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784
번
imported>Zolaist |
잔글 (→2) |
||
63번째 줄: | 63번째 줄: | ||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이론들의 도움으로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확실히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만족시켰다. 비록 당시의 측정 도구로는 자신 있게 그 이론에 대한 시험의 결과를 단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이론들의 도움으로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확실히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만족시켰다. 비록 당시의 측정 도구로는 자신 있게 그 이론에 대한 시험의 결과를 단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 ||
점성술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점성가들은 자신이 입증 증거로 믿고 있는 것에 깊이 심취했으며 잘못 이끌렸다. 또 그에 못지않게 불리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보다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반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론의 시험 가능성을 파기해 버렸다. 모호하게 예측함으로써 그 예측들이 거의 실패할 수 없도록, 따라서 논박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 점성술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점성가들은 자신이 입증 증거로 믿고 있는 것에 깊이 심취했으며 잘못 이끌렸다. 또 그에 못지않게 불리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보다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반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론의 시험 가능성을 파기해 버렸다. 모호하게 예측함으로써 그 예측들이 거의 실패할 수 없도록, 따라서 논박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 ||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 또한, 창시자들과 추종자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점쟁이의 방식을 채택했다. 초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예컨대, ‘다가오는 사회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격 분석에서) 그들의 예측은 시험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반증되었다.<ref>예컨대, 나의 저서 {{책|열린 사회와 그 적들}}, 15장 3절 및 주 13-14 참조.</ref> 그러나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그 논박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론과 증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이 양자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이론을 논박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박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채택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이론에 ‘규약주의적 왜곡’을 가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들은 숱하게 선전해 댄 그들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을 파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 또한, 창시자들과 추종자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점쟁이의 방식을 채택했다. 초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예컨대, ‘다가오는 사회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격 분석에서) 그들의 예측은 시험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반증되었다.<ref>예컨대, 나의 저서 {{책|열린 사회와 그 적들}}, 15장 3절 및 주 13-14 참조.</ref> 그러나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그 논박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론과 증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이 양자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이론을 논박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박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채택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이론에 ‘규약주의적 왜곡’을 가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들은 숱하게 선전해 댄 그들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을 파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 ||
나머지 두 가지의 정신분석 이론은 다른 부류에 속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시험 불가능하며 논박 불가능하다. 그 이론들과 모순될 수 있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어떤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시험 가능한 심리학에서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이 소박하게도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해 준다고 믿고 있는 ‘임상 관찰’은 점성가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입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ref>{{'|임상 관찰}}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관찰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의한 해석'''이다. 이 이유만 가지고서는 그러한 관찰이 관찰을 해석하는 이론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지는 시험을 통한 관찰({{'|논박의 시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논박의 기준'''을 미리 설정해야 한다. 즉, 어떠한 관찰 가능한 사태를 실제로 관찰했을 때, 이론이 논박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ref> 또한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이드에 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올림포스 신화에서 수집한 호메로스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과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 나머지 두 가지의 정신분석 이론은 다른 부류에 속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시험 불가능하며 논박 불가능하다. 그 이론들과 모순될 수 있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어떤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시험 가능한 심리학에서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이 소박하게도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해 준다고 믿고 있는 ‘임상 관찰’은 점성가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입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ref>{{'|임상 관찰}}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관찰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의한 해석'''이다. 이 이유만 가지고서는 그러한 관찰이 관찰을 해석하는 이론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지는 시험을 통한 관찰({{'|논박의 시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논박의 기준'''을 미리 설정해야 한다. 즉, 어떠한 관찰 가능한 사태를 실제로 관찰했을 때, 이론이 논박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ref> 또한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이드에 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올림포스 신화에서 수집한 호메로스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과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이 이론들은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는 있지만, 신화 형식으로 된 기술이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제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시험 가능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 ||
동시에 나는 그러한 신화들이 시험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 혹은 거의 모든 {{--}} 과학적 이론은 신화에서 유래하고, 신화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예견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엠페도클레스의 시행과 착오에 의한 진화론이나, 내부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한 차원을 덧붙이면 아인슈타인의 닫힌 우주가 되는, 불변하는 닫힌 우주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신화가 그 예들이다(아인슈타인의 공간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4차원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일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흔히 말하듯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으며 ‘무의미’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ref>지금은 전형적인 사이비 과학이 되어버린 점성술의 경우가 이 점을 예시해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그 밖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해서 뉴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은 잘못된 이유 — 즉 행성이 지상의({{'|달 아래의}}) 사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금은 인정을 받고 있는 주장 —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사실 뉴턴의 중력 이론, 특히 달에 의한 조석 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점성술적 전통의 산물이다. 뉴턴 자신은, 예컨대 {{'|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이 천상계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론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갈릴레오도 동일한 이유로 사실상 달에 의한 조석 이론에 반론을 펴고 있다. 케플러에 대한 그의 의심은 점성술에 대한 그의 의심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f>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발생론적 의미에서는 ‘관찰의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 동시에 나는 그러한 신화들이 시험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 혹은 거의 모든 {{--}} 과학적 이론은 신화에서 유래하고, 신화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예견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엠페도클레스의 시행과 착오에 의한 진화론이나, 내부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한 차원을 덧붙이면 아인슈타인의 닫힌 우주가 되는, 불변하는 닫힌 우주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신화가 그 예들이다(아인슈타인의 공간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4차원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일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흔히 말하듯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으며 ‘무의미’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ref>지금은 전형적인 사이비 과학이 되어버린 점성술의 경우가 이 점을 예시해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그 밖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해서 뉴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은 잘못된 이유 — 즉 행성이 지상의({{'|달 아래의}}) 사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금은 인정을 받고 있는 주장 —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사실 뉴턴의 중력 이론, 특히 달에 의한 조석 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점성술적 전통의 산물이다. 뉴턴 자신은, 예컨대 {{'|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이 천상계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론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갈릴레오도 동일한 이유로 사실상 달에 의한 조석 이론에 반론을 펴고 있다. 케플러에 대한 그의 의심은 점성술에 대한 그의 의심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f>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발생론적 의미에서는 ‘관찰의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 ||
따라서 내가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유의미성이나 중요성의 문제도 아니었고, 진리나 수용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 과학의 진술이나 진술 체계와, 그 외의 다른 모든 진술들 ―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고 있든지, 혹은 단순히 사이비 과학적이든지 간에 ― 사이에 (가능한 한) 하나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수년 후 ― 1928년이나 1929년이 틀림없을 텐데 — 나는 이 첫 번째 문제를 ‘'''[[구획 문제|구획의 문제]]'''’(''problem of demarcation'')라고 이름 붙였다.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이 구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진술 또는 진술들의 체계가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능한 관찰들과 또는 상상할 수 있는 관찰들과 상충할 수 있어야 한다. (끝) | 따라서 내가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유의미성이나 중요성의 문제도 아니었고, 진리나 수용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 과학의 진술이나 진술 체계와, 그 외의 다른 모든 진술들 ―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고 있든지, 혹은 단순히 사이비 과학적이든지 간에 ― 사이에 (가능한 한) 하나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수년 후 ― 1928년이나 1929년이 틀림없을 텐데 — 나는 이 첫 번째 문제를 ‘'''[[구획 문제|구획의 문제]]'''’(''problem of demarcation'')라고 이름 붙였다.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이 구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진술 또는 진술들의 체계가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능한 관찰들과 또는 상상할 수 있는 관찰들과 상충할 수 있어야 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