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cept of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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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bara Shapiro, "The Concept of "Fact": Legal Origins and Cultural Diffusion," Albion 26 (1994), 227-252.

저자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이라는 개념이 영국 자연철학에서 나타나게 된 방식을 탐구하고, 그 개념이 법학에서 차용되었음을 밝힌다. 법률에서 정식화된 '사실'이나 '사실의 문제'라는 개념이 우선 역사가와 지지편찬자에게 전파되어 이들에 의해 인간 현상과 자연 현상 모두가 '사실'이라는 범주로 포섭되었다. 이후 이 개념이 영국 과학자 사회에도 파급되면서, 목격자의 증언, 공평한 절차, 실질적 확실성(morally certain) 등의 개념이 실험철학과 로크 경험론으로 흡수되었다. 반면, 가설은 사실보다 덜 확실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6,7세기 영국의 법률 개념 '사실': 일반적 경험이 아닌 특정한 사건

로마법 전통은 일찍이 (증거를 채택하고 그 신빙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포함하는) 증거체계를 발전시켰고, 사실과 법을 구분했다. 영국의 독특한 관례법도 로마법 전통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특징들을 갖는다. (i) 사실의 문제와 법의 문제를 구분, (ii) 사실 평가자로서 배심원의 발달, (iii) 공평한 변론 및 판단의 가치 인정. 16세기 사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배심원이 책임지고, 법의 문제는 전문 판사가 책임지는 관례가 정착됨으로써, 사실과 법은 제도적으로 구분되었다. 우리 논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법률에서 사실이란 일반적 경험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을 가리켰고, (정황 증거에 기초한 추론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목격과 기록에 의한 직접 증언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목격이 재판의 필수요소로 들어오면서 배심원은 사실의 재판관이 되어 증언의 평가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들은 사실의 문제를 결정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해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했고, 이때 증언자의 신빙성을 판단할 조건들이 고려되기도 했다. 법률과 법정의 정당성은 공평성에 기초해 있었고, 사실발견과 법 결정의 공평성이 영국의 법 이념과 문화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즉 16,7세기 영국 사회는 사실의 문제라는 법률 개념에 친숙해지고 있었다.

역사학 분야로 파급된 '사실': '가설'의 배제와 '사실'의 우선성

사실의 문제라는 개념과 더불어, 목격, 신빙성 있는 증언, 소문, 사실로부터의 추론, 공평한 조사 등의 개념이 역사학 분야로 파급되었다. 역사가들은 (신빙성 있는 목격 및 증언에 기초해서) 허구나 우화 등을 자신의 작업과 구별하였고, 역사가로서의 자신을 믿을만한 보고자나 공정한 재판관에 비유하였다. 사실이라는 개념과 공평성은 점차 역사가에게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대체로 역사가들은 역사서술을 bare narration로 만족하려 했으며, 사실을 넘어서서 말하려 했던 이들도 원인이나 설명은 단지 추측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Gale 같은 이들은 bare collector로 만족하지 않았고, 그래서 가설이 바람직한지에 관해 논쟁했지만, 가설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은 법정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념의 확장: 인간 -> 자연, '인간 보고' -> '진리'

여전히 시민사와 자연사의 구분은 유지되고 있었고, 사실(factum: man's making)은 진리(verum: God's making)와 구분되었지만, 이 구분들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17세기 중반 (자연사와 시민사의 혼합형태인) 지방지가 (법률에서 사용되던) '사실' 개념의 중요한 전파 수단이 되어, '사실'은 자연과 인간 모두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자연사와 시민사의 구분은 약화되었다. 예컨대 홉스는 사실에 대한 모든 지식을 역사와 동일시했다. 지방지에 이어, 여행 및 항해 보고서, 초기의 산문과 소설 등을 통해 '사실'이나 공평성과 같은 개념들이 전파되었고, 왕정복고 시기에 이르면 well reported fact라는 용어는 매우 친숙한 것이 되었다.

과학에서 '사실의 문제': 베이컨의 공헌

과학에서 '사실의 문제'라는 개념은 법에서 확립된 개념이 전이된 것이고, (법률가이자 법학과 자연철학의 개혁가였던) 베이컨이 이러한 전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적절히 확인된 자연사의 사실들이 자연철학의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자연사를 확장해 실험(사)를 포함시켰다. 그는 법률에 기초한 신빙성 기준을 사용해 사실을 판단했고, 그렇게 얻어진 사실들에 자신의 새로운 방법을 적용해 진리를 구하고자 했다.

베이컨의 프로그램은 다소 변형된 형태로 왕립학회에서 실현되었다. 여기서 변형이란, 베이컨이 본질주의적 형상을 추구한 것과 달리, 왕립학회는 비본질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의 '사실'이 법률 개념에서 전이되었다는 증거

왕립학회가 사용했던 법적 언어, 목격자의 사회적, 지적 지위에 대한 강조, 공평성에 대한 강조, 보증된 사실 외에는 조심하는 태도 등은 왕립학회의 자연학자들이 법률의 모형을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스프랏, 그랜빌 등의 왕립학회 대변인들뿐 아니라, 보일과 로크에게서도 발견된다. 관례법에서 배심원이 사실의 문제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처럼, 왕립학회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광학적 사실이란 일반적 경험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었다는 점과 가설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도 사실 발견에 대한 법률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확립된 사실에서 자연철학의 원리에 이르게 해주는 방법은 가설이나 설명이었지만, 그것은 사실만큼 확실하지 않은 단지 개연적인 추측으로 간주되었다.(비본질주의) 보일에게도 사실의 문제는 자연철학의 확실한 토대였는데, 그가 사실을 다루는 방식은 법적인 관심과 친화성을 갖는다. (e.g., 일치하는 증언의 수가 신빙성을 높인다.)

섀핀, 섀퍼에 대한 평가

섀핀과 섀퍼는 보일이 목격자의 사회적 지위를 강조한 것에 고무되어 이것을 사회적 위계에 대한 왕정복고기의 관심과 연결시켰는데, 저자는 목격자와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려는 법률 전통에서 모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사실의 문제'가 사회적이면서 인식론적인 범주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법률에서 쓰이던) 사회적 범주가 과학적 범주로 전이된 것이다.

에필로그

왕정복고 시기 신학자들은 동일한 개념을 채택하여, 기독교를 사실에 기초한 역사적 종교로 특징지었다.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해서 기독교 교리의 moral certainty를 주장. 정립된 사실을 강조하면서 가설은 개연적일 뿐이라는 이러한 태도는 로크의 경험적 지식이론으로 일반화되어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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