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ument, Laws, and Explanation
- David-Hillel Ruben, “Argument, Laws, and Explanation”, in Explaining Explanation (New York: Routledge, 1990), pp. 182-188, 191-208, 248-252; reprinted in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eds. Martin Curd & J. A. Cover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Inc., 1998), pp. 720-745.
루벤이 보기에 헴펠의 설명 이론(포괄 법칙 모형 또는 법칙-연역 모형)에 대한 표준적인 반례들은 (A) 무관성 (B) 대칭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러한 반례들은 헴펠의 설명 조건이 (필요하더라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루벤은 이에 대한 한 가지 구제책(인과 조건의 추가)을 검토하면서 그 구제책 또한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보인 후, 설명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견해를 제안한다. 이 새로운 견해에 따르면, 설명은 법칙이 포함된 논증이어야 한다는 헴펠의 설명 조건은 필요하지도 않은데, 즉 설명은 '논증'이 아니라 '문장'이며, 법칙을 포함할 필요도 없게 된다.
루벤의 논의는 단칭 사건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표준 반례 1: 무관성
첫 번째 유형의 반례들은 헴펠의 D-N (혹은 I-S) 설명 조건을 만족하는 논증이지만 그 전제가 결론을 설명하는 데 명백히 무관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리온(Ardon Lyon 1974)의 반례
- (1) 모든 금속은 전도체이다.
- (2) 모든 전도체는 중력에 구속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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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금속은 중력에 구속 받는다.
(3)은 (1)과 (2)의 연언으로부터 따라나오지만 (2)과 (2)의 연언을 (3)에 대한 설명으로 간주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1)과 (2)는 (3)의 참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금속은 그것이 전도체이기 때문에 중력에 구속받는 것이 아니다. 비전도체도 꼭 같은 정도로 중력에 구속받는다(#Lyon 1974: 247)." 리온의 반례는 법칙에 대한 헴펠의 설명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단칭 사건의 설명에 대한 반례로도 쉽게 변형될 수 있다.[1]
브로디(Baruch Brody 1972)의 반례
- (1) 나트륨은 일반적으로 브롬과 1:1의 비율로 결합된다.
- (2) 일반적으로 브롬과 1:1의 비율로 결합되는 모든 물질은 일반적으로 염소와 1:1의 비율로 결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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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트륨은 일반적으로 염소와 1:1의 비율로 결합된다.
브로디는 위의 도출이 전혀 설명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루벤도 그에 동의하고 있다. 물론 위의 도출이 설명력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 그 설명력은 그리 많지 않다. 헴펠의 분석은 왜 그러한지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 루벤이 보기에 브로디의 반례는 일종의 설명적 무관성 문제이다. 즉 나트륨과 브롬의 결합비율은 나트륨과 염소의 결합비율을 설명하는 데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그 두 비율이 서로 법칙적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말이다. (설명적으로 무관하다고 해서 다른 식으로도 모두 무관한 것은 아님)
애친스타인(Peter Achinstein 1983)의 반례
자살을 결심한 우리의 불쌍한 존스(Jones)가 적어도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고 24시간 내에 죽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한편 비소 1파운드 이상을 먹으면 무조건 24시간 내에 죽는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아래의 논증은 존스의 죽음을 설명해줄까?
- (1) 존스는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었다.
- (2) (x)(x가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는다 ⊃ x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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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존스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죽는다.
이제 여기에 존스가 비소를 먹은 직후에 버스에 치여 바로 죽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가정해 보자.(이 추가적인 가정은 원래의 가정들과 충돌하지 않는다.) 이 경우 위의 논증은 헴펠의 조건을 만족하지만 존스의 죽음을 설명해 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은 버스이지 비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소는 분명 존스의 죽음에 대한 잠재적인 원인이었지만, 그 잠재적 원인은 버스라는 실제 원인에 의해 실현되지 못한 채 중도폐기(pre-emption)되어 버린 셈이다.
해법 1: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의 추가
케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조건, 즉 "다른 사정이 같다면"이라는 구절을 법칙에 추가해 보자.
- (1) 존스는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었다.
- (2') (x)(x가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는다 & C. P. ⊃ x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죽는다)
- (2") C.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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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존스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죽는다.
존스가 비소를 먹은 직후 버스에 치였다면 위의 논증은 잘못된 전제 (2")를 가지게 된 셈이고, 따라서 위의 논증은 헴펠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설명이 될 것이다. 비소 섭취는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이 만족될 때에만 (존스의 죽음에) 유관하며, 따라서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은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솎아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벤이 보기에, 이 해결책은 정말 해결책인지 의심한다. 일반적으로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은 실제 반증 사례에 의해 명백히 반증된 법칙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인다. 예컨대, 해독제를 먹어 존스가 24시간 내에 죽지 않게 된 경우, "해독제를 먹거나 하는 그런 일이 없었다면"과 같은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을 원래의 법칙 (2)에 달아 주면 그 법칙은 구제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경우는 존스가 어쨌든 24시간 내에 죽은 경우이다. 따라서 버스에 치여 죽은 일은 원래의 법칙 (2)에 아무런 문제도 야기시키지 않는다. 결국 위의 경우는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을 추가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해법 2: 법칙 자체에 인과적 주장을 포함시킨 후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 추가하기
법칙 (2)로 의도했던 법칙이 "비소 1파운드 이상을 먹으면 무조건 24시간 내에 죽는다"가 아니라 "비소 1파운드 이상을 먹으면 무조건 그것은 24내에 죽음을 일으킨다"였다고 생각해보자. 즉 (x)(Fx ⊃ Gx) 대신 (x)(Fx ⊃ Fx causes Gx) 형식의 법칙을 써보자는 것이다. (인과적 주장을 법칙에 담는 방식에는 다른 방식도 있을 수도 있지만, 루벤은 그에 큰 관심이 없다.) 자 다음을 보자.
- (1) 존스는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었다.
- (2*) (x)(x가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는다 ⊃ x의 1파운드 이상의 비소 섭취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x의 죽음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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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x의 1파운드 이상의 비소 섭취가 t로부터 24시간 내에 존스의 죽음을 일으켰다.
존스가 실제로는 버스에 치여 죽은 경우 (3')은 명백히 틀린 얘기가 되고, 따라서 법칙 (2*)는 반증된다. 이 경우에는 법칙 (2*)를 구제하기 위해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을 추가하는 것이 의미 있는 해법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 (1) 존스는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었다.
- (2') (x)(x가 시각 t에 1파운드 이상의 비소를 먹는다 & C. P. ⊃ x의 1파운드 이상의 비소 섭취는 t로부터 24시간 내에 x의 죽음을 일으킨다)
- (2") C. P.
- ----------------------------------------------------------------------------
- ∴(3') x의 1파운드 이상의 비소 섭취가 t로부터 24시간 내에 존스의 죽음을 일으켰다.
존스가 실제로 버스에 치여 죽었다면 케테리스 파리부스 조건인 (2")이 틀린 것이 되고, 따라서 위의 설명은 헴펠의 조건을 만족하는 데 실패한다. 이는 헴펠의 지지자들이 좋아할 일처럼 보인다. 즉 헴펠의 조건을 만족함에도 진정한 설명은 아닌 것으로 제시되었던 반례가 헴펠의 조건도 만족하지 않는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이러한 해법이 헴펠의 구미에 맞을까?
루벤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첫째, 법칙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 대한 (헴펠과 같은) 지지자들은 (2') 형태의 법칙을 올바른 형태의 인과적 법칙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위의 설명에서 피설명항은 (3)이 아니라 (3')이다. 이것이 문제인가? (3')으로부터 (3)이 따라나오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립턴(Peter Lipton)이 보기에, (3')으로부터 (3)으로의 도출은 헴펠이 받아들일 만한 (설명적) 도출이 아니다. 헴펠의 D-N 설명 모형에서, i와 L의 연언으로 c를 도출했을 때 우리는 다시 c로부터 c or i도 도출할 수 있지만, i와 L의 연언이 c or i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i와 L의 연언으로부터 c or i를 도출하는 데 L이 필수적(essential)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루벤의 설명은 자연스럽지 못함)
애친스타인의 반례는 다른 이유에서도 흥미롭다. 이 반례는 D-N 조건을 만족함으로써 예측에는 성공적이지만, 설명에는 성공적이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즉 이 반례는 헴펠의 설명-예측 구조적 동일성 논제에 대한 반례도 된다. 우리는 중도폐기(pre-emption)되는 잠재적 원인으로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설명은 할 수 없다.
샐먼(Wesley C. Salmon 1977)의 반례
- (1)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남자는 누구나 임신하지 않는다.
- (2) 존 존스(John Jones)는 아내의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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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존 존스는 지난 해 임신하지 않았다.
헴펠의 설명 모형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논증이 빈약(poor)하더라도 어쨌든 설명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설명이 나쁜(bad) 경우와 전혀 설명이 아닌 경우를 구분했을 때, 루벤은 위의 논증이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루벤에게 그 구분은 설명항에 설명적으로 무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느냐에 달려있다. 예컨대 누군가가 피임약을 복용하는 남자라는 사실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을 함축하는데, 그러나 그가 남자라는 사실은 그가 임신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지만, 그가 피임약을 복용한 남자라는 사실은 그가 임신하지 않은 이유를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더 풍부한 정보는 그 안에 설명적으로 유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유관한 정보를 덮어버리는 효과도 가진다. 따라서 더 풍부한 정보는 그 안의 유관한 정보가 지니고 있던 설명력을 소멸(kill)시킨다. 샐먼이 말하길, 무관성은 설명에 치명적(fatal)이다. (설명항에 무관한 정보가 하나라도 있으면 설명력이 0이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줄어든다는 것인가?)
표준 반례 2: 대칭성
두 번째 유형의 반례들은 '설명적' 대칭성 문제와 관련된다. 헴펠의 설명 조건은 설명항(의 일부)이 피설명항으로부터 설명되는 몇몇 반직관적으로 보이는 경우를 허용한다. 우드워드(James Woodward)와 애친스타인(Peter Achinstein)은 설명적 관계가 꼭 비대칭적(asymmetric)인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 둘은 모두 대칭적인 설명이 허용되지 말아야 할 몇몇 경우(즉 인과적 설명의 경우)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설명적 관계는 non-symmetric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대칭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아래와 같은 유형의 문장이 설명항에 포함되어 있을 경우이다.
- 속성 수치간의 관계식: 옴의 법칙(V=IR), 후크의 법칙(F=kx), 보일-샤를의 법칙(PV=kT), 진자의 주기와 길이 관계식()
- 쌍조건 형식의 법칙: 기압계의 눈금이 떨어진다 iff 폭풍이 다가온다. 은하로부터의 빛에 적색편이가 나타난다 iff 그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 수탉의 정기적인 울음을 근거로 해가 뜨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샐먼의 헛갈리는 수탉.
이러한 관계식 또는 쌍조건문을 통해 우리는 깃대의 높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를 도출하는 동시에 그림자의 길이로부터 깃대의 높이를 도출할 수 있으며, 진자의 길이로부터 진자의 주기를 도출하는 동시에 진자의 주기로부터 진자의 길이를 도출할 수 있으며, 폭풍의 접근으로부터 기압계 눈금의 하락을 도출하는 동시에 기압계 눈금의 하락으로부터 폭풍의 접근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은하의 후퇴로부터 적색편이를 도출하는 동시에 적색편이로부터 은하의 후퇴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각각의 도출쌍에서 전자의 도출은 설명적이지만, 후자의 도출은 (헴펠의 설명 조건을 만족함에도) 설명적이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헴펠은 그 도출에 쓰인 쌍조건문이 사실은 진정한 쌍조건문이 아닐 수 있음을 보이려 한 바 있다.[2] 그러나 루벤은 자신이 여기서 확립하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쌍조건문 또는 관셰식이 주어졌다고 할 때, '설명'과 '설명에 실패하는 도출'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헴펠의 대응을 회피한다.
제안된 해법과 그 문제점: 인과 조건
인과 조건 추가 제안
루벤은 헴펠의 D-N 설명이 직면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피설명 사건의 (실제) 원인을 전제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검토한다. (이 제안은 단칭 사건에 대한 설명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법칙에 대한 설명의 경우는 매우 다른 문제이다.) 즉 헴펠의 설명 조건에 인과 조건(설명항에 피설명항의 실제 원인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을 추가시키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과 조건을 추가하면 앞서의 반례들이 지적한 문제가 해결되는가?
첫째, 대칭성의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앞의 대칭적 도출쌍들에서 실제 원인으로 도출하지 않은 후자의 도출들은 인과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설명에서 제외될 수 있다.
둘째, 무관성의 문제의 해결 여부는 약간 헷갈려 보일 수 있지만, '인과'와 '인과적 설명'을 구분한다면 인과적으로 무관한 정보(e.g., 피임약의 복용)를 이용한 도출을 설명에서 배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많은 논자들은 설명에 인과 조건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샐먼의 경우 자신의 과거 입장(인과에 대한 언급 없이 통계적 관계만을 근거로 한 설명)을 부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통계적 관계의 설명적 중요성은 간접적이다. 그것[통계적 관계]의 근본 취지는 그것이 ... 인과적 관계에 대한 증거를 구성한다는 사실에 있다(#Salmon 1984: 192)." 또한 "'왜냐하면' 뒤에 '원인'을 넣을 때가 되었다(#Salmon 1984: 96)." 또는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사건과 통계적 규칙성이 어떻게 세계의 인과적 연결망에 맞아 들어가는지를 보이는 것이다(#Salmon 1977: 162)." 브로디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헴펠의 설명 조건을 일종의 인과적 정보들을 가지고 추가한다는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다.
인과 조건이 추가된 설명의 한계
티모시 매카시(Timothy McCarthy 1977)는 위 제안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여전히 헴펠의 설명 조건과 인과 조건을 만족시키지만 설명적으로 무관한 논증을 구성해내고 있다.
"D(e)"는 피설명 사건 e의 기술이라고 하고, "C(e)"는 e의 원인에 해당하는 사건에 대한 진술이라고 하자. 이 때 아래의 논증은 설명인가?
(1)에서 법칙이 사용되었고, (1)-(3)으로부터 (4)의 도출되었으며, (2)에서는 e의 원인이 C(e)로 진술되어 도출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이 논증에서는 e가 C(e)로 진술된 사건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논증은 e가 일어난 것에 대해 인과적으로(즉 설명적으로) 무관하다. 루벤은 "도출 + 피설명항에 대한 원인의 언급"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설명적 유관성" 관념이 여전히 (우리에겐)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김재권은 매카시의 반례가 순환의 문제라 여기고 '연언적 정규식(conjunctive normal form)' 조건을 추가하여 명백한 순환을 일으키는 전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위의 논증에 쓰인 전제들 중에 '연언적 정규식'이 아닌 전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위 논증의 전제들은 모두 '연언 정규식' 형태이지만 전제 (3)은 결론 (4)에 의해 함축된다. 김재권은 여기서 순환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3)과 같은 전제가 논증의 전제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추가된 김재권의 조건까지 만족함에도 인과적으로(또는 설명적으로) 무관한 논증을 또다시 구성할 수 있었다. 매카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 이유는 바로 "C(e)"에 대한 "D(e)"의 논리적 의존성이 "C(e)"로 기술되는 사건에 대한 e의 인과적 의존성[과 설명적 의존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인데, 이는 "C(e)"와 "D(e)" 사이의 연역적 관계를 매개하는 법칙이 e가 일어나는 것과 인과적으로 무관하기 때문이다(#McCarthy 1977: 161-162).
인과 조건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서 피설명항 사건과 무관한 법칙은 쓰면 안된다는 조건을 또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루벤은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루벤은 그 근거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안 하고 있다.)
"c는 e의 원인이다"와 같은 구절을 포함시키자는 제안
루벤이 보기에 피설명 사건과 그 원인을 설명적으로 유관하게 엮는 매우 쉬운 방법이 있는데, 즉 피설명 사건 e의 원인 c에 대한 진술뿐 아니라 c가 e의 원인이라 주장하는 진술도 전제에 포함시키면 된다. 이 방법에서 설명적 유관성은 그 원인에 대한 결과의 인과적 의존성을 지적하는 명시적 진술에 의해 쉽게 포착되게 된다. 루벤은 전제에 추가할 이 진술에 꼭 "원인(cause)"이란 단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진술은 "c가 일어났기 때문에(because) e가 일어났다" 또는 "e의 이유(reason)은 c이다" 등의 형식이어도 무방하다. 어쨌든 전제에 추가된 이러한 진술은 논리적 의존성에 의해 포착될 수 없었던 원인에 대한 결과의 (비논리적) 의존성을 그 자체로 명시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게 된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적어도 두 가지의 중요한 귀결을 가진다.
귀결 1: '법칙'의 불필요성
도출과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법칙적 진술이 전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헴펠(과 밀)의 조건은 불필요해진다. 왜냐하면, (다른 추가적 전제 없이도) 피설명 사건의 원인은 이러저러하다는 명시적 진술만으로 피설명 사건이 일어났다는 진술이 따라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몇몇) 설명에서 법칙은 불필요해진다.
귀결 2: '논증'이 아닌 '문장'으로서의 설명
물론 우리는 설명을 아래와 같이 하나의 전제를 가진 논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 (1) c는 e의 원인이다.
- -------------------
- ∴(2) e.
그러나 "c는 e의 원인이다"로부터 "e"로의 도출은 너무 사소하다(trivial). 오히려 위의 설명은 "c는 e의 원인이다"(또는 "c 때문에 e이다")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간단하다. 루벤은 모든 설명이 절대 논증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전형적으로 완전한 설명은 논증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 또는 그것들의 연언이라고 주장한다.
루벤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설명 이론들은 결과와 원인 사이의 설명적 의존성을 그 의존성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 없이 (연역 혹은 귀납) 논리적 의존성만으로 포착해 내려 해왔으나, 그 시도는 실패했다. "일으키다", "원인", "때문에", "이유" 등의 단어를 통해 결과와 원인 사이의 의존성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원하던 설명적 의존성은 그 명시적 진술에 의해 간단히 포착되게 된다. 설명적 의존성을 포착하는 문제가 해결된 이상 설명은 논리적 의존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설명은 논증일 필요가 없다.
'논증'과 '문장'의 차이를 약화시키려는 다음과 같은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논증이든 하나의 조건문으로 재진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조건문은 (만약 참이라면) 필연적 참이지만, 루벤의 제안에 따른 설명적 문장은 (만약 참이라면) 우연적 참이다. 둘은 질적으로 다르다. 아래의 진술을 비교해 보라. (H)은 필연적 참이지만, (R)은 (참이라면) 우연적 참이다.[3]
- (H) if all F are G and o is F, then o is G.
- (R) o is G because o is F and All F are G.
루벤에 따르면 설명은 법칙을 꼭 필요로 하지 않으며 논증도 아니다. 즉 루벤에게 헴펠의 설명 조건은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치도 않은 셈이다!
'문장'으로서의 설명에서 법칙의 역할
루벤에게 설명이란 (전형적으로) 논증이 아니라 문장이다. 그렇다면 법칙은 어떻게 되는가? '논증'으로서의 설명은 법칙을 꼭 필요로 했지만, '문장'으로서의 설명에서 법칙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법칙이 설명에 포함되더라도, 그 법칙은 논증의 일부가 아니라 단지 문장의 일부일 뿐이다.
스크리븐(Michael Scriven) 등은 설명에서 법칙 또는 일반화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스크리븐은 아래의 진술 (b)가 "왜 (a)인가?"에 대한 '완전한(complete or full)' 설명임을 보이고자 했다.
- (a)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는 스코틀랜드를 한번도 침공하지 않았다.
- (b) 그는 스코틀랜드 귀족의 땅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 그는 스코틀랜드 왕 말콤(Malcolm)을 전투에서 무찌른 후 주종관계를 요구함으로써 북쪽 경계를 지켰다.
스크리븐이 보기에 (b)는 법칙이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a)에 대한 불완전한 설명이 아니다. 다만 위 설명을 뒷받침(support)해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제공해야 할 근거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루벤은 스크리븐의 주장을 다음의 두 가지로 분리해서 검토한다.
- (a)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법칙을 포함할 필요가 없다.
- (b)는 (a)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다.
루벤은 전자에는 동의하지만, 후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법칙의 세번째 중요성에서 언급됨) 스크리븐의 윌리엄 사례는 인간 행동에 대한 설명이기에, 인간 행동이 법칙적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스크리븐은 자신의 주장이 그 논란과 무관하게 성립됨을 보이기 위해 과학적 사례도 언급한다.
- ... the first of 인공위성을 발진시킨 orbiting second-stage rocket의 명백한 밝기 차이들을 설명해 달라고 과학자들에게 요청했을 때, 그들은 그것이 축 회전과 비대칭성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설명에는 ... 어떤 법칙도 없다.
그러나 루벤이 보기에 위 과학자의 설명은 완전한 설명이 아니다.(이는 다시 법칙의 세번째 중요성에서 언급될 것임) 루벤은 어떤 완전한 설명은 법칙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법칙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헴펠의 설명 이론에서 강조되어 왔던 법칙의 역할과 다른 측면에서 법칙의 역할을 검토한다.
- 법칙 없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특히 개별 과학에서의 설명은 법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평범한 일에 대한 설명과 과학에서의 설명이 전형적으로 갈리는 한 지점이다. 그렇다고 그 법칙이 논증의 전제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o is G because o if F and all F arg G'는 법칙을 포함한 문장이지만 논증은 아니다.
- 법칙은 많은 유형의 난제(puzzlement)를 푸는 데 중요하다. 적당한 규칙성에 대한 참조는 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현상이 (알고 보면) 이상하거나 불규칙한 것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 밀은 포괄 법칙 모형과 유사한 설명을 제안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예컨대 웰링턴 공작(First Duke of Wellington)의 죽을 운명(mortality)은 모든 사람의 죽을 운명에 귀속됨으로써 설명된다. 여기서 포괄 법칙 설명이 해주는 일은 웰링턴의 죽을 운명을 더 일반적인 패턴 속에, 즉 자연의 균일성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과 그것을 일반적인 패턴에 끼워 맞추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어떤 일이 불규칙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은 그것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다. 난제의 해결 자체가 설명은 아니다.
- 법칙은 설명의 완전성을 평가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누군가 내 설명의 완전성이나 적절성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는 내 설명의 완전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법칙을 참조할 수 있다. 이는 스크리븐이 법칙은 설명의 일부가 아니라 설명의 완전성에 대한 정당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과 같은 얘기이다. 설명에 법칙이 포함되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루벤이 보기에 "o is G, because o is F"가 완전한 설명이기 위해서는 "all F are G, sans exception"이 법칙이어야 한다. 만약 "(x)(Fx & Kx & Hx & Jx ⊃ Gx)"라는 법칙이 있을 경우, "o is G"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o is F & K & H & J"이다. 즉 법칙은 설명의 완전성을 평가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설명의 완전성에 대한 루벤의 견해는 오히려 헴펠과 닮아 있다. 루벤의 완전성 개념은 이상적이다. 물론 설명에서 H나 J를 생략할 실용적인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예컨대 H나 J가 너무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4] 그러나 그것은 실용적인 차원의 얘기이지, 완전성에 대한 (논리적) 기준은 아니라고 루벤은 얘기할 것이다. 루벤에게 설명의 완전성 기준은 실용적인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법칙에서 나온다. 따라서 루벤에게 스크리븐의 윌리엄 사례와 인공위성 사례는 모두 완전성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설명이 된다.[5]
- 루벤이 보기에, (단칭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일반성 사이에는 여전히 모종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칙을 통해서가 아니다. 다음의 설명 (F) o is G because o is F 와 (FL) o is G because o is F and (x)(Fx ⊃ Gx)을 비교해 보자. 누군가 (FL)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F)는 결여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설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속성이다. o's being F가 o's being G를 완전히 설명한다고 할 때, 그 설명력은 o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속성 F와 G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속성 사이의 관계(기호로 표현하자면 F-ness ⊃ G-ness)는 모종의 일반성을 함축하며, 이 함축적 일반성은 o에 대한 설명이 F이면서 G인 비슷한 다른 경우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법칙을 쓰면 이 속성간 관계가 더 명료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벤은 (그 직관을 인정하더라도) 오히려 법칙이 설명적으로 설명적으로 무관한 정보들을 동원한다고 지적한다. 법칙 "(x)(Fx ⊃ Gx)"에서 o's being G를 설명하는 데 유관한 정보는 이미 (F)로 표현된 속성 사이의 관계에 담겨 있다. 그런데 법칙 "(x)(Fx ⊃ Gx)"는 o의 경우를 다른 경우들과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o 외에 G이면서 F인 다른 것들은 o's being G를 설명하는 데 무관하다. (다른 사람의 죽을 운명이 웰링턴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즉 설명 (FL)은 설명적으로 유관한 정보를 더해주지 않는다. 밀은 법칙을 쓰지 않은 채 웰링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죽을 운명과의 유사성에 의존해 웰링턴의 죽을 운명을 설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칙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즉 루벤이 보기에, o's being G에 대한 완전한 설명 (F)은 법칙이나 일반화를 함축하거나 전제하더라도, 법칙이나 다른 사례들과의 유사성은 o's being G을 설명하는 데 무관한 정보만을 추가시킬 뿐이다.
일반화에 대한 재고
법칙은 (단칭 사건에 대한) 설명에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이는 설명에서 이론이 하는 역할에 대한 한 가지 통찰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이론을 끌어들인다. 또한 이론은 (무엇보다도) 일반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a) 이론의 설명력이 그것의 일반성 때문이라거나 (b) 이론이 설명력을 가지는 방식이 항상 설명의 일부가 됨으로써라는 것이 따라나오진 않는다. (b)는 이미 앞서 얘기한 바 있고, (a)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론은 피설명 사건을 설명해주는 특정 현상 또는 작동 메커니즘을 규정하거나 재기술하기 위한 어휘를 제공함으로써 개별 사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웰링턴의 죽음에 대한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웰링턴은 죽을 운명인데,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대체 무슨 설명이냐고 대꾸할지 모른다. 이 설명은 "o is G because o is F and all F are G" 형식을 취하고 있다. 루벤은 앞서 이런 형식이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지만, 여기서 쓰인 일반화(all F are G)는 특정 설명항(o is F)과 피설명항(o is G)에 쓰인 것과 같은 어휘(F:사람, G:죽을 운명)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시하다(flat)"고 지적한다. 루벤이 보기에 시시한 일반화는 단칭 설명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반화는 "사람"이나 "죽을 운명"과 다른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심층에 있는 이론적 어휘를 사용하는 일반화이다. 아마도 그런 어휘는 탄화수소 기반의 생명 형식의 연약함(fragility)과 같은 것을 언급할 것이다. o's being F를 가지고 왜 o가 G인지를 설명하려면, 그리고 만약 법칙이 포함된다면, 전형적으로 과학적 설명은 "F"와 "G"가 포함된 어휘집합과 다른 그리고 더 깊은 어휘집합을 이용한 법칙을 언급할 것이다. 오직 그런 일반화(법칙)만이 설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의 목적은 특정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기술하는 데 쓰인 어휘와 다른 어휘를 도입하기 위함이다.
이는 흥미로운 귀결을 가진다. (i) 현상을 기술하는 데 쓰이던 얕은 어휘가 완전히 소진된다면, 이론적 어휘가 그것을 기술하는 데 명시적으로 쓰일 것이며, 이 때 법칙은 불필요하다. (ii) 반면 심층적인 어휘를 사용할 수 없을 때에도 법칙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법칙은 (i)과 (ii)의 양 극단의 사이에 있을 때, 즉 얕은 수준의 언어가 특정 설명항과 피설명항을 기술하는 데 쓰이면서도 깊은 수준의 언어가 사용 가능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을 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프리드만(Michael Friedman) 등은 과학에서 이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외견상으로는 다양해 보이는 현상들을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통합 작업은 중요한 일이지만, 한 현상을 다른 현상들과 통합시키는 작업은 그 현상을 설명하는 작업의 일부가 아니다. 웰링턴의 죽음과 다른 사람의 운명을 묶는 일과 웰링턴의 죽음을 설명하는 일은 다른 일이라고 지적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이다. 설명에서 이론의 역할은 이론적 어휘를 통해 피설명 현상에 대한 새롭거나 심오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어휘를 통해 그 현상을 다른 현상들과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각주
- ↑ 이는 아래와 같이 구성될 수 있다.(zolaist)
- (1) 이 물체는 금속이다.
- (2) 모든 금속은 전도체이다.
- (3) 모든 전도체는 중력에 구속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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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 물체는 중력에 구속 받는다.
- ↑ 예컨대 "기압계의 눈금이 하락한다 iff 폭풍이 접근한다"라는 쌍조건문 형식의 법칙은 사실 쌍조건문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기압계의 눈금이 하락하더라도 폭풍이 접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행기 바깥편에 기압계를 달고 하늘에 올라가면, 기압계의 눈금은 급격히 하락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풍이 접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헴펠의 전략은 아마도 이런 전략일 것이다. (zolaist)
- ↑ 예컨대 o를 존스, F를 비소 섭취, G를 24시간 내 죽음으로 해석할 때, (H)는 어떤 경우에도, 존스가 비소 섭취 직후에 버스에 치여 죽은 경우에도 참이지만(사실 해석에 상관없이 참이다), (R)은 존스가 비소 섭취 직후에 버스에 치여 죽었다면 거짓이 된다. (zolaist)
- ↑ 아마도 스크리븐이 설명에서 법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 중에는 대부분의 법칙이 뻔한 소리(truism)라는 점도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뻔한 소리나 법칙은 설명에서 생략되는 것이 마땅하며, 가끔 설명에 대한 의심이 들 때에만 참조할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 ↑ 스크리븐의 완전성 기준은 실용적 또는 맥락적인 반면, 루벤의 완전성 기준은 논리적 또는 이상적이다.
참고문헌
- Lyon, A. (1974), "The Relevance of Wisdom's Work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A Study of the Concept of Scientific Explanation," in Wisdom: Twelve Essays, ed. Renford Bambrough (Oxford: Blackwell, 1974), pp. 218-248.
- Brody, B. (1972), "Toward an Aristotelian Theory of Explanation," Philosophy of Science, Vol. 39, pp. 20-31.
- Achinstein, P. (1983), The Nature of Explan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 Salmon, W. C. (1977), "A Third Dogma of Empiricism," in Basic Problems in Methodology and Linuistics, eds. Robert Butts and Jaakko Hintikka (Reidel, Dordrecht, 1977), pp. 149-66.
- Salmon, W. C. (1984), Scientific Explanation and the Causal Structure of the Worl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 McCarthy, T. (1977), "On an Aristotelian Model of Scientific Explanation," Philosophy of Science, Vol. 44, pp. 159-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