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의 전자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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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10월 1일, 데이비와 패러데이도 외르스테드의 발견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외르스테드의 소식을 들은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외르스테드 및 앙페르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현상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분야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보자들이었다.

데이비가 보기에 외르스테드의 실험은 불명료하다고 생각했다. 외르스테드는 도선 내의 전기적 충돌에 의한 도선 주변의 나선형 원형 작용을 보고했지만, 도선 내의 전기적 충돌을 물론이고 도선 주변의 원형 작용도 만족스럽게 보여주진 못했었다. 그는 단지 도선 위와 아래에 놓인 자침이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을 관찰했을 뿐이었다. 즉, 외르스테드가 실험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는 효과의 원인은 물론이고, 효과 자체도 정확하게 묘사하기 힘들었다. 보다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선 데이비가 한 일은 눕혀 있던 도선을 수직으로 세운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도선을 수평으로 눕혀놓고 할 때보다 자침 활용이 훨씬 자유로워진다. 데이비는 도선 주변을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실에 매달린 자침이 취하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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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남은 것은 이 관찰을 보기 좋게 또는 알기 쉽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침의 운동 방식은 빼고, 자침이 결과적으로 정렬하는 상태들만 모아 하나의 그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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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위치에 따른 자침의 정렬상태가 하나의 종이에 담기고 나니, 전류와 자침 사이의 관계는 한층 더 가시화됐다. 그림 속의 자침들은 함께 모여 원을 그렸다.

물론 이러한 데이비의 관찰과 표상기법은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그는 미묘하고 불안정했던 현상에 적어도 확실한 구조 또는 질서를 부여하였고, 결국 현상을 고정시켰다. 이렇게 고정된 현상은 사소한 공격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패러데이는 1821년 익명으로 기고한 “전자기에 관한 개략적 역사”에서 전자기 현상을 묘사할 때, 데이비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그는 축에 두꺼운 종이 원판을 꽂고서, 그 원판에는 자침을 대신하는 화살표들을 그려 넣었다

데이비의 원판

. 화살표는 자침의 대신하는 아주 좋은 도구였는데, 선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침의 극성이라는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화살표의 머리는 자침의 N극을 뜻했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많은 화살표가 필요 없어졌는데, 자기 작용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코르크 원통 측면에 하나만 그려 넣으면 충분했다

패러데이의 코르크

. 코르크 원통의 바닥과 윗면에는 P와 N이 적혀 있었는데, P는 전지의 +극, N은 -극을 뜻했다. 패러데이는 전류의 자기 작용의 규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셈이다. 오른쪽 원통처럼 전지의 +극과 -극을 연결하는 도선 주위에는 원통 측면에 그려진 화살표 방향의 자기 작용이 생긴다.

데이비의 원판과 패러데이의 코르크는 전자기 작용의 규칙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기억보조장치(mnemonic device)’라 할 수 있다. 즉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그래서 본인들도 기억하기도 어려운 현상의 규칙을 바로 그림이나 물체에 새겨 넣었던 것이다. 1821년 가을이 되었을 무렵,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아직 전자기학의 고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조금씩 실험을 변경할 때마다 이 장난감 같은 장치를 옆에 놓고서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실험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 썼을 것이다. 이는 앙페르와 같은 당대의 학자들도 비슷한 장치를 개발했으며, 오늘날의 학생들도 비슷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학생들은 패러데이의 코르크보다 더 쓰기 좋고 휴대하기 편한 ‘기억보조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바로 오른손이다. 전류의 방향으로 오른손의 엄지를 댄 후, 나머지 손가락을 감싸기만 하면 도선 주변의 자침이 어느 방향으로 정렬할지 바로 알아낼 수 있다.

이제 실험을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데이비와 패러데이의 ‘기억보조장치’를 도움으로 전자기 현상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는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실험을 직접 수행하지 못한 채 멀리서 구경해야 하는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왕립연구소의 스타 강사라는 그의 타이틀은 이를 꽤 중요한 고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실에 매단 자침이 가만히 두면 어떤 방향에서 멈출까 구경하는 것은 청중들에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실험자도 꽤나 고역일 것이다. 청중들에게 자침이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실험자는 팔이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조마조마할 것이다.

데이비에겐 뭔가 더 눈에 띄는 게 필요했다. 그는 도선이 철가루를 끌어당긴다는 앙페르와 아라고의 관찰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실험을 자기 방식으로 살짝 변경했는데, 수직으로 세운 도선에 판지를 꽂고 철가루를 뿌렸다. 전지와 연결한 후 판지를 살짝 쳤더니, 전류에 수직인 면에 도선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직선 도선 주위의 철가루 패턴

. 직접 원판 위에 본인이 그렸던 그림을, 철가루가 대신 그려준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보여주는 원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그리고 이것이 패러데이로 하여금 도선을 중심으로 자석을 회전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821년 9월에 만든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기는 원형 “운동”인 반편, 지금까지 데이비와 패러데이가 관찰한 것은 원형 “정렬”이었다. 사실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자침의 “운동”을 버리고 그 결과적인 “정렬상태”만 남김으로써 원을 만들어냈다. 아직까지 데이비와 패러데이의 원은 정지해 있었다.

데이비의 가설

운동을 고려할 경우 전자기 현상은 좀 더 복잡했다. 전류가 흐르는 도선은 철가루를 끌어당겼으며(앙페르), 자침의 위치에 따라 자침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쳐내기도 했다(외르스테드). 데이비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매우 강력한 전지를 사용해 도선 아래에 놓인 자침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는 전류를 흘릴 때마다 자침의 한쪽 극이 딸려 올라가 도선에 척 달라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수직으로 세운 도선의 한 편에 자침을 가까이 가져가면 자침이 밀려나지만, 다른 편에 가져가면 잡아당기는 것도 관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첫째, 도선에 달라붙거나 반발하는 것을 볼 때, 도선 자체가 일시적으로 자석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둘째, 도선 주위의 자침이 원형으로 정렬하는 모습을 볼 때, “도선을 둘러싼 일종의 자기 회전”을 생각해볼 만하다. 셋째, 이 가설은 도선과 자침 사이의 인력/척력 규칙을 설명해준다. 넷째, 도선과 자침 사이의 인력/척력은 다시 자침의 원형 정렬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 어떻게?

오른쪽 그림은 데이비가 생각을 재구성한 그림

데이비의 원형 자기 가설

으로, 세로로 세워진 도선을 위에서 내려다본 단면이다. 지금 전류는 종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에 따라 도선 주위에 자기가 회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첫 번째 설정처럼, 데이비가 생각한 자기 회전과 “같은 방향”으로 자침을 도선에 가까이 가져가면, 자침은 척력을 받는다. 반대로, 자기 회전과 “반대 방향”으로 자침을 가져가면, 자침은 인력을 받는다. 그는 도선과 자침 사이에 벌어지는 현상을, 막대자석 두 개를 가로로 가까이 할 때 벌어지는 상황으로 유비하여 이해하고 있었다(그림).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자침의 원형 정렬도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첫 번째 그림에서, 자침을 위 아래로 조정하여 N극이나 S극을 도선에 가까이 하면 극이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침이 원주 방향으로 정렬하게 된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자침을 위아래로 조정하여 N극이나 S극을 도선에 가까이하면 극이 도선에 가까이 가면서 자침이 도선에 붙어버리거나, 도선에 붙지 않는 한 자침은 계속 돌아 첫 번째 그림의 정렬 상태에 진입하게 되고, 결국 원주 방향으로 정렬하게 된다. 결국, 데이비는 전류와 자침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전류 주위의 원형 자기와 일반 자석 사이의 인력과 척력으로 환원했던 것이다. 1821년 “전자기에 관한 개략적 역사”를 쓴 패러데이도 데이비를 따라 도선과 자침 사이의 인력/척력을 가지고 모든 현상을 설명했었다.

그러나 패러데이는 도선 주변의 완벽한 원형 이미지와 도선과 자침 사이의 인력/척력 설명 사이에 있는 미묘한 긴장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한 일은 데이비나 외르스테드가 했던 실험을 조심스럽게 다시 해보는 것이었다. 패러데이의 세심한 관찰 결과, 놀랍게도 __번 그림은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것으로 밝혀졌는데, (a)의 경우, 자침의 양쪽 극은 데이비의 관찰에서처럼 척력을 받았지만, 자침의 가운데 부분은 오히려 인력을 받았다. 또 (b)의 경우, 자침의 양쪽 극은 모두 인력을 받는 것이 맞지만, 자침의 가운데 부분은 오히려 척력을 받았다.

참고 문헌

  • Gooding, David (1985), "'In Nature's School': Faraday as an Experimentalist", in David Gooding and Frank A. J. L. James (eds.), Faraday Rediscovered: Essays on the Life and Work of Michael Faraday, 1791-1867, London: Macmillan, 105-135.
  • Williams, L. Pearce (1985), "Faraday and Ampère: A Critical Dialogue", in David Gooding and Frank A. J. L. James (eds.), Faraday Rediscovered: Essays on the Life and Work of Michael Faraday, 1791-1867, London: Macmillan, 8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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