려지거나 낮에 뜰 때보다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 지구에 더 가까운지, 또 특히나 화성이 밤새 빛날 때[즉 태양 반대편에 있을 때]는 그 크기가 목성과 비슷해서 목성과 화성을 단지 화성의 붉은색으로만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때에는 어째서 이등성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주의 깊게 그 운동 궤적을 쫓아야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로, 그 원인은 바로 지구의 운동이다.
이와 반대로 항성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바깥 천구의 [겉보기] 연주 운동 또는 그것의 흔적[연주 시차]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광학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어떤 물체든 어떤 거리 이상 멀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별들의 반짝거림에 의해서도 우리는 행성 중 가장 높이 있는 토성과 항성 천구 사이에 매우 큰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왜냐하면 만약 별들이 토성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면, 그들도 토성만큼 빛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성을 행성과 구별해주는 것은 주로 이러한 특징이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고귀한 창조자의 이 신성한 작품은 얼마나 광대한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10장 전체에 걸쳐 코페르니쿠스의 강조점은 “천구들의 운동과 크기에서 나타나는 조화의 놀라운 대칭성”과 “분명한 결합”에 있으며, 그것들은 바로 태양 중심의 기하학적 구조가 하늘의 모습에 부여한 것이다. 만약 태양이 중심에 있다면 내행성들은 도저히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보일 수 없고, 외행성들은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태양과 반대쪽에 있어야 하며, 이러한 것들은 더 이어질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그의 새로운 접근의 타당성을 동시대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애쓸 때 동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논증이다. 각각의 논증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 또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모습의 측면을 언급한 다음,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이 얼마나 더 조화롭고, 정합적이고, 자연스러운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논증은 엄청나게 많다. 조화로부터 끌어낸 증거의 총합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조화’는 지구의 운동을 논증하기에 이상한 토대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특히 그 조화가 완전한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이루는 복잡한 많은 수의 원들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논증들은 실용적이지도 않다. 그 논증들은 기껏해야 실제 천문학자의 실용적 감각이 아닌 그의 미적 감각에만 호소력을 가질 뿐이다. 그 논증들은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호소력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부수적인 천상의 조화를 중요한 지상의 부조화와 맞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논증들은 천문학자들에게도 반드시 호소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코페르니쿠스의 논증들이 지적한 조화들은 천문학자가 자신의 일을 더 잘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화들은 정확성도 단순성도 증가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그 논증들은 주로 수리 천문학자들 중에서 적은 수의 아마도 비합리적 소그룹에게나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고 정말로 호소력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그다지 좋아진 게 없는 수치 예측을 끌어낼 뿐인 수많은 페이지의 복잡한 수학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조화를 감지하는 신플라톤주의적 감각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일부의 천문학자들을 말한다. 다행히,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그러한 천문학자들은 소수지만 있었다. 그들의 연구 역시도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