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과학사상사 Early Greek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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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E.R. Lloyd, Early Greek Science (New York, 1970); 번역: 이광래 옮김, 그리스 과학사상사 (지성의 샘, 1996).

배경과 기원

"과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클라겟(Clagett)의 정의에 따르면,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인 기술이나 설명 또는 그것을 위한 도구이다. "과학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그 정의에 비추어볼 때 합당한 말일까?

최초의 (과학)기술은 고대 문명들(4대 문명 혹은 6대문명 :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에 기원을 가진다. 이들은 시금술, 방직공정, 도자기 제작술(물레), 수레바퀴, (관개) 농업, 문자를 발명했다. 특히 오늘날 과학과 밀접해보이는 의술, 수학/천문학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집트인과 바빌론에서는 달력을 발명했는데, 전체적 수준에서는 바빌론이 이집트를 살짝 앞선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은 정교한 체계적으로 천체를 관측 기록했으며 정교한 태음력을 사용했다. 또한 자릿수마다 특별한 문자를 쓰지 않아도 되는 숫자 체계를 발명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역은 클 틀에서 마술과 미신의 지배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밀레토스 철학자들은 앞서의 문명권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첫째, 그들은 "자연"을 발견했으며, 둘째, 이성적 비판과 논쟁을 시작했다. 예컨대, 탈레스의 지진 이론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개별적인 지진이 아닌 보편적인 지진에 대해 일반적으로 해명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러한 특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정치경제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아마도 정치체계에 대한 비교/평가/논쟁이 활발했던 그들의 사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밀레토스 학파의 학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체계

이들은 공통적으로 초자연적인 미신에 반대하여 자연 현상에 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하려는 욕구를 지녔다.

  • 탈레스 : “지구가 물 위에 나무토막이나 배처럼 떠 있으며, 지진은 물의 움직임 때문에 발생한다.”
  • 아낙시만드로스 : 최초의 기계적 천체 모형; 태양의 작용을 받은 습지에서 생물이 발생.
  • 세계의 근본 물질(질료인)은?
    • 탈레스의 '물' ->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 ->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 엠페도클레스의 '4뿌리'
    •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평가
    • 저자가 보기에, 각 철학자들의 답변은 조금씩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답임.
      • 탈레스 : 최초에 무엇이 있었나?
      • 아낙시만드로스 : 어떻게 제1실체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가? (탈레스에 대한 공격)
      • 아낙시메네스 : 나무조각도 무한자인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1실체로 돌아감)
    • 즉, 문제의식 자체가 점점 발전했음. 특히 변화의 문제를 향한 시험적 발걸음.

피타고라스 학파

  • 사실 종교적 집단(영혼 불멸, 윤회, 금기) 및 정치세력에 가까웠음(특히 초기에).

이들에게 사물의 원리는 수(數)였는데, 이는 이들이 밀레토스 학파와 달리 질료(matter)보다 형상(form)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연에 수학적 기초를 부여하고자 했던 최초의 이론학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수 자체를 구체적인 물질적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사물과 수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하는 유사성들은 지극히 공상적이거나 자의적이었다. (예컨대, 여자=2, 남자=3, 따라서 결혼=5)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들은 수비주의 또는 수 신비주의로 간주된다.

피타고라스의 우주관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 신비주의는 우주론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천체가 하나의 커다란 음계이며 수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천체의 운동은 귀에 들리지 않는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생각한 우주의 중심에는 불(중앙불)이 있었고, 지구와 반(反)지구, 그리고 달, 태양, 행성들이 있었다. '반지구'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행성을 추가한 이유는 보이는 천체 9개에 덧붙여 완전수인 10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며, 한편으로는 월식이 일식보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옮기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우주의 중심에 '불'이 있다고 하는 이들의 생각은 후에 태양중심설로 해석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작업 중에서 초기 그리스 과학의 방법론에 빛을 던져준 두 측면은 다음과 같다.

  • 경험적 연구(음향학) : 그렇다고 실험적 방법의 일반적 가치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목적은 현상 이면의 수적 관계를 드러내 '만물은 수'라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 연역적 방법(수학) : 이 학파의 공헌은 피타고라스 정리가 아니라 그것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root 2 는 이미 바빌론 수학 문서에 등장하지만, 그것이 무리수라는 성격을 지녔음을 논증한 것은 그리스인(피타고라스 학파)이다.

변화의 문제

기원전 5세기 초, 변화의 문제와 지식의 근거(감각 vs. 이성) 문제가 자연에 대한 탐구의 중요 주제가 됨.

  • 헤라클레이토스 : "만물 유전"
전체로서의 세계 속에서, 변화와 상호작용이 항상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
눈에 보기에 정지해 있는 상태도 대립물 속의 긴장을 감추고 있음. 예: 팽팽하게 당긴 활
감각은 주의 깊게 사용되어야 함.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님)
  • 파르메니데스: 로고스(이성, 논리)만 사용할 것! 감각의 증거는 신뢰할 수 없음!
'진리의 길': 생성 소멸이나 모든 종류의 변화가 예외없이 불가능하다!
엘레아 학파의 제논, 멜리소스에게 수용
  • 엠페도클레스 : 감각의 복권 - 마음 역시 연약. 따라서 모든 수단(감각과 이성 모두) 활용해야
파르메니데스의 주장(무로부터의 생성은 불가능)은 수용하되 존재의 유일성은 부정. 즉 변화 가능.
변화는 이미 존재하는 실체들의 혼합과 분리(사랑과 투쟁)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저자들

플라톤

기원전 4세기의 천문학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