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논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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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사철 강규태입니다. 번역문을 읽다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을 원문과 대조해 수정했습니다. 수정 사항들 중에 특히 내용 이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수정이 잘 되었는지, 더 나은 번역이 있을지 논의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토론 문서를 만듭니다. 원문/수정 전 번역/수정 후 번역/수정 이유를 써 놓았습니다.

  • 토론을 위해 남긴 구절 뒤에 ~~~~를 붙이면 자동으로 아이디와 작성 시각이 기록됩니다. Zolaist (토론) 2019년 11월 5일 (화) 10:11 (KST)
  • *를 문단 앞에 붙이면 자동으로 목록을 만들어냅니다.

1절

  • 원문: It would mean that the philosophical position of an earlier scientific realist such as C. S. Peirce had been refuted by empirical findings. I do not suppose that scientific realists wish to be committed, as such, even to the claim that science will arrive in due time at theories true in all respects.
    • 수정 전: 이[이러한 정식화의 소박함]는 찰스 샌더스 퍼스(C. S. Peirce)와 같은 초기 과학적 실재론자의 철학적 입장이 경험적 발견들에 의해 반박되어 왔음을 뜻한다. 나는 과학이 언젠가는 모든 측면에서 참인 이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 실재론자들이 동의할 거라 가정하지 않는다.
    • 수정 후: 이[이러한 정식화의 소박함]는 찰스 샌더스 퍼스(C. S. Peirce)와 같은 초기 과학적 실재론자의 철학적 입장이 경험적 발견들에 의해 반박되어 왔음을 뜻한다. 심지어 나는 과학이 언젠가는 모든 측면에서 참인 이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더 약한] 주장에 대해서 과학적 실재론자들이 동의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 수정 이유: 앞 문장은 "현재의 과학 이론들이 참이다"라는, 실재론에 대한 소박한 정식화는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 문장은 실재론을 더 약하게 정식화해서 "과학이 현재에는 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든 측면에서 참인 이론에 도달할 것이다"라고 하더라도 실재론자들조차 이 정식화를 받아들이지 않을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정 전에는 마치 이 두 문장이 독립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이고 원문에도 'even'이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이에 맞춰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봤습니다.
    • even을 살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더 약한]과 같은 구절까지 집어넣는 것은 지나친 친절이 아닐까요? Zolaist (토론) 2019년 11월 5일 (화) 10:08 (KST)
  • 원문: None of these were intended as definitions. But they show I think that truth must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ulation of the basic realist position. They also show that the formulation must incorporate an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t is to accept or hold a theory. I shall now propose such a formulation, which seems to me to make sense of the above remarks, and also renders intelligible the reasoning ?t>y realists which I shall examine below—without burdening them with more than the minimum required for this.
    • 수정 전: 이것들이 정의로서 의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들은 참이 기본적인 실재론적 입장을 정식화하는 데 틀림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물음에 그 정식화가 답변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제 나는 내가 보기에 앞서의 언급들[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다양한 정식화들]을 이치에 닿게 해주는 동시에 아래에서 검토하려고 하는 실재론자들의 추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정식화를 제안할 것이다.
    • 수정 후: 이것들이 정의로서 의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들은 참이 기본적인 실재론적 입장을 정식화하는 데 틀림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식화에는 한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제 나는 내가 보기에 앞서의 언급들[정식화가 어떠해야 한다는 언급들]을 이치에 닿게 해주는 동시에 아래에서 검토하려고 하는 실재론자들의 추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정식화를 제안할 것이다.
    • 수정 이유: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여러 정식화들을 검토하면서 올바른 정식화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찾아내는 맥락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이론을 수용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올바른 정식화가 포함해야(must incorporate) 한다는 점을 퍼트넘이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문의 표현상으로 보나("must incorporate") 내용의 맥락상으로 보나 오역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뒷 문장에서는 자신이 새로운 정식화를 제시하겠다는데, 그 정식화가 기존의 정식화들을 "이치에 닿게" 해준다는 것은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제시할 새로운 정식화가 기존의 정식화들에서 찾아낸, 올바른 정식화가 어떠해야 한다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추가 수정 제안 : 이것들이 정의로서 의도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들은 참이 기본적인 실재론적 입장을 정식화하는 데 틀림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들은 그 정식화에 한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제 나는 내가 보기에 앞서의 언급들[정식화가 어떠해야 한다는 언급들]을 이치에 닿게 해주는 동시에 아래에서 검토하려고 하는 실재론자들의 추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정식화를 제안할 것이다. Zolaist (토론) 2020년 3월 11일 (수) 20:08 (KST)
  • 원문: The decision to rule out all but literal construals of the language of science, rules out those forms of anti-realism known as positivism and instrumentalism. First, on a literal construal, the apparent statements of science really are statements, capable of being true or false.
    • 수정 전: 과학의 언어에 대한 문자적 해석 외에 어떤 것도 배제하기로 한 결정은 실증주의와 도구주의로 알려진 반실재론의 형태들을 배제한다. 첫째, 문자적 해석 하에서, 겉으로 드러난 과학의 진술들은 참이나 거짓이 되는 것이 가능한 진술이다.
    • 수정 후: 과학의 언어에 대한 문자적 해석 외에 어떤 것도 배제하기로 한 결정은 실증주의와 도구주의로 알려진 반실재론의 형태들을 배제한다. 첫째, 문자적 해석 하에서, 겉보기에 진술처럼 보이는 과학의 진술들은 정말로 참이나 거짓이 되는 것이 가능한 진술들이다.
    • 수정 이유: 구성적 경험론을 정식화할 때 과학의 진술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맥락입니다. 여기서 '진술'이라는 용어가 진리값을 갖는 문장을 뜻하고, 반 프라센은 과학의 문장들이 진리치를 갖는 진술들같아 보이는데,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apparent'를 '겉으로 드러난'이 아니라 '겉보기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만족합니다. Zolaist (토론) 2020년 3월 11일 (수) 20:08 (KST)
  • 원문: The distinction I have drawn between realism and anti-realism, in so far as it pertains to acceptance, concerns only how much belief is involved therejn. Acceptance of theories (whether full, tentative, to a degree, etc.) is a phenomenon of scientific activity which clearly involves more than belief.
    • 수정 전: [이론의] 수용과 관련하여 내가 실재론과 반실재론 사이에 설정한 구분은 거기에 믿음이 얼마나 관여하는지만을 고려한다. 이론의 수용은 (완전한 수용이든지, 잠정적인 수용이든, 일정 정도의 수용이든) 믿음을 넘어선 무언가를 분명히 요구하는 과학 활동의 한 현상이다.
    • 수정 후: [이론의] 수용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내가 실재론과 반실재론 사이에 설정한 구분은 거기에 믿음이 얼마나 관여하는지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론의 수용은 (완전한 수용이든지, 잠정적인 수용이든, 일정 정도의 수용이든) 믿음을 넘어선 무언가를 분명히 요구하는 과학 활동의 한 현상이다.
    • 수정 이유: 수정 전의 두 문장을 보면 앞 문장에서는 수용과 관련하여 실재론/반실재론의 구분에 믿음만 관여한다고 했다가, 뒷 문장에서는 믿음을 넘어선 무언가를 고려한다고 해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문에는 첫 문장이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으므로('The distinction I have drawn') 반 프라센은 지금까지는 믿음만 고려했는데 실제로는 믿음 이외의 것도 관여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완료형 문장을 매끄럽게 옮기기 어려워 '지금까지'를, 뒷 문장에 '[그러나 실제로는]'을 삽입했습니다.
  • 원문: If the acceptance is at all strong, it is exhibited in the person's assumption of the role of explainer, in his willingness to answer questions ex cathedra. Even if you do not accept a theory, you can engage in discourse in a context in which language use is guided by that theory—but acceptance produces such contexts. There are similarities in all of this to ideological commitment. A commitment is of course not true or false : The confidence exhibited is that it will be vindicated.
    • 수정 전: ⋯ 당신은 한 이론을 수용하지 않고도 그 이론이 인도하는 언어 사용의 맥락에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 물론 수용은 그러한 맥락을 낳는다. 이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적 다짐과 유사한 면이 있다. 물론 결단은 참이나 거짓이 아닌데, 그 다짐은 그 이론이 [언젠가] 정당화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드러날 뿐이다.
    • 수정 후: 만약 강하게 수용한다면, 그것은 설명하는 사람의 역할에 대한 그 사람의 가정에서, 문제들에 권위를 갖고 답하려는 그의 의지에서 드러날 것이다. 당신은 한 이론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그 이론이 인도하는 언어 사용의 맥락에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 그러나 수용이 그러한 맥락을 낳는다. 이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적 다짐과 유사한 면이 있다. 물론 다짐은 참이나 거짓이 아니며, [다짐에 대한] 자신감은 그 다짐이 정당화 되리라는 것이다.
    • 수정 이유: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이해한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일단 '만약 강하게 수용한다면, 그것은 설명하는 사람의 역할에 대한 그 사람의 가정에서, 문제들에 권위를 갖고 답하려는 그의 의지에서 드러날 것이다.'라는 문장은 수정 전에는 없었는데 번역하여 삽입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이론을 강하게 수용했다는 점이, 그 사람이 그 이론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번역했습니다.
    • 그 다음 문장은 이론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그 이론의 언어 사용 맥락에서 논의에 참여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러한 맥락을 애초에 만들어내는 것은 수용이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마지막 문장에서 수정 전에는 'commitment'가 '결단'으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앞에서의 번역어와 일치시키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정 전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번역했습니다. 'it will be vindicated'의 'it'이 수정 전에는 수용한 이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되었는데, 저는 다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번역했습니다.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 다짐이라는 건 참/거짓을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럼 한 이론을 선택하는 다짐에 대한 "자신감"이 그 다짐이 참이라는 점에서 나올 수는 없다. → 그 자신감은 그러한 다짐이 언젠가는 정당화될 것이라고, 즉 그 이론 혹은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연구가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3절

원문: In this way I can certainly account for the many instances in which a scientist appears to argue for the acceptance of a theory or hypothesis, on the basis of its explanatory success.

수정 전: 이로써 나는 과학자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사례들을 그 이론의 설명적 성공에 기초하여 확실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수정 후: 이런 방식으로 나는 한 과학자가 한 이론 혹은 가설의 설명적 성공을 기반으로 그것의 수용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다.

수정 이유: 'on the basis of its explanatory success'가 무엇을 수식하는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과학자가 수용에 찬성하는 이유"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았고, 수정 전에는 "과학자가 수용에 찬성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고 번역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정 전의 방식으로 이 문장을 이해하면, 반 프라센이 사소한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정 전 문장에 따르면 반 프라센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자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사례들'이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당연히 과학자는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과학자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사례들'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므로, 왜 설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제가 번역한 대로 이해하면, 반 프라센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자가 "설명적 성공"에 기반을 두고 수용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됩니다. 즉, 왜 다른 것이 아닌 "설명적 성공"에 기반을 두고 수용에 찬성하는지가 쟁점이 되므로, 수정 전과 달리 반 프라센의 설명이 사소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6절

원문: rate of dissolution

수정 전: 용해 비율

수정 후: 용해 속도

수정 이유: '용해 속도'가 올바른 번역입니다. '용해 비율'이라고 번역하면 스마트의 사고 실험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문: the point is that the true demand on science is not for explanation as such, but for imaginative pictures which have a hope of suggesting new statements of observable regularities and of correcting old ones.

수정 전: 과학에 부과된 참된 요구는 흔히 얘기되는 설명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관찰가능한 규칙성에 대한 새로운 진술들을 제안하고 과거의 것들을 수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상상의 그림에 대한 요구이다.

수정 후: 과학에 부과된 참된 요구는 흔히 얘기되는 설명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관찰가능한 규칙성에 대한 새로운 진술들을 제안하고 과거의 것들을 수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창조적인 묘사에 대한 요구이다.

수정 이유: 'imaginative'는 '상상의'라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적인', '창의적인' 정도의 의미입니다. 반 프라센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의 이론적 영역이 설명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영역에 "새로운 진술들을 제안하고 과거의 것들을 수정"하는, 즉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살리기 위해 '창조적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7절

원문: the positive argument for realism is that it is the only philosophy that doesn't make the success of science a miracle.

수정 전: 실재론을 옹호하는 이 논변에 따르면, 그것[실재론]은 과학의 성공을 기적으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철학이다.

수정 후: 실재론을 옹호하는 적극적인(positive) 논변은 그것[실재론]이 과학의 성공을 기적으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철학이라는 것이다.

수정 이유: 'positive argument'는 상대방의 입장을 반론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논증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되는 논증을 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점을 번역에서도 살리기 위해 수정했습니다. 직역해서 '긍정적인'이라고 번역하거나, 아니면 '직접적인'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듯한데, 과사철 정원호 학형의 논문 제목에 'negative'의 의미로 '소극적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생각나 '적극적인'으로 번역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