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윤리적 관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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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 젠킨스 지음, 정동욱 옮김, "후기", 「윤리적 관광: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 (이음, 2009).

번역

윤리적 관광: 누구를 위한 것인가?」의

후기


티파니 젠킨스(Tiffany Jenkins) 지음

정동욱 옮김


챕터의 에세이들은 휴가와 여행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 이러한 활동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여행이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휴가를 가는 것은 더 이상 말썽의 소지가 없는 활동이 아니게 되었으며, 우리의 여행 방식을 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들이 많이 고안되어왔다. ‘책임관광(또는 윤리적 관광)’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책임관광은 누구에게 이익인 것일까?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여행하는 나라에 이익이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 이 챕터의 논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여행객

‘책임관광’은 여행객에게 큰 이익이다

책임관광의 옹호자들은 여행객과 관광객이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휴가나 여행의 질이 훨씬 향상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행지 국가와 그곳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여행객은 그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곳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여행은 그렇지 않은 여행에 비해 보다 매력적이고 보다 풍요로운 경험을 관광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데, 이는 현지인들과의 의미 있는 만남과 그들 문화와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주어진다. 일부 책임관광 옹호자들은 이러한 접근을 채택했을 때, 즉 현지 문화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그 나라에서 보낸 시간이 보다 ‘진정’하고 ‘진짜’ 같은 경험이 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휴가라기보다는 경험이며, 책임관광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이는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관광에 대한 지지자들의 일부는 여행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충분하다고 믿는 여행객들에게 주의를 준다. 그들은 여행객이 다른 나라에서 하는 행동이 자기들에게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여행에 수반되는 스스로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우려를 하는 사람들은 여행객의 지식이 충분치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여행객은 여행지에서 능동적으로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관광은 휴가객을 제한하며 부모행세를 하고 있다

윤리적 관광의 정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그것이 여행의 경험을 몹시 제한하며 파괴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의 지지자들은 윤리적인 관광객을 만들기 위한 수칙과 지침이 필요하다거나 효과적이라는 가정을 문제시한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수칙들은 상황이 명료하지 않은 포괄적 규정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수칙들이 틀리거나 부적절하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여행객뿐이며, 우리는 여행객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어떤 비판자들은 그러한 수칙들이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그 수칙들은 관광지의 이익보다는 관광객의 규제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들이 보기에, 여행객의 행동에 대한 그러한 걱정은 성가신 일이다. 여행객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감독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러한 태도가 개인에게는 자유와 실험과 탐험을 장려하는 모험 정신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행동 수칙을 통해, 윤리적 관광을 장려하는 이들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도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수칙은 다 큰 어른에게 필요치 않을 뿐더러, 이는 부모행세인데다 해롭기까지 하다.

어떤 비판자들은, 더 나아가 윤리적 관광에는 평균적인 사람을 깔보며 젠 체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윤리적 관광의 옹호자들은 휴가를 가는 행동을 도덕적 활동으로 바꾸었다. 여행을 도덕화시킴으로써,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재미, 자유, 쾌락을 ‘나쁜 행동’으로 문제시한다. 윤리적 관광 옹호자들의 메시지에 따르면, ‘윤리적’ 마음가짐 없이 여행하는 사람들은 저속하고 싸구려인 데다가 통속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전형적인 환멸감을 반영하는 태도이다. 윤리적 관광이 빅토리아 시대의 설교자나 전도사의 것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윤리적 관광이 윤리와 책임의 언어를 갖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대중들의 여행은 제한하면서도 극소수 ‘도덕적’ 특권계층의 여행은 방치하고 있으며, 이는 윤리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여행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윤리적 관광의 일부 반대자들은 수칙과 지침이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보다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윤리적 관광 산업은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에 의해 정의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영속시킨다. 이런 종류의 비판자들은, 윤리적 관광객이 장려하는 ‘문화’라고 하는 고상한 개념이 맹목적으로 숭배되고 있는 강요된 개념일 뿐이며, 이것이 여행객과 현지인의 차이를 과장할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을 이상화하면서 강등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난에 따르면, 윤리적 관광은 현지인과 관광객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현지인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설명들이나 너무나 많은 행동 수칙들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을 자기식대로 여행하도록 그냥 놔둔다면, 그들은 자연발생적이면서 덜 통제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면서, 결국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더 적지는 않을 것이다.

현지인들과 그들의 나라

책임관광은 현지인들과 그들의 나라에 이익이다

윤리적 관광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현지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범한’ 휴가객과는 달리, 윤리적 관광객은 현명하게 행동하며 이익을 가져다준다. 예컨대, 방문객은 거대 호텔이 아닌 마을에서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돈은 거대회사로 가기보다는 보다 절실한 현지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윤리적 관광객은 또한 가난에 주의를 기울일 텐데, 자신에게는 몇 푼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현지 상인에게는 그 차이가 꽤 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돈을 깎기 위해 조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에 따르면, 관광객의 작은 행동 변화만으로도 관광지 국가는 커다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관광객이 된다는 것에는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윤리적 관광의 지지자들은 말한다. 여행객은 자연 환경의 보호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야생동물 공원을 지원하고 지나치게 개발된 지역을 여행지역에서 배제함으로써, 책임관광을 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보호구역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왕국과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책임관광객은 그 지역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는 데 주의할 수 있다. 따라서 관광 덕분에, 산업과 개발이 없는 지역이 파괴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또한 관광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윤리적 관광객은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차이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문화적으로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윤리적 관광객은,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전혀 모르는 관광객과는 달리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의 존중을 불러온다.

윤리적 관광은 새로운 제국주의다

이와는 반대로, 윤리적 관광의 반대자들은 관광지 국가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가 윤리적 관광의 옹호자들에 의해 강요되고 있으며 이는 현지인들의 선택과 결정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관광지 국가에 무엇이 옳은지를 사실상 윤리적 관광객들이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윤리적 관광의 지지자들이 특정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가진 특정한 관점이란, 개발보다 자연을 우선시하고 관광지 국가가 생각하는 최선의 이익은 생각지 않은 채 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관념만을 고수하는 관점을 말한다. 윤리적 관광객에게는 자연과 환경이 너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야생동물이나 야생지역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윤리적 관광객은 현지인들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보존을 최우선시하게 되면, 관광지 국가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낭만적인 성소를 찾는 서구 관광객의 입장에 기초하여 정해지게 된다. 결국 현지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그들의 삶은 점점 더 심하게 통제받는다.

윤리적 여행의 비판자들은 윤리적 관광객이 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현지 문화를 찾고 있으며, 이것이 실제의 현지 문화와 현지인들의 이익을 짓밟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상화된 원주민을 너무나 찾고 싶어한 나머지, 윤리적 관광객은 자신이 품고 있는 환상을 창조하고 지속시키는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 ‘경험’을 갈구하는 관광객들처럼, 그들 역시 자신의 필요에 딱 들어맞는 행복한 원시상태만을 지원할 뿐이다. 이는 강압적이며 퇴행적이다. 결국 관광지 국가와 사람들은 윤리적 관광으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윤리적 관광의 이익과 문제점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챕터에 실린 에세이들이 그 논쟁을 둘러싼 다양한 믿음과 긴장을 보여주었기를, 그리하여 어느 정도는 “윤리적 관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변들 뒤에 놓인 여러 가지 가정들이나 생각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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