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종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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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aist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1월 30일 (목) 10:03 판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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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종은 생물 분류에서 가장 근본적인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생물 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다양한 유기체들을 다양한 생물 종으로 묶는 기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생물 종의 존재론적 성격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범주화 작업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와 생물의 진화 과정에 대한 생물학적인 논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오카샤(2017)의 6장을 참고하여 처음 작성됐으나, 현재는 주로 Godfrey-Smith(2014)의 7장을 참고하여 보완 중이다. 이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면 우선 Godfrey-Smith(2014), 7장과 Ereshefsky(2017)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종의 분류 기준

종의 분류 기준에 대한 답변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크게는 몇 가지 관점으로 묶을 수 있다. 유형적 관점은 하나의 종을 속성들의 공유 또는 유사성을 통해 규정하며, 생식적 공동체 관점은 하나의 종을 상호 교배 가능한 유기체들의 집합으로 규정한다. 생태적 관점은 하나의 종을 서식 환경(니치)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며, 계통발생적 관점은 하나의 종을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유형적 관점

전통적인 린네식 생물 분류 체계는 기본 단위인 종(種, species)에서 시작하여, 상위 분류군인 속, 과, 목, 강, 문, 계를 통해 생물을 위계적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동물원의 한 벵골호랑이는 우선 호랑이종에 배정된 후, 차례로 표범속, 고양잇과, 식육목, 포유강, 척삭동물문, 동물계에 들어간다. 이때 종을 비롯한 다양한 분류군들은 일종의 그릇으로 간주되는데, 종은 그중 가장 작은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린네는 다양한 유기체를 다양한 종으로 묶기 위해 형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분류 방식은 유형적 관점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각 생물은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되며, 한 유형에 속한 모든 생물들은 그 유형을 특징짓는 속성들을 가진다. ‘인간’이라는 유형에 속한 유기체들은 (모두)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말을 할 수 있다. ‘코끼리’ 유형에 속한 유기체는 (모두) 긴 코와 큰 귀를 가지고 있다. ‘호랑이’ 유형에 속한 유기체는 (모두)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맹수이다. 종의 특징적인(그 유형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속성들은 종의 ‘본질’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종에 대한 유형적 관점은 ‘종 본질주의’가 된다. 즉 하나의 종에 속한 생물들은 그 종의 본질을 공유하기에 같은 종에 속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생물 종은 ‘자연 종(natural kind)’이다.

물론 특정 종에 속한 유기체들 중에는 그 종을 특징짓는 속성들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 경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예 : 백호). 그럼에도 이는 유형적 관점의 심각한 결함으로 인식되지 못했었다. 그러한 경우들은 유형의 불완전한 실현으로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1) 종을 특징짓는 속성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며, (2) 종 내의 차이(변이)가 종국에 별개의 종으로 분화할 수 있다고, 즉 종 내의 다양성이 진화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의 종을 그것의 특징적인 속성들로 규정하려는 유형적 관점에 커다란 균열을 냈다.

유형적 관점 내에서 다윈의 도전을 포섭하는 방법은 속성의 공유 대신 ‘전반적인 유사성’에 호소하는 것이며, 표현 형질이나 유전 형질의 전반적인 유사성을 측정하여 종을 구분하는 방법은 현재도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의 실용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유형적 관점의 태생적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 종의 경계선이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종은 생물 분류의 기본 단위로 간주되지만, 때로 종은 다시 아종이나 품종 등으로 세분화되곤 한다. 예컨대 호랑이종은 벵골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등의 아종으로 나뉘고, 흔히 늑대로 알려진 회색늑대종은 개, 몽골늑대 등의 여러 아종으로 나뉜다. 이는 개와 몽골늑대가 비슷하긴 하지만 차이도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 개와 몽골늑대는 별개의 종이 아닌 하나의 종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별개의 종으로 구분할 만큼의 차이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종과 아종 사이의 구분은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다윈은 종, 아종, 변이(variation)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으며, 종은 단지 편의를 위해 도입된 임의적 묶음이라고 주장했다.

생식적 공동체 관점

고리종. 엔사티나 도룡뇽은 인접한 개체군 사이에서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만, 인접하지 않은(경우에 따라서 인접한 지역에서 서식하게 된) E.e. klauberi와 E.e. Croceater는 상호 교배 불가능하다.

생식적 공동체 관점은 하나의 종을 상호 교배 가능한 생식적 공동체로 간주한다. 이 관점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에른스트 마이어에 의해 제안된 ‘생물학적 종 개념(Biological Species Concept, BSC)’이다.[1] 이에 따르면 종이란 상호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들의 집합을 의미한다(마이어 2002, 7장). 예를 들어 개와 몽골늑대는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잡종을 낳을 수 있으므로 별개의 종이 아니라 같은 종이다. 그러나 말과 당나귀는 상호 교배하여 생식 능력이 없는 노새를 낳을 뿐이므로 둘은 생식적으로 격리된 별개의 종이다. 결국 마이어에 따르면, 종은 생물 분류의 기본 단위로서, 자연에 실재하는 생식적 경계선을 반영하며, 하나의 종에 속한 유기체들이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바로 이 배타적 상호 교배의 원리에 있는 것이다.

생식적 공동체 관점은 현대 생물학에서 널리 사용되긴 하지만,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첫째, 생식적 공동체 관점은 세균처럼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에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교배하지 않기 때문이다.[2] 둘째, 생식적 공동체 관점은 생식적 격리가 불완전한 개체군의 분류에 적용되었을 때 모호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고리종’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그림 [고리종]). 지리적으로 인접한 환경에 서식하는 개체군 X, Y, Z에 대해, X와 Y는 상호 교배 가능하고 Y와 Z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만 X와 Z는 상호 교배 가능하지 않을 경우, X-Y-Z를 고리종이라고 부른다. 생식적 공동체 관점에 따르면 상호 교배 가능한 X와 Y는 같은 종이며 Y와 Z도 같은 종이다. 그렇다면 X와 Z도 같은 종으로 보인다. 그러나 X와 Z는 상호 교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종으로도 보인다. 결국 생물학적 종 개념은 X와 Z가 같은 종인지 다른 종인지 명확한 결정을 내려 주지 못한다.[3]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생물의 진화에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의 다양성은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분화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공통 조상을 이루는 개체군은 애초에 작은 차이를 가진 다양한 변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서로 다른 환경에 적합한 다른 변이들이 선택됨에 따라 형질적·생식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개체군으로 점점 분화된다. 따라서 점진적인 분화 과정에서 형질적으로 또는 생식적으로 하나의 종으로 간주하기 애매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진화는 생물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증가시켜 왔기에 세균부터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들에게 단일한 방식의 종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운 것 역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생태적 관점

생태적 관점 역시 생식적 공동체 관점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에 속한 유기체들이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그러나 생태적 관점에 따르면, 공통의 정체성은 생식적 격리뿐 아니라 생태적 요인에 의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결국 생태적 관점의 다양한 버전은 하나의 종을 규정하기 위해 유사한 서식 환경(니치)을 요구한다.[4] 그리고 이러한 생태적 관점은 무성 생식을 하는 유기체들의 종 분류에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을 가진다.

계통발생적 관점

빌리 헤니히의 분기적 접근에 따르면, 생명의 나무에서 종은 이웃한 분기점 사이의 절편이다. 이에 따르면 종은 분기되는 순간 탄생하여 다음 번 분기되는 순간 멸종한다.

계통발생적 관점은 생물의 진화 과정에 의한 분화 과정을 이용하여 종을 정의하고자 한다. 계통발생적 종 개념(Phylogenetic Species Concept, PSC)에 따르면, 종은 특정한 시점에 조상을 공유하는 유기체들로서, 생명의 나무를 그린다면 다양한 종들은 그 나무의 작은 나뭇가지들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생명의 나무를 여러 나뭇가지로 나누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중 빌리 헤니히(Hennig 1966)의 분기적 접근에 따르면, 각각의 종은 생명의 나무의 이웃한 분기점 사이의 절편들로, 하나의 종은 가지가 분기되는 순간 탄생하여 시간에 따라 변화하다가 다음 번 분기되는 순간 멸종한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하나의 종은 가지가 분기되지 않는 동안에는 그 특성이 아무리 많이 바뀌더라도 다른 종으로 바뀌지 않는다.

계통발생적 종 개념은 종의 다양한 특성(표현 형질, 유전 형질, 생식적, 생태적 특성)이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며, 일개미와 같은 불임 개체들도 종의 일원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일개미는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과 교배 불가능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기에 같은 종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계통발생적 종 개념은 생명의 나무의 해상도에 따라 종을 다르게 정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높은 해상도의 생명의 나무에서는 종이 지나치게 많이 세분화되고, 낮은 해상도의 생명의 나무에서는 전체 생명을 하나의 종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 또한 세균처럼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에 계통발생적 종 개념을 적용하면 분기점을 해석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발생한다. 엄격하게 보자면, 세균은 끊임없이 분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다루기 위해 표현 형질과 유전 형질의 유사성을 고려하곤 한다.

계통발생적 관점은 다음과 같은 특이한 귀결을 가진다. 만약 화성에서 지구상의 호랑나비와 매우 비슷하며 심지어 상호 교배도 가능한 유기체를 발견했더라도, 그 화성의 유기체는 지구의 호랑나비와 같은 종으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유기체는 조상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멸종한 종인 티라노사우루스를 우리가 완전히 인공적인 방식으로 합성해낸다 하더라도 그 합성된 유기체는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종으로 간주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합성한 유기체는 부모가 없기에 과거에 존재했던 티라노사우루스와 조상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결

위의 다양한 종 분류 기준들은 상대적 장단점들을 가지며, 모든 경우에 사용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형적, 생식적, 생태적 관점은 모두 시간에 따른 종의 변화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계통발생적 관점은 어떤 해상도의 생명의 나무를 채택할 것인가에 따라 종의 개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는 생물 분류학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일부의 학자들에 따르면, 다양한 종 분류 기준의 공존은 생물의 진화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생물의 진화에 의해, 자연에는 다양한 유기체들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러한 다양성이 만들어지는 방식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즉 생명의 나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가지가 뻗어나가고 분화되는 방식 자체가 서로 다르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종을 분류하는 기준은 생명의 나무의 위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종 다원주의에 대한 논의는 Ereshefsky(2017), 3절과 Godfrey-Smith(2014), 113-119쪽을 참고하라.

종 개념의 존재론적 성격

유형으로서의 종

전통적으로 생물 종은 유형으로 간주되었다. 이때 유기체와 종의 관계는 원소와 (조건제시법으로 정의된) 집합 사이의 관계와 같으며, 어떤 유기체 x가 특정한 종 S에 속하는지의 여부는 x가 종 S를 특징짓는 속성 P를 가지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은 추상적인 존재로서, 시공간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종의 구성원이 되는 유기체들일 뿐이다. 또한 이에 따르면, 어떤 유기체가 종의 구성원이 되는 데는 시공간적인 제약이 없다. 만약 어떤 유기체가 종 S를 특징짓는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 발견되든 S의 원소가 된다. 이는 화학적 종인 금이 언제 어디서 발견되든 그 본질적인 속성(원자번호 79번)에 의해 금으로 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에 따른 종의 (표현 형질의, 유전 형질의, 생식적 특징의, 생태적 특징의) 변화를 고려할 경우, 종을 유형으로 보는 관점은 덜 매력적이다. 그러나 만약 유형을 특징짓는 속성으로 내적 속성(intrinsic property) 대신 관계적 속성(relational property)을 허용한다면, 유형으로서의 종도 시간에 따른 변화를 다룰 수 있다.

개체로서의 종

기셀린(Ghiselin 1974)과 헐(Hull 1978)은 계통발생적 종 개념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개체로서의 종 개념”을 제안했다. 그들에 따르면, 하나의 종은 원소들을 묶는 추상적인 원리인 유형이 아니라 “시공간을 차지하는 개체”이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종은 하나의 개체처럼 특정 시공간에서 태어나 특정 시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호랑이’와 같은 생물 종이 ‘금’과 같은 화학적 종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짐을 말해준다. 금은 언제 어디서 발견되든 그 본질적인 속성(원자번호 79)에 의해 금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호랑이로서의 규정은 부모-자식 관계의 연쇄에 의해 형성되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유기체 들과 종 S의 관계를 원소와 집합의 관계가 아닌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보도록 이끈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종에 속한 유기체들은 그 종의 원소들이 아니라 그 종을 구성하는 부분들로 간주되는데, 이는 한 개체의 머리와 다리가 그 개체의 원소가 아니라 부분들로 취급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종에 속한 유기체들은 마치 하나의 개체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처럼 시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만 한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유기체는 둘 사이에 부모-자식 관계를 가진 유기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을 때에만 하나의 종을 구성하는 두 부분이 될 수 있다.

개체로서의 종 개념을 수용하면 계통발생적 종 개념의 역설적 귀결들이 깔끔하게 해결된다. 첫째, 지구의 호랑나비들은 그 조상들과 함께 확장된 개체 A를 구성하는 반면, 그와 유사한 화성의 유기체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확장된 개체 B를 구성한다. 그 둘이 아무리 유사하더라도 서로 다른 시점에 태어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던 두 개체 A와 B는 서로 다른 개체이다. 즉 A와 B는 서로 다른 종이다. 둘째, 과거의 티라노사우루스는 특정 시공간에서 멸종했기에, 그들로 구성된 확장된 개체 C는 그 시점에 죽은 것이다. 한번 죽은 개체를 되살릴 수 없듯이, 개체 C도 되살릴 수 없다. 우리가 C와 유사한 새로운 유기체를 탄생시켰더라도 그것은 C와는 다른 개체인 것이다. 즉 계통발생적 종 개념의 역설적 귀결들은 역설이 아니라 생물 종의 독특한 존재론적 성격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이다.

개체로서의 종 개념은 종에 대한 본질주의를 배격하며, 이는 정치적 함축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본질은 없다. 한 유기체는 이성적 동물, 사회적 동물이 아니어도 인간이 될 수 있는데, 인간이 되기에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호모 사피엔스’의 계통에 속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Hull 1978, 1986; Mayr 1975).

집합으로서의 종

집합의 원소가 되기 위한 조건을 속성으로 규정하지 않을 경우, 집합은 어떠한 기준에 따라 분류된 종이든 나타낼 수 있다.

종을 이러한 집합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종을 개체로 간주하는 관점과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

소결

종은 유형인가? 개체인가? 집합인가? 고드프리-스미스(Godfrey-Smith 2014, 7장)는 세 가지 관점이 배타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의 종을 유형으로도, 개체로도, 집합으로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유형을 특징짓는 속성으로 내적 속성(intrinsic property) 대신 관계적 속성(relational property)을 허용할 경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종을 유형이나 집합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즉 어떠한 종은 “특정한 개체 a로부터 유래함”이라는 ‘속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유형으로 또는 그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들로 구성된 집합으로 간주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해서 그러한 이해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드프리-스미스에 따르면, 대상이 가진 내적인 속성보다 대상들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질수록, 부분과 전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1. ’생물학적 종 개념’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 종 개념은 유일한 생물학적 종 개념이 아니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아마도 마이어는 자신이 제안하는 종 개념이 “생물학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종 구분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 같다.
  2.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들도 가끔씩 유전자를 교환한다(수평적 유전자 전달). 이를 활용하면 생식적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무성 생식 생물의 종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3. 이는 종을 일종의 그릇으로 볼 때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상호 교배 가능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X와 Y를 하나의 그릇에 담고, Y와 Z를 하나의 그릇에 담았다면, X와 Z도 하나의 그릇에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X와 Z는 상호 교배 불가능하므로 한 그릇에 담으면 안 된다.
  4. 반 발렌(Van Valen 1976)은 전적으로 생태적 요인에만 기초한 종 개념을 발전시킨 바 있다.

참고 문헌

  • Ereshefsky, Marc (2017), Specie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Ghiselin, Michael (1974), “A Radical Solution to the Species Problem”, Systematic Zoology 23, 536–544.
  • Godfrey-Smith, Peter (2014), Philosophy of Bi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 Hennig, Willi (1966), Phylogenetic Systematics.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 Hull, David L. (1978), “A Matter of Individuality”, Philosophy of Science 45, 335–360.
  • Hull, David L. (1986), “On Human Nature”, PSA 1986, pp. 3-13.
  • Mayr, Ernst (1975), “Typological versus Population Thinking”, in Evolution and the Diversity of Life, Harvard University Press, pp. 26-29.
  • Van Valen, L. (1976), “Ecological Species, Multispecies, and Oaks”, Taxon 25, 233-239.
  • 마이어, 에른스트 (2002), 『이것이 생물학이다』, 서울: 몸과 마음.
  • 오카샤, 사미르 (2017),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분야의 철학적 문제들」, 『과학철학』, 파주: 교유서가,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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