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인지적, 사회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861 바이트 추가됨 ,  2021년 8월 1일 (일)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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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이론 ''T''가 범위의 덕목 중 하나인 ''v''를 보이는 이론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T''는 많은 귀결들을 가질 것이고, 그 귀결들 중 무한히 많은 것들은 ''v''를 결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넓은 범위의 진술의 논리적 귀결들 중 다수는 그러한 범위를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결들 중 하나를 ''c''<sub>1</sub>이라고 불러 보자. 이제 ''T''가 참이라면, ''c''<sub>1</sub> 역시 참이어야 한다. 만약 ''T''가 매우 개연적이거나 매우 그럴듯하다면, ''c''<sub>1</sub>은 더욱더 개연적이거나 더욱 그럴듯해야 한다. 요컨대, 함축의 진리-보존적 성격 덕분에, ''c''<sub>1</sub>은 필연적으로 ''T''의 모든 인식적 덕목을 가지면서도 ''v''를 가지진 못할 것이다. 결국 ''v''는 인식적 덕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c''<sub>1</sub>처럼) ''v''를 가지지 못한 진술들이 적어도 ''v''를 보이는 ''T''와 같은 진술만큼은 인식적으로 단단하기 때문이다.}}
{{인용|이론 ''T''가 범위의 덕목 중 하나인 ''v''를 보이는 이론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T''는 많은 귀결들을 가질 것이고, 그 귀결들 중 무한히 많은 것들은 ''v''를 결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넓은 범위의 진술의 논리적 귀결들 중 다수는 그러한 범위를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결들 중 하나를 ''c''<sub>1</sub>이라고 불러 보자. 이제 ''T''가 참이라면, ''c''<sub>1</sub> 역시 참이어야 한다. 만약 ''T''가 매우 개연적이거나 매우 그럴듯하다면, ''c''<sub>1</sub>은 더욱더 개연적이거나 더욱 그럴듯해야 한다. 요컨대, 함축의 진리-보존적 성격 덕분에, ''c''<sub>1</sub>은 필연적으로 ''T''의 모든 인식적 덕목을 가지면서도 ''v''를 가지진 못할 것이다. 결국 ''v''는 인식적 덕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c''<sub>1</sub>처럼) ''v''를 가지지 못한 진술들이 적어도 ''v''를 보이는 ''T''와 같은 진술만큼은 인식적으로 단단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인식론자들을 빼면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가치들이 과학의 동력을 제공한다거나 "단지 미적인" 잣대가 [과학을]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아니다. 그것이 정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학자들이 좋은 과학 이론에 대해 이론의 참에 관한 고려를 훨씬 넘어서는 것들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인식론자들을 빼면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가치들이 과학의 동력을 제공한다거나 "단지 미적인" 잣대가 [과학을]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아니다. 그것이 정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학자들이 좋은 과학 이론에 대해 이론의 참에 관한 고려를 훨씬 넘어서는 것들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score)에 대한 의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과연 어떤 과학자가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모든 진술을 수용가능한 이론으로 인정할지 자문해보라. 과학자들은 참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하지도 모른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론 평가에서 적어도 참 만큼 중요해 보이는 이론의 다른 덕목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에 의해 이것들은 인식적 덕목일 수 없다. 왜냐하면 거짓이지만 그러한 덕목들을 보이는 진술도 많고 참이지만 그러한 덕목을 가지지 못한 진술도 많기 때문이다. 정의에 의해, 그것들은 인식적 의제(agenda)에 의해 추동되는 소위 과학의 합리적 재구성에서 설 자리가 없다.


(추후 완성 예정)
(추후 완성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