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추측과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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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과학 : 추측과 논박", 『추측과 논박 I』 (민음사, 2001), 75-86쪽. (일부 오역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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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받아보고 그 청중이 동료 철학자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약간의 망설임과 고려 끝에, 아마도 여러분들은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들과, 내게 가 장 친숙한 이런 문제들의 전개에 관해 이야기해 주기를 더 원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예전에 시도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즉 ‘이론을 과학적인 것으로서 간주해야 할 시기는 언제인가’ 또는 ‘이론의 과학적인 성격이나 지위를 결정할 기준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와 처음으로 씨름하기 시작했던 1919년 가을 이후 과학 철학과 관련된 나의 작업에 관해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이론은 어느 때에 참인가’도 아니었고, ‘이론은 어느 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도 아니었다. 나의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과학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 오히려 사이비 과학이 우연히 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대답을 알고 있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수행되는, 귀납적인 경험적 방법에 의해 사이비 과학 ― 또는 ‘형이상학’ ― 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완전히 경험적인 방법과 비경험적 또는 사이비 경험적인 방법 ― 즉 관찰과 실험에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방법 ― 을 구별하는 것을 나의 문제로 정식화했다. 사이비 경험적 방법의 예로는 별자리와 사람의 일생을 관찰함으로써 방대한 경험적 증거를 가진 점성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문제는 점성술의 사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내 문제를 야기한 분위기와 내 문제에 자극을 준 사례들을 간략히 말하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무너진 후에 그 곳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세상은 혁명적인 표어와 사상들, 그리고 새롭고 과격한 이론으로 충만했다 나의 관심을 끈 이론들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밖의 세 가지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아들러의 이른바 ‘개인 심리학’이었다 이 이론들, 특히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지만) 통속적인 별의별 말이 많았으나, 나는 다행스럽게도 나를 이 이론의 연구로 끌어들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작은 학생 단체에 속했는데, 우리 모두는 1919년에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처음으로 입증한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찰 결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큰 경험이었으며, 나의 지적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내가 언급한 나머지 세 이론에 대해서도 폭넓은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우연히 아들러와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그가 사회 지도 상담소를 차려 비엔나의 노동 계급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사회 사업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이들 세 이론 ―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 이론, 정신분석, 개인 심리학 ― 에 더욱 불만을 품기 시작한 것은 1919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이 이론들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는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형식을 취했다.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개인 심리학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이론들이 물리 이론, 뉴턴의 이론, 특히 상대성 이론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대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당시 우리들 가운데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참임을 믿는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설명해야겠다. 이것은 나를 괴롭힌 것이 나머지 세 이론들이 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수리 물리학이 사회학, 심리학 이론의 형태보다 더 정확하다고 느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고심한 것은 적어도 그 단계에서는 참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정확성이나 측정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나의 고민은 이들 세 이론이 과학으로 자처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과학보다는 원시 신화와 공통점이 더 많으며, 천문학보다는 점성술에 더 가깝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및 아들러의 지지자였던 친구들이, 이 세 이론의 일련의 공통점들, 특히 그것들의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력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론들은 실제로 그것들 이 언급하는 영역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이론들에 대한 연구는 모두, 아직 연구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었던 새로운 진리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는, 지적인 전환이나 계시의 효과를 갖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눈을 뜨게 되면, 어디에서든지 그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세계는 이론의 검증들로 가득 차 있었다 ―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은 항상 그 이론을 입증하였다. 따라서 그 이론의 참은 명백한 것으로 보였다. 이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명백한 진리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그러한 진리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 관계에 반하거나, 아직 ‘분석되지 않은 채’ 치료를 원하고 있는 자신들의 억압된 충동 때문에 그것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문제의 이론들을 ‘검증’하는 관찰 결과인 끊임없는 입증 사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그 이론의 지지자들에 의해 항상 강조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신문의 지면을 넘길 때마다 그의 역사 해석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발견했다. 뉴스에서뿐만 아니라, 그 신문의 계급적 편향을 드러내는 보도 자료에서도, 그리고 특히 그 신문이 말하지 않은 것에서도, 또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봉하는 정신분석학자는 ‘임상 실험’에 의해 그들의 이론이 항상 검증되었다는 것을 역설했다. 아들러와 관련해서 나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1919년에 아들러의 이론에 특히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를 그에게 보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러는 그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에 관한 자신의 이론으로 그 사례를 분석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천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가 그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번까지 합쳐서, 당신의 경험은 천 하고도 한 번째가 되겠군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그의 이전의 관찰들이 이 새로운 관찰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매번의 경험은 그때마다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되었으며, 동시에 추가적인 입증 사례로 간주되었다. 나는 관찰이 무엇을 입증해 주는가 자문해 보았다. 결론은 하나의 사례가 그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 되었다. 왜냐하면 있을 법한 모든 사례가 아들러의 이론이나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을 인간 행위의 상반된 두 가지 예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 하나는 아이를 익사시키기 위해 아이를 물 속에 밀어넣는 사람의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사람의 행위 이다 이 두 경우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에 의해 똑같이 쉽게 해석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말하자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억압에 의해 고통 받고 있으며, 반면에 두 번째 사람은 그 승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러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자신도 감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입증해 보이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키는) 열등감에 의해 고통받고 있으며, 두 번째 사람도 (자신도 감히 아이를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입증해 보이려고 하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이론에 의해 해석되지 못할 인간 행위는 하나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이론은 항상 적합하며 항상 입증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사실이 그 이론들의 신봉자들의 눈에는 그 이론들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외견상 강력해 보이는 이 점이 사실은 그들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보면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전형적인 사례로서, 당시 에딩턴이 이끌던 관측반의 발견에 의해 입증되었던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생각해 보자. 그의 중력 이론은, 물체와 마찬가지 로 빛도 (태양과 같은) 무거운 물체에 의해 이끌려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외견상 태양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먼 항성에서 나오는 빛은, 그 항성이 태양에서 약간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는 방향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한다는 것이 계산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태양 가까이에 있는 별들은 태양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이동한 것처럼 보이고, 별들끼리도 약간씩 떨어져 이동한 것처럼 보이리라는 것이 계산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별들은 태양의 엄청난 밝기로 인해 낮에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다. 그러나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그 별들의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동일한 성좌를 야간에 촬영해서 두 개의 사진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예측된 결과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예측에 수반되는 위험성이다. 만약 관찰의 결과, 예측된 결과가 결정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단번에 논박된다. 그 이론은 관찰의 어떤 가능한 결과들과 양립 불가능하다. 실제로 그것은 아인슈타인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예기했던 결과들과 양립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앞서 기술했던 상황, 즉 문제되는 이론이 거의 모든 인간 행위와 양립 가능하고, 따라서 그 이론들을 검증하지 않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사실상 기술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이러한 고찰들을 통해 나는 1919-1920년 겨울에 다음과 같이 재정식화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렀다.

  1. 만약 우리가 입증을 구한다면, 거의 모든 이론들은 쉽게 입증되거나 검증될 수 있다.
  2. 입증은 위험한 예측들의 결과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문제되는 이론에 의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이론과 양립 불가능하여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건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입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좋은’ 과학적 이론은 모두 일종의 금지이다. 그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금지한다. 이론이 금지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이론은 더 좋은 이론이다.
  4. 가능한 어떤 사건에 의해서도 논박될 수 없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논박 불가능성은 (흔히 생각하듯이) 이론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5. 이론에 대한 참된 시험은 모두 이론을 반증하거나 논박하기 위한 시도이다. 시험 가능성은 반증 가능성이다. 그러나 시험 가능성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떤 이론들은 다른 이론들보다 시험 가능성이 더 높으며 논박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 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더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6. 이론에 대한 참된 시험의 결과가 아니라면, 입증의 증거는 가치가 없다. 이것은 입증의 증거가 이론을 반증하기 위한 진지하지만 실패로 끝난 시도로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7. 참된 시험이 가능한 이론들 중 어떤 것들은, 거짓임이 드러났을 때에도, 그 신봉자들에 의해 계속 지지를 받는다. 예컨대, 임시 방편의 보조 가설을 도입하거나, 임시 방편으로 논박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이론을 재해석하곤 한다. 그러한 절차는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론의 과학적인 지위를 파괴하거나 적어도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논박으로부터 그 이론을 구제할 수 없다(후에 나는 이 구제 조치를 ‘규약주의적 왜곡’ 또는 ‘규약주의적 전략’으로 기술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기준은 이론의 반증 가능성이나 논박 가능성, 또는 시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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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이론들의 도움으로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확실히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만족시켰다. 비록 당시의 측정 도구로는 자신 있게 그 이론에 대한 시험의 결과를 단언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점성술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점성가들은 자신이 입증 증거로 믿고 있는 것에 깊이 심취했으며 잘못 이끌렸다. 또 그에 못지않게 불리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보다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반증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이론의 시험 가능성을 파기해 버렸다. 모호하게 예측함으로써 그 예측들이 거의 실패할 수 없도록, 따라서 논박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전형적인 술책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론 또한, 창시자들과 추종자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점쟁이의 책략을 채택했다. 초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예컨대, ‘다가오는 사회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성격 분석에서) 그들의 예측은 시험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반증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은 그 논박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론과 증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이 양자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이론을 논박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박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채택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이론에 ‘규약주의적 왜곡’을 가했다. 결국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들은 숱하게 선전해 댄 그들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주장을 파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의 정신분석 이론은 다른 부류에 속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시험 불가능하며 논박 불가능하다. 그 이론들과 모순될 수 있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어떤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시험 가능한 심리학에서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이 소박하게도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해 준다고 믿고 있는 ‘임상 관찰’은 점성가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입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또한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이드에 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실제로 올림포스 신화에서 수집한 호메로스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과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이 이론들은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는 있지만, 신화 형식으로 된 기술이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제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시험 가능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동시에 나는 그러한 신화들은 개발될 수 있고, 시험 가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모든, 혹은 거의 모든 과학적 이론은 신화에서 유래하고, 신화는 과학적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예견을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엠페도클레스의 시행과 착오에 의한 진화론이나, 내부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한 차원을 덧붙이면 아인슈타인의 닫힌 우주가 되는, 불변하는 닫힌 우주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신화가 그 예들이다(아인슈타인의 공간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4차원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일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흔히 말하듯이)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으며 ‘무의미’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발생론적 의미에서는 ‘관찰의 결과’일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반증 가능성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유의미성이나 중요성의 문제도 아니었고, 진리나 수용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 과학의 진술이나 진술 체계와, 그 외의 다른 모든 진술들 ―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고 있든지, 혹은 단순히 사이비 과학적이든지 간에 ― 사이에 (가능한 한) 하나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수년 후 ― 1928년이나 1929년이 틀림없을 텐데 — 나는 이 첫 번째 문제를 ‘구획의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이 구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왜냐하면 그 기준이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진술 또는 진술 체계가 가능하거나 예상될 수 있는 관찰들과 상충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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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획 문제

어떤 분야나 이론이 사이비과학인지를 확인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있기는 있다. 그들의 작업이 보통 전문저널이 아닌 책으로 출판된다든가, NSF나 NAS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이론이나 연구활동이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되는 근거에도 관심이 있다. 과학철학자들의 구획 문제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진짜 과학이 가진 필요조건을 제안했는데, 그 필요조건은 일종의 과학/사이비과학의 구획 기준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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