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ientific Revolution
- Steven Shapin, The Scientific Revolution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서론
과학혁명: 용어의 유래
코이레, 버터필드, 홀 등의 강조하길, 과학혁명은 역사상 일대변혁을 일으킨 실제 사건으로, 자연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얻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이면서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과학혁명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학혁명'이라는 표현은 1939년 코이레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널리 통용되지 않았고, 이러한 사정은 1954년에 이르러 홀과 버널이 과학혁명을 책의 표제로 사용하기 전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었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고대부터 근대 초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순환의 개념으로 쓰였다. 급진적이고 비가역적인 혁신으로서의 혁명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과학적 사건에 사용하면서 등장했으며, 여기서 파생된 혁명 개념이 이후 정치적 사건에도 적용되었다.
'과학혁명'이란 개념은 최근 역사학적으로 의심받고 있다. 17세기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과학&혁명 각각의 개념에 대한 재검토; 과학이라는 단일한 실체가 존재하는가; 역사적 혁명이라는 단일한 실체가 존재하는가; 나아가 과학적 방법의 보편성에 대한 의문과 17세기 방법론과 오늘날 방법론상의 연관성에 대한 회의; 18-19세기 화학과 생물학에서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지연된' 혁명과 17세기 '과학혁명' 개념의 차이.. 등등 때문에 '과학혁명'이란 개념은 의심받고 있다.
과학혁명에 관해 쓰는 이유
달라진 관점
- 관념이라는 것이 개념의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이해하던 과거의 방식에 대한 불만과 함께, 종교, 정치, 경제적 양식상의 변화와 과학적 관념상의 변화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 관념, 개념 자체보다 그것을 만들어낸 구체적인 인간 행위를 규명하는 데 관심이 생겨났다. 즉, 개념을 정의하는 행위의 역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 과학혁명의 주체(행위자)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사람들이었나? 그들은 소수였나? 소수였다면 그 영향은 어떻게 자리매김되었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는가?
그럼에도 과학혁명에 관해 서술하는 이유
- 16세기말과 17세기에 많은 주요 인물들은 그들 스스로 자연적 실재에 관한 지식에서, 그리고 정당한 지식을 보증하고 평가하고 전달하는 행위에서 매우 새롭고 중요한 일대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는 견해를 강력히 표명했다. 즉 그들 스스로 고대인과 근대인을 구분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동일한 견해를 표명한 것은 아니므로 선택의 문제는 남는다. 그들도 무엇이 핵심적이고 무엇이 진정한 변화인지에 관해 논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탁월한 과학자들이 알아낸 사실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잘 인식하지 못했다.
- 그러므로 '과학혁명'이란 개념은 '현재 우리'의 관심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지향적' 역사의 문제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의 선조는 누구인지, 우리를 과거와 연결해주는 선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혁명에 대한 서술은 바로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서술방법상의 몇몇 논점
- 과학은 역사적 상황에 기반한 사회적 활동이므로 그것이 발생한 맥락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 지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사회학적 관점을 가진 역사학자의 책무는 지식의 생산행위와 지식의 주장 행위를 사회적 과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의 안(과학)과 밖(사회)을 구분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과학자의 연구시리 안에도, 과학 지식의 발전 그 내부에도, 바깥 세상과 같이 많은 '사회들'이 존재한다.
- 사회적, 정치적인 것과 그에 반하는 과학적 진리의 구별 자체가 이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구별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은 이 책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이다.
- 근대과학 중 하나에서 혁명적인 정수를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출할 뿐이다. 가능한 한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과학과 영국 쪽 자료들을 다룰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의 역사적 관심사에 부합할 뿐 아니라 수리물리학과 대륙에 편향된 기존의 역사적 통사를 수정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 책의 구성
당시
- 자연계에 관해 알려진 것은 '무엇'이었고,
- 그러한 지식은 '어떻게' 확립되었으며,
- '왜' 그러한 지식이 필요했는가?
기존의 연구는 대개 '무엇'에 주목했고, '어떻게'는 이상화했으며, '왜'는 거의 다루지 않았었다.
몇 가지 주목한 지점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자연의 기계화: 자연의 변화과정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계론적인 비유를 보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 자연지식의 몰개인화/객관화(depersonalization): 인간의 세속적 경험과 자연의 실상에 관한 관점이 구별되었다. 인간 주관과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적 객관 사이에 점점 분리가 일어났다.
- 지식 생산의 기계화 시도: 인간의 감정과 이해관계의 효과를 절제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지식의 생산을 통제하는 규준을 정식화했다.
-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자연지식을 사용하려 열망: 이를 위해서라도 지식은 유용하고 효과적이며 무엇보다 사심이 없는 것으로 합의돼야 했음.
무엇을 알고 있었나?
지식의 범위와 자연의 본성
갈릴레오의 흑점 발견
문제는 그의 관찰이 아니라 흑점에 대한 그의 특이한 설명에 있다. "이제 태양에 어느 정도 불순물과 얼룩이 있음이 밝혀졌는데도 어째서 '얼룩이 있고 깨끗하지 않다'고 공재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이름과 속성이 사물의 본질과 조화를 이루어야지 본질이 이름에 맞추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사물이 먼저이고 이름은 그 다음인 것이다." 이는 자연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자연계에 대해 신뢰성 있는 지식을 확보하는 방법을 재정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간추려질 수 있다.
- 물리적 추론에서는 정통적 학설이라 하여 당연히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믿을 만한 관찰과 수학적 추론의 결과에 따라 사고해야 한다.
-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각각의 물리적 영역에 따로 적용되는 두 가지의 자연지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보편적 지식만이 존재한다.
- 지구의 현상과 운동에 대한 일반적 연구가 자연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얻어진 지구상의 결과를 통해 사물이 본질적으로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올바르게 알 수 있다는 근대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으로 이어짐
자연지식에 대한 고대의 사고를 비판할 수 있었던 이유
- 신세계를 여행한 이들의 새로운 정보
- 망원경과 현미경과 같은 기구를 통해 보다 세밀하고 경이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낙관
ne plus ultra (더 이상은 없다)에서 plus ultra (그 이상도 있다)로 변화
인간중심적 우주에 대한 도전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기독교적 세계관: 인간 세계가 우주의 중심. 인류와 인류를 둘러싼 지구가 신이 만든 유일무이한 창조물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하늘과 내세에 비하면 비천하고 타락한 존재로 그려짐. 우주의 중심은 지옥으로서의 지구. 인간 지각력 역시 타락. 따라서 인간 지식의 발전 가능성도 엄격히 제한되어 있음.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이러한 인간중심성에 파열을 낸 것.
-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단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에 불과하므로 우주는 인간 중심이 아님. (그러나 이후에도 인간의 유일무이한 지위는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개념에 의해 보존되고 뒷받침 됨. 이러한 종류의 인간중심주의는 19세기 말 다윈주의가 수용되기 전까지 과학의 중심 요소였음.)
- 상식적 경험은 단지 '드러나 보이는 현상'에 불과한 것: 16-17세기는 우주의 무한성에 의해 상식적 경험을 통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던 우주관이 심각하게 도전받은 최초의 시기. 인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에서 한 줌의 흙에 불과한 존재일지도.
- 본성적 운동, 본성적 장소라는 관념도 파괴: 그러한 관념은 인간의 척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 전통적 물리학에 대해 목적론적이고 정령숭배적이란 근거로 비판
자연이라는 기계
근대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을 기계가 가진 특성들에 근거해 모델화하는 방식으로 선호. 이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구분을 훼손하는 것.
- 베이컨: "인공물은 형태나 본질에 있어 자연물과 다르지 않으며, ... 그것들이 발생시키는 효과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면 그것들이 인위적 수단으로 만들어졌건 아니건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데카르트: "장인들이 만든 기계와 자연이 홀로 제조한 다양한 물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 데카르트: "물리학에서 성립하지 않는 기계학의 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학은 물리학의 한 부분 혹은 특별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인공적인 것은 모두 자연적이다.)"
기계론적 설명
-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자연적 현상은 '미시기계들'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여김
- 자연 현상은 알기 쉬운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원인에 근거해 설명할 수 있다.
- 기계론적 설명에서 배제되는 것들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등장하는 물질의 의인화, 목적, 지각력 배제
- 르네상스 신비주의의 신비한 힘들(sympathy, attraction, antipathy 등) 배제
- 르네상스 자연주의에서 등장하는 자연의 능동성 배제
기계의 인식적 장점
- (자동) 기계 비유의 설득력: 겉보기의 생명력 but 사실상의 인공물. 일률성과 규칙성의 표본.
- 기계의 이해가능성 -> 자연의 이해가능성:
-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들거나 자기 마음에 따라 설계한 것에 한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 따라서 만약 '자연을 마치 기계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와 같은 작동을 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연(현상)은 이해가능한 것이다.
- 즉, 기계는 자연의 '놀라움을 제거하기 위한' 매개물
기계적 설명의 사회적, 종교적 장점
르네상스 자연주의에서 말하는 세계영혼, 우주혼과 같은 개념은 자연계 고유의 역동성을 인정함으로써 신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신비주의적 신념과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이단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었다. 메르센은 사물들에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는 일은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종교적 구분을 흐리는 것이라 염려했다.
바로 여기에 기계적 철학이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메르센이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점은 활동적인 물질관이었는데, 따라서 물질을 수동적이고 비활동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곧 자연계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에 적합한 형이상학이 필요했다. 이 문제는 17세기 기계론의 근본 가정인 '수동적인 물질관'을 수용함으로써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사이의 종교적 구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질의 수학화
보일의 기계론적 철학: 물질과 운동이라는 '두 가지의 대원칙'만으로 구축. 자연철학의 올바른 연구란 더 이상 환원되지 않는 물질의 특성과 운동으로 자연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기계를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
논자들 사이의 차이와 문제점들
그럼에도 기계론적 설명의 구체적 특성과 내용은 학자들마다 달랐다. 데카르트의 확신에 비해 영국의 많은 학자들은 미립자의 세계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개연성의 세계로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미시기계론적 설명은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가령 보일은 미립자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원리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만이 자신의 과업이라 생각했다.
일차속성(모양, 크기, 운동과 같이 실제로 사물 자체에 속하는 속성들)과 이차속성(색, 감촉, 온도와 같이 일차속성들의 상태로부터 유도된 것)의 구별이 갈릴레오, 로크 등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물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 중 단지 일부만이 (사물 자체에 있는) 객관적인 것이고, 그 밖의 경험과 관념들을 주관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인정받게 되었다. 즉 철학적 정당성의 영역과 보통 상식의 영역이 날카롭게 구분된 것.
이러한 구분 하에서, 미시기계론적 사실은 상식적 경험보다 우위를 차지했으며, 주관적인 경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인간의 지각 경험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실뢰성 있는 안내자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미시계론적 설명은 감각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역으로 그 설명의 명료함과 참됨은 획득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기계적 철학은 대상에 대해 그것의 (기계적) 구성(모양, 크기, 배열, 운동)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그 설명의 이해가능성은 기계적 수단으로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일상적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표본을 찾을 수 있는 표본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미시기계론적 설명 방식은 모든 자연현상에 적용될 수는 있었지만, 인간이 볼 수 있는 크기의 물체영역에서 찾아낸 기계론적 대응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명료함에는 항상 한계가 존재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조롱섞인 예이다.
- 앨런 가베이:“이전에는 아편이 수면제의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잠들게 했다고 설명한 반면, 이제는 아편이 당신의 생리적 구조에 잠들게 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미립자의 미세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잠들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연적 실체의 수학적 구조 (웨스트폴에 대한 코멘트)
기계론과 수학적으로 구조화된 설명이 서로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질 것이라는 점이 널리 공언되었음에도, 기계론적 철학은 극히 일부만 수학화되었다. 자연철학의 수학화가 17세기의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기계론과 수학 사이의 구조적 관련성을 공언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다.
물리적 자연에 대한 연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범위에서 실제의 자연적 물체와 물리적 과정에 대한 해석에 수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올바르냐 하는 것이었다. 수학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것이 실용적인 것인지 또 철학적으로 올바른 것인지는 논란거리가 되었었다.
자연이 수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관념은 자연철학에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는 데 힘을 실어 주었다. 학자들은 물리적 자연에 대한 관찰자로서 타당하고 실제로 지각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연구하는 한편, 수학자로서는 자연계 저변에 깔려 있다고 여겨진 형식적인 정식화를 시도했다.
뉴턴이 갈릴레오의 프로그램을 이행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나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철학을 완성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대부터 이견이 분분했다. 만유인력에서 드러나듯 뉴턴이 추구한 우주의 수학화는 기계론적이고 물질적인 혹인 그 밖의 원인에 대한 탐구와 대립될 수도 있었다. 뉴턴은 비물질적인 '활동적 힘'의 존재를 도입했거나 최소한 그 역할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라이프니츠나 호이겐스는 뉴턴에 대해 기계론적 설명을 포기했다며 격렬하게 비판했었다. 그러나 기계론적 원인은 알 수 없더라도 인력 법칙은 설명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원인에 대한 물리적 이론이 없다고 해서 인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지식은 어떻게 확립되었나?
그 지식은 왜 필요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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