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패러다임의 우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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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5장

규칙, 패러다임, 정상과학 – 과학사학자의 작업

과학사학자가 어느 시대의 전문 분야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고 해보자. 그는 다양한 이론이 그 개념적, 관찰적, 기기적 적용 시에 거의-표준적인 형태로 되풀이되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들로, 교과서나 강의, 실험 실습에서 나타난다. 그것들을 공부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훈련함으로써,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을 배우게 된다. 과학사학자는 아직 제대로 풀린 것 같지 않은 다소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겠지만, 해결된 문제들과 기법들의 핵심은 대체로 명백할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사학자는 쉽게 그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학자 사회가 패러다임에 구속된 정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유된 패러다임을 판명하는 것이 곧 공유된 규칙을 판명하는 것은 아니다.”(117쪽) 공유된 규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그는 패러다임들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패러다임을 당대의 연구 보고서들과 비교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그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떤 규칙을 뽑아내어 자신의 연구의 규칙으로 사용했는지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일관된 연구 전통이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무엇을 규칙으로 뽑아내어 사용했는지는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어떤 과학사학자들은 그 전통을 ‘기계적 철학’의 전통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데카르트 본인이 붙인 것은 아니다. 보일에 의해서 사용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 표현이 역사학자들에게 채택된 이유는 그 표현이 그 전통의 중요한 특징을 잘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데카르트의 저작을 패러다임으로 채택했던 그 연구자들이 ‘세계가 작은 미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현상은 그러한 미립자들의 모양과 크기와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유사-형이상학적인 약속[규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적이며, 그 시대 그 전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을 찾는 일은 패러다임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도 덜 만족스럽다. 어렵게 찾아낸 규칙은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주어진 정상과학적 연구 전통을 구성하는 데 충분한 규칙들의 (완전한) 집합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 즉 과학자들은 뉴턴이나 라부아지에 등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영구적으로 보이는 해답을 얻어냈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는 반면, 그러한 성공을 가능케 해준 추상적 특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interpretation)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그런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패러다임을 식별(identification)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명시적인 표준 해석이나 규칙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패러다임 그 자체가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쿤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을 직접 점검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119쪽). 정식화된 규칙이나 가정은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해서, 완전한 규칙의 집합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 –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방금 앞에서 한 말은 무슨 뜻일까? 규칙의 집합 없이 어떻게 정상과학의 전통에 과학자들을 묶어둘 수 있는가? ‘패러다임에 대한 직접적 점검’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차용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자’니 ‘잎’이니 ‘게임’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묻는다. 일차적인 답은 의자나 잎이나 게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 얘기는 오로지 게임들만의 공통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과연 게임들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게임들이 공유한 공통의 특성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되긴 한다. 그러나 모든 게임들에 그리고 게임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이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어떤 활동을 처음 접하고서도 그것에 ‘게임’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쉽게. 어떻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처음 접한 그것이 이미 ‘게임’이란 이름으로 불러온 다른 많은 활동과 ‘가족 유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게임들은 한 자연의 가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가족인가? 그것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교차되기도 하는 닮음 관계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연의 가족이다. A는 B와 닮았고, B는 C와 (다른 측면에서) 닮았다. 이런 식으로 A, B, C는 닮음의 네트워크에 의해 묶여 있기에 자연의 가족을 이룬다. 물론 A, B, C는 공통점이 없어도 된다. 닮음의 네트워크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식별하거나 명명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어떤 대상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고, 그 대상들에 공통점이 있을 필요는 없다. 오직 우리가 이름 붙인 가족들이 서로 겹쳐져 점진적으로 다른 가족에 병합될 때에만(즉, 자연적 가족이 아닌 경우에만), 식별과 명명의 성공이 공통점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정상과학 전통이 지닌 일관성 역시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정상과학 내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연구 문제들과 기법들은 모종의 명시적인 (혹은 완전히 발견 가능한) 규칙들과 가정들의 집합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들과 기법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들은 서로서로 닮음 관계이면서, 그들이 패러다임으로 인정하는 과학적 성취의 이 부분 또는 저 부분을 저마다 모델링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교육에서 온다. 한 정상과학 전통의 과학자들은 동일한 교육과 동일한 문헌을 통해 습득한 모델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그 모델들이 왜 패러다임의 자격을 얻게 되었는지는 배우지 않는다. 보통은 그것을 알 필요도 없다. 그러한 질문이나 그에 대한 답은 불필요하게 느낀다. 즉, 패러다임은 그것으로부터 추상화될 수 있는 모종의 명시적인 규칙들의 집합보다도 우선적이며 더욱 구속력 있고 더욱 완전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우선성에 대한 네 가지 근거

지금까지의 얘기는 패러다임이 규칙 없이도 정상과학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는 이론적 가능성에 대한 얘기일 뿐이다. 정말로 패러다임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쿤은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네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규칙 찾기의 어려움

이미 얘기를 했지만, 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주도해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

과학 교육의 성격

규칙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과학 교육의 성격에서 유래한다. 과학자들은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 자체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배우는가? 항상 그것이 적용되는 모범적인 사례와 함께 배운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구체적 영역에 대한 적용과 함께 발표된다. 그 이론이 수용되고 나면, 교과서에 그 이론은 그 이론의 대표적인 적용 사례가 실리게 된다. 이러한 적용 사례는 장식이나 증거로서 실리는 것이 아니다. 적용 사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 적용 사례는 그 이론이 무엇인지 그 이론을 어떤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연필로 연습문제를 풀거나 실험실에서 예시된 실험 문제를 직접 푸는 과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힘’이나 ‘질량’ 등의 개념을 어떻게 깨우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런 개념들이 적용된 예제를 배우고, 단원 뒤에 나온 연습문제를 풀어야만 그 개념을 겨우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본문의 정의만으로는 터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런 과정은 훈련 과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이 푸는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전례에 의해 완전히 뒷받침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들이 성공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전에 연습문제를 풀 때와 마찬가지로, 앞선 문제 풀이를 모델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문제를 잘 풀고 있는 과학자라도 자신이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잘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의 문제 풀이 능력을 설명하는 데 어떠한 규칙의 집합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패러다임을 통해 직접 좋은 문제를 골라내고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혔을 뿐이다.

규칙에 대한 논쟁의 특이성

정상과학적 연구에서, 패러다임이 규칙보다 우선한다는 또 다른 근거는, 실제로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들이 규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규칙에 대한 무관심은 인정된 패러다임이나 모델이 위태롭게 느껴진 경우에만 사라진다. 패러다임이 무리 없이 수용되던 기간에는, 규칙에 대해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패러다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러한 해석 차이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런 해석 차이가 실제적인 문제 풀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위협을 받게 되면, 수면 아래에 있던 해석의 차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심각한 논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과학혁명기마다 이러한 논쟁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예컨대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으로 이행될 때에는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한 많은 논쟁이 벌어졌었다.

즉 규칙은 평상시에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들을 묶어주었던 패러다임이 위협에 빠졌을 때에만 규칙이 패러다임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규칙이나 합리적 근거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아도 패러다임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세부 분야의 다양성

앞에서 혁명은 매우 좁은 범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이러한 소혁명이 가능한 것은 과학이 다양한 분야와 세부적인 전공으로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 전체를 위에서 보면, 상당히 일관성 없는 구조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습은 규칙보다는 패러다임을 사용하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세부 전공으로 갈라질 때마다, 연구자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공부하게 된다. 모든 물리학자는 양자역학을 배우지만, 어떤 세부 전공에서는 단지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만 배우는 반면, 어떤 전공에서는 그 원리를 화학 분야의 적용하는 것까지 상세히 배울 것이다. 어떤 다른 전공에서는 고체물리학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고 연구할 것이다. 양자역학이 과학자들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그가 무슨 과목을 택했는가, 어떤 책들을 읽었는가, 어떤 문헌을 공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다수의 과학 그룹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세부 전공들은 서로 일부 중첩되면서도 다른 다양한 전통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의 전통에서 일어난 혁명은 전체에까지 확산되지 않을 수 있다.

헬륨 원자는 분자인가 아닌가? 화학자에게 헬륨 원자는 분자이지만, 물리학자에게 그것은 하나의 분자가 아니었다. 즉 그 답은 어떤 전통에 속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각 전통이 어떤 훈련과 연습을 통해 그것을 보고 있었는지에 유래한다. 이러한 과학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구체적인 패러다임과 그에 따른 교육과 훈련이지, 명시적인 규칙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요약

  • 공유된 패러다임은 공유된 규칙과 어떻게 다른가?
  • 패러다임은 어떻게 공유된 규칙 없이도 정상과학이 지닌 일관성을 제공할 수 있는가?
  • 정말로 역사적으로 패러다임은 공유된 규칙 없이도 정상과학 전통을 이끌었는가?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