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학 (발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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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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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
 
==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
  
"공유된 패러다임의 결정이 공유된 규칙의 결정은 아니다. 그것은 제2단계를 필요로 하며, 약간 다른 종류의 것이다." 공유된 규칙을 찾기 위해 과학사학자는 당대의 여러 사료를 비교 검토하여 명시적인 또는 묵시적인, 분리가능한 어떠한 요소들을 '''추상'''하여 그들 연구의 규칙으로 전개시켰는가를 찾아낼 것이다. "그 학자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겠지만, ... 그는 규칙에의 탐색이 패러다임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덜 만족스럽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주어진 정규 연구의 전통을 이룰 자격이 있는 규칙들의 본체를 찾는 것은 항상 지속적이고도 심각한 좌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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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것들 자체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애초부터 그 적용과 더불어 배우며, ...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더불어 발표된다...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런 똑같은 응용 또는 여타의 적용 예는 미래의 과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자기 할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이론과 함께 실린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이라든가 또는 심지어 증거 문서로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응용 연구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서 실제 문제를 푸는 것이 둘 다 포함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 '질량', '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느 ㄴ경우, 대개 이들 개념을 문제 풀이에 적용시켜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교재에 실린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훨씬 적다."
  
"과학자들은 뉴턴, 라부아지에, 맥스웰, 아인슈타인이 한 무리의 굉장한 문제들에 대해서 영구적으로 보이는 해답을 얻어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해답들을 영구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특성한 추상적 특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며, 때로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 또는 '''합리화'''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또는 그런 것을 얻어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패러다임의 '''확인(identification)'''에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가 있다. 표준 해석 또는 규칙에의 합의적 수렴의 부재가 패러다임이 연구의 방향을 잡는 것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의 직접 점검 ─ 규칙들과 가정들의 공식화의 도움을 종종 받긴 하지만 의존하지는 않는 과정 ─ 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 사실상 하나의 패러다임의 존재는 어느 완벽한 한 벌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조차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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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과정은 전문화의 전수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학생은 점점 복잡하고 새로운 문제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이전에 이루어진 성취에 비추어 가깝게 계속 모델화되며, 그 뒤에 따르는 독자적인 과학자의 생애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그 게임의 규칙을 추상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잘 풀지만, "그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하는 면에서는 비전문가에 비하여 별로 나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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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을 갖춘 규칙들의 본체가 없이, 과학자를 특정한 정상과학의 전통에 묶어놓는 것은 무엇인가? '패러다임의 직접 점검'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 비트겐슈타인은 '의자'니 '잎'이니 '게임'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그리고 논쟁거리가 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런 물음들에 [보통 우리는] 의자니 잎이니 게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답해왔다. 즉 오로지 게임들만이 고통으로 지니는 어떤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주어지고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는 세계의 유형이 정해지는 경우, 그런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지었다. [어떤 속성들은 분류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분류층의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동시에 모조리 그리고 거기에만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어떤 활동에 직면하여 우리는 '게임'이라는 용어를 적용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이미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도록 배웠던 많은 활동에 아주 가깝게 "가족 유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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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한 정상과학의 전통 내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연구 문제와 기술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유형의 양상이 충분히 성립된다... 그것들은 과학 체계의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 유사성과 모형화를 통해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체계란 이미 그 확립된 업적 가운데서 문제의 과학자 사회가 인정한 것을 가리킨다." 과학자들이 교육 과정에서 접하는 모델에 대해, 그 모델이 어떤 특성에 의해서 패러다임의 자격을 얻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에게 규칙의 완벽한 묶음이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이 참여하는 연구 전통에서 드러나는 일관성은 역사적, 철학적으로 더 연구한다고 베일이 벗겨질 수 있는 내재적인 규칙과 가정 실체의 존재조차도 암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보통, 무엇이 특정 문제나 풀이를 정당화시키는가를 묻거나 논쟁 삼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직관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은 답을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그 물음도 답변도 그들의 연구와 무관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패러다임은 그것들로부터 분명하게 추상화될 수 있는 연구 규칙의 어느 묶음보다도 우선적이며 더욱 구속력 있고 더욱 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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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실제로 패러다임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믿을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명백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 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주도해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극히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런 난점은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당명하는 어려움과 거의 똑같다. 두 번째 이유는, ... 과학 교육의 성격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것들 자체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애초부터 그 적용과 더불어 배우며, ...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더불어 발표된다...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런 똑같은 응용 또는 여타의 적용 예는 미래의 과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자기 할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이론과 함께 실린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이라든가 또는 심지어 증거 문서로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응용 연구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서 실제 문제를 푸는 것이 둘 다 포함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 '질량', '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느 ㄴ경우, 대개 이들 개념을 문제 풀이에 적용시켜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교재에 실린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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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과정은 전문화의 전수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학생은 점점 복잡하고 새로운 문제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이전에 이루어진 성취에 비추어 가깝게 계속 모델화되며, 그 뒤에 따르는 독자적인 과학자의 생애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그 게임의 규칙을 추상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잘 풀지만, "그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하는 면에서는 비전문가에 비하여 별로 나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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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더 나아가 다음의 세 번째 이유를 제공한다. "관련되는 과학자 사회가 이미 성취된 특정 문제 풀이를 의문 없이 수용하는 한에서 정상과학은 규칙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나 모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경우 규칙들은 중요해질 것이며, 규칙들에 대한 특유의 무관심은 사라질 것이다." 패러다임 이전 시기 또는 과학혁명기에는 합법적인 방법, 문제 및 문제 풀이의 표준에 대해 심각한 논쟁이 이루어진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들 분야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합의되지 않을 때에는, 규칙을 찾아낸다는 일이 평상시에는 지니지 않던 기능을 맡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합리화에 대한 동의가 없이 또는 합리화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채 패러다임은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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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네 번째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과학에는 대규모 혁명뿐 아니라 소규모 혁명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만일 정상과학이 [규칙에 의해] 그렇게 경직된 것이라면, 그리고 과학자 사회가 그렇게 밀접하게 얽힌 것이라면,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떻게 소규모 하부 집단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논의된 것으로 미루어 (오해한다면), 정상과학은 단일 체제의 통합적인 활동으로서 모든 패러다임과 운명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그 패러다임들의 어느 하나와도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그런 일이 매우 드물거나 전혀 그런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과학은 그 다양한 부분 가운데서 거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상당히 줏대없는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오히려 규칙 대신에 패러다임을 대치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와 세부 전공의 다양성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명시적 규칙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이지만 패러다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천문학과 식물분류학처럼 크게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책들에서 설명된 다른 업적에 접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책들과 업적들을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 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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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표현해서, 양자역학은 다수의 과학 그룹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그러므로 같은 폭을 가지지 않으면서 중첩되는 정상과학의 여러 전통을 동시에 결정할 수 잇따. 이들 전통의 어느 하나에서 일어나는 혁명은 다른 것에까지 반드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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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구자가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에 대하여 좀 알고 싶어서 특출한 물리학자와 유명한 화학자에게 헬륨의 원자는 분자인가요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양쪽 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으나, 그들의 답변은 같지 않았다. 화학자에게는 헬륨의 원자는 하나의 분자였는데, 왜냐하면 기체운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분자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학자에게 헬륨 원자는 하나의 분자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분자 스펙트럼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입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자신들 특유의 연구 훈련과 활동을 통해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 풀이에서의 그들의 경험은 분자는 무엇이라야 하는가를 깨우쳐주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의 경험은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이 경우 그 경험들은 두 전문가에게 동일한 내용을 말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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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혁명의 구조 목차 ==
 
== 과학혁명의 구조 목차 ==

2017년 10월 11일 (수) 14:13 기준 최신판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999), 2-5장에서 발췌.

2장. 정상과학으로 가는 길

"이 글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 ─ 어떤 한 과학자 사회가 일정 기간 자신의 진전된 활동(further practice)에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인정한 과학적 성취 ─ 에 단단하게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한다."(p. 10) 오늘날 그러한 성취는 대부분 교과서 형태로 학습되지만, 이러한 교과서가 널리 퍼지기 전에는 과학 분야의 유명한 고전들이 교재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러한 "저작들은 일정 기간 한 연구 분야의 적법한 문제와 방법을 다음 세대 학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취는 경쟁적인 과학 활동 방식으로부터 그룹을 떼어내 영속적인 옹호자 그룹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전례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재정의된 연구자 그룹이 모든 종류의 문제들을 다시 풀어볼(resolve) 여지를 충분히 남겨 두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닌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를텐데, 이 용어는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p. 10)

"이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실제 과학 활동의 몇몇 인정된 사례들 ─ 법칙, 이론, 응용, 기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례들 ─ 이 그로부터 과학 연구의 특정한 정합성의 전통이 나타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

"... 패러다임의 공부는 과학도가 훗날 과학 활동을 수행할 특정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이 한 과학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과학도는 거기에서 바로 그 확고한 모델로부터 그들 분야의 기초를 익혔던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므로, 이후에 계속되는 그의 활동에서 기본 개념에 대한 노골적인 의견 충돌이 빚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들의 연구가 공유된 패러다임에 근거하는 사람들은 과학 활동에 대한 동일한 규칙과 표준을 지키게 된다. 그러한 약속과 그것이 조성하는 분명한 의견 일치는 정상과학, 즉 한 연구 전통의 출현과 지속에 불가결의 요소가 된다."

"전문적 공약의 지위로서 구체적인 과학적 성취는 어째서 그것으로부터 추상화되는 다양한 개념, 법칙, 이론, 관점보다 우선하는 것인가? 공유된 패러다임은 어떤 의미에서 과학적 발전에서 과학도에게 기본적 단위, 즉 그 대신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논리적 기본 요소들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그런 단위가 되는가? 이는 5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3장. 정상과학의 성격

"그렇다면 한 그룹의 단일한 패러다임의 수용이 허용하는 보다 전문적이고 난해한(esoteric) 연구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만일 그 패러다임이 일단 온전히(once and for all) 수행된 수행된 연구를 말한다면, 그것이 그 통일된 그룹이 해결하도록 남긴 후속 문제(further problem)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 [패러다임]의 확립된 용법으로 보면, 하나의 패러다임은 인정된 모형 또는 유형이 되며, 그 의미의 그런 측면은 나로 하여금 더 좋은 낱말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전용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패러다임'을 정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문법에서는 예컨대 'amo, amas, amat'는 하나의 패러다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숱한 라틴어 동사의 변형에서, 이를테면 'laudo, laudas, laudat'를 얻는데 쓰이는 패턴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준 적용에서 패러다임은 예제의 모사(replication)를 가능케 해줌으로써 작동하는데, 그 복제품 중 어느 하나도 원리적으로는 그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다. 반면, 과학에서는 패러다임이 모사의 대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관습법에 의해서 판가름이 난 판결처럼 그것은 새로운 또는 보다 엄격한 조건 아래서 더욱 명료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패러다임은 전문가들 그룹이 시급하다고 느끼게 된 몇 가지 문제를 푸는 데에 그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보다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성공적이라든가 또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패러다임의 성공 ─ 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행성의 위치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 라부아지에의 천평 이용, 또는 전자기장에 대한 맥스웰의 수학화 ─ 은 당초에는 주로 아직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성공의 약속일 따름이다. 정상과학은 그런 약속의 실제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 특히 시사적인 것으로 제시한 그런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킴으로써, 또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의 일치 정도를 증진시킴으로써, 그리고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이런 유형의] 마무리 작업(mopping-up operation)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그들 생애를 통해서 종사하게 되는 일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여기서 내가 정상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역사적으로든 또는 현대의 연구 실험실에서든 간에, 자세히 잘 검토해보면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짜여지고 상당히 고정된 상자 속으로 자연을 밀어넣는 시도처럼 보인다. 정상과학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끄집어내는 것은 정상과학의 목적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상자에 들어맞지 않을 현상들은 전혀 보이지 않곤 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으며, 그들은 보통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창안된 이론에 너그럽지 못하다. 오히려 정상과학적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의 명료화를 지향한다."

"어쩌면 이는 결함일 수 있다. 정상과학에 의해 탐구되는 영역들은 당연히 매우 좁다. [정상과학적] 논의 아래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지극히 제한된 시야를 가진다. 그러나 패러다임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러한 제한들은 과학의 발전에서 불가결의 것으로 드러난다. 상당히 난해한(esoteric) 문제의 작은 영역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연의 어느 부분을,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상세하고 깊이 있게 탐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상과학은 내장된 메커니즘을 지니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 인도하던 제약 조건이 더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언제든지 그 연구의 제약 조건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시점에 이르면, 과학자들은 저마다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며 그들 연구 문제의 성격도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이 잘 들어맞는 얼마 동안, 그 전문 분야(profession)는 그 분야의 구성원들이 그 패러다임에 전념(commitment)하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못하고 도저히 손댈 수 없었을 문제들을 잘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성취의 일부는 언제나 영속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4장.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우리가 방금 살펴본 정규적인 연구 문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그들 연구가 개념적이거나 현상적인 주요 새로움을 얻어내는 것은 거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일례로 파장의 측정에서 보면 그 결과의 가장 심오한 세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이나 미리 알려진 것이며, 예상의 전형적인 폭이 약간 더 넓어질 따름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에서조차도, 예상되는 결과들의 범위는 상상이 허용하는 범위에 비하면 언제나 소폭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 좁은 범위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프로젝트는 대개 연구의 실패가 되는데, 그런 실패는 자연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과학자에 대한 것이다. ...

그러나 만일 정상과학의 목표가 실질적인 주요 혁신이 아니라면 — 예측된 결과의 근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일반적으로 과학자로서의 실패라고 한다면 —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문제들이 다루어지는 것일까? ... 과학자에게는 적어도 정규적인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는 의미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 패러다임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와 정확성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대답은 과학자들의 정상적 연구의 문제들에 대해서 드러내는 열성과 헌신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 그 결과가 예측될 수 있는, 그것도 흔히 아주 상세하게 예측되는 까닭에 미지의 것으로 남겨지는 자체가 별 흥미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를 성취하는 방법은 의문 속에 남게 된다. 정규의 연구 문제를 결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측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그것은 갖가지 복합적인 기기적, 개념적 그리고 수학적 퍼즐 풀이를 요구한다. 이것을 해내는 사람은 퍼즐 풀이 선수로 밝혀지며, 퍼즐의 도전은 과학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게 하는 무엇인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퍼즐’ 그리고 ‘퍼즐 풀이자’라는 용어들은 앞의 단락에서 점진적으로 뚜렷해졌던 주제들의 몇 가지를 강조시킨다. 퍼즐은 여기에서 적용된 완전한 표준적 의미로서, 풀이에서의 탁월성이나 풀이 기술을 시험하는 구실을 할 수 있는 문제들의 특이한 범주를 말한다. 사전적 설명으로는 ‘직소 퍼즐’과 ‘십자 퍼즐’이고, 이것들은 여기서 우리가 구별해야 하는 정상과학의 문제들과 공통된다는 것이 특성이다. 그중 한 가지는 방금 언급된 것이다. 퍼즐의 결과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냐 또는 중요한 것이냐는 좋은 퍼즐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대조적으로 참으로 급박한 문제들, 이를테면 암 치료라든가 평화를 영속시키는 계획 같은 것은 전혀 퍼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체로 그 이유는 그런 문제들은 그 어떤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직소 퍼즐 상자 속에서 멋대로 조각들을 꺼내어 그림을 맞춘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문제는 아무리 솜씨 좋은 사람일지라도 별도리가 없는 까닭에, 그것은 풀이에서의 재주 테스트는 될 수가 없다. 통상적인 의미로 보면 그것은 전혀 퍼즐이 아니다. 본질적 가치는 결코 퍼즐에 대한 기준이 되지 못하지만, 확실히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기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앞에서 과학자 사회가 패러다임에 의존하여 획득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패러다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동안 풀이를 가진 것으로 가정될 수 있는 문제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 이들 문제들은 그 과학자 사회가 과학적이라고 인정하거나 또는 그 구성원들에게 참여하라고 권장하게 될 유일한 문제들이 된다. 이전에는 표준으로 되어 있었던 다수를 비롯하여 다른 문제들이 탁상공론이라거나 다른 분야에서의 관심사라거나 또는 시간 낭비일 정도로 너무 말썽이 많다고 하여 거부당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하나의 패러다임은 그 과학자 사회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퍼즐 형태로 환원될 수 없는 문제들로부터 격리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그런 문제들은 그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적, 기기적 수단을 써서 진술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정상과학이 이렇게 급속도로 진전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들이 그들 자신의 재능 결핍만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그런 문제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정상과학의 문제들이 이런 의미에서 퍼즐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과학자들이 정열과 헌신을 가지고 그런 문제들을 공략하는가의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갖가지의 이유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유용성의 욕구, 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는 경이감, 질서를 찾아내려는 희망, 이미 정립된 지식을 시험하려는 요구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동기와 다른 동기들 역시 이후에 그 사람이 다루어야 할 특수 문제들을 결정짓는 데에 도움을 준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결과는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동기들이 일차적으로는 과학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그 다음에는 그를 이끌어나가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전반적으로 과학 활동은 유용하다고 판정되는 일이 잦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질서를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믿음을 시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 연구 문제에 종사하는 개인으로서는 이들 유형의 활동은 하나도 하고 있지 않다. 일단 과학에 몸담게 되면 과학자의 동인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그 다음 그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가 만일 충분히 재능이 있다면 이전에 아무도 풀지 못했거나 제대로 잘 풀지 못했던 퍼즐을 푸는 데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가장 위대한 과학적 정신의 대가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미해결 퍼즐에 대한 전문가로서 헌신해왔다. 거의 모든 경우에, 세분화된 어느 특수 분야건 간에 그밖의 다른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는 정통의 숙련된 연구자에게는 그것을 상당히 매혹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논의를 바꾸어서, 퍼즐들과 정상과학의 문제들 사이의 유사 관계에서 좀더 까다롭고 보다 잘 드러나는 측면을 살펴보자. 만일 퍼즐로서 분류되는 것이라면, 하나의 문제는 그 해답이 확실이 있다는 것 이상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 거기에는 또한 인정받을 수 있는 해답의 본질과 그것들이 얻어지는 단계를 모두 한정짓는 규칙도 존재해야 한다. 이를테면 직소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거나 또는 당대의 예술가라면 어떤 우중충한 배경에다가 골라낸 조각들을 추상적인 형태로 흩어놓아 그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은 원래 조각 맞추기로 만들어진 것보다 더 근사할는지도 모르며, 더욱 독창적일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은 해답이 아닐 것이다. 해답을 구하려면 모든 조각을 다 써서 맞춰야 하고, 그림 없는 쪽은 바닥으로 면해야 하며, 그리고 모두 꼭 맞게 끼워서 빈틈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직소 퍼즐의 풀이를 다스리는 규칙들에 포함된다. 십자 퍼즐, 수수께끼, 장기 등의 문제들의 허용 가능한 해답을 끌어내는 데에도 그와 비슷한 제한 조건들이 쉽사리 발견된다. ...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것들 자체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애초부터 그 적용과 더불어 배우며, ...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더불어 발표된다...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런 똑같은 응용 또는 여타의 적용 예는 미래의 과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자기 할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이론과 함께 실린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이라든가 또는 심지어 증거 문서로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응용 연구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서 실제 문제를 푸는 것이 둘 다 포함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 '질량', '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느 ㄴ경우, 대개 이들 개념을 문제 풀이에 적용시켜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교재에 실린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훨씬 적다."

"위와 같은 과정은 전문화의 전수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학생은 점점 복잡하고 새로운 문제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이전에 이루어진 성취에 비추어 가깝게 계속 모델화되며, 그 뒤에 따르는 독자적인 과학자의 생애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그 게임의 규칙을 추상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잘 풀지만, "그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하는 면에서는 비전문가에 비하여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과학혁명의 구조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으로 가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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