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ls and Analogy i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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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모형의 의미를 몇 가지로 분류한 후, 특히 이론적 모형과 관련된 몇 가지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형의 분류: (1) 논리적 모형, (2) 복제품과 유비 기계(과학에서 유비), (3) 준형식적 또는 수학적 모형 (4) 단순화 모형 (5) 이론적 모형. 이론적 모형의 (1) 기능은? (2) 캠벨(Campell)의 해석 (3) 예측 (4) 이론적 개념의 의미 (5) 실재론

요약

논리적 모형

형식논리학은 공리들의 집합과 그 연역적 귀결에 대해 다루는 한편, "모형" 속에서 그 공리들과 정리들의 해석에 대해서도 다룬다. 여기서 "모형"이란 그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존재자들의 집합을 말한다.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공리들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답이 있다면, 그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존재자들의 집합이라는 답만 가능할 뿐이다. (단, 하나의 공리 집합에 대한 가능한 해석이 유일하진 않다는 점 유의할 것.) (대략 말하자면) 한 시스템의 모든 공리와 정리에 대한 해석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그 모든 공리와 정리가 참이 되는 존재자들의 집합을 (논리학자의 의미에서) 그 시스템의 모형이라고 부른다.

논리적 모형과 과학에서의 모형은 어떤 점에서 관련되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첫째, 에테르에 대한 19세기의 기계적(역학적 mechanical) "모형"처럼 어떤 "모형" 용례는 논리학자의 용례보다 앞서지만, 어떤 "모형" 용례는 그 이후에 나타났다. "연역적 시스템에 대한 해석"이라는 논리학자들의 모형 관념은 분명 과학에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과학자의 "모형" 용법과 논리학자들의 "모형" 용법 사이에는, 그 존재의 본성이나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에서 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복제물(replicas)과 유비 기계(analogue machines)

"모형"에 대한 일상적 용법에 가장 가까우면서 논리학자들의 의미와는 가장 먼 뜻. 복제물, 스케일 모형, 유사물는 과학에서 쓰이는 "모형"이란 말의 두 번째 주원천. 설명적 목적으로, 혹은 계산 장치로 사용. 시스템이 만족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연 법칙의 귀결을 알아내기 위해서도 모형 제작. 예컨대, 풍동 실험, 결정학적 모형, 신경망에 대한 전기적 모형, 경제학적 수요공급에 대한 수력학적 모형 등등. 이 모두가 정확한 복제물은 아님. 어떤 모형은 대상의 substance(실체? 속성?)와는 닮지 않은 채, 그 부분들 사이의 특정 관계와만 닮기도 한다.(e.g., 수력학적 경제 모형에서 경제학이 파이프와 물의 흐름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적절한 해석이 주어질 경우 파이프와 물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그 모형 내의 관계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결론을 산출할 수 있음.) 그러한 "관계의 유사성"을 동형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여기서 조심할 점: 실제 대상과 그것의 유사 기계처럼, 동형적인 두 시스템에 대해, 그들을 하나의 형식적 공리 시스템을 만족시키는 두 개의 논리적 모형이라고 볼 수 있을까? 헤세의 답은 부정적. 그렇게 볼 수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과학에서 특정 시스템에 대해 유사 기계를 만드는 이유는 많은 경우 그 시스템(유사 기계의 대상 시스템? or 유사 기계?)에 대해 상술할 수 없거나 그 상술이 너무 복잡해서 그것의 연역적 귀결을 추적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이다.(아래 research notes 참고)

과학에서의 유비

모형과 대상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유사(유비) 관계라고 얘기될 수 있다. 두 종류의 유비 관계가 구분될 수 있다.

첫째, 형식 유비(formal analogy). 형식적 시스템과 그것의 논리적 모형 사이의 관계, 혹은 동일한 형식적 시스템(공리 시스템)의 논리적 모형으로 간주될 수 있는 두 시스템 사이의 관계. 구조적 유비(analogy of structure) 또는 동형성(isomorphism). 예컨대 RC회로와 진자는, 두 시스템이 모두 만족하는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형식적 관계 덕분에 유사하다. 이를 형식 유비라고 부르겠다.

둘째, 실질 유비(material analogy). 형식적 유사성 이상의 실질적인 유사성. 비행기 날개와 그것의 복제물은 모양과 단단함에서 닮을 수 있으며,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두 시스템이 형식적 유사성 이상의 그러한 유사성을 가질 경우, 우리는 그들이 실질적 유사성(material analogy)을 가진다고 말하겠다.

  • 형식적으로 유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사하지 않은 경우: 경제 시스템에 대한 수력학적 모형, 파동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다양한 기계적 모형과 전기적 모형
  • 형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분자, 금속 등의) 결정 모형
  • 어떤 형식적 유사성도 가지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유사한 경우가 있을까? 없을 듯. 만약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면,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형식화될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이 아마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형식 유비와 실질 유비 때로 구분하기 어려움. 그럼에도 둘의 구분은 이론적 모형의 기능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

형식 유비든 실질 유비든, 유비 관계는 유사성과 함께 차이점도 함축. 유사성은 "긍정적 유비", 치이점은 "부정적 유비"라고 지칭해보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에서 쓰이는 모형을 분류해보자.

준형식적 혹은 수학적 모형

인구 동학에 대한 확률적 모형처럼, 과학에서 개발된 꽤 많은 수학적 이론들은 논리적 의미에서의 "모형"에 상당히 가깝다. 이 경우 관련된 유비는 거의 전부 형식 유비이다(이 "확률적 모형"이란 확률에 대한 공리를 가지고 있는 수학 이론 + 각종 변수를 경험적 양으로 해석하는 방법 지칭). 막스 블랙(Max Black) 등은 이러한 이론이 인과적 혹은 설명적 힘을 가진다는 점 부정. 왜? 그 이론은 경험 자료에 대한 편리한 수학적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 그러나 어떤 경우, 이러한 이론들이 형식 유비뿐 아니라 실질 유비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러한 실질 유비가 정말 있는 경우, 그 수학적 모형은 정말로 인과적, 예측적, 설명적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화 모형

이상 기체 모형처럼 연구나 적용의 편리함을 위해 대상 시스템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한 시스템. 지금은 반증된 이론에서 사용된 오래된 모형들을 간편한 근사로서 사용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학쪽에서 이를 많이 사용. 이에 대한 나의 코멘트: 그러나 순수과학에서도 사용. 예컨대 카오스 연구자들은 고전 역학적인 모형 순수 연구를 위해 사용. 단, 이들은 고전역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님. 이들은 특정한 복잡한 계를 탐구하기 위해 고전역학적인 모형을 단지 사용하고 있음.) 예컨대 heat as a fluid 모형. faculty psychology 모형(인간을 이성, 의지, 감정의 집합체들의 망으로 보는 모형). 구식 모형(archaic model)은 부정적 유비(negative analogy)를 가지고 있으며(아마도 분명하게 알려져 있다는 점이 중요할 듯), 그 때문에 폐기되었음. 그럼에도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은, 대상 시스템과 충분한 긍정적 유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모형

아직 확립되지 않은 이론으로서의 모형: 어쩌면 이론과 동일해 보일 수도 있는 모형. 예컨대 빛 입자를 이용한 빛 현상 설명은 입자 모형으로도 입자 이론으로 불린다. 우리는 보어의 원자 모형을 말하면서 특정한 양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그의 이론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 "모형"과 "이론"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론의 수용 정도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처음 혁명적인 이론이 제안될 당시에는 "모형"으로 불리다가, 확립된 이후에는 "이론"으로 불리는 ... (때로는 다시 폐기되어 "모형"으로). 예컨대 오늘날 "소리에 대한 파동 모형"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소리를 파동 운동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완전히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이론적이기보다 사실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모형은 철학적으로 크게 중요치 않음. (나는 약간 이제 반대. 나는 모형의 다른 의미를 살펴보면, 왜 모형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어쨌든 이러한 의미로는 모형과 이론은 질적으로 구분 안됨.

철학자들이 이론적 모형이 그것의 이론이 구분된다고 할 때에는 다른 생각 가지고 있었을 것.

첫째, 종종 이론적 모형이라 불리는 것은 이론의 형식적 혹은 준형식적 시스템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서의 모형, 즉 논리적 의미에서의 모형에 속한다. 예컨대, 빛에 대한 입자 모형은 뉴턴의 운동 법칙의 한 해석으로, 그 모형 내에서 뉴턴 법칙은 참이다. 이렇게 보면, 이론과 모형은 "이론=형식적 시스템, 모형=그 형식적 시스템의 해석"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DNA 분자의 경우, 모형의 해석 대상이 되는 형식적 이론이 존재하는지 불명확하다. 이 사례는 "논리학과 달리, 과학에서는, 형식적 이론이 미리 개발되지 않고서도 모형이 가능하다(in the science, unlike logic, the notion of model is not dependent on prior development of a formal theory"는 점을 지적한다. (논리학에서도 구문론 없이 모형이 홀로 존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적 모형의 두 번째 특징은 모형이 피설명 현상에 독립적이고 인식론적으로 독립적인 어떤 (다른) 시스템(혹은 알려진 경우엔 그 시스템에 대한 이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런 종류의 모형은 이미 익숙하고 잘 알려진 어떤 것을 통해 설명을 제공한다. 원자에 대한 보어의 비기계론적(그럼에도 그림 가능한) 모형, 확장하는 우주에 대한 기하학적 모형, 뇌구조에 대한 위상학적 모형 등은 모두 이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이론적 모형은 잘 확립되지 않은 시스템을 설명(탐구)하기 위해, 비교적 잘 알려지고 잘 이해된 어떤 다른 시스템을 파헤친다(exploit). 이론적 모형은 다른 익숙한 시스템을 피설명 시스템에 연상시킨다. 그로써 이론적 모형은 그 익숙한 시스템으로부터 "열린 구조(open texture)" 또는 "잉여의 의미(surplus meaning)"라 불리는 것을 가져온다. 이론적 모형은 완전하게 명세되지 않는 연상(associations)과 함의(implications)를 싣고 있는데, 그것들은 피설명항에 유비를 통해 전송될 수 있다. 이론적 모형은 피설명항보다 풍부(richer)하기 때문에, 그것은 경험적 자료에는 없는 개념들과 개념적 연관들을 들여온다.

이제 이론적 모형을 다른 모형과 구분지어 특성화해보자. 거의 모든 모형이나 해석은 어떤 잉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어떤 모형이 지닌 그 잉여의 의미를 예측과 설명에 활용한다면, 우리는 그 모형을 이론적 모형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익숙한 시스템으로부터 유도된 모든 모형은 피설명항과 긍정적 유비뿐 아니라 부정적 유비도 가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기체에 대한 당구공 모형을 쓸 때, 우리는 당구공의 모든 속성(예컨대 색깔)을 기체에 부여하길 의도하진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익숙한 시스템에서 제시된 모형과 이론과 연관지어 사용되는 모형을 구불할 수 있다. 후자는 부정적 유비가 최종적으로 제거된 개념적 존재자로, 이는 이론과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이론적 모형이라 부를 것은 이것뿐이다. (?)

어떤 의미에서 이론적 모형과 이론이 동일시될 수 있는지를 다시 정리하자면, 일차적으로 모형은 명백한 긍정적 유비 때문에 제안. 그러나 부정적 유비를 제거함으로써 만들어진 이론적 모형은 남아있는 긍정적 유비 이상임. 그렇지 않다면, 이론적 모형은 피설명항과 동일해질 것이다. 알려진 긍정적 유비에 덧붙여서, 아직 긍적적 유비가 될지 혹은 부정적 유비가 될지 모르는 모형의 속성들(이를 중립적 유비)이 있는데, 모형을 파헤친다는 것은 이 중립적 유비를 탐구하여 경험적으로 시험 가능한 이론의 수정을 제안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

이론적 모형이 이론과 관련하여 발견적 역할(heuristic function)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모형에 대한 주된 철학적 논쟁은, 없어도 되는(dispensible) 주관적인 발견법을 넘어서, 설명적 이론과 그것의 모형 사이에 어떤 본질적이고 객관적인 의존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논쟁은 과학 이론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과 실재론적 해석 사이의 오래된 논쟁의 한 양상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오캄의 칼날 적용 문제, 중력의 기계적(역학적) 성격에 관한 뉴턴주의-데카르트주의 논쟁, 19세기 기계적 에테르에 관한 논쟁, 원자 존재에 관한 논쟁, 마흐의 실증주의 등이 이에 해당된다. 현대에 들어, 이론의 모형에 대한 본질적 의존성에 대한 논증은 1920년 캠벨에 의해서 처음 고안되었다.

캠벨(Campbell)의 해석

캠벨은 헤르츠, 마흐, 뒤앙 등의 "모형은 단지 이론 형성에 없어도 그만인 도움이 될 뿐, 이론이 완전히 발전하고 나면 떼어버리고 폐기해도 된다"라고 하는 실증주의적 주장 공격.

캠벨은 이론이 (1) 공리와 정리들의 형식적 연역적 시스템 (가설) (2) 사전(형식적 시스템의 용어들을 실험적 용어로 번역해주는) (3) 실험 법칙(실험적으로 입증 가능하고 앞의 1,2에 의해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된다고 제안. 여기까지는 실증주의자와 큰 차이 없음.

차이는 다음에서 발생. 첫째, 캠벨에 따르면, 가설-연역 구조는 진정으로 "가설적 생각(hypothetical ideas, 이것의 해석은 이론적 개념)"을 허용해야 한다. 일부 이론적 개념들은 연역을 위한 장치의 일부로서 형식적 이론에 등장하지만, 그들은 이론의 사전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따라서 명시적인 경험적 해석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이론적 용어에 명시적인 경험적 해석이 주어질 필요는 없음. 아니 더 강하게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이론적 용어는 명시적인 경험적 해석이 주어지면 안됨. 그래야 진정으로 "가설적 생각"을 허용하는 것이 됨) 둘째, 가설-연역적 형식은 과학에서 이해되는 설명적 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불충분. 추가적인 요소가 더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유비. 예컨대 기체 이론의 경우, 그 기체를 담은 그릇 속에서 무작위로 움직이는 질점들의 모형. 이 모형 속에서, 앞에서 해석이 주어지지 않았던 모든 이론적 개념들(분자의 위치, 속도, 질량 등등)에 입자 역학의 해석(interpretation in particle mechanics)이 주어지게 된다. 재정리하자면, (1) 사전에 의해 명시적으로 경험적 해석이 주어지는 이론적 개념은 일부에 불과(사실 거의 이론적 개념으로 이루어진 몇몇 함수들만 경험적 해석 주어짐. 상당수 이론적 개념들에는 해석이 주어지지 않음. (2) 사전에 의해서 해석되지 않는 이론적 개념들은 어디서 해석이 주어질까? 그러한 이론적 개념들은 바로 모형 속에서 해석이 주어짐.

어떻게 입자 모형이 기체에 대한 이론 구조에 본질적일 수 있을까? 캠벨의 논증은 두 가지로 구성. (1) 가설-연역만으로는 설명 불충분. 여기서 캠벨은 설명의 필요조건으로 지적 만족이나 익숙함을 전제하고 있음. (2) 이론의 동적 특성(dynamic character)과 예측에서의 사용에 주목할 경우, 모형은 필수적인 것으로 고려될 수 있음. 즉 모형은 애초에 설명한 현상보다 넓은 영역에서 경험적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론의 수정과 확장을 가져 왔다. (예컨대 기체의 단순한 당구공 모형에 의해 해석될 수 있는 기체 이론으로 보일-샤를 법칙을 설명함으로써, 그 이론이 완성되었고, 그로써 모형의 역할이 끝났으니 버린다면, 맥스웰-볼츠만에 이르는 기체 이론의 발전을 설명할 수 없음. 모형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때에만 그러한 이론 발전이 가능)

예측성

예측은 만족스러운 설명적 이론의 필수요건이라는 점 대체로 동의. 그러나 일부는 그러한 요건을 만족시키는 데 모형이 꼭 필요한지 또는 도움이 되는지 부정.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측에서 모형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첫째, 모형을 가지고 유비를 통한 어떠한 논증도 그것에 의해 도출된 예측의 참을 보장하지 못함 (그러나 이는 쉽게 반박되지 않을까? 과학 이론의 예측은 원래 참이 보장될 필요가 없음. 따라서 유비를 통한 논증이 예측의 참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큰 단점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음). 모형을 통한 경험적 예측의 참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 그러나 이를 통해 모형을 반박하는 논자들은 유비를 통한 논증이 아무런 귀납적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제하고 있으며, 유비를 통한 예측의 근거가 절대로 다른 예측 방식의 근거보다 강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전혀 명백하지 않다.(Achinstein, "Variety and Analogy in Confirmation Theory", Hesse, "Analogy and Confirmation Theory").

둘째, 이론적 모형 없는 이론은 확장이나 에측을 위해 유비 외의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단순성, 대칭성, 수학적 우아함 등은 이론 수정과 예측 산출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맥스웰의 변이전류는 대칭성에 대한 관심 때문에 도입된 경우로 자주 거론된다. (즉 유비는 예측을 위한 여러 자원 중 하나일 뿐?)

셋째, 어떤 이론은, 예컨대 양자 역학은 모형 없이도 예측성을 포함에 이론의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 양자 역학에서는 고전적 모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으며, 그렇다고 다른 종류의 모형이 도입되지 않더라도, 양자역학은 예측 잘하는 좋은 이론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측"이란 말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며, 양자역학이 예측적이면서도 모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슈뢰딩거 방정식, 또는 양자역학적 상태에 대한 해석을 주지 않은 채, 초기 상태에 대한 관찰과 방정식 풀이를 통해 예측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metaphysics일까? 그들의 여러 해석은 전혀 경험과 무관할까? 처음엔 경험과 무관한 단지 여러 형이상학적 해석들에 불과했던 것들이 경험적 차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 경우 그 해석(즉 모형)은 새로운 예측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해석이 경험적인지 형이상학적인지는 사전에 재단될 수 없지 않을까?)

이론적 개념의 의미

이론적 개념은 관찰가능한 용어들에 의해 명시적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론적 개념의 의미는? 캠벨적 전통에 따르면, 이론적 개념의 의미는 모형(이론의 피설명항과 독립적으로 알려진)을 통해 주어진다. (흔히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론적 개념의 의미가 대응규칙이라 불리는 것을 통해 그것이 설명해내는 관찰 현상에 나오는 관찰가능한 용어로부터만 부분적 해석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이론적 개념은 관찰가능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제안된 것인데, 그 개념이 자신의 피설명항으로부터만 의미가, 그것도 부분적으로, 주어진다면, 어떻게 이론이 설명이라는 것을 해내는지가 미스테리해진다. 아마 그 점이 캠벨의 의문이었을 것. 이론이 관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피설명항과 독립적인 무언가로부터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캠밸의 직관일 것.)

모형을 발견법적 장치로만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논자들은 이에 반대. 그들에 따르면, 이론적 개념의 의미에 그러한 비경험적인 요소를 필요치 않음. 극단적인 논자의 경우, 모든 이론적 용어들에 해석이 필요 없다고 주장. 즉 그들에 따르면, 이론은 관찰 자료를 넣으면 예측을 산출해주는 블랙박스, 즉 도출 기계에 불과하며, "전자"니 "전자기장"이니 하는 것은 그 도출 기계를 구성하는 자의적인 이름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건한 브레이스웨이트의 경우, 이론적 개념은 이론으로부터 이끌어내질 수 있는 그것의 경험적 귀결들에 의해 (명시적이지 않고, 부분적으로, 맥락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그 해석이 주어진다. 이 경우 이론적 개념은 일종의 논리적 모형에 의해 해석되지만, 더이상 캠벨식의 "피설명항과 독립적인 우리에게 익숙한" 모형은 필요하지 않다. 헤세가 보기에 이 브레이스웨치트의 "맥락적 의미" 관념은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

캠벨에 대한 다른 종류의 반대도 있다. 이에 따르면 이론적 의미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이론적 용어는 원래 다른 용어의 확장이기 때문. 예컨대 "보이지 않는 엄청 작은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엄청 작은 입자"나 그게 그거. 그러나 이런 접근은 헤세가 보기에, 캠벨이 얘기한 유비적 의미와 독립적인 것인지 분명치 않다. (내가 보기엔 이 노선은 캠벨과 같은 노선으로 보임)

실재론

예측과 의미 해석과 관련해 모형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무언가를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 캠벨이 그런 경우. 그는 입자 모형이 기체의 실제 구성요소로서 분자의 존재를 함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론이 모형을 통해 개발되었을 경우, 모형은 그 이론에 의해 그려진 세계의 방식에 대한 기술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기체는 진짜로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빛은 정말로 에테르에서의 파동 운동에 의해 전파되고... 즉 피설명항과 긍정적, 중립적 유비(부정적 유비는 빼고)를 가진 모형은 피설명항에 대한 이론과 동일시되고, 이 이론은 피설명 영역에 대해 진정한 지시(reference)를 가진다는 식으로.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를 우려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모형과 이론을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데, 모형은 피설명항에 대해 거짓으로 밝혀질 함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빈약한 반대. 거짓으로 밝혀질 함축을 가진 것은 이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 그리고 게다가 이는 부정적 유비를 뺀 모형의 가능성 간과. 그리고 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함축이 있더라도 그것이 모형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조심스럽게 무시될 수 있고, 따라서 위험하지도 않다.

둘째, 모형은 단순화난 왜곡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 따라서 그것으로 이론에 대한 불완전한 해석이고, 따라서 이론과 동일시 될 수 없다. 몇몇 모형은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모형이 그런 것은 아님. 초기에 왜곡된 모형이 수정되고 정제되어 이론 및 피설명항과 일관된 모형이 되어 "실제를 위한 후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R. Harre, "candidates for reality"

셋째, 모형이 이론의 필수 성분으로 인정되더라도, 그것에 "실재"를 부여할 증거가 없다. 이러한 반대에는 직접 관찰된 것만 실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전제는 온당치 않음. 관찰도 실재와 어긋날 수 있고, 관찰 이외의 실재성 기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모형만 문제는 아님. 이론, 법칙 등등에서 모두 문제. "실재"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

평가

유사물이 가지는 유사성의 종류

헤세는 (1) 속성 사이의 유사성과 (2) 관계 사이의 유사성을 구분하는 듯.

논리적 모형과 유비 모형 사이의 관계

헤세는 논리적 모형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모형들을 설명하는 것의 난점을 잘 지적했다. 한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의 유비 기계가 될 때, 두 시스템은 마치 어떠한 하나의 형식적 공리 시스템을 만족시키는 두 개의 논리적 모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헤세는 이러한 방식으로 유비 기계를 보는 것이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을 한다. 어째서? "because such machines are often constructed precisely for cases where there is no known mathematical specification of a system or where this specification is so complex that the explicit drawing of deductive consequences is impossible or impracticable."

이러한 헤세의 주장에 따르면, 많은 경우, 형식적 공리 시스템은 실제 시스템보다는 유비 기계와만 직접 연결된다. 첨언하자면, 모형은 대체로 우리가 직접 만들었으므로 잘 안다. 또는 직접 만들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모형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 시스템보다는 모형에 대해 더 구체적인 specify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specific detail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