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와 플로지스톤

화학혁명은 플로지스톤 이론이 산소 이론으로 교체된 사건을 말한다. 플로지스톤 이론에 따르면, 플로지스톤은 가연성 물질에 포함된 불의 원리와 같은 존재이다. 물질의 연소란 가연성 물질 속의 플로지스톤이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면서 재로 변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금속이 녹스는 과정도 플로지스톤의 방출로 이해될 수 있는데, 윤기 있는 금속은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면서 점차 푸석푸석한 금속회(녹슨 금속)로 변하게 된다. 즉 플로지스톤 이론에 따르면, 연소와 녹슮은 모두 물질에서 플로지스톤이 방출되면서 원래의 윤기를 잃는 과정으로, 이를 ‘산화’라고 불렀다. 반대로 푸석푸석해진 물질이 플로지스톤을 흡수하여 윤기를 회복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는 ‘환원’이라 불렸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연소 중인 양초를 유리병 속에 가두면 금방 불이 꺼지는데, 이는 좁은 유리병이 양초에서 방출된 플로지스톤으로 금방 포화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유리병 속에 플로지스톤이 포화되면 양초에서 더 이상 플로지스톤이 방출될 수 없어 연소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한편 금속회를 숯과 함께 가열하면 금속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금속회가 숯에 있던 플로지스톤을 빼앗아 금속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프리스틀리의 수은회 환원 실험

영국의 과학자 프리스틀리는 숯 대신 공기 중의 플로지스톤을 활용해도 금속회를 금속으로 환원시킬 수 있을 거라 예측했다. 이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수은을 태워 마련한 수은회를 밀폐된 유리병에 넣고 볼록 렌즈로 햇빛을 모아 높은 온도로 가열했다. 그러자 붉은색 고체 형태의 수은회가 은색 액체 형태의 수은으로 환원됐다. 프리스틀리는 이를 수은회가 유리병 속 공기에 있던 플로지스톤을 흡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이 맞다면 반응 후 유리병 속 공기의 플로지스톤은 줄어들 거라 예측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프리스틀리는 그 유리병 속에 양초를 넣어 보았는데, 그 속에서는 양초가 꺼지지 않고 오랫동안 탔다. 이는 공기 속의 플로지스톤이 결핍될수록 플로지스톤이 포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그의 예측과 잘 부합했다. 이러한 이유로 프리스틀리는 이 공기를 ‘플로지스톤이 결핍된 공기’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과학자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의 실험을 밀폐된 공기 속에서 재현하면서, 반응물과 생성물의 질량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수은이 수은회로 변하는 동안 그 질량은 증가한 반면, 밀폐된 공기의 질량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반대로 수은회가 수은으로 변하는 동안 그 질량은 감소한 반면, 공기의 질량은 그만큼 증가했다. 질량의 변화를 물질의 출입으로 해석한 라부아지에는 수은이 공기 중의 X와 결합하여 수은회가 되고, 수은회에서 X가 방출되면 수은이 된다고 주장했다. 라부아지에는 X를 산화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산소’라고 명명했고, 연소, 녹슮, 호흡 모두 산소와의 결합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산화는 산소와의 결합이고, 환원은 산소의 방출이다.

그러나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금속에 정말로 플로지스톤이 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금속을 산에 녹이면 기포가 올라오는데, 그 기체는 불을 붙이면 펑 하고 연소하는 성질이 있어서 ‘가연성 공기’라고도 불린다. 프리스틀리는 이 기체가 바로 금속에 있던 플로지스톤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플로지스톤이 결핍된 금속회를 산에 녹일 때는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다. 둘째, 그 기체의 가연성은 플로지스톤이 ‘불의 원리’라는 점과 잘 어울린다. 셋째, 가연성 공기를 모은 유리병 속에서도 수은회가 잘 환원되는데, 이는 환원 반응이 플로지스톤과의 결합이라는 생각과 부합한다.

라부아지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연성 공기는 연소할 때마다 약간의 물이 발생한다는 점이 알려져 있었는데, 라부아지에의 관점에서 물질의 연소는 산소와의 결합이므로, 가연성 공기의 연소는 가연성 공기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생성되는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연성 공기 속에서 진행된 수은회의 환원은 수은회 속의 산소가 빠져나가 가연성 공기와 결합하면서 수은과 함께 물을 생성시킬 것이다. 그의 예측대로, 가연성 공기 속에서 수은회를 환원시키자 마른 바닥에는 물이 고였다. 그러나 이 실험만으로는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프리스틀리의 지지자였던 영국의 과학자 캐번디시는 가연성 공기를 ‘플로지스톤이 과잉된 물’로 해석하고, 산소를 ‘플로지스톤이 결핍된 물’로 해석함으로써,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고수할 수 있었다.

플로지스톤 이론과 산소 이론은 각자의 장단점이 있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금속의 공통된 성질을 플로지스톤이라는 공통된 성분을 통해 설명할 수 있었고, 물질의 연소 과정에서 열이 방출되는 이유도 불의 원리인 플로지스톤의 방출로서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플로지스톤 이론은 물이 생성될 때 왜 ‘플로지스톤이 과잉된 물’과 ‘플로지스톤이 결핍된 물’이 꼭 1:8이라는 고정된 비율로만 합성되는 이유를 해명할 수 없었다. 반면 산소 이론은 물을 수소와 산소가 1:8로 결합된 화합물로 간주함으로써 물 합성 반응의 고정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소 이론은 물질의 연소를 산소와의 결합으로 설명함에 따라 물질의 연소 과정에서 열이 방출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산소 이론은 다양한 금속들을 별개의 원소로 취급함으로써 그들의 공통된 성질을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산소 이론으로의 교체는 물질의 성질을 설명하는 학문이었던 화학을 물질의 구성 성분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변화시켰다.

퀴즈

A. 플로지스톤 이론과 산소 이론의 공통된 견해로 적절한 것은?

  1. 연소와 녹슮은 모두 산화 반응이다.
  2. 모든 금속에는 공통된 성분이 들어있다.
  3. 나무가 연소할 때 나무에서 무언가가 방출된다.
  4. 금속이 녹슬 때 금속은 공기 중의 무언가와 결합한다.
  5. 금속회를 금속으로 환원시키려면 숯 속에 있는 무언가를 금속회에 넣어주면 된다.

B. 화학 혁명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산소 이론은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물질의 성질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 플로지스톤 이론은 산소 이론보다 산화와 환원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3. 산소 이론은 연소 과정에서 열이 방출되는 이유를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잘 설명하지 못했다.
  4. 플로지스톤 이론은 물의 합성 반응이 왜 고정된 비율로 일어나는지 산소 이론보다 잘 설명했다.
  5. 산소 이론과 달리 플로지스톤 이론은 이미 알고 있던 현상만 설명할 뿐 예측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참고자료

  • 장하석, "산소와 플로지스톤",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지식플러스, 2014).
  • 장하석, 물은 H2O인가 (김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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