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클라크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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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선복 엮음,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편지』 (철학과현실사, 2005).
- Alexander Koyre, “Leibnitz and Newton”
1차 논쟁
라이프니츠의 문제제기
- 영국에서의 신앙심 쇠퇴는 뉴턴 탓인가?
- 공간은 신의 (지각을 위한) 기관인가?
- 지속적으로 태엽을 감아주는 신은 과연 완전한가? 지적능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클라크의 답변
- 신앙심 쇠퇴는 사실이나, 그것은 유물론 탓임.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유물론을 배격하는 이론임. (무한한 진공의 공간에 비해 작은 양의 물질을 전제하기 때문)
- 공간은 신의 기관이 아니며 신은 그러한 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은 어디에나 직접적으로 존재함으로써 지각할 수 있다. 공간은 어디에나 있는 신의 sensorium과 같다.
- 신은 무질서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영원히 작동하는 시계를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신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2차 논쟁
라이프니츠의 문제제기
- ‘수학적’ 원리 자체가 유물론과 동일하며, 그 내용은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홉스의 주장과 같다. 한편, 중요한 문제는 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며, 형이상학은 ‘충족 이유의 원리’에 기초해야만 한다. (뉴턴의 수학적 원리의 내용이 그 원리에 위배된다는 함축)
- 스피노자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 뉴턴의 신은 예지력이 없는 Socinians의 신과 매우 유사하다.
-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도 진공을 인정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물질의 양이 뉴턴보다 많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더 많은 물질은 신의 지혜와 힘을 행사할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한다. 이는 진공이 불가능하다는 근거이다.
- Sensorium은 감각기관이다.
- 신의 지속적인 (보존) 활동은 필요하다. 다만 세계는 더이상 고칠 필요가 없도록 창조되었을 뿐이다. 반면, 신이 세계를 계속 고쳐야 한다면, 그는 초자연적인 방법, 즉 기적을 통해서(그러나 기적을 통한 자연현상의 설명은 불합리하다) 또는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다. [단, 기적적 방법과 자연적 방법 모두 신의 법칙적 지배 아래 있으며, 기적적이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입장에서 기적적으로 보이는 것일 뿐임] 이 경우 신은 자연에 속한 존재인 anima mundi가 된다.
클라크의 답변
- 수학적 원리는 절대 유물론과 동일하지 않으며 전혀 반대이다.
- 수학적 원리는 세계에 대한 순수 자연적인 설명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 충족 이유의 원리는 맞다. 그러나, 충족 이유가 단지 신의 의지일 수도 있다. (초기 위치 부여의 경우 신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
- 신은 intelligentia mundana도 intlligentia supra-mindana도 anima mindana도 아니다. 신은 세계의 안에도 밖에도 모든 것 안에도 모든 것 위에도 존재하는 intelligence다. 신은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Sensory라는 단어는 (감각)기관이 아닌 감각의 장소를 지칭한다. 또한 뉴턴은 장소가 sensorium이라고 하지 않았다. 비교를 위해서만 썼을 뿐이다. 신은 모든 것을 그것에 존재함으로써 그것 자체로써 지각한다.
- 신의 개입은 신의 ‘영원한 계획’에 있는 것이다. 한편, 신의 활동은 자연스러운 것, 기적적인 것으로 구분될 수 없다. 기적을 통한 개입의 배제는 신의 지배를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신의 개입 없이는 우주의 동력(motive force)은 감소하여 결국 사라질 것이다.
3차 논쟁
라이프니츠의 문제제기
- 클라크는 공간에 대해 실재하는 절대적 존재라고 했다. 이는 충족 이유의 원리에 근거할 때 불합리하다.
- 그러한 존재는 영원하고 무한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신 자체 또는 신의 속성 중 하나로 여겨진다.
- 공간은 부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것은 신에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공간이 절대적으로 동질적이라 하면, 모든 점은 다른 점과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물체를 특정한 곳에 위치시켰는지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이로써 선택이 필요 없는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 공간은 물체의 공존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시간은 계승의 질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근거가 없으면 선택을 할 수 없고, 선택을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다. 동기 없는 선택은 진정한 자유와 반대되는 모호한 무차별이다.
- 지속적인 수리는 그의 기계의 불완전성을 뜻한다. 신은 그러한 불편을 피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취할 것이고, 그렇게 했다.
- 이 또한 자기충족 요건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
클라크의 답변
- 공간은 존재가 아닌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자의 존재의 속성이자 귀결이다.
- 공간은 분할 불가능하다. 무한한 공간은 하나이다.
-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논변은 모순을 야기한다.
- 신은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의 근거나 동기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 어디에나 있는 존재자로서의 신은 모든것에 본질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substantially) 존재한다. 그의 (거기에서의) 존재는 거기서의 작용을 뜻한다. 그가 없으면 작용도 없다.
- 거기에 없으면 아무것도 활동할 수 없다. 신 또한 그렇다. 원거리 작용은 없다. 신 또한 그렇다. 그러나 신은 어디에나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그는 어디서나 작용할 수 있다.
4차 논쟁
라이프니츠의 문제제기
- 선택 없이 작용이 없고, 결정동기 없이는 선택이 없고, 충돌하는 가능성 사이에 차이가 없으면 동기가 없다. 따라서 완전히 동일한 두개의 상황은 실재할 수도 가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공은 불가능하며, 공간은 물체의 기능일 뿐이다. 또한 실체(substance) 없이는 속성이 없다. 공간은 무엇의 속성인가? 공간이 절대적 실재라면, 신은 그것을 파괴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다. (인력의 문제 등에 대한 빈약한 반박들 계속됨. 뉴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함)
- 이런 식의 제기는 동일한 물체가 불가능하다는 라이프니츠의 말이 맞다면 창조도 불가능(입자론의 입장에서). 따라서 더이상 분할할 수 없는 입자 부정함.
클라크의 답변
- 공간은 어떠한 substance의 속성이 맞다. 그 substance가 바로 신이다. 한편, 진공에는 물질 외에 가능한 많은 다른 substance가 있을 수 있다. 이로써 공간은 부분으로 분할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 진정한 운동은 절대운동이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실재한다. (절대공간의 개념은 물질의 무한성을 피하기 위함이자 창조의 개념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5차 논쟁
(생략. 앞의 논쟁과 많은 부분 중복)
논쟁의 종결과 그 이후
라이프니츠의 죽음으로 논쟁은 끝이 났다. 이후 뉴턴과학과 뉴턴철학은 더욱더 많은 근거를 얻게 되었고, 점차 데카르트주의자들의 저항을 극복해갔으며, 18세기 말 뉴턴의 승리는 완결되었다. 뉴턴은 승리했지만, 뉴턴의 수학적 원리는 점차 이신론 또는 입자론(유물론)의 입장과 동화되어 자연화되었고, 형이상학적 근거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 인력의 문제 : 신의 작용이 아닌 자연의 작용으로 변모함. 인력의 원인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됨.
- 공간의 문제 : 뉴턴이 말했던 속성은 그대로 남았지만, 거기서 신의 존재는 사라짐.
- 감소의 문제 : 뉴턴과학의 발전에 따라, 라이프니츠의 입장이 받아들여짐. 동력(moving force)은 사라지지 않으며, 세계는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수리해줄 필요도 없어졌다.
신성의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년이 지난 뒤,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의 ‘세계에서의 신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저의 세계에는 신이라는 가정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