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론
과학 활동의 주된 목적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한가지 방편은 이론을 통해 과학적 설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론은 구체적인 맥락을 넘어서서 일반성과 보편성을 담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론은 크게 넓은 의미의 이론과 좁은 의미의 이론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이론이란 법칙적 진술들, 방법들, 그리고 적용사례 등을 모두 포괄하는 묶음으로서의 이론이다. 좁은 의미의 이론은 가설들의 체계 혹은 법칙적 진술들의 체계로 이해되고, 우리의 주된 관심은 후자의 본성과 역할에 대한 것이다.
과학 이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모형으로 삼는다. 소수의 공리들과 정의들로부터 무수한 정리들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공리체계를 이상적인 이론의 모습으로 보았다. 공리체계의 장점은 연역 추론이라는 진리보존적 기제를 통해 공리들의 자명성과 진리성이 정리들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이론에서는 기하학과 달리 공리들의 자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리체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설명을 제공하는가에 따라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단순한 경험적 일반화에 의한 설명보다 보다 일반적인 원리나 인과적 기제에 의한 설명을 접하면, 우리는 설명이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보다 일반적인 원리나 법칙을 추구할수록 설명을 통해 얻는 이해의 심도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이 이론을 동원하는 한, 그 이론은 단순한 가설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계층적이고 연역적인 질서를 가진 체계일 것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표준적 견해는는 논리경험주의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이를 "표준적 견해" 또는 "수용된 견해(Received View)"라고 부른다. 먼저 표준적 견해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것의 대안으로 제시된 "의미론적 견해(Semantic View)"에 대해 살펴보자.
표준적 견해
논리실증주의의 영향으로 형성된 논리경험주의는 과학이론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들은 인식론적으로는 경험론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 기호논리학과 확률 이론을 철학적 작업의 주된 도구로 삼았다. 논리경험주의가 과학이론에 대해 가졌던 견해 자체가 역사적으로 변천해왔으나, 카르납이나 헴펠 등이 1950-60년대에 제시한 견해를 표준적 견해로 본다. 그것이 가장 세련된 형태이면서 비판에 대해 방어력을 많이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점은 구문론적 견해로도 불리는데, 과학이론을 부분적으로 해석된 진술들의 공리체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의 요소
표준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이론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 과학이론은 1차 술어논리의 언어(L)에 의해 정식화된다. (이상적으로는 공리화된 연역체계)[1]
- L의 어휘들은 논리적 어휘들과 비논리적 어휘들로 나뉜다. 논리적 어휘는 논리연결사들과 수학적 용어들을 포함하고, 비논리적 어휘들은 관찰적 용어로 구성된 관찰적 어휘와 이론적 용어로 구성된 이론적 어휘로 나뉜다.
- 관찰적 용어들은 직접적으로 관찰가능한 대상이나 속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관찰적 용어들을 포함하지 않는 진술들을 이론적 진술이라 하고, 관찰적 용어를 포함하는 진술들을 관찰적 진술이라 한다. 이론적 진술은 자체로는 해석되지 않은 상태이다.
- 관찰적 용어와 이론적 용어를 포함하는 진술이 대응규칙이고, 이를 통해 이론진술이 의미를 획득한다.
이를 요약하면, 과학이론은 〈이론적 진술(T) + 대응규칙(C)〉혹은 <이론적 공리/공준 + 대응규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과학이론을 언어적 진술들의 집합으로 보았고, 언어와 논리학을 통해 과학이론에 접근했다. 왜일까? 언어를 통해 철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20세기 초반의 분석철학적 전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적인 접근도가 떨어지는 머리 속의 관념들을 언어화함으로써 공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상호주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들은 논리적 성격이나 구조가 불투명한 자연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공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기호논리학을 활용한 이유이다. 과학이론이 기본적으로 진술들의 집합이라면, 이론의 내적인 구성이 무엇이고, 또 이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혹은 주장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불명료한 자연언어보다는 인공언어를 통해 이론을 정식화하고자 했던 이유이다.
대응 규칙
과학이론이 언어적 존재자라면, 어떻게 세계와 관련을 맺는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비논리적 어휘가 이를 담당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관찰적 어휘는 직접적으로 관찰가능한 대상들을 지시했고, 관찰용어의 경험적 의미를 바로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공리화된 연역체계의 체계성을 가질 수 있었던 원천인 이론적 어휘들은 경험적 내용을 집적 획득할 통로가 없다. 우리는 이론이 체계적이면서도 세계와 관련맺음으로써 경험적 내용을 획득할 것을 기대한다. 이와 관련된 부분이 바로 대응규칙이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론용어들이 관찰용어와의 관계를 통해서 세계와 관계를 맺고 경험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관찰적 진술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이론적 진술이 경험적 내용을 획득할 수 있는가?
명시적 정의(explicit definition)
이에 대한 초기의 답은 대응규칙이 명시적 정의로서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론 진술은 관찰진술을 통해 완전하게 경험적 내용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명시적 정의를 잘 구현했던 예가 브리지만(Bridgman)의 조작주의이다. 조작주의에 따르면, “어떤 개념의 의미는 그 개념을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조작들에 의해서 완벽하게 규정된다.” 예를 들어, “길이”는 길이를 재는 조작들에 의해서 완전하게 결정된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다음의 난점을 지닌다.
- 우리가 분필의 길이, 천문학적 거리, 원자의 지름을 잰다고 할 때, 다양한 조작들이 사용된다. 브리지만의 조작적 정의에 따르면, “길이”는 그 조작의 수만큼 다양한 개념들의 집합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보통의 과학자라면 그 다양한 조작에 대해 “길이”라고 하는 동일한 물리량(개념)을 재는 다양한 방법으로만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 어떤 물리량의 측정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새로 개발되기도 한다. 즉 조작들의 집합은 열려 있다. 그런데 조작들의 집합이 닫혀 있지 않다면, 이론용어의 의미는 완전히 결정됐다고 말할 수 없다. 즉 명시적 정의는 성립하기 어렵다.
- 조작적 정의는 기본적으로 성향적(dispositional)이지만, 성향적인 용어는 명시적으로 정의되기 어렵다. 대부분의 조작적 정의는 “어떤 조건 하에서 일련의 조작을 하게 된다면, A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방식이다.[2] 그런데 성향적 용어에 대해서는 명시적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부숴지기 쉬운”이라는 용어를 조작적으로 정의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일정강도 이상의 충격을 가한다면, 그것은 부서진다”와 같이 정의될 것이다. 이를 기호화한다면, Fx ≡ (t) (Sxt → Bxt) 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어떤 물체가 충격을 가할 수 없는 상황(~Sxt)에 놓여 있다면, 우항 자체는 참이 되고, 따라서 좌항도 참이 된다. 그 경우에도 그 대상은 “부서지기 쉬운” 성질을 가진다. 다시 말해, 시험 조건이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대상은 “부서지기 쉬운” 성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충격을 결코 주지 않는다면 쇳덩어리도 "부서지기 쉽다"는 결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향적 용어에 대해서는 조작적 정의를 통한 명시적 정의가 불가능해 보인다.
- 명시적 정의는 된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만일 명시적 정의를 통해서 이론용어가 의미를 획득한다고 해보자. 이는 이론적 용어의 경험적 내용을 완전하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규정된 이론이 과학적 설명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명시적 정의를 통해 경험적 내용을 획득한 이론들이란 관찰보고들의 덩어리에 불과할 텐데, 이런 이론이 어떻게 설명력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주는지 해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원 문장(reduction sentence)
카르납은 성향적 용어에 대한 문제의 해법으로 환원문장(reduction sentence)을 제시한다. 이는 (x)(t) (Sxt → (Bxt ≡ Fx))와 같이 기호화된다. 이 경우 조작적 정의가 야기한 난점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쇳덩어리는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부서지기 쉽다는 속성을 가지지 않게 된다. 충격을 받지 않은 쇳덩어리에게는 F 또는 -F가 확정되지 않는다. 즉 환원문장을 통해서 이론용어 F의 경험적 내용이 완전하게 부여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많은 환원문장을 모아둔다고 해도, 그것은 이론용어에 대한 부분적 해석만을 제공하게 된다. 이는 오히려 이론이 가지는 설명력과 이해의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며, 명시적 정의에 비해 과학 활동의 현실과도 더 잘 부합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실제로 이론용어에 대한 의미규정이 환원문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장과 같은 이론용어는 환원문장을 통해서 내용을 획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전기장 같은 용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까?
- (x)(t)(단위 전하xt → (어떤 운동xt ≡ 전기장x))
그러나 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x)(t)(단위 전하xt → (전기장x → 어떤 운동xt))는 성립하더라도 (x)(t)(단위 전하xt → (어떤 운동xt → 전기장x))는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환원 문장에 의해 도입될 수 없는 이론적 용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헴펠은 전자의 약화된 환원 문장 (x)(O1x → (Tx → O2x)를 일반화된 환원 문장(generalized reduction sentence)라고 불렀다. 그러나 후에 헴펠이나 카르납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론적 용어의 해석을 도입하는 것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몇몇 용어는 환원 문장이나 일반화된 환원 문장을 만들 수 있겠지만, 모든 용어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켐벨의 사전
캠벨(Campbell)의 견해는 카르납보다도 더 온건해 보인다. 그에 따르면, 이론이란 〈가설 + 사전〉이다. 가설은 그 이론에 고유한 용어들만을 포함하고, 사전은 고유한 용어들과 고유하지 않은 용어들을 포함한다. 이는 이론적/관찰적 용어의 구분을 전제하지 않고, 이론에 고유한/고유하지 않은 용어의 구분을 채택한다. 예컨대 기체운동론은 입자의 개수(n), 속도(v), 가속도(a), 질량(m), 입자에 가해지는 힘(F), 입자의 이동 거리(l) 등을 고유한 용어로 가지고 있는 이론인데, 온도(T)나 압력(P), 기체의 전체 질량(M) 등은 기체운동론에 고유하지 않는 용어이다. 이 때 기체운동론의 사전은 다음과 같다.
- l은 순수이상기체가 들어있는 정육면체 공간의 변의 길이
- M = nm
- T = mv2/3k
- PA = Fx/l2
표준적 견해에서는, 이론적 용어 하나를 명시적 정의나 환원문장을 통해 해석을 부여하려 했다면, 켐벨의 사전에서는 반대로 관찰용어가 이론용어들의 복합체에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론적 용어들은 표준적 견해보다 훨씬 간접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대응규칙의 변화 양상과 그 귀결
헴펠은 이론의 구성이 단순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다양한 형태의 대응규칙이 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명시적 정의나 환원문장, 캠벨의 사전 또는 다른 형태의 대응규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들을 종합한 결과가 헴펠의 부분적으로 해석된 체계이다. 이에 따르면, 이론이란 어떠한 방식의 해석으로든 부분적으로 의미를 부여받은 (공리적) 진술 체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론/관찰의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는데, 특히 캠벨의 논의에서는 이론/관찰이 아닌 이론적/비이론적의 구분이 채택되기도 했다. 또 진술의 의미가 관찰뿐 아니라 그가 속한 체계에도 의존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기도 했다.
표준적 관점에 대한 비판
하지만 논리경험주의자들의 표준견해를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는데, 주된 비판은 (i) 관찰적/이론적 구분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과 (ii) 이론을 진술들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관찰적/이론적 구분이 논리경험주의자들의 표준견해에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먼저, 그러한 구분은 용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색이나 따뜻함 등은 관찰적 용어의 목록에 포함되지만, 전기장이나 전자, 질량 등은 이론적 용어이다. 카르납과 헴펠의 “관찰적” 개념에 따르면, “적절한 상황 하에서, 수차례를 직접 관찰하여 주어진 용어를 대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용어는 관찰적”이다. 여기서 직접적 관찰이란, 관찰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정상적인 감각 기관만을 사용한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면 언제나 직접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때때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면 관찰적인지가 분명치 않다.[3] 만일 전자라면, “부피”나 “A가 B보다 더 따뜻하다” 등의 용어는 관찰용어에서 배제될 것이다. 이 경우 많은 관찰용어들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강한 기준이다. 만일 후자라면, 이론적 용어의 일부가 관찰용어로 분류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용어를 구분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퍼트남은 어떤 용어도 원칙적으로는 관찰가능하지 않은 대상의 성질을 지시하는데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예: "붉은 빛은 붉은 입자로 구성된다") 따라서 용어 구분이 매우 임의적임을 비판한다.[4] 그렇다면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용어구분은 과학자들의 실제 용어 사용과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피(Suppe)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용어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리는 일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철학자들의 구분은 단지 기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해명의 목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과학자들의 용어 사용법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며, 과학이론의 논리적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다소 인위적이더라도 관찰적/이론적 구분이 필요한데, 실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피의 항변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수피가 관찰적/이론적 용어 구분을 옹호하려면, "red"를 이론적 용어 redT)와 관찰적 용어 redO로 구별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과연 필요한 작업인지, 또 실제 과학철학에 도움이 되는 작업인지는 의문의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수피는 이론에 대한 표준적 견해를 따르지는 않는다. 그가 보기에 표준적 견해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이론을 진술들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 자체이다. 표준적 견해로는 과학이론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이해할 수 없고, 과학의 실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찰/이론 구분의 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반 프라센의 제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 프라센은 관찰/이론의 구분을 시도했던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의도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관찰/이론의 구분이 일어나는 지점에 대해서는 그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분명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론의 경험적 내용을 중요시했다. 이론의 경험적 내용이란 이론의 '관찰가능한 귀결의 집합'이 될 것이다. 그런데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를 무리하게 이론 T의 경험적 내용을 "관찰 어휘 LO에 의해 규정되는 T의 진술들의 집합"과 같은 진술적(syntactic)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퍼트넘이 지적했듯이, 관찰가능하지 않은 존재자에 대해 관찰적 용어를 이용해 진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5] 관찰적 어휘에 의해 표현되는 T의 귀결들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의 당초 예상을 넘어서 T의 이론적(관찰 불가능한) 부분까지 포함하게 된다. 반 프라센이 보기에, "관찰 가능/관찰 불가능"의 구분은 유효한 구분이긴 하지만 어휘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구분은 대상 또는 속성 수준에서나 성립할 것이다.
의미론적 관점
기어리(Giere)의 주장을 통해, 과학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관점의 한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통상적인 역학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모형들의 집합이 이론의 핵심요소라고 주장한다. 진술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술들은 모형을 언어적 수준에서 규정하고 모형과 세계를 연결하는데 필요한 2차적인 역할만을 한다. 의미론적 견해의 공통된 특징은 이론을 모형들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기어리에 따르면, 이론은 〈이론적 모형 + 이론적 가설〉이다.
모형
그렇다면 모형이란 무엇인가? 첫째로는 크기(scale) 모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크기를 늘이거나 줄여서 비슷한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비행기 모형이나 왓슨-크릭의 DNA 모형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로 유비(analog) 모형으로, 원자에 대한 보어의 태양계 모형 등이 속한다. 셋째는 이론적 모형이다. 기어리는 이를 지도에 비유하는데, 지도는 실제공간과 구조적으로 유사하고, 우리는 그 유사성을 활용한다. 지도는 규약들을 채택하고, 표상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정한 측면만은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이론적 모형은 실제계(real system)와 유사관계를 맺는다. 특정한 유사성이 성립하면 우리가 관심있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또한 규약을 도입한다. 그리고 실제계의 특정한 측면에 국한해서 표상한다. 지도와 이렇게 유사한 점이 있지만, 지도가 실제공간을 표상하고자 한다면, 이론적 모형의 경우 표상하고자 하는 대상계가 실제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컨대 단순조화진동자 모형은 후크의 법칙과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이상적, 추상적 모형으로, 과학에서 널리 쓰이는 이론적 모형이다. 사실 이 모형이 성립하기 위한 가정을 모두 만족시키는 실제계는 (거의) 없다.
이론적 가설
한편, 기어리가 말하는 이론적 가설은 통상적인 가설의 용법과는 다르다. 이론적 가설은 모형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즉, 모형이 어떤 측면에서 어떠한 정도로 실제계와 유사한지에 대한 주장인 셈이다. 예를 들어, 단순조화진동자라는 이상적 모형이 실제 추시계와 어떤 측면에서 어떤 정도로 유사한지에 대한 주장이다. 모형 자체는 추상적인 구조로, 참/거짓을 말할 수 없지만, 이론적 가설은 언어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진리값을 가진다.
그러면 모형과 세계가 잘 들어맞는지(fit)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결국 관찰가능한 영역에서 연결고리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실제계에서 관찰자료를 얻고 그것이 모형의 예측과 맞는지를 비교한다. 비교 결과 잘 들어맞는다면 이론적 가설이 참이라는 좋은 이유가 된다. 물론 잘 맞지 않는다면, 이론적 가설은 거짓이 된다.
장점
첫째, 과학이론의 동일성을 언어와 무관하게 주장할 수 있다.
- 예컨대, 뉴턴 역학과 라그랑지안 버전, 해밀토니안 버전 사이의 동일성 문제
둘째, 용어 수준에서 이론적/관찰적 구분을 할 필요가 없어짐.
- 모형의 관찰가능한 예측과 실제계의 관찰 자료만 있을 뿐임.
- 모형을 정의하는 진술들은 관찰/이론 구분 무의미
평가
이론을 이렇게 이해하면, 과학활동에서 이론이 하는 역할들(설명/평가/...)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수 있는가? 이론의 선택과 평가에 대한 문제는 이론적 가설의 평가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분명하게 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설명에 대해서는 명확치 않다. 기어리가 적어도 이론의 선택과 평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답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설명과 이론의 관계는 명확치 않다. 한편, 어떤 모형이 이론 속에 포함되는지를 경계를 설정하는 문제도 쉽지가 않다. 기어리는 모형들 간의 가족유사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모형들간의 통합성이 상대적으로 저하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강점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약점이 될지는 논의해 보아야...
각주
- ↑ 헴펠 본인도 1차 술어논리만으로는 과학 이론을 형식화시키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헴펠은 1차 술어논리를 이용한 과학 이론 분석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 이론을 1차 술어논리 수준으로 단순화시키더라도 여전히 매우 흥미로운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반대로 대상 자체에 너무 충실하여 대상을 복잡하게 기술하면 그로부터 이론적인 통찰을 이끌어내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예컨대 "소금은 수용성이다"는 "소금을 물에 넣으면 물에 녹는다"는 뜻이다. "이 물체의 질량은 x이다"는 "이 물체를 저울에 달면, 저울은 x의 눈금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 ↑ Achinstein, Concepts of Science
- ↑ Hilary Putnam, "What Theories are Not", in Mathematics, Matter and Method, pp. 215-220.
- ↑ 반 프라센이 든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떤 입자는 때로는 위치를 가지고 때로는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양자역학) "절대공간에서 어떤 공간도 질량을 점유하지 않는다."
참고 문헌
- F. Suppe 1977, The Structure of Scientific Theories,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Second Edition
- R. Giere 1988, Explaining Science: A Cognitive Approach,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 R. Carnap 1939, “Theories as Partially Interpreted Formal Systems”, Foundations of Logic and Mathematic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R. Carnap,“The Nature of Theories”, in Klemke, Hollinger, Robert, and Kline, David (eds.) (1988), Introductory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New York: Prometheus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