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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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2015), 1장 중에서 발췌.

본문

말라리아


데이비드 에저턴(David Edgerton)

정동욱, 박민아 옮김


산아 제한처럼, 말라리아 통제도 수많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경구 피임약처럼, 특정 방법의 중요성은 말라리아를 통제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과의 관계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말라리아나 콜레라, 결핵처럼 이미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질병이 재발할 경우 그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 새 방법 뿐 아니라 구식 테크닉이 다시 새롭게 이끌려 나오기도 한다. 말라리아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했던 질병의 하나로, 지금도 그렇다. 지금과는 달리, 20세기 전반에 이 병은 열대 지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온대 지역에, 예를 들면 남부 이탈리아 같은 곳에 만연했다. 말라리아는 치료 가능했고, 예방 치료제나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박멸로 막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천연 물질인 퀴니네를 사용해 치료했는데, 네덜란드 제국은 그들의 식민지였던 자바(Java)의 플랜테이션을 소유함으로써 퀴니네를 장악했다. 합성 대체물을 찾기 시작했는데, 특히 독일에서 이 연구를 많이 했다. 1930년대에 아테브린(Atebrin)(메파크린mepacrine)이 개발되었지만, 피부를 노랗게 만들어서 많이 사용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일본에 패하자 연합군은 예방과 치료용으로 그 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 항말라리아(anti-malaria) 연구 프로그램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이 연구는 클로로퀸(chloroquine)(1930년대 이미 독일에서 만들어지고 사용 중지되었다), 아모디아퀸(amodiaquine), 프로구아닐(proguanil)(팔루드린,paludrine)이라는 세 종류의 약으로 이어졌고, 이 약들은 전후 치료와 예방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역과 시리아에서는 말라리아를 뿌리 뽑으려고 1970년대에 클로린을 공중 예방에 사용했지만, 말라리아의 내성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약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물의 흐름 조절과 철저한 배수가 곤충번식지 제거와 해충박멸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중되었다. 실제로 그런 복합적인 조치들만으로도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말라리아를 제거하는 데 성공해 왔다. 하지만 말라리아 통제는 특별히 DDT를 연상시켰다. DDT는 스위스의 시바-가이기(Ciba-Geigy)사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대규모로 사용한 것은 미국인들이었다. 그들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발진 티푸스를 전파하는 이를 잡기 위해 DDT를 사용했다. DDT 발명가 폴 뮐러(Paul Müller) 박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DT보다 덜 사용되기는 했지만, 영국인들은 강력한 신종 살충제 가멕세인(Gammexane)을 개발했다. 1944년, 태평양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최고의 승리 중 하나’를 이루었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이는 '아노펠레스(anopheles) 모기를 상대로 과학과 규율(discipline)로써 거둔 승리‘였다. 이전까지 말라리아로 인해 전장보다 열 배나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이런 발표가 놀랄만한 것도 아니다. 전후에 DDT는 말라리아 모기 박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DDT가 제공했던 것은 말라리아 박멸이 아니라, 모기를 죽이는 싸고 빠른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장기간에 걸친 세심한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품이 적게 드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감독 시스템이 느슨하고 또 더욱 느슨해지자, 바로 그와 같은 깊이 없는 개입이 말라리아가 살아남고 나중에는 퍼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1950년대 후반 사하라 사막 이남을 제외한 말라리아가 여전히 발견되던 지역에서는 말라리아를 박멸시키기 위한 전지구적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DDT를 채운 '분무기 전쟁(spraygun war)'을 근간으로 삼았지만,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후반에는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1951년 7,5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 중 800,000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1953년 시작된 DDT 분사와 일군의 방역원(the army of spraymen)들 덕에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1961년 50,000건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새로운 발병을 막을 수도 없고 다스릴 수도 없어서, 나중에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1965년까지 발병 환자는 100,000명으로 두 배가 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는 순식간에 늘어나 1970년대 후반에는 약 5천만 명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그 결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적의 살충제에 자리를 빼앗겼던 구식 전술을 부활시켰다. ... 녹슬어 버린 무기 전체가 다시 등장했다.’ 구식 약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고 변형된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야 했고 모기장이 다시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냉혹한 지표인 살인자 목록에서 자동차는 말라리아 바로 뒤에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차 사고로 유럽 전체보다 세 배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다. (이는 연간 백만 명 가량인 전세계 사망자 중 거의 200,000명에 해당한다.) 아프리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한 대당 사망률은 부자 나라보다 40배나 더 많다. 유럽보다 아프리카에 차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동차들이 유럽의 부자 나라보다 인구 대비 거의 세 배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케냐에서 길거리 차 사고는 말라리아, HIV/AIDS에 이어 세 번째 사망 원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처럼 말라리아와 자동차를 연결시키는 것은 기술적 시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이제 눈을 돌리려는 것이 바로 그 토픽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가 증가하는 것은 아프리카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가 아니라, 구식의 모형에서는 예견치 못했던 새로운 미래로 들어가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관련 항목

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2015).

  1. 중요성 (가장 중요한 것) / 발췌 : 말라리아
  2. 시간 (낡은 것과 새로운 것)
  3. 생산 (황금시대의 작은 기술들)
  4. 유지관리 (정비사의 탄생)
  5. 국가 (‘우리나라’의 기술)
  6. 전쟁 (20세기 전쟁의 비극)
  7. 살생 (살생의 시대) / 발췌 : 살생에서의 혁신
  8. 발명 (발명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