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추측과 논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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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이론들의 도움으로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확실히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만족시켰다. 비록 당시의 측정 도구로는 자신 있게 그 이론에 대한 시험의 결과를 단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이론들의 도움으로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확실히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만족시켰다. 비록 당시의 측정 도구로는 자신 있게 그 이론에 대한 시험의 결과를 단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점성술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점성가들은 자신이 입증 증거로 믿고 있는 것에 깊이 심취했으며 잘못 이끌렸다. 또 그에 못지않게 불리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보다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반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론의 시험 가능성을 파기해 버렸다. 모호하게 예측함으로써 그 예측들이 거의 실패할 수 없도록, 따라서 논박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점성술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점성가들은 자신이 입증 증거로 믿고 있는 것에 깊이 심취했으며 잘못 이끌렸다. 또 그에 못지않게 불리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보다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반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론의 시험 가능성을 파기해 버렸다. 모호하게 예측함으로써 그 예측들이 거의 실패할 수 없도록, 따라서 논박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 또한, 창시자들과 추종자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점쟁이의 방식을 채택했다. 초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예컨대, ‘다가오는 사회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격 분석에서) 그들의 예측은 시험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반증되었다.<ref>예컨대, 나의 저서 {{책|열린 사회와 그 적들}}, 15장 3절 및 주 13-14 참조.</ref> 그러나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그 논박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론과 증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이 양자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이론을 논박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박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채택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이론에 ‘규약주의적 왜곡’을 가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들은 숱하게 선전해 댄 그들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을 파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 또한, 창시자들과 추종자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점쟁이의 방식을 채택했다. 초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예컨대, ‘다가오는 사회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격 분석에서) 그들의 예측은 시험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반증되었다.<ref>예컨대, 나의 저서 {{책|열린 사회와 그 적들}}, 15장 3절 및 주 13-14 참조.</ref> 그러나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그 논박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론과 증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이 양자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이론을 논박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박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채택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이론에 ‘규약주의적 왜곡’을 가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들은 숱하게 선전해 댄 그들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을 파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의 정신분석 이론은 다른 부류에 속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시험 불가능하며 논박 불가능하다. 그 이론들과 모순될 수 있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어떤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시험 가능한 심리학에서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이 소박하게도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해 준다고 믿고 있는 ‘임상 관찰’은 점성가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입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ref>{{'|임상 관찰}}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관찰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의한 해석'''이다. 이 이유만 가지고서는 그러한 관찰이 관찰을 해석하는 이론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지는 시험을 통한 관찰({{'|논박의 시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논박의 기준'''을 미리 설정해야 한다. 즉, 어떠한 관찰 가능한 사태를 실제로 관찰했을 때, 이론이 논박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ref> 또한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이드에 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올림포스 신화에서 수집한 호메로스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과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이 이론들은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는 있지만, 신화 형식으로 된 기술이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제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시험 가능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나머지 두 가지의 정신분석 이론은 다른 부류에 속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시험 불가능하며 논박 불가능하다. 그 이론들과 모순될 수 있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어떤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시험 가능한 심리학에서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이 소박하게도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해 준다고 믿고 있는 ‘임상 관찰’은 점성가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입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ref>{{'|임상 관찰}}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관찰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의한 해석'''이다. 이 이유만 가지고서는 그러한 관찰이 관찰을 해석하는 이론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지는 시험을 통한 관찰({{'|논박의 시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논박의 기준'''을 미리 설정해야 한다. 즉, 어떠한 관찰 가능한 사태를 실제로 관찰했을 때, 이론이 논박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ref> 또한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이드에 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올림포스 신화에서 수집한 호메로스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과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이 이론들은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는 있지만, 신화 형식으로 된 기술이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제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시험 가능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동시에 나는 그러한 신화들이 시험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 혹은 거의 모든 {{--}} 과학적 이론은 신화에서 유래하고, 신화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예견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엠페도클레스의 시행과 착오에 의한 진화론이나, 내부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한 차원을 덧붙이면 아인슈타인의 닫힌 우주가 되는, 불변하는 닫힌 우주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신화가 그 예들이다(아인슈타인의 공간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4차원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일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흔히 말하듯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으며 ‘무의미’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ref>지금은 전형적인 사이비 과학이 되어버린 점성술의 경우가 이 점을 예시해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그 밖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해서 뉴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은 잘못된 이유 — 즉 행성이 지상의({{'|달 아래의}}) 사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금은 인정을 받고 있는 주장 —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사실 뉴턴의 중력 이론, 특히 달에 의한 조석 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점성술적 전통의 산물이다. 뉴턴 자신은, 예컨대 {{'|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이 천상계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론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갈릴레오도 동일한 이유로 사실상 달에 의한 조석 이론에 반론을 펴고 있다. 케플러에 대한 그의 의심은 점성술에 대한 그의 의심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f>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발생론적 의미에서는 ‘관찰의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동시에 나는 그러한 신화들이 시험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 혹은 거의 모든 {{--}} 과학적 이론은 신화에서 유래하고, 신화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예견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엠페도클레스의 시행과 착오에 의한 진화론이나, 내부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한 차원을 덧붙이면 아인슈타인의 닫힌 우주가 되는, 불변하는 닫힌 우주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신화가 그 예들이다(아인슈타인의 공간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4차원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일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흔히 말하듯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으며 ‘무의미’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ref>지금은 전형적인 사이비 과학이 되어버린 점성술의 경우가 이 점을 예시해 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그 밖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해서 뉴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은 잘못된 이유 — 즉 행성이 지상의({{'|달 아래의}}) 사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금은 인정을 받고 있는 주장 —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사실 뉴턴의 중력 이론, 특히 달에 의한 조석 이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점성술적 전통의 산물이다. 뉴턴 자신은, 예컨대 {{'|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이 천상계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론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갈릴레오도 동일한 이유로 사실상 달에 의한 조석 이론에 반론을 펴고 있다. 케플러에 대한 그의 의심은 점성술에 대한 그의 의심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f>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발생론적 의미에서는 ‘관찰의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유의미성이나 중요성의 문제도 아니었고, 진리나 수용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 과학의 진술이나 진술 체계와, 그 외의 다른 모든 진술들 ―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고 있든지, 혹은 단순히 사이비 과학적이든지 간에 ― 사이에 (가능한 한) 하나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수년 후 ― 1928년이나 1929년이 틀림없을 텐데 — 나는 이 첫 번째 문제를 ‘'''[[구획 문제|구획의 문제]]'''’(''problem of demarcation'')라고 이름 붙였다.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이 구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진술 또는 진술들의 체계가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능한 관찰들과 또는 상상할 수 있는 관찰들과 상충할 수 있어야 한다. (끝)
따라서 내가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유의미성이나 중요성의 문제도 아니었고, 진리나 수용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 과학의 진술이나 진술 체계와, 그 외의 다른 모든 진술들 ―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고 있든지, 혹은 단순히 사이비 과학적이든지 간에 ― 사이에 (가능한 한) 하나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수년 후 ― 1928년이나 1929년이 틀림없을 텐데 — 나는 이 첫 번째 문제를 ‘'''[[구획 문제|구획의 문제]]'''’(''problem of demarcation'')라고 이름 붙였다.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이 구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진술 또는 진술들의 체계가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능한 관찰들과 또는 상상할 수 있는 관찰들과 상충할 수 있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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