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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5장
  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홍성욱 옮김, {{책|[[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5장


== 규칙, 패러다임, 정상과학 – 과학사학자의 작업 ==
== 규칙, 패러다임, 정상과학 – 과학사학자의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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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학자가 어느 시대의 전문 분야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고 해보자. 그는 다양한 이론이 그 개념적, 관찰적, 기기적 적용 시에 거의-표준적인 형태로 되풀이되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들로, 교과서나 강의, 실험 실습에서 나타난다. 그것들을 공부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훈련함으로써,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을 배우게 된다. 과학사학자는 아직 제대로 풀린 것 같지 않은 다소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겠지만, 해결된 문제들과 기법들의 핵심은 대체로 명백할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사학자는 쉽게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학자 사회가 패러다임에 구속된 정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사학자가 어느 시대의 전문 분야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고 해보자. 그는 다양한 이론이 그 개념적, 관찰적, 기기적 적용 시에 거의-표준적인 형태로 되풀이되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들로, 교과서나 강의, 실험 실습에서 나타난다. 그것들을 공부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훈련함으로써,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을 배우게 된다. 과학사학자는 아직 제대로 풀린 것 같지 않은 다소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겠지만, 해결된 문제들과 기법들의 핵심은 대체로 명백할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사학자는 쉽게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학자 사회가 패러다임에 구속된 정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유된 패러다임의 결정과 공유된 규칙의 결정은 같지 않다.” 공유된 규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그는 패러다임들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패러다임을 당대의 연구 보고서들과 비교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떤 규칙을 뽑아내어 자신의 연구의 규칙으로 사용했는지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일관된 연구 전통이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무엇을 규칙으로 뽑아내어 사용했는지는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어떤 과학사학자들은 그 전통을 ‘기계적 철학’의 전통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데카르트 본인이 붙인 것은 아니다. 보일에 의해서 사용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 표현이 역사학자들에게 채택된 이유는 그 표현이 그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잘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했던 그 연구자들이 ‘세계가 작은 미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현상은 그러한 미립자들의 모양과 크기와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유사-형이상학적인 약속[규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공유된 패러다임을 판명하는 것이 곧 공유된 규칙을 판명하는 것은 아니다.”(117쪽) 공유된 규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그는 패러다임들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패러다임을 당대의 연구 보고서들과 비교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떤 규칙을 뽑아내어 자신의 연구의 규칙으로 사용했는지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일관된 연구 전통이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무엇을 규칙으로 뽑아내어 사용했는지는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어떤 과학사학자들은 그 전통을 ‘기계적 철학’의 전통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데카르트 본인이 붙인 것은 아니다. 보일에 의해서 사용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 표현이 역사학자들에게 채택된 이유는 그 표현이 그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잘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했던 그 연구자들이 ‘세계가 작은 미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현상은 그러한 미립자들의 모양과 크기와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유사-형이상학적인 약속[규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적이며, 그 시대 그 전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을 찾는 일은 패러다임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도 덜 만족스럽다. 어렵게 찾아낸 규칙은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주어진 정상과학적 연구 전통을 구성하는 데 충분한 규칙들의 (완전한) 집합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적이며, 그 시대 그 전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을 찾는 일은 패러다임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도 덜 만족스럽다. 어렵게 찾아낸 규칙은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주어진 정상과학적 연구 전통을 구성하는 데 충분한 규칙들의 (완전한) 집합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 즉 과학자들은 뉴턴이나 라부아지에 등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영구적으로 보이는 해답을 얻어냈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는 반면, 그러한 성공을 가능케 해준 추상적 특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interpretation)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그런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패러다임을 식별(identification)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명시적인 표준 해석이나 규칙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패러다임 그 자체가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쿤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에 대한 직접적 점검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정식화된 규칙이나 가정은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해서, 완전한 규칙의 집합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 즉 과학자들은 뉴턴이나 라부아지에 등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영구적으로 보이는 해답을 얻어냈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는 반면, 그러한 성공을 가능케 해준 추상적 특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interpretation)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그런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패러다임을 식별(identification)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명시적인 표준 해석이나 규칙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패러다임 그 자체가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쿤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을 직접 점검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119쪽). 정식화된 규칙이나 가정은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해서, 완전한 규칙의 집합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 –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
==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 –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


방금 앞에서 한 말은 무슨 뜻일까? 규칙의 집합 없이 어떻게 정상과학의 전통에 과학자들을 묶어둘 수 있는가?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차용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자’니 ‘잎’이니 ‘게임’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묻는다.
방금 앞에서 한 말은 무슨 뜻일까? 규칙의 집합 없이 어떻게 정상과학의 전통에 과학자들을 묶어둘 수 있는가?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차용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자’니 ‘잎’이니 ‘게임’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묻는다. 일차적인 답은 의자나 잎이나 게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 얘기는 오로지 게임들만의 공통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과연 게임들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차적인 답은 의자나 잎이나 게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 얘기는 오로지 게임들만의 공통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럼 한번 여기서 해 봅시다. [질문] 게임들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게임들이 공유한 공통의 특성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되긴 한다. 그러나 모든 게임들에 그리고 게임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이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어떤 활동을 처음 접하고서도 그것에 ‘게임’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쉽게. 어떻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게임들이 공유한 공통의 특성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되긴 한다. 그러나 모든 게임들에 그리고 게임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이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어떤 활동을 처음 접하고서도 그것에 ‘게임’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쉽게. 어떻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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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학적 연구에서, 패러다임이 규칙보다 우선한다는 또 다른 근거는, 실제로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들이 규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규칙에 대한 무관심은 인정된 패러다임이나 모델이 위태롭게 느껴진 경우에만 사라진다. 패러다임이 무리 없이 수용되던 기간에는, 규칙에 대해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패러다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러한 해석 차이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런 해석 차이가 실제적인 문제 풀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위협을 받게 되면, 수면 아래에 있던 해석의 차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심각한 논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과학혁명기마다 이러한 논쟁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예컨대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으로 이행될 때에는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한 많은 논쟁이 벌어졌었다.  
정상과학적 연구에서, 패러다임이 규칙보다 우선한다는 또 다른 근거는, 실제로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들이 규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규칙에 대한 무관심은 인정된 패러다임이나 모델이 위태롭게 느껴진 경우에만 사라진다. 패러다임이 무리 없이 수용되던 기간에는, 규칙에 대해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패러다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러한 해석 차이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런 해석 차이가 실제적인 문제 풀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위협을 받게 되면, 수면 아래에 있던 해석의 차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심각한 논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과학혁명기마다 이러한 논쟁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예컨대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으로 이행될 때에는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한 많은 논쟁이 벌어졌었다.  
즉 규칙은 평상시에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들을 묶어주었던 패러다임이 위협에 빠졌을 때에만 규칙이 패러다임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규칙이나 합리적 근거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아도 패러다임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즉 규칙은 평상시에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들을 묶어주었던 패러다임이 위협에 빠졌을 때에만 규칙이 패러다임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규칙이나 합리적 근거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아도 패러다임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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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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