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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ok Chang,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ch. 2.

Narrative: The Search for the “Real” Scale of Temperature

일단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이 고정된 점이라는 것이 확립되었다 하더라도, 그 외의 온도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물의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한 후, 그 사이를 등간격의 눈금으로 나누면 될까? 문제는 온도계에 넣는 물질마다 부피 변화 정도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알콜 온도계와 수은 온도계와 물 온도계는 물이 얼 때와 끓을 때를 제외하면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온도를 말해준다.

수은 알콜
0 0 0
25 22 5
50 44 26
75 70 57
100 100 100

그렇다면 어느 온도계가 정확한 온도를 말해주는 것일까? 이는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에 해당함. 즉 (1) 우리는 X(온도)를 측정하고자 하지만, (2) X는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대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Y(액체의 부피)를 통해서만 추론될 수 있다. (3) 이러한 추론을 위해서는 X=f(Y) 형태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4) 그러나 f는 경험적으로 발견되거나 시험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Y뿐 아니라 지금 측정하고자 하는 미지의 변수 X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온도를 온도계에 넣은 액체의 부피를 통해 측정하고자 한다면, 액체의 부피와 온도 사이의 법칙을 알아야 하지만, 그 법칙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으며, 거꾸로 그 법칙을 발견하고 검사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순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공기가 온도에 선형적으로 팽창할 것이라 추측했지만, 그것을 정당화하는 적절한 논증을 구성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칼로릭 이론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시도되었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혼합 방법이다. 이는 0도씨의 물과 100도씨의 물을 (100-x):x로 섞으면 x도씨가 될 것이라는 가정을 이용해, 그 가정에 부합하는 계산값에 근접하는 온도계를 더 좋은 온도계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Brook Taylor(1723), Joseph Black(1760) 등이 이를 시도했고, 이를 가장 정밀하게 시도한 인물은 De Luc(1772)이었다. 그의 실험은 명백하게 수은 온도계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은을 제외한 다른 물질을 넣은 온도계들은 모두 계산치에 상당히 못 미치는 값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물질들은 낮은 온도에서 적은 부피 변화를 보였는데, 이 역시 액체들의 부피가 줄어들수록 입자들이 밀집해서 점점 압축되기 힘들 것이라는 그의 이론적 고려와 잘 맞아떨어졌다. 수은 온도계를 지지하는 그의 실험과 논증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1800년 무렵이 되면 유럽의 거의 모든 학자들이 수은 온도계를 지지하는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De Luc의 혼합 방법은 물의 동일한 온도 변화마다 동일한 양의 열이 필요하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물의 비열이 온도와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단순한 가정은 매우 유용했지만, 1800년 무렵부터 열을 관장하는 칼로릭이라는 입자를 가정하는 칼로릭 이론가들에 의해 공격받기 시작한다. 이 칼로릭 이론가들은 비열과 잠열의 의미에 대한 견해에 따라, “어빈주의” 그룹[1]과 “화학주의” 그룹[2]으로 나뉘는데, De Luc의 견해는 두 그룹 모두에게 의심받을 소지가 있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혼합하는 경우, 어빈주의 그룹에 속한 돌턴은 혼합물의 비열이 감소해 그 온도가 단순 평균보다 약간 높을 것이라 생각했고,[3] 화학주의 그룹에 속한 Hauy는 혼합물의 비열이 증가해 그 온도가 단순 평균보다 낮을 것이라 생각했다.[4] 요컨대 혼합 방법은 물의 비열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인 이론적 고찰에 의해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은 De Luc 본인도 자신의 방법이 비열의 일정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심각한 논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은 (De Luc의 방법을 의심한 사람들조차도) 수은 온도계의 우수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칼로릭 이론가들은 기체가 온도계에 넣을 가장 이상적인 물질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기체 입자들 사이의 거리는 무척 멀어서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무시할만할 것이기 때문에, 기체의 부피 팽창은 오로지 입자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칼로릭에 의존해 단순하고 균일할 것이라는 이론적 추론에 의거했다. 기체의 열 팽창의 단순성에 대한 믿음은 게이뤼삭(1802)과 돌턴(1802)의 실험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그들의 실험에 의존하여 많은 사람들은 “모든 기체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대기압 하에서 온도 1℃ 증가에 따른 부피 증가는 V0℃/266.67로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Thenard 1813). 그러나 이는 기체의 부피 변화가 오로지 온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기체의 부피가 온도와 선형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의 증명은 될 수 없다. 왜? (책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그 실험에 사용된 온도계가 수은 온도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기체의 부피는 수은 온도계의 눈금과 선형적인 관계를 갖는다고는 할 수 있더라도, 수은 온도계가 진정한 온도를 나타낸다는 보장이 되지 않는 한 기체의 부피와 온도 사이의 선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선형성을 믿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증이 필요했다. 라플라스는 이를 위한 이론적인 논증(?)을 선보였고, 그의 권위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공기 온도계가 진정한 온도계라는 것을 받아들였다(이때부터 수은 온도계는 공기 온도계의 실용적인 대체품으로만 인정되었다). 나중에 라플라스는 기체와 칼로릭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P=KT/V를 도출하는 나름 정교한 수학적 논증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수많은 의심스럽고 경험적으로 시험 불가능한 가정들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e.g., 기체는 열평형 상태에 있고 밀도가 균일할 것이다. 그 입자들은 구형이고, 고정적이고,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각 입자는 정확한 똑같은 양의 칼로릭을 포함할 것이다. 칼로릭 입자들 사이의 힘은 거리에만 의존하는 함수일 것이며, 일정한 거리 이상에서는 무시할 만할 것이다. 등등). 결국 라플라스의 죽음 이후 포아송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수많은 이론적 가정들을 필요로 하는 라플라스 방식의 연구 프로그램에 등을 돌리고 매우 경험적인 노선으로 돌아서게 된다.

라플라스의 권위가 떨어진 이후, 직접적인 관찰을 넘어서는 모든 학설에 대한 회의와 불가지론이 확산되었다. 이론적 관심이나 이론의 정교화 노력은 줄어들고 단순한 이론적 관념들에 대한 재고찰이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Lame이었다. 그는 기체 온도계가 다른 것에 비해 우월하다는 점을 논의할 때, 그 역시도 순수한 열의 효과가 입자간 힘의 효과에 의해 섞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기체의 부피가 온도에 비례한다는 것은 증명된 적이 없다는 것 또한 지적했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빅토르 르뇨(Victor Regnault)로, 그는 의심스러운 이론적 가정 없이 어떤 온도계가 가장 좋은지를 검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조건이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같은 종류의 온도계는 같은 상황에 대해 항상 똑같은 온도를 나타내야 한다는 기준, 즉 소위 비교가능성 기준을 적용하여 온도계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온도계들의 측정값들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신뢰할만한 측정장치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사실 이 기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온도계가 만족해야 할 조건으로 인식되어 왔다).

1816년 Dulong과 Petit의 연구 덕분에, 100도씨 너머에서 수은 온도계와 공기 온도계의 눈금이 서로 불일치하고 그 정도가 심하게는 10도씨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져 있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온도계를 사용하는 것이 나을까? 이 선택의 문제는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두 온도계는 더 이상 섞어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해 르뇨는 공기 온도계가 수은 온도계보다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밝혀냈다(1842, 1847). 수은 온도계는 사용된 유리의 종류에 따라 (심지어 같은 종류의 유리를 사용한 온도계 사이에서도) 200도 너머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하나의 진정한 수은 온도계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서로 다른 수은 온도계를 통해 측정된 온도값들은 같은 값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수은 온도계들은 상호 비교가능한 측정장치가 아니다. 또한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할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기준을 얻기 위해서는 유리의 팽창에 대한 훨씬 더 복잡한 사항을 알아내야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공기 온도계는 유리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타날 위험이 없었고(공기의 팽창에 비해 유리의 팽창은 무시할 만하기 때문), 다양한 밀도의 공기를 집어넣고 실험적으로 비교해도 그 눈금이 달라지지 않았으며, 온도계간의 작은 오차는 무작위적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단일 기체 온도계들도 공기 온도계와 동일하게 작동했다. 예외도 있었는데, 황산기체 온도계는 공기 온도계와 체계적인 차이를 보였다. 이로부터 르뇨는 공기 온도계가 유일한 신뢰할만한 온도계라고 주장했다.

질문 1 : 왜 다른 기체들보다 공기를 선호했을까? 다른 기체 온도계가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다른 기체들도 공기만큼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과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 다만 그들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구하기 쉬운 공기를 쓰는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했을 것. 흥미롭게도, 그는 공기가 다양한 기체들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공기가 비교가능성 기준을 만족하고 특별한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그것보다 순수 기체를 선호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그의 반이론적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질문 2 : 르뇨는 공기 온도계의 비교가능성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믿을 좋은 이유를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했을까? 원리적으로 비교가능성 검사는 밀도나 유리 외에도 다른 변수들을 가지고도 더 해볼 수 있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다른 변수는 없었을 것이다(있었다면 시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의심할 변수는 끝이 없기에 어딘가에서는 멈춰야 했는데 그게 그 지점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포퍼의 추천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반증되지 않는 동안은 채택하고 사용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지, 그는 온도계와 기체 팽창의 법칙에 관해 다음과 같은 비관적인 결론을 맺는다. “기체 팽창에 관해 지금까지 수용되어 온 단순한 법칙들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공기 온도계를 표준 온도계로, 즉 그 눈금이 열의 양의 증가에 정말 비례하는 온도계로 간주했다. 현재 그 법칙들은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공기 온도계도 다른 온도계와 마찬가지로, 그 눈금은 열의 증가에 대한 다소 복잡한 함수를 갖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열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내기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지식 수준에서는, 실험을 통해 이 양에 의존하는 현상에서 단순한 법칙들을 발견하리란 희망이 거의 없다.”(1842) 그는 공기, 수소 등의 온도계와 황산기체 온도계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전자가 옳고 후자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황상기체 온도계]의 팽창 계수는 공기 온도계에 의한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감소한다”고만 표현했다. 결국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결론은 다른 것들이 공기 온도계보다 못하다는 것일 뿐, 공기 온도계의 온도가 참된 온도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는 매우 훌륭한 성취로, 그의 논증은 사상 처음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방식으로 가장 우수한 온도계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쟁을 종식시켜주었다. 이로써 온도계의 발전에서 한 단계가 종결되었다.

Analysis: Measurement and Theory in the Context of Empiricism

온도계의 눈금을 정하는 문제 또는 온도계에 사용할 가장 좋은 물질을 정하는 문제에 대한 빅토르 르뇨(Victor Regnault)의 흠잡을 데 없이 설득력 있는 해법의 본성을 해명하고 그 가치를 재평가하고자 함. 장하석은 이를 4가지 다양한 각도에서 (1) 관찰가능성의 단계적 확장으로서 (2) 형이상학의 책임있는 사용으로서 (3) 이론 시험의 “전체론”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4) 프랑스 물리학의 탈라플라스 경험주의의 정점으로서 살펴볼 것이다.

The Achievement of Observability, by Stages

관찰가능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관찰가능성은 하나의 성취이다.” 관찰가능성은 감각으로부터 순수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얻은 것보다는 감각으로부터 안전하게 혹은 신뢰할 만하게 추론할 수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관찰은 ‘감각으로부터의 신뢰할만한 결정’으로 정의해볼 수 있다. 그 ‘신뢰성’의 정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은 어렵더라도, 상대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며, 덕분에 우리는 관찰가능성의 개량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르뇨의 기여는 온도의 관찰가능성을 수량으로서 개량한 것이며 또 그것을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해낸 데 있다. 르뇨는 정량적 온도 개념의 관찰가능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엄격한 경험주의적 전략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그는 어떠한 정량적인 열이론에도 의존하지 않고자 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이론들은 (거꾸로) 확립된 수치 온도계의 눈금을 통해 검증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론의 전제 없이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정량적 온도계가 실제로 확립되기 전, 누군가 이론적인 정량적 온도 개념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점에서, 정량적 온도는 관찰불가능한 속성이었다. 이는 나중에야 관찰가능한 속성이 되었다. 이를 위해 르뇨는 ‘비교가능성’을 신뢰성에 대한 비이론적 기준으로 사용했다. 물론 이미 그 관찰가능성이 확립되어 있던 다른 개념들(e.g., ordinal temperature concept, 정량적 압력 개념 등)도 필요했다(그는 일정부피형 공기 온도계를 사용했다).

그는 또한 수은 온도계를 공기 온도계와 압력계의 접합 부위의 튜브 안의 공기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를 재는 데 사용했다. 아직 그 신뢰성이 확립되지 않은 수은 온도계의 사용은 어떻게 허용될 수 있는가? (1) 튜브 안의 공기 양 매우 작아서 그 온도의 오차에 기인한 오류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임 (2) 수은 온도계의 비교가능성 문제는 낮은 온도에서는 심하지 않음. (3) 수은 온도계와 공기 온도계는 0도에서 100도씨 사이에서 거의 완벽하게 일치함. 즉 일상적인 범위 내에서 수은 온도계의 신뢰성은 공기 온도계와 운명을 같이 함. (4) 공기 온도계에 대한 테스트는 최종 온도 눈금의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눈금을 얻는 과정에 대한 정당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음. 따라서 그 과정에 대한 정당화는 애초에 중요치 않았음.

Comparability and the Ontological Principle of Single Value

정량적 온도를 관찰가능하게 만드는 문제는 일종의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 : X에 대한 측정이 함수 X=f(Y)로 표현되는 이론적 가정에 의존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순환의 문제에 봉착한다. 즉 f는 X를 알아야 구할 수 있지만, X는 f를 알아야 구할 수 있다. 정량적 온도계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0도씨와 100도씨 사이의 구간을 동일하게 나누는 것일 텐데, 이는 f의 선형성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정은 아직 정당화되지 않는 가설에 불과하며,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의 핵심은 그 가설을 시험하는 데 사용될 좋은 기준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르뇨는 이러한 엄혹한 인식론적 상황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단계에서 확립된 기준(끓는점, 어는점)은 그 외의 구간에 대해 쓸모가 없고, 이론의 도움은 쓸모가 없거나 순환을 일으킬 뿐이다(정말? 혼합물 방법은?). 그래서 르뇨는 어떠한 이론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비교가능성’이란 기준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기준은 다른 조건을 조금씩 달리하더라도 같은 물질을 사용한 온도계는 같은 상황에서 같은 온도를 가리켜야 한다는 기준으로, 르뇨의 엄격한 검사를 통과한 온도계는 공기 온도계뿐이었다.)

왜 비교가능성은 지켜져야 할 장점이 될 수 있는가? 이 기준은 (물리적 not 논리적) 자기 일관성만을 요구하며, 이 요구는 ‘단일값 원리’에 의존한다. 이에 따르면, 진정한 물리적 속성은 주어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definite 값만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온도에 관한 실재론자라면(대부분이었음), 어떤 기체의 온도가 15도이면서 35도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false가 아니라) nonsense가 될 것이다. 이는 15도이면서 15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논리적 모순과는 다른 종류로, 복수의 값을 갖는 것이 가능한 속성도 있다. 즉 단일값 원리를 따르도록 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초 관념에 의존하고 있음. 또한 이 원리는 경험적 가설도 아니다. 즉 이 원리는 경험적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고, 관찰에 의해 시험될 수도 없다.

이 원리는 소위 ‘존재론적 원리’의 하나로, 논리에 의해서도 경험에 의해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다만 그 원리는 거짓일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사용되는 존재론적 원리가 옳다는 것이 어떻게 보장되는가? 존재론적 원리에 대한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그것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장하석은 그것보다는 그 원리들을 개량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즉 관찰이 증거로서 여러 문제를 낫는다고 해도 관찰을 포기하기보다 개선하듯이, 존재론적 원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의 의미는? 르뇨의 작업은 가장 순수한 경험주의적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작업은 형이상학적 정당화만 가능한 존재론적 원리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엄격한 경험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비교가능성의 기준은 실용적인 이유에서도 어느 정도 추구될 수 있다. 그러나 300도의 작은 차이는 당시에 실용적인 차이를 낫지 않았을 것이다. 즉 르뇨로 하여금 엄격한 비교가능성 검사를 하도록 이끈 것은 실용성이 아니라 형이상학(혹은 아마도 미학)이다.

코멘트 1 : 장하석은 아무리 경험주의적인 방법이라도 순수히 경험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혼합물을 이용한 온도 평가 방법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게 되었다. 물론 이 방법은 단순하지만 어느 정도 이론에 의존했고, 이론적 고려에 의해 그 방법의 신뢰성을 부정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은 온도계의 확립 과정에서 (적어도 수은 온도계나 공기 온도계가 알콜 온도계들보다 낫다는 것을 보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장하석도 지적했듯이, 1800년 무렵 유럽의 거의 모든 학자들이 혼합 방법의 논증을 통해 수은 온도계의 우월성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철학적인 재평가가 필요해 보임.

코멘트 2 : 르뇨의 작업은 분명 무척 훌륭해 보임. 그러나 공기 온도계의 우월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은 그의 엄격한 시험(1847)이 있기 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됨. 장하석 역시 당대의 학자들의 입을 통해 그 상황을 얘기해주고 있음. 그렇다면 이에는 어떤 이유가 작동했을까? 또한 르뇨의 시험은 실제로 그들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공기 온도계가 제일 좋은 것 같았는데 이제 정말 확실해졌군”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은 과연 중요한 일이었을까? 그의 정밀한 자료는 이후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아마도 세밀한 이론적 활동을 위한 자료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윌리엄 톰슨)

코멘트 3 : 르뇨의 시험은 좋은 정량적 온도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즉,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과한 온도계가 온도에 대해 매우 robust하고 일관되게 작동한다는 점은 인정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온도계의 눈금이 실재하는 온도에 선형적으로 비례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비교가능성 검사를 통과하지만 두 가지 다른 변화율을 보이는 온도계가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며, 실제로 르뇨의 검사에서, 황산가스 온도계는 공기 온도계와 다른 부피 변화율을 보였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온도계인가? 즉 르뇨의 비교가능성 기준은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에 대한 좋은 해법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이론적 온도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의 근본적 한계로 보인다. 장하석은 그 한계를 철학적으로 적절하게 분석하지 않고 지나갔다. 오히려 선형성에 대한 근거는 여전히 혼합 방법에 기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찌됐든, ‘비교가능성’을 ‘법칙에 의거한 측정의 문제’에 대한 해법처럼 보이도록 쓴 이 소절은 오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Minimalism against Duhemian Holism

르뇨의 성취는 이론 시험의 [뒤앙적] “전체론”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법으로도 볼 수 있다.

가설연역주의적 관점에서, 이론에 대한 시험은 이론의 관찰 귀결과 실제 관찰 결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장하석에 따르면 이러한 시험은 “중복결정에 의한 시험”의 특수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중복결정에 의한 시험”이란 하나의 양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한 것이 서로 일치하는지를 검사하는 것으로, 일치하면 사용된 일련의 가정들이 올바르거나 유용하다는 결론을 얻고, 일치하지 않으면 그 가정들의 집합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는 단일값의 원리에 기반한 물리적 일관성에 대한 시험으로, 이때 비교는 꼭 이론적 결정값과 경험적 결정값 사이의 비교일 필요는 없다. 복수의 이론값 사이의 비교여도 되고, 두 가지 관찰값 사이의 비교여도 된다. 다만 우리는 그 비교에 사용한 값들 중 적어도 하나가 관찰에 기초할 경우, 그 검사를 “경험적” 검사라고 부를 것이다.

De Luc의 혼합 방법은 중복결정에 의한 시험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혼합물의 온도에 대한 계산치와 온도계의 측정치를 비교한 검사이다. 이 검사는 알콜 온도계의 정확성을 포함한 일련의 가설 집합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지만, (수은 온도계의 정확성 가정 + 일련의 가설들) 집합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검사는 전체론의 문제로 약화된다. 왜냐하면 De Luc의 계산치는 열의 보존과 물의 비열의 불변성과 같은 추가적인 가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콜 온도계를 변호하고자 한다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책임을 그 보조 가정들에 돌리면 되었을 것이고, 수은 온도계의 정확성을 부정하고자 한다면, 보조 가정들을 공격하면 되었다.

르뇨의 경우는? 그의 중복결정 시험은 이론적인 가설에 의존하지 않았다. 주어진 온도는 같은 종류의 다른 온도계의 측정치들에 의해 중복결정될 수 있었고, 그것들만 비교해도 상당한 검사가 가능했다. 이는 “최소주의적 중복결정”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가능한 별도의 관찰불가능한 가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관찰불가능한 가설을 제고하는 실증주의적 태도와는 다르다. 오히려 최소주의는 실재론적 전략으로, 분명하게 검사될 수 있는 관찰불가능한 가설의 가능한 작은 체계를 고립시켜 구성하는 것이다.

최소주의(적으로 설계된 시험)은 전체론 문제를 덜어준다. 부정적 시험 결과는 더 강력해져(책임을 돌릴 보조가설의 수가 적기 때문), 르뇨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온도계는 다른 핑계를 대기 어렵다. 따라서 수은 온도계에 대한 르뇨의 단죄는 의심을 받지 않았다. 긍정적 시험 결과 역시 더 강력해진다(의심할 보조가설의 수가 적어지기 때문). 물론 언제나 중복 결정된 두 값 모두 동일하게 잘못되어 일치한 것으로 의심받을 수는 있다. De Luc의 시험은 돌턴에 의해 그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르뇨의 시험은 그런 종류의 비판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정말? 만약 르뇨의 가설이 공기 온도계가 실제 온도를 나타낸다는 것일 경우, 밀도가 다른 두 온도계의 눈금이 일치한 것은, 두 온도계 모두 실제 온도를 나타내지 못하지만 똑같이 작동해서 눈금이 일치했을 뿐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르뇨는 공기 온도계가 실제 온도를 나타낸다는 주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최소주의 전략은 일반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가설의 과감함도 줄이는 trade-off가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주의는 통상적인 믿음과 상충하는 면이 있다. 뒤앙 등의 주장에 따르면, 물리학의 실험 도구들은 보통 물리학의 원리에 기반해 설계되기 때문에, 물리학의 관찰은 이론이 적재된 관찰로서 그에 기반한 이론 시험은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높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충고는 그 순환을 깨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주의의 권고는 그 순환을 강화하라고 말한다.

수은 온도계에 대한 르뇨의 부정적 시험 결과를 생각해보자. 이는 같은 이론에 의존하는 관찰에 의한 이론 시험이 이론에 대한 공허한 입증만 산출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완화시켜준다. 즉 이론에 의존하는 관찰이 항상 그 이론을 지지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론에 의존하는 관찰에 의한 시험에도 불구하고 이론이 반증되었다면, 그것은 더욱 강력한 반증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긍정적 시험 결과의 경우에서도, 독립성이 주는 위안은 환상이다. 시험되는 이론과 독립된 관찰을 취하는 것은, 그 관찰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좋은 이유(혹은 이론)들이 있을 때만 좋은 전략이다. 최소주의는 그러한 다른 좋은 이론이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정당화되지 않는 이론을 사용할 경우 그 시험은 의심받을 여지가 있기에, 그러한 이론을 사용하지 않을수록 시험 절차의 불확실성이 제거된다.

르뇨의 최소주의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최소주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최소주의적 시험을 통해 분명한 승자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르뇨의 경우 다행히 공기만 통과(No. 공기뿐 아니라 여러 순수 기체 온도계도 통과). 우리는 여러 종류의 온도계가 시험을 통과하면서 서로 불일치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공기 온도계와 황산기체 온도계를 바로 이러한 경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아무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음.

코멘트 1 : “중복결정에 의한 검사”라는 아이디어는 훌륭하다. 이 아이디어는 거의 모든 종류의 검사로까지 확장가능해 보인다. 심지어 이는 경험적 검사가 아닌 경우까지도 확장 가능해 보인다(예: 수학적 해에 대한 검산이 작동하는 원리).

코멘트 2 : 르뇨의 최소주의적 시험에서 수은 온도계의 비신뢰성은 확실히 증명되는가? 실용적-형이상학적으로 볼 때, 수은 온도계는 200도 넘어서부터 제작에 사용된 유리의 종류에 따라 (심지어는 같은 유리에서도) 눈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진정한 수은 온도계를 가질 수 없다. 즉 수은 온도계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하나의 값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수은 온도계로 측정된 온도들을 일관되게 사용할 수 없다. 즉 누군가가 수은 온도계로 200도라고 측정한 상황이 내 수은 온도계로도 200도 측정될 만한 상황인지 신뢰할 수 없다. 반면, 공기 온도계는 밀도나 유리에 따라 눈금이 달라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의 ‘공기온도’만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가 공기 온도계로 200도라고 측정했다면, 내 공기 온도계로도 똑같이 200도로 측정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기 온도계는 수은 온도계보다 분명 신뢰할 만한 측정장치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기 온도계들은 서로 비교가능한 측정장치이지만, 수은 온도계들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기준을 통해 우리는 공기 온도계가 매우 좋은 측정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멘트 3 : 그럼에도 “최소주의적 중복결정 검사”에 대한 높은 평가는 과도한 면이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최소주의적으로 설계된 시험일수록 시험의 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De Luc의 시험보다 르뇨의 시험이 더 확실하다. 그러나 두 시험이 평가할 수 있는 가설은 서로 달라 보인다. De Luc의 시험이 평가할 수 있는 가설은 “시험 중인 온도계의 눈금이 온도와 비례한다”는 것이지만, 르뇨의 시험이 평가할 수 있는 가설은 “시험 중인 온도계가 온도에 따라 신뢰할만하게 작동한다”는 것일 뿐, 그 온도계의 눈금이 온도와 비례하는지는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 르뇨의 검사에서 두 온도계의 일치는 온도에 따라 똑같이 신뢰할만하게 작동해서일 뿐, 온도와 똑같이 비례하기 때문이라고 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선형성 가설을 평가하기 위한 르뇨식 최소주의 시험은 애초에 설계될 수 없어 보인다. 따라서 De Luc의 시험 방법과 르뇨의 시험 방법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둘은 똑같은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멘트 4 : 순환성에 대한 분석은 어떠한가? 일단 이론에 종속된 관찰이 그 이론을 지지하는 결과만 주지는 않는다는 데 동의. 그러나 독립적인 관찰에 대한 요구가 그 관찰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적절하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음. 지금 분석하는 이 사례가 순환의 사례인가? De Luc의 시험은 순환 아님. 르뇨의 시험은? 르뇨의 시험에서 관찰은? 기체의 압력이나 수은주의 높이? or 각 온도계의 온도? 만약 순환이라고 한다면 온도계의 온도가 잘 맞는지를 똑같은 온도계를 가지고 평가하려고 했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각 온도계는 엄밀하게는 서로 다른(e.g., 다른 유리를 사용하거나, 다른 밀도의 공기를 사용한) 온도계로, 서로 일치여부가 불확실하다. 따라서 이는 전혀 순환이 아니다. 게다가 이 시험은 온도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온도계가 신뢰할만하게 작동하는지를 평가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전혀 순환이 아니다. 즉 이 시험에 핵심적인 예측은 “온도계가 신뢰할만하게 작동한다면 각 온도계는 똑같은 눈금을 가리켜야 한다”이다.

원래 전형적인 순환은 공기의 부피 변화가 온도 변화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공기 온도계로 검증하려 할 때 발생한다. 공기 온도계의 정확성을 가정해버리는 순간 그 법칙은 사소하게 증명될 것처럼 보인다. 만약 공기 온도계만으로 그 법칙을 증명했다고 하면 우리는 그 법칙이 전혀 정당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공기에 대한 그 법칙은 우선 수은 온도계를 통해 발견되고 입증되었을 것이다. 또한 입증하고자 하는 법칙이 “모든 기체들이 종류에 상관없이” 똑같은 팽창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공기 온도계를 통해서도 사소하게 입증되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기체들의 온도에 따른 팽창 법칙이 “똑같은 형태인지 아닌지”는 공기 온도계(혹은 특정한 기체 온도계)를 기준으로도 “확실한” 시험이 가능하다. 실제로 르뇨의 실험은 대부분의 기체가 똑같은 팽창 법칙을 따르지만 황산기체는 다른 기체와 똑같은 팽창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낸 셈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아무런 순환도 발생하지 않는다.

“중복결정에 의한 시험”이 시험이 될 수 있는 것은 같은 양에 대해 그 값을 구하는 두 과정이 조금이라도 다르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은 과정에 의해 구한 두 값이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똑같은 과정에 의해 구한 두 값이 다른 것은 고민이 좀 필요하다. “중복결정에 의한 시험”은 결국 진정한 순환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내 생각에, 르뇨의 시험은 순환을 잘 활용한 시험이 아니라 순환에서 벗어난 시험이었다.

Regnault and Post-Laplacian Empiricism

르뇨의 경험주의는 라플라스의 지배력이 종식된 이후의 경험주의 경향의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탈라플라스 시기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다. (1) 이론에서의 현상주의적 분석 (2) 실험에서의 정밀 측정.

현상주의적 경향의 전형적인 사례는 푸리에의 열 분석. 이론의 적용범위를 축소하고, 열의 궁극적 형이상학적 본성에 대해서는 믿음을 정하지 않고, 이론에서 “깊은” 원인은 고려하지 않음. 콩트의 실증주의로부터도 영향 받음. 다른 사례로는 사디 카르노의 연구. 그는 칼로릭 이론에 기초했지만, 미시물리적 추론에서 탈피. 그들의 연구는 직접 측정가능한 거시적 변수들 사이의 관계에만 의존.

실험적 정밀성의 추구도 다른 큰 조류. 르뇨도 여기에 속함. 그렇다면 르뇨는 푸리에, 카르노, Dulong, Petit, Lame 등에 비해 무엇이 특별한가? (1) 그의 혁명은 분명 실험 물리학에서의 혁명. 이론적 혁신엔 거의 기여 없었으며, 이론 역시도 그의 혁명에 도움 없었음. 반대로 현상주의적 경향의 푸리에나 카르노는 관찰에 직접 기여하진 않았으며, 온도계의 정당화에도 관심 없었음. 그들은 경험적 자료의 소비자. (2) 현상주의자들은 반형이상학적이었을 뿐이지만, 르뇨는 반이론적이었음. 르뇨에게는 현상주의적 이론들도 회의의 대상이었음. 그는 1842년에 이미 기체에 관한 확실시되어 온 여러 기본 법칙들(기체 팽창의 법칙, 보일의 법칙 등)을 반증하는 실험 자료를 가지고 있었음. 그에게 모든 법칙들은 불확실해 보였고, 기존의 측정 방법들은 그 측정을 통해 시험하고자 하는 이론에 의존한다는 순환성이 명백해 보였음. 그래서 그는 이론이 없는 관찰/측정에서 시작해서 그 논쟁의 여지없는 자료로부터 이론을 만드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 측정 작업은 끝이 없었기 때문에 이론 작업을 끝없이 연기되었다. 이러한 르뇨의 끝없는 측정 작업은 1840년대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벌어진 물리학의 엄청난 발전의 시각에서 볼 때 불행한 일로서 저평가되곤 함. 그러나 이는 과학적 진보에서 이론적 진보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때만 적절한 평가. 뒤앙은 르뇨가 물리학에서 “진정한 혁명”을 불러왔다고 주장. 그는 단지 careful and skilled laboratory technician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thermometric fluid를 정하는 문제에서, 그는 Dulong과 Petit은 풀지 못한 인식적 문제를 풀 수 있었다. Dulong과 Petit은 100℃ 너머에서 수은과 공기 온도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였고, 기체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똑같은 팽창 패턴을 보이는 반면, 금속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였지만, 공기 온도계가 수은 온도계보다 낫다는 것을 논증할 수는 없었다. 반면 르뇨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공기 온도계가 수은 온도계보다 낫다는 것을 논쟁의 여지없이 보이는 데 성공했다. (Dulong과 Petit에 대한 분석이 소략하기 때문에, 장하석의 이 비교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평가하기 어려움)

주석

  1. 어빈주의 그룹은 물체에 포함된 칼로릭의 양을 칼로릭 용량(열용량)과 “절대온도”의 곱으로 계산했다. 그래서 열량이 그대로인 채 열용량만 증가하면 온도가 낮아진다(마치 양동이가 갑자기 넓어지면 물의 높이가 낮아지듯이). 또 잠열이란 그러한 경우(열용량의 갑작스런 변화)에 같은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열로 개념화되었다.
  2. 화학주의 그룹은 칼로릭이 일반적인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물질 입자들과 결합한 (잠재된 상태의) 칼로릭은 물질의 (온도 변화가 아닌) 상태 변화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화학 반응 시 열이 흡수되거나 방출되는 것도 비슷하게(칼로릭의 결합 또는 분해로) 설명되었다. 이렇듯 칼로릭과 물질의 화학 결합 관점은 “결합된/잠재된[combined/latent]” 칼로릭 vs. “자유로운/감지되는[free/sensible]” 칼로릭의 용어 구분을 낳았다.
  3. 어빈주의에 속했던 돌턴은 De Luc을 비판하면서, 물의 비열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의심했다(1808). 의심할 만한 간단한 이유도 존재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총부피가 약간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는데, 돌턴의 생각에 부피의 감소는 칼로릭이 들어갈 자리가 줄어드는 것, 즉 비열의 감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혼합물의 온도는 계산치보다 약간 높아져야 한다. 이 논변은 단열과정에 대한 돌턴의 설명과 유사한 것으로 무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그럴까? 혼합물의 부피 감소가 그리 크지 않았다면 비열의 예측되는 변화는 많지 않을 것이고, 게다가 가장 높은 온도를 보여주는 수은 온도계를 거부할 이유는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수은 온도계의 눈금을 돌턴의 계산에 따라 보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관건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4. De Luc의 방법은 화학주의 칼로릭 이론가들에게 더 심각한 의심을 받았다. “결합된/잠재된” 칼로릭은 온도계를 통해 감지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온도계에 대한 평가는 전체 칼로릭 양과 “자유로운/감지되는” 칼로릭 양의 관계를 알아야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Hauy는 Elementary 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 2판(1806)에서, 물체의 팽창과 온도 증가를 칼로릭에 의한 두 가지 구분되는 효과로 얘기했는데, 전자는 “결합된/잠재된” 칼로릭에 의존하고 후자는 “자유로운/감지되는” 칼로릭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온도계에 대한 평가는 두 양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게 된다. 즉 전자의 칼로릭이 후자의 칼로릭에 비례해야만, 물체의 팽창 정도가 온도의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Hauy는 아래의 추론을 통해 혼합물의 실제 온도가 De Luc의 단순한 계산치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결론은 아래의 도식적인 추론에 의해 도출된다. ① 뜨거운 물이 빼앗긴 칼로릭 : C1(부피 감소와 관련) + C2(온도 감소와 관련) ② 차가운 물이 얻은 칼로릭 : C3(부피 증가와 관련) + C4(온도 증가와 관련) ③ 혼합 과정에서 칼로릭이 보존되므로 C1+C2 = C3+C4 ④ 그런데 C3>C1 (왜냐하면 밀집한 입자들로 이루어진 물의 부피 증가에 더 많은 칼로릭이 필요) ⑤ 따라서 C2>C4. 이로부터 물의 (온도 변화에만 책임이 있는 칼로릭만 고려한) 비열이 일정하고 총부피 변화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혼합물의 온도는 단순 계산치보다 낮아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온다. (즉 실제 비열은 낮은 온도에서 증가)

함께 보기

Hasok Chang,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1. Keeping the Fixed Points Fixed
  2. Spirit, Air, and Quicksilver
  3. To Go Beyond
  4. Theory, Measurement, and Absolute Temperature
  5. Measurement, Justification, and Scientific Progress
  6. Complementary Science ─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as a Continuation of Science by Other Me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