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ion and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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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인은 '원초적 번역'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그 상황에서 언어학자는 미지의 언어를 영어로 번역한다. 그 언어학자는 두 언어(영어/정글어)에 숙달된 이중언어자와 만나지 못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글어-to-영어 번역 교본을 구성하는 데 언어학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경험적 증거는 공적으로 인식가능한 상황에서의 원어민의 행동뿐이다. 그러나 그런 자료는 파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콰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1. 정글어의 어떤 표현들이 단어로 간주되는지, 또 하나의 정글어 단어가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지는 단지 경험적 자료에만 호소해서는 답변될 수 없다. 경험적 자료는 어떤 말의 지시체를 고정시키지 않는다.
  2. 정글어의 이론적 문장들은 양립불가능한 두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영어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이론적 문장의 번역은 불확정적이다. 하나의 문장과 그것의 번역이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가정하면, 번역의 불확정성은 의미의 불확정성을 뜻한다. 즉 자연언어의 이론적 문장들의 의미는 경험자료에 의해 고정되지 않는다. 원초적 번역자는 그들이 의미를 발견하는 만큼이나 (분석적 가설과 같은 것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야 한다.
  3. 결국 '의미'라는 개념은 분석되기 어렵다?

원초적 번역

아이가 공적으로 관찰가능한 상황에서 부모나 다른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모국어를 습득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언어적 의미는 공적으로 관찰가능한 상황에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험적 자료가 발화된 문장의 의미를 어느 정도로 고정시키는지 물을 수 있다. 원초적 번역이라는 콰인의 사고실험은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정글어-to-영어' 번역 교본을 만들려고 하는 언어학자와 정글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려는 어린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정글어 번역 교본을 만들고자 하는 현장 언어학자는 영어라는 대체 언어가 있는 반면, 정글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려는 어린이에겐 그에 상응하는 대체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어학자와 아이 모두에게 사용가능한 궁극적인 경험적 자료가 동일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자료가 하나의 의미 또는 지시체를 고정시키기에 턱없이 빈곤하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이점은 원초적 번역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콰인이 의도한 것이다.

번역의 불확정성

언어학자가 처음으로 하는 일은 정글어의 음소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원어민이 사용하는 어떤 표현들에 동의를 표현하는지 그 반대인지 확인한다.

예컨대 토키 한 마리가 갑자기 휙 지나갔다고 하자. 원어민은 '가바가이'라고 외친다. 언어학자는 그 토끼가 원어민의 '가바가이'라는 발화를 유발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정글어-to-영어' 번역 교본에 '가바가이'는 '오, 토끼 한 마리'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적어놓는다. 나중에 토끼가 나타났을 때, 또는 토끼가 없을 때, 언어학자는 원어민에게 '가바가이?'라고 물음으로써 원어민이 그에 동의하는지 아닌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그 언어학자는 '가바가이'가 '오, 토끼 한 마리'로 번역된다는 가설에 대한 귀납적 지지를 평가할 수 있다.

한 문장과 그것의 번역은 동일한 의미를 공유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오, 토끼 한 마리'와 '가바가이'는 번역으로서, 그 둘은 같은 의미, 즉 (오,) 토끼 한마리를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지시체와 혼동한 것이다. 그러면 '가바가이'의 지시체가 토끼라면 '가바가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콰인은 의미라는 모호한 개념 대신에 자극 의미라고 하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것은 주체의 신경말단이 활성화된 패턴에 의해 주어진다. 원어민의 동의를 유발하는 자극의 패턴과 불일치를 유발하는 자극의 패턴은 각각 긍정적 자극 의미와 부정적 자극 의미에 속한다. 자극 의미란 그 둘의 순서쌍이다. 동의나 불일치도 유발하지도 않는 자극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된다.

  • 예: {(자극패턴1, 긍정), (자극패턴2, 긍정), (자극패턴3, 부정), (자극패턴4, 긍정),(자극패턴5, 무관), (자극패턴6, 부정),...}

이렇게 볼때, '가바가이'와 그것의 번역인 '오, 토끼 한 마리'는 동일한 자극 의미를 공유한다. 두 말은 공적으로 관찰가능한 다양한 상황과 자극에 대해 같은 긍정/부정 반응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두 말은 자극 동의어이다. 그러나 진정한 동의어로 보기는 어렵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토끼가 지나간다. 내가 관찰하고 있는 낯선 원어민이 "가바가이!"라고 소리친다. 이 때 가능한 번역은 하나가 아니다.

  1. rabbit
  2. stage of rabbit
  3. integral parts of rabbit
  4. the rabbit fusion
  5. rabbit-hood

즉 원어민의 행태와 전적으로 일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더구나 손으로 가리키는 일로는 결코 밝혀질 수 없다. 손으로 가리키는 일은 추상적인 단칭어와 구체적인 일반어도 구별해주지 못한다. 단어와 지시는 개념체계에 상대적이다. 단어라는 개념 자체가 문화상대적인 것이다. 위의 다섯 번역 문장은 같은 자극 의미를 갖는다. 다섯 문장은 자극 동의어이다. 그러나 다섯 관찰 문장의 자극 동의성은 그들간의 동의성은 커녕 두 말이 서로 동일한 외연을 가진다는 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즉

경험 자료가 이렇게 한계를 지닐 때, 언어학자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분석적 가설을 채택하여 불확정성을 줄일 수 있다.

  1. '가바가이'와 같은 관찰문장은 결정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
  2. 진리함수(and, or, not 등)는 결정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
  3. 자극-분석적 문장과 자극-모순적 문장은 번역될 수는 없지만, 식별될 수 있다.
  4. 계기 문장의 주체내적(intrasubjective) 자극 동의어와 관련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적 가실은 자의적이다. 분석적 가설은 자극 의미에 의해서 변경이 되거나 결정이 되지 않는다. '가바가이'에 대한 여러 가능한 번역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번역자가 어떤 분석적 가설을 채택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위의 분석적 가설이 아닌 다른 분석적 가설을 채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번역자가 원어민에게 어떤 하나의 개념적 범주를 귀속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험적 자료는 여기서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으며, 어떤 분석적 가설이 더 옳은지에 대해서도 답하기 어렵다. 즉 분석적 가설은 단지 채택될 뿐이다. 만약 우리가 번역의 불확정성을 못느낀다면, 그것은 번역이 정말로 확정적이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자의적인 분석적 가설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서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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