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와 진화론
18세기 말의 계몽주의자 고드윈은 인간의 무한한 진보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그는 인간이 이성의 힘을 통해 동물적 본성과 사회적 갈등과 같은 자연적인 제약들을 모두 극복하고 무한히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그에게 이성을 가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연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였다.
반면 맬서스는 인간이 냉혹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무한한 진보에 대한 고드윈의 낙관적인 신념에 찬물을 끼얹고자 했다. 그는 1798년에 쓴 『인구론』 1판에서, 인구는 제어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 공급은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는 인구 법칙을 주장했는데, 이는 일종의 자연 법칙으로서 이성이나 의지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경작지의 증가를 통해 식량 생산이 증가하더라도 결국에는 인구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인류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일정 비율의 빈곤이나 조기 사망은 인구 법칙의 필연적인 귀결이 된다.
신학자 페일리는 1802년에 쓴 『자연신학』에서 인구와 식량 공급 사이의 불균형을 신이 설계한 조화로운 자연이라는 틀에 흡수시켰다. 모든 생명체는 각각의 환경에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그에게 이러한 완벽한 적응의 사례들은 신의 설계에 대한 증거였다. 그러나 자연에는 식량 부족이나 포식자에 의한 죽음처럼 불쾌한 일도 일어난다. 이는 어떻게 신의 섭리로 간주될 수 있는가? 페일리는 이를 자연의 조절 기제로 해석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과도하게 많은 자식을 낳는다. 그러한 과다는 파괴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동물이라도 세상을 뒤엎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식량 공급의 한계나 포식자의 존재 같은 파괴적인 요소들이 있어야만, 각각의 종들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빈곤과 차별 역시 사회 전체의 조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들로 결코 악덕이 아니었다. 즉 페일리에게 우리의 세계는 언제나 조화로운 세계였으며, 맬서스의 인구 법칙은 주기적으로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를 재확립시키는 조절 수단이었다.
맬서스는 1803년에 『인구론』 2판을 출판하면서 냉혹한 인구 법칙의 완화책으로 결혼의 ‘도덕적 절제’를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빈곤층을 위한 구제 정책은 오히려 빈민의 인구를 증가시킴으로써 그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는 개인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결혼을 절제한다면 인구 증가가 억제됨으로써 생활수준이 조금은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어떠한 노력으로도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없다는 1판의 논리를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절제’와 빈민 구제 정책에 대한 비판에 주목할 경우, 맬서스의 이론은 새로운 방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맬서스의 ‘도덕적 절제’에 주목한 신학자 차머스는 맬서스의 이론을 순전히 도덕적 맥락에서 해석했다. 그에게 빈곤은 나태와 무절제의 대가였으며, 국가의 빈민 구제 정책은 개인의 성실성과 절제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빈곤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결국 차머스에게 빈곤은 부도덕한 개인들에 대한 신의 준엄한 심판에 의한 형벌로, 신의 형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적 절제뿐이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계몽주의의 원리를 동물에도 적용했다. 그는 동물들이 자신의 의지를 통해 새로운 형질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줌으로써 진화해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진화의 가능성을 믿고 있던 찰스 다윈은 페일리가 강조했던 자연의 조화를 질문으로 바꾸었다. 어떻게 각각의 생명체들은 그들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게 되었는가?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자연에 적용함으로써 ‘자연선택’이라는 해답을 얻었다. 그에 따르면, 자연에서는 생존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태어남으로써 생존경쟁이 발생하는데, 조금이라도 유리한 변이는 더 높은 확률로 자연적으로 선택되고, 선택된 변이가 가진 형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때 다윈은 자연에 적용되는 인구 법칙이 인간 사회에서보다 훨씬 가혹하며 완화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어되지 않을 경우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큰 번식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들에게 인구의 증가를 완화하는 도덕적 절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인구론』 1판의 냉혹한 인구 법칙으로 돌아간 것으로, 그는 그 냉혹한 법칙의 필연적 귀결이었던 빈곤과 차별을 부적격자의 도태라는 자연선택의 원리로 둔갑시킨 것이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 법칙을 수용했으나, 그것의 기능은 맬서스의 의도와 정반대였다. 맬서스에게 과도한 인구의 압력은 진보의 장애물로서 생활수준의 정체를 설명하고 예견한 반면, 다윈에게 인구의 압력은 끊임없는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생명체들의 적응과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발견된 자연선택의 원리를 인간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원리를 인간의 진화에 적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긴 했으나, 다른 생명체들과 동일한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윈과 마찬가지로 맬서스로부터 자연선택의 원리를 발견한 또 다른 과학자 월러스는 자연선택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를 거부했다. 다윈도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큰 번식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따른 자연선택의 압력도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한 월러스는 인간에 대한 자연선택의 압력이 매우 작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인간의 진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연선택의 원리는 자유방임주의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되기도 했다. 국가 내의 불평등이나 국가 간의 불평등은 개인간 또는 국가간 생존경쟁의 자연스런 결과로서,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윈은 진화론과 자연선택의 원리가 그런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을 불편해 하였으나 그러한 해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19세기 말에 등장한 우생학자들은 인류의 유전적 향상을 위해 인위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 따르면, 현대에는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일수록 출산을 꺼리는 반면, 생산력의 증가와 복지 정책 등으로 인해 대부분 빈곤층에 속한 열등한 사람들도 생존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퇴화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인위적인 선택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인위적 선택이란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도록 장려하고, 열등한 사람은 되도록 자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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