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과학에 대한 재평가
논쟁의 배경: 단절 vs. 연속
- 당대인들의 단절 주장: 과학혁명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들의 재발견 또는 도그마로부터의 탈출을 얘기하면서 중세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은 17,18세기 당대인들, 예컨대 베이컨이나 계몽철학자들의 증언에서 비롯된 오래된 주장.
- 듀엥의 연속성 논제: 근대과학 중 적어도 역학과 물리학의 경우 그 뿌리를 중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 But 큰 호응을 얻지 못했음. 2차대전 이후 중세 문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듀엥 논제는 재평가 받기 시작.
- 크롬비의 '방법론' 계승 주장: 근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을 방법론에서 찾는 크롬비는 근대과학의 방법론이 중세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 즉 질문들, 연역/귀납, 분석/종합, 사고실험 -> 가설연역
- 코이레의 단절성 논제: 근대과학은 중세로부터의 결정적 돌연변이(decisive mutation). 과학혁명은 중세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등장임 강조.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출판 이후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중세와 근대과학 사이에 '공약불가능'한 큰 단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띠게 됨.
- 그랜트의 Physical Science in the Middle Ages (1978): 중세 과학이 근대 과학의 출현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도 있으나, 그 기여는 그다지 크지 않았음 주장. 특히 비(또는 반)실재론적 경향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근대 과학 출현 불가능.
- 린드버그의 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1992), 그랜트의 The Foundations of Medern Science in the Middle Ages: Their Religious, Institutional, and Intellectual Contexts (1996) : 린드버그가 보기에 형이상학과 방법론의 일부에서 분명한 단절 있었음. 즉 세계에 대한 공리 달라졌음. 그러나 과학혁명기의 과학을 개념과 방법의 전환으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관점임. 기독교, 번역, 대학, 지적 문화 등 사회적, 제도적 측면을 보면 중세과학은 근대과학의 긍정적인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음. 즉 과학혁명은 중세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중세 '덕분에'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