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미적분 서신집 해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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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그의 『원리』(프린키피아)와 『광학』에서 추구한 철학은 실험적인 철학이다. 실험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사물의 원인을 가르치는 것은 실험 철학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는 현상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의견으로 이 철학을 채우지 않으려 한다. 이 철학에서 가설(Hypotheses)은, 실험을 통해 검토될 추측이나 질문으로서의 역할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뉴턴은 그의 『광학』에서 실험을 통해 확실해진 것과 여전히 불확실한 것을 구별했으며, 그래서 그는 후자를 『광학』 말미에 질문들(Queries)의 형태로 제시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원리』 서문에서 행성, 혜성, 달과 바다의 운동이 중력으로부터 도출될 거라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른 자연 현상들도 역학적 원리로부터 동일한 추론을 통해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유에서 나는 이 모든 현상들이 물체의 구성 입자들이 발휘하는 어떤 힘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 힘이 작용하는 근본적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입자들은 이 힘들에 의해 서로 뭉쳐서 규칙적인 모양을 형성하기도 하고, 서로 밀어내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으며, 자연에 대한 철학자들의 탐구가 여태껏 실패한 것은 그 힘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리』 2판 말미에서, 그는 충분한 수의 실험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인력을 수행하는 정기(Spirit)나 인자(Agent)의 작용에 관한 법칙을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그는 중력의 원인에 대해 침묵하는데, 이는 실험이나 현상을 통해 중력의 원인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원리』에서 여러번 강조했던 얘기이다. 책 앞부분[1권 정의 8]에서 "여기서 나는 힘의 물리적 원인과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고 조금 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인력이나 충격력 또는 구심 경향이라는 용어를 물리적인 힘이 아닌 수학적인 힘으로만 고려함으로써 구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쓸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가끔 중심에서 인력이 작용한다거나 힘의 중심이 존재한다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이 용어들이 어떤 작용 방식이나 어떤 물리적 원인이나 이유를 정의한다거나, (수학적 점들에 불과한) 중심들에 진정한 물리적 힘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광학』의 끝에서도 "어떤 원인으로 이러한 인력(예: 중력, 자기력, 전기력)이 이루어지는지 여기서 묻지 않는다. 내가 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충격이나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인력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칭한다고 이해해주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조금 뒤에 그는 이 인력들이 비록 그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상에 의해 자연에 존재하는 힘으로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원리』의 끝에 있는 설명에서 중력의 특성을 언급한 후, "나는 아직 중력의 특성의 이유를 현상으로부터 도출할 수 없었고,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 현상에서 도출되지 않은 것은 가설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가설은 형이상학적이든 물리적이든, 신비한 성질(Occult Qualities)이든, 기계적이든 간에 실험 철학에 설 자리가 없다. 중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가 제시한 법칙에 따라 작용하며, 천체와 우리의 바다의 모든 운동에 충분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후에도, 뉴턴이 중력과 다른 인력의 원인을 가설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은 놀랍다. 마치 확실성에 안주하고 불확실성을 내버려 두는 것이 죄인 것처럼. 그러나 'Acta Eruditorum'의 편집자들은 뉴턴이 중력의 원인이 기계적이라는 것을 부인한다고 얘기했고, 전기적 인력을 수행하는 정기(Spirit)나 인자(Agent)가 에테르나 데카르트식 미세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설보다 덜 가치가 있으며, 아마도 헨리 무어 박사의 'Hylarchic 원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중력을 물체의 자연적 또는 본질적 특성, 신비한 성질이나 기적으로 만든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조롱으로 그들은 독일인들에게 뉴턴이 판단력이 부족하고(want Judgment), 무한소 방법(Infinitesimal Method)을 발명할 수 없다고 설득하고 있다.
뉴턴이 그의 『원리』(프린키피아)와 『광학』에서 추구한 철학은 실험적인 철학이다. 실험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사물의 원인을 가르치는 것은 실험 철학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는 현상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의견으로 이 철학을 채우지 않으려 한다. 이 철학에서 가설(Hypotheses)은, 실험을 통해 검토될 추측이나 질문으로서의 역할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뉴턴은 그의 『광학』에서 실험을 통해 확실해진 것과 여전히 불확실한 것을 구별했으며, 그래서 그는 후자를 『광학』 말미에 질문들(Queries)의 형태로 제시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원리』 서문에서 행성, 혜성, 달과 바다의 운동이 중력으로부터 도출될 거라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른 자연 현상들도 역학적 원리로부터 동일한 추론을 통해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유에서 나는 이 모든 현상들이 물체의 구성 입자들이 발휘하는 어떤 힘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 힘이 작용하는 근본적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입자들은 이 힘들에 의해 서로 뭉쳐서 규칙적인 모양을 형성하기도 하고, 서로 밀어내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으며, 자연에 대한 철학자들의 탐구가 여태껏 실패한 것은 그 힘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리』 2판 말미에서, 그는 충분한 수의 실험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인력을 수행하는 정기(Spirit)나 인자(Agent)의 작용에 관한 법칙을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그는 중력의 원인에 대해 침묵하는데, 이는 실험이나 현상을 통해 중력의 원인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원리』에서 여러번 강조했던 얘기이다. 책 앞부분[1권 정의 8]에서 "여기서 나는 힘의 물리적 원인과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고 조금 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인력이나 충격력 또는 구심 경향이라는 용어를 구별하지 않고 섞어서 사용할 텐데, 이 용어는 물리적인 힘이 아닌 수학적인 힘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내가 가끔 중심이 인력을 작용한다거나 힘의 중심이 존재한다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이 용어들이 어떤 작용 방식 또는 어떤 물리적 원인이나 이유를 정의한다거나, (수학적 점들에 불과한) 중심들에 진정한 물리적 힘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광학』의 끝에서도 "어떤 원인으로 이러한 인력(예: 중력, 자기력, 전기력)이 이루어지는지 여기서 묻지 않는다. 내가 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충격이나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인력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칭한다고 이해해주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조금 뒤에 그는 이 인력들이 비록 그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상에 의해 자연에 존재하는 힘으로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원리』의 끝에 있는 설명에서 중력의 특성을 언급한 후, "나는 아직 중력의 특성의 이유를 현상으로부터 도출할 수 없었고,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 현상에서 도출되지 않은 것은 가설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가설은 형이상학적이든 물리적이든, 신비한 성질(Occult Qualities)이든, 기계적이든 간에 실험 철학에 설 자리가 없다. 중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가 제시한 법칙에 따라 작용하며, 천체와 우리의 바다의 모든 운동에 충분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후에도, 뉴턴이 중력과 다른 인력의 원인을 가설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은 놀랍다. 마치 확실성에 안주하고 불확실성을 내버려 두는 것이 죄인 것처럼. 그러나 'Acta Eruditorum'의 편집자들은 뉴턴이 중력의 원인이 기계적이라는 것을 부인한다고 얘기했고, 전기적 인력을 수행하는 정기(Spirit)나 인자(Agent)가 에테르나 데카르트식 미세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설보다 덜 가치가 있으며, 아마도 헨리 무어 박사의 'Hylarchic 원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중력을 물체의 자연적 또는 본질적 특성, 신비한 성질이나 기적으로 만든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조롱으로 그들은 독일인들에게 뉴턴이 판단력이 부족하고(want Judgment), 무한소 방법(Infinitesimal Method)을 발명할 수 없다고 설득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매우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 사람은 실험과 현상에서 나오는 증거를 기반으로 진행하며, 그러한 증거가 부족한 곳에서는 멈춘다. 다른 한 사람은 가설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실험으로 검증하기 위해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 없이 믿도록 한다. 한 사람은 중력의 원인이 기계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실험이 부족해서 확언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이 기계적이지 않다면 영원한 기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은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들이 단단하다는 것을 창조주의 힘에 귀속시킨다. 다른 한 사람은 물질의 단단함을 협력하는 운동에 귀속시키고, 그 원인이 기계적이지 않다면 영원한 기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은 인간의 동물적 운동이 순전히 기계적이라고 확언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이 순전히 기계적이라고 가르치며, 영혼이나 마음이 신체의 운동을 변경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사람은 신(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신)이 편재한다고, 그렇지만 세계의 영혼으로서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다른 한 사람은 신이 세계의 영혼이 아니라 우리 세계를 초월한 지성(INTELLIGENTIA SUPRAMUNDANA)이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신이 세계의 경계 내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은 철학자들이 현상과 실험에서 그 원인으로, 그리고 그 원인의 원인으로 계속해서 첫 번째 원인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른 한 사람은 첫 번째 원인의 모든 행동이 기적이며, 신의 의지에 의해 자연에 새겨진 모든 법칙이 영원한 기적과 신비한 성질이며, 따라서 철학에서 고려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연의 일정하고 보편적인 법칙이 신의 힘이나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원인의 작용에서 유래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꼭 기적이나 신비한 성질, 달리 말해 놀라운 일이나 불합리한 일로 불려야 하는가? 자연의 현상에서 가져온 신에 대한 모든 논증은 새로운 딱딱한 이름들(new hard Names)로 배척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실험 철학은, 그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장하지 않고, 실험을 통해서는 모든 자연 현상이 단지 기계적 원인들만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아직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적적이고 불합리한 것으로 배척되어야 하는가? 확실히 이러한 것들은 좀더 숙고될 가치가 있다.
이 두 사람은 매우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 사람은 실험과 현상에서 나오는 증거를 기반으로 진행하며, 그러한 증거가 부족한 곳에서는 멈춘다. 다른 한 사람은 가설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실험으로 검증하기 위해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 없이 믿도록 한다. 한 사람은 중력의 원인이 기계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실험이 부족해서 확언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이 기계적이지 않다면 영원한 기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은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들이 단단하다는 것을 창조주의 힘에 귀속시킨다. 다른 한 사람은 물질의 단단함을 협력하는 운동에 귀속시키고, 그 원인이 기계적이지 않다면 영원한 기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은 인간의 동물적 운동이 순전히 기계적이라고 확언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이 순전히 기계적이라고 가르치며, 영혼이나 마음이 신체의 운동을 변경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사람은 신(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신)이 편재한다고, 그렇지만 세계의 영혼으로서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다른 한 사람은 신이 세계의 영혼이 아니라 우리 세계를 초월한 지성(INTELLIGENTIA SUPRAMUNDANA)이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신이 세계의 경계 내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은 철학자들이 현상과 실험에서 그 원인으로, 그리고 그 원인의 원인으로 계속해서 첫 번째 원인에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른 한 사람은 첫 번째 원인의 모든 행동이 기적이며, 신의 의지에 의해 자연에 새겨진 모든 법칙이 영원한 기적과 신비한 성질이며, 따라서 철학에서 고려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연의 일정하고 보편적인 법칙이 신의 힘이나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원인의 작용에서 유래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꼭 기적이나 신비한 성질, 달리 말해 놀라운 일이나 불합리한 일로 불려야 하는가? 자연의 현상에서 가져온 신에 대한 모든 논증은 새로운 딱딱한 이름들(new hard Names)로 배척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실험 철학은, 그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장하지 않고, 실험을 통해서는 모든 자연 현상이 단지 기계적 원인들만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아직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적적이고 불합리한 것으로 배척되어야 하는가? 확실히 이러한 것들은 좀더 숙고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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