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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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실재론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것은, 과학의 목표가 자연에 대한 진리를 얻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과학철학 분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과학을 둘러싼 실재론과 반실재론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과학적 실재론에 따르면 과학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우주의 구조를 기술하는 참된 이론을 정식화하는 것으로서 역사를 통한 과학의 '진보'란 우주의 구조라는 인간 인식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에 대한 좀더 정확한 상에 점점 더 접근해가는 것이다. 과학적 실재론에 선 대표적 이론가로는 역사를 통한 이론어의 지시대상의 동일성과 실재성을 주장하는 (80년대까지의) 퍼트넘, 과학이론의 진리로의 접근이라는 개념의 방법론적 타당성을 논하는 보이드 또는 이론어의 지시대상의 실재성이라는 것을 실험과학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에 의해 주장하려고 하는 해킹 등이 있다.[1]

과학적 실재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입장을 공유한다. 하나는 "우리의 인식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 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의주의에 반대하여 합리적으로 승인할 수 있는 진리의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의 영역 · 대상을 설정하는 것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차이가 난다. 과학적 실재론의 이론적 대상은 경험적 세계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실재이다. 또한 과학적 실재론은 지각대상 전반의 실재성이나 관찰진술 자체의 진리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것은 전자(電子)나 유전자(遺傳子)와 같은 이론적 대상이 지각대상만큼 실재하는지, 그리고 이론적 진술체계가 일상적인 관찰진술만큼 진리성의 기준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문제 삼는다. 이런 점에서 과학적 실재론은 근본적 실재론이 아니다.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와 귀납적 추리의 정당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과학적 실재론은 철학적 실재론과 다른 층위의 개념이다. 과학적 실재론의 전제들을 철학적 실재론의 기준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과학적 실재론은 처음부터 의미 있게 제기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관찰, 실험 등 과학적 실행 자체가 수행되지 못하거나, 경험적 확인절차를 거친 원리나 법칙들이 다시금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빛을 비추어서 물건을 볼 수는 있지만 빛 자체를 볼 수는 없고, 지구 내부의 모습도 충격파를 보고 추측을 하는 것뿐이지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쿼크, 블랙홀 역시 모두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

이러한 과학적 실재론은 지금까지의 과학의 성공을 최선의 설명논변을 통해 실재론의 논리적 근거로 사용한다. 최선의 설명논변이란, 지금까지의 과학의 성공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우연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거나 혹은 실재에 대응, 또는 최소한 근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전자의 방식은 비과학적,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므로, 후자의 설명에 따라 과학의 성공은 그에 대응하는 실재가 있음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론적 대상이 이 세계 내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이론적 대상을 존재한다고 전제하여 이룬 다양한 과학적 성과들이 '기적'이 되어버린다. 과학 기술의 다양한 성과들은 '기적'이 아니기에, 현대 과학 기술이 전제하는 이론적 대상들을 비록 우리가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과학적 실재론 [Scientific Realism, 科學的實在論] (두산백과)


과학적 실재론의 대표적인 지지자였던 아인슈타인마저 '내가 달을 보고 있지 않아도 달은 존재한다' 라고 하였다. '실재'라는 것은 관찰과 관련하여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스티븐 와인버그 : 과학에서 우리를 앞으로 추동하는 것은 바로 저기 바깥에 발견될 진리가 있고, 일단 발견된 진리는 인간 지식의 영구적인 부분을 형성할 것이라는 느낌이다.

토마스 쿤은 실재론에 반대하였다. 토마스 쿤은 그의 후기 작업에서 실재론의 주장이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한다. 쿤은 실재론에 대해"연속하는 과학적 믿음들은 점점 더 개연적으로 도니다거나 참에 대한 더욱 더 나은 근사가 된다는 주장들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것"(kuhn, 1993:243)이라고 말한다. 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언어'를 제시한다. 과학을 언어에 맞게 규격화하여 자를 수 있다는 것을 크게 반대한다.

반실재론

과학의 참된 목표는 진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며 실재론에 반대하는 주장을 반실재론이라고 한다. 이들은 과학의 이론적인 부분들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실재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그 이론들이 성공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을 통해 현대 이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실재론적 입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는 진리를 얻는 것보다 탐구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이 목표라는 도구주의적 입장과 관측불가능의 영역에 대한 서술을 관측가능의 영역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관측할 수 있는 부분만이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실증주의적 입장, 진리가 의미가 있고 얻을 수 있으면 좋지만 관측이 되지 않는 내용일 경우에는 과학이 접근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구성적 경험주의가 있다.

반실재론의 다양한 형태

1. 도구주의 : 이론은 우리가 사고하는데 유용한 도구일뿐 참, 거짓으로 판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 도구로서의 중요한 기능은 수많은 관찰들을 압축했다는 것이다.

2. 실증주의 : 관찰 내용으로 풀어서 번역될 수 없는 이론적 명제들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무의미한 명제가 참인지를 논의하려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고 본다. 도구주의(이론이 결코 참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짐)와 비슷한 입장이다.

3. 구성적 경험주의 : 이론은 참 또는 거짓이지만 참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주의는 과학은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접근할 능력이 없기에 실현가능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구주의와 실증주의와는 조금 다른 견해이다. 구성적 경험론의 대표적인 과학철학자는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으로, <과학적 이미지 The Scientific Image>에서 처음으로 ‘구성적 경험론’이라는 입장을 소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과학 이론을 수용하는 것은 그 이론이 우리의 경험에 충족하다는 믿음만을 수반한다. 이 믿음은 이론이 단순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올바로 기술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그 과학 이론이 현 세계에서 관찰되는 사물이나 사건들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의미론적으로 참이라는 것이다. 반 프라센은 물론 관찰할 수 없는 대상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였으나, 존재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없는 것과의 관계와 같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반실재론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임을 강조하였다.

현대과학의 성공은 실재론에 힘을 실어 주는 듯하다. 현대 과학이론에 진실성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과학적 성공은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반실재론자들은 몇 가지 반론을 든다. '반프라센'은 '진화론적 반론'을 제시했다. 과학의 성공은 생물이 진화를 통해 성공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 중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처럼 과학 이론 또한 여러 가지 이론 중 성공적인 이론만 남아 전해진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살아남아 존재를 이어가는 과학 이론은 성공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과학의 성공이 실재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반프라센의 생각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이나 기준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라우단'의 '비관적 귀납' 또한 실재론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이다. 과학사를 살펴보면 한 때 성공적이라 여겨졌던 과학 이론이 훗날 잘못된 것으로 간주되어 폐기된 일이 비일비재하다. 천동설과 에테르가 그러한 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성공적이라 생각하는 과학 이론도 결국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여지가 충분히 있고, 실재론에서 말하는 과학의 '성공'이라는 것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 : 나는 … 물리 이론들이 우리가 구성해 낸 수학적 모형일 뿐이며, 그것들이 실재에 대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관측을 예측하는 것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믿는 실증주의자이다.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

도구주의에서는 관찰 가능한 사태에 적용 가능한 개념과 이론적 개념을 구별하고 있다. 과학의 목적은 한 관찰 가능한 상황과 다른 관찰 가능한 상황을 연결 지을 수 있는 편리한 장치나 도구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면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관찰, 곧 관찰 가능한 물체가 있고 그것이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관찰의 결과이다. 가령 "농구공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명제는 농구공과 그것의 아래로 떨어짐이라는 운동에 대한 관찰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들, 농구공의 속도나 질량 또는 중력 같은 존재자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닌 물체의 운동(관찰)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구주의에 대한 유효한 비판 중 하나는 관찰된 존재자와 이론적 존재자의 구분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농구공이라는 개념도 농구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단일한 개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한 개념이다. 이처럼 도구주의를 받아들이는 한 우리의 관찰마저도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관측기구 논쟁

찬성: 눈이나 관측기구나 어차피 같은 도구이고 신뢰성의 문제일 뿐이니 관측기구라고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 존재. 관측 기구를 통한 관측을 인정하지 않으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안경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되므로 이는 억지라는 입장이다. 꼭 자연적으로 진화되어 이루어진 기관만으로 관측한다고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 관측기구 자체에 이론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에 의해 오염된 관찰이라 믿을수 없다는 견해 존재.

관측기구의 한계

관측기구 논쟁에서 벗어나서, 즉 관측기구나 기술의 발달로 관측 불가능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관측 불가능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 적절한 관측기구를 발명하지 못한 경우 : 소립자, 광자, 초끈,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

과학 이론 자체가 관찰을 금지하는 경우 : 쿼크, 블랙홀 등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고고학, 자연사, 진화론, 우주론 등

실재론자는 이론을 세운 뒤 이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면 그 이론의 관측이 불가능한 부분까지도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실재론자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부분에 대해서만 옳고,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하석의 능동적 실재주의

장하석은 과학이 '진리'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상에 대하여 탐구하는 것은 패러다임 내에서 이루어지며, 과학의 성공 여부는 그 패러다임 내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실재가 이론(패러다임)처럼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복잡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한 패러다임만이 진리로 인정받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못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패러다임이 공존하여 각각이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하였다. 즉, 애초에 패러다임마다 풀 수 있는 문제가 다르므로 억지로 한 패러다임만 남겨 자연을 한 패러다임에 끼워 맞추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장하석은 실재론이 진리의 추구를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는데, 다만 과학지식에 대해 인간은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실재론자의 주장은 보존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실재에 대해 최대한 배운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경험적 적합성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경험에 의해 더 맞는 단 하나의 이론을 찾아낸다한들 그것이 어차피 절대적인 참은 아니기에 그것을 찾는데에 굳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구조적 실재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폐기되는 이론들이 있지만, 과학혁명을 겪으면서도 계속 유지되는 이론적 내용도 가끔 있다. 대부분은 물질의 본질을 다루는 인식론적 내용이 아닌 이론 속에 있는 수학적 구조이다. 이론이 혁명적으로 바뀌더라도 이론의 수학적 구조는 보존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공식에 나오는 변수들이 갖는 의미는 변할 수 있지만 그 수학적 공식은 진리로 취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은 뺀 '구조'만을 실재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구조적 실재론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논의를 피하면서 공식의 형식적 측면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진리'라 하기에는 설명이 빈약하며 미래에도 보존될 그 '수학적 구조'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도 남아있다. [2]

이론과 실재의 관계

실재론자들은 이론이 실재를 표상한다고 한다. 이는 내용이 실재와 대응하면 참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실재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이므로 실재와 이론의 대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난감하다. 따라서 이에 반대하는 정합론이 등장하게 된다. 정합론에서는 어떤 말이 참이라는 것는 그 말이 신뢰받는 다른 모든 말과 모순이 없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측기구를 바꾸거나 다른 해석을 하여 관측 내용을 다르게 제시할 수 있어, 정합론은 이론과 실재가 어떤 관계인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장하석은 복잡하고 정리되지 못한 것을 실재의 모습이라 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이론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은 실재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실재를 표현하는 이론은 인간이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주석

  1. Jarrett Leplin(ed.), Scientific Realism,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2. 장하석,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2015)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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