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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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Karl Popper, 1902년 7월 28일 ~ 1994년 9월 17일)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과학철학자이다. 과학철학자로서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구획 문제에 대하여 고찰하였고 사회철학에도 높은 관심을 가졌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철학자로 꼽히고 있으며, 그는 과학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경험적인 증거가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부분의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칼 포퍼

일생

칼 포퍼는 1902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패배했던 혼란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출신의 변호사였으며 사회적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칼 포퍼는 이런 아버지 시몬 포퍼(Simon Sigmund Carl Popper)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패전으로 인해 여러 사회과학 이론들이 제시되었는데, 칼 포퍼는 여러 이론을 접하며 어떤 이론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확립해나갔다. 어렸을 때 사회주의 경향의 책을 읽고 이에 따른 단체활동도 했지만(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되어 학생 사회주의협회에 가입하였고, 사회민주당의 당원이 되기도 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유물론에 희의를 품게 되어 탈당함), 곧 순수학문에 매료되면서 과학방법론에 빠져들었다.[1] 그는 빈 대학과 빈 교육연구소에서 철학·수학·물리학·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1928년 "인지심리학의 방법론적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2] 당시 칼 포퍼의 주된 관심사는 과학철학으로, 이를 연구하여 그의 첫 저서인 《탐구의 논리 Logik der Forschung》(1934)를 펼쳐냈고 영국의 여러 대학들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937년 뉴질랜드 캔터베리대학의 철학 교수로 초빙되어 뉴질랜드로 이주하였다가 1946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런던대학교 강사를 거쳐 논리학·과학방법론 분야의 교수를 지내고, 1965년에 영국 기사 작위(Sir Karl Raimund Popper)를 받았다.[3] 특히 사회철학에 대한 비중있는 저서를 남겼는데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역사주의의 빈곤 The Poverty of Historicism》등이 유명하다. 이후, 1994년 9월 17일에 오스트리아에서 사망하였다.

반증주의

칼 포퍼의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반증주의를 들 수 있다. 반증(falsification)이란 경험적 증거를 통해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반증주의에 의하면 어떠한 이론이 관찰을 통해 반증 가능할 때에만 그것을 경험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에 반증주의를 접목시켜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이론 중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은 반증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반증밖에 없다고 했고, 반증을 통해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이 진보하는 기본 형식이라고 했다. '비판은 이성적 사고의 피와 살'이라고 하며 포퍼는 과학적 태도란 곧 비판적 태도라고 주장하였다.

즉, 반증주의란 이론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반증을 통해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학이 진보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증주의에 따르면, 과학은 '끝없는 추측과 반증의 과정'이며 종교, 정신분석,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과학과 달리 자기 생각에 대해 비판적이지 못하므로 발전이 없다.(종교는 비판적이라기 보다는 독단적이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사상적으로 상대를 강제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객관적 관찰이나 실증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반증가능성이 없는 사후 설명에 불과하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이 높은 대담한 추측을 가지는 이론을 좋은 이론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반증가능성이 높은 이론이란, 이전에 알고 있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거나 이전의 지식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럴 듯 하지 않은 예측을 하는 이론들을 말하였다.

반증주의는 과학사에서 오랫동안 통용되어 왔던 귀납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됐다. 귀납주의란 구체적이고 어떤 현상이나 사태가 예외 없이 반복될 경우 그 부분적인 사례들에 기초하여 경험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례까지를 포함한 모든 사례에 대한 동일한 사태나 현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일반화하는 원리이다. 이러한 반복과 일반화 과정에는 오로지 정상적이고 온건한 감각 기관만을 가지고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채 공정하게 관찰한 것만을 기록하여야 하며, 관찰자에 의해 이렇게 주어진 관찰들로부터 일반화된 이론이나 가설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의 원리는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귀납의 원리로부터 도출된 귀납적 논증이 전제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논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다양한 조건 아래서 많은 까마귀를 관찰하고 그 까마귀들이 모두 검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자. 그러나 지금까지 검은색 까마귀만을 관찰했다고 해서 앞으로 관찰할 모든 까마귀가 검을 것임이 논리적으로 함축되지 않는다. 만일 미래 어느 순간에 하얀색 까마귀가 관찰된다면 이 논증은 전제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이 된다. 한편으로 ‘다양한’이나 ‘많은’이라는 조건의 의미가 모호하다. 이런 점에서 귀납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이 필요했다.

칼 포퍼가 이러한 이론을 제시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인물들의 영향[영향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아들러와 아인슈타인이 있다.[4] 그는 아들러가 주장한 열등감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열등감 이론은 개인심리학에 근거하여 인간의 모든 행동을 열등감을 통해 설명하는 이론인데, 칼 포퍼는 이러한 이론은 뭐든지 설명 할 수 있고(즉, 경험과 무관하다) 반증할 수는 없으므로 독단적인 비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발생할 상황을 예측하거나 혹은 추측하지 못하기에 반증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상대성 이론에 의한 현상 중 하나인 빛이 휘어지는 현상은 별빛의 겉보기 위치와 실제 위치의 비교를 통해 반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실제 아직까지 반증이 되지 않았다)이처럼 틀리기 쉬울 듯한 예측을 끌어내서 이론을 엄격하게 시험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태도라고 포퍼는 생각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등은 이미 발생한 사실에 적당히 적용하는 방식으로 작용함으로서 반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라고 보았고, 진정한 과학이론은 그 이론이 반증되었을 때 이론을 과감히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등)[5]

칼 포퍼는 모든 이론을 맞는 지금의 상황에서 용인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반증이 과학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반증을 통해 기존의 이론의 허점을 알아내며 또 다른 새로운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이 발전한다고 보았다. 즉, 그는 과학의 핵심으로서 비판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고, 이러한 포퍼의 이론은 그의 험난했던 삶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6]

반증주의의 문제점[7]

#반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통합되어 재구성될 필요가 있으며, #반증주의에 대한 오해도 이 섹션에 함께 다루어지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1. 과학의 일부 적법한 부분들은 반증될 수 없는 것 처럼 보인다.

(a) 확률적인 언명들

과학은 가끔 어떤 사건의 확률에 관한 언명들을 제시한다. 한 예로 현대 물리학은 우라늄 235의 반감기가 7억 1000만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하나의 우라늄 원자가 1/2의 질량 크기로 자연 붕괴하는데 7억 1000만년이 걸릴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이 1kg의 우라늄을 가지고 출발했다면 7억 1000만년 후에는 500g으로 자연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험에 의해서는 확률적이지 않은 확정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확률적인 언명들은 반증될 수 없고, 이러한 사실은 원래의 언명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b) 존재론적 언명들

과학이론들은 원자, 블랙홀, 바이러스, DNA와 같은 것들의 존재를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것의 존재를 주장하는 언명들이 그에 해당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여 반증되기는 어렵다. 만약에 어떤 이론이 우리들이 다양한 환경 속에서 반복해서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것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것이 미래에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귀납적인 근거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반증주의는 믿음에 대한 귀납적인 근거가 없을지라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도록 허용하는 것 같다.

2. 반증주의는 스스로 반증될 수 없다.

포퍼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론은 과학적 방법에 관한 철학적 또는 논리적 이론이지 과학이론은 아니기 때문에 반증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판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반증주의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Zolaist (토론) 2017년 3월 13일 (월) 12:11 (KST)

3. 반증 가능성의 정도에 대한 개념에 문제가 있다.

보편적 일반화에 대해 가능한 반증자들의 집합은 무한하고 따라서 반증 가능성에 대한 절대적인 측정은 있을 수 없고, 오직 상대적인 측정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이론보다 반증의 정도가 높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 한 이론의 경험적 추론 내용들은 배경 이론들이나 가정들과 공접해야만 그러한 이론들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듀앙 문제는 이론들의 반증 가능성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 전체 가설들의 체계에 따라 상대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기반은 과거 경험에 있게 되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귀납이 슬며시 개입하게 된다.

4. 포퍼는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예측을 설명할 수 없다.

포퍼는 귀납이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귀납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흄보다 더 극단적으로 과학자들이 귀납을 모두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과학적 지식이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라 볼 수 없으며, 만약에 그렇게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라면 우리들이 과학적으로 알게 된 어떠한 믿음들에 대한 신뢰를 우리들이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우리들이 귀납에 대한 포퍼의 회의적 태도를 채택한다면 사람들이 현대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식이 없어지며, 우리들은 일반화에 대한 실증적인 믿음은 어떤 것이든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해야 한다.

5. 과학자들은 때때로 반증을 무시한다.

과학사를 보면 과학자들이 하나의 이론을 포기하는 대신에 그 이론을 구제하기 위해 새로이 수정된 이론들이나 다른 임시변통적인(ad hoc) 가설을 모색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포퍼는 이에 대하여 논박으로부터 하나의 이론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변통적인 가설들이 더 많은 예측들을 함축하고 있다면 수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행히도 과학사에서는 반증하는 관찰을 설명하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고 종전의 이론을 사용해왔던 경우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보어(Niels Bohr, 1885~1962)의 초기 원자론은 실제로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었지만 작용 모델로서 널리 채택되어 사용되었다. 또, 수성의 궤도는 수년 동안 뉴턴의 역학과 맞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로 인해 뉴턴 역학이 폐기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수성의 올바른 궤도를 예측했을때야 뉴턴 이론은 반증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6. 이론이 반증되었을 때 가설 수정의 정도가 애매하다.

어떤 한 이론이 반증되었을 때, 핵심 가설을 수정해야만 반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설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핵심 가설은 그대로 둔 채 부수적인 가설만 바꿔도 반증의 수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 만약 그 기준이 전자라면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며 현실 과학에서 적용하기 어렵다. 또 만약 후자라면, 이는 사이비과학과 과학의 분류 기준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반증주의에 대한 오해

혹자들은, 특히 반증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증주의의 문제점으로 관측/실험이 가설/이론을 반증한다 해도 과학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례를 흔히 든다. 예를 들면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는 실험 결과가 나오면, 도중에 빠져나간 에너지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그런 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례를 통해 반증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포퍼가 반증주의를 제창한 배경을 잘못 파악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포퍼는 반증주의를 '과학은 반증주의에 따라 이래왔고, 반증주의가 과학 현실을 잘 반영한다.'가 아닌 '과학이 절대적 합리성을 가지려면 과학은 이래야만 한다.'이다. 지금까지 에너지 보존 법칙이나 뉴턴의 중력 법칙과 같은 권위를 가진 이론이 지금까지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반증될 수 있다는, 그리고 반증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주의가 반증주의인데(전자는 아직 받아들여지고 있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의 성공으로 반증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반증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행동이다.

반증주의에 대한 비판

(a) 뒤앙-콰인 논제가 제기하는 비판

칼 포퍼의 이론과 충돌할 수 있는 뒤앙-콰인 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즉 물리학에 있어서 실험은 고립된 가설이 아니라 전체 이론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실험이 가설의 예측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실험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전체 이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가설들 중 최소한 하나가 수용 불가능하며 수정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실험으로는 어떤 가설이 변경되어야 하는가가 지적될 수 없다. 또 한편 우리는, 어느 이론이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배경 지식에 적절한 수정을 가함으로써 '반박'으로부터 영구히 구제할 수 있다.[8]

가령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천왕성의 궤도에 대한 예측에 대하여 그 예측이 틀렸음이 관측되었을 때 우리는 뉴턴의 역학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행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포기함으로써 뉴턴의 역학을 보존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미지의 행성(해왕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우리는 천왕성의 궤도에 대한 예측이 실패한 그 순간에 우리는 미지의 행성의 존재를 가정하는 대신 뉴턴의 역학을 포기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우리의 관측이 천왕성의 실제 궤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또는 우주가 일정한 법칙을 따라 운동하고 있다는 믿음이 포기될 수도 있다. 그 중 어떤 믿음이 포기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반증주의는 아무것도 말하는 바가 없다.

(b) '반증'이 가진 속성 자체의 한계

반증주의는 '입증'이 가진 경험적 절대불가능성에 따라 '입증'을 대신하여 단 하나의 사례로도 가능한 '반증'을 내세운 이론이다. 즉 '입증'이 가진 한계를 '반증'으로 대체한 과학방법론이다. 하지만 반대로 '반증'도 그 속성 자체로 한계를 가지는데, 이는 과학이론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서의 과학에게는 치명적이다. 반증주의에 따르면, 반증이 완료된 경우 '무엇이 거짓이다.', 반증이 완료되지 않는 경우 '(현재로서는)무엇이 거짓이 아니다.' 정도만 알 수 있지 '무엇이 참이다'라는 것은 알 수는 없다. 이는 과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로망'인 완벽성에 대한 절망을 가져다 준다. 단어 선택 자체가 약간 웃길 수도 있는데, 이는 꽤나 치명적이다. 최악의 경우 ('완벽한 이론'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완벽한 이론'을 실제로 발견하고도 이 이론이 정말로 완벽한지 영원히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벽에 대한 절망과 불확신, 이것이 반증주의가 가진 한계이다.

반증주의와 과학의 발전

반증주의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대담한 가설의 확증이나 조심스러운 가설의 반증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가설이 대담하다고 하는 것은 그 가설이 제시된 역사적인 맥락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이나 이론과 양립할 수 없는 이론은 대담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천동설이 주류 패러다임이던 시절 제시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예로들 수 있다. 이러한 대담한 가설의 확증은 기존 믿음에 대한 반증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더 조심스러운 가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대담한 가설의 반증이나 조심스러운 가설의 확증은 과학사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허무맹랑한 이론이 반증된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한 사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만큼 우리가 지금 이 순간 TV를 보면서 맥스웰의 이론을 확증하는 것이 과학의 발전에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포퍼는 또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진리 근사치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포퍼에 따르면 두 이론 t1과 t2의 진리-내용과 허위-내용을 비교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다음 (a)(b)의 경우이면 그리고 그 경우에 한해서 t2가 t1보다 진리와 더 근사하거나 사실에 더 대응한다고 말할 수 있다.[9]

 (a) t2의 허위-내용이 아닌 진리-내용이 t1의 그것보다 많다.
 (b) t1의 진리-내용이 아닌 허위-내용이 t2의 그것보다 많다.

여기서 진리-내용이란 어떤 이론의 참된 귀결 모두의 집합이고 허위-내용은 반대로 그 이론의 거짓된 귀결 모두의 집합이다. 이로부터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을 과학적 이론의 진리 근사치가 증가한다는 것과 동치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공학 관점에서 바라본 정치기획에 대한 포퍼의 생각[10]

칼 포퍼에 따르면 '닫힌사회'(closed society)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이며, '열린사회'(open society)는 "개개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라고 정의된다. 그리고 포퍼는 닫힌사회의 붕괴에 대한 다양한 정치기획들을 사회공학이라는 관점에서 '유토피아적 공학(utopian engineering)'과 '점진적 공학(piecemeal engineering)'으로 분류했다.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1권에서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플라톤의 정치기획을 비판했다. 이 책에서 나온 사회공학이란 개념을 포퍼는 '유토피아적 공학(utopian engineering)'과 '점진적 공학(piecemeal engineering)'으로 구분했으며 유토피아적 공학이란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이상국가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정치 방법을 찾아가는 정치기획을 의미한다. 반면에 점진적 공학이란 최대의 궁극적 선을 찾아 그것을 위해 투쟁하기 보다는 먼저 사회의 가장 긴급한 악을 찾아내어 그것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정치기획을 의미한다.

일화

칼 포퍼는 언어철학의 대가이자《논리철학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로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과 부지깽이 논쟁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1946년 10월 25일, 포퍼는 "철학적 문제는 실재하는가?"("Are There Philosophical Problems?" )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하여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열린 비트겐슈타인 주관의 Moral Sciences Club의 회의에 초대되었다. 포퍼는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는 입장,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는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열띤 논쟁을 벌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논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화로의 부지깽이를 휘두르면서 포퍼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전해지며, 포퍼가 "방문자들을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말라"라고 응답하자 비트겐슈타인은 분을 못 이겨 부지깽이를 바닥에 내던지고 도망치듯 강연장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재미있는 일화는 책으로도 만들어져 2001년에 Wittgenstein's Poker: The Story of a Ten-Minute Argument Between Two Great Philosophers로 출판되었다.[11]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똥을 네 똥구멍보다 더 높이 싸려고 들지마"라는 재밌는 말을 남긴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에 강력한 반감을 드러냈다. 공산주의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열린사회의 반대인 닫힌사회로 가게 돼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며 "만약 누군가가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심장이 없는 자다. 만약 누군가가 20대가 지나서도 공산주의자라면 그는 뇌가 없는 자다" 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 말은 프랑스에 이미 존재했던 "나이 20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30에는 머리가 없는 자이다." 이 말을 변형 시킨 것이지만 칼 포퍼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증명된 바가 없다. 이원복 교수와 송병락 교수가 공동저술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라는 책에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고 저술 되어있는 반면 위키등에 Karl Popper Quote라고 검색해봐도 포퍼의 다른 유명한 말들만 나올 뿐 포퍼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커녕 언급조차 없다. 한국 독재정권 시절 칼 포퍼의 저서는 반공서적으로 권해졌지만 정작 독재정권 본인들에게 날아오는 비판을 의식하지 못 했음은 아이러니하다.

저서

  •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1934)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
  • 《역사주의의 빈곤, The Poverty of Historicism》(1957)
  • 《과학적 발견의 논리,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1959) '1934년에 출판된 탐구의 논리 영어번역(후속작)'
  • 《추측과 논박, Conjecture and Refutations》(1963)
  • 《객관적 지식: 진화적 접근, Obe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1972)
  • 《자아와 그 두뇌-상호작용론에 대한 논증, The Self and It's Brain》존 에클스(John Carew Eccles) 공저(1977)
  • 《파르메니데스의 세계-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계몽에 관한 논문들, The World of Parmenides: Essays on the Presocratic Enlightenment Essays on the Pre-Socratic Enlightenment》

함께 읽기

바깥 고리

주석

  1.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B%A5%BC_%ED%8F%AC%ED%8D%BC
  2. 심리학과 교수인 칼 뷜러(Karl Bühler)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긴 했지만, 그의 논문은 심리주의를 비판하는 철학 논문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출처에 따라 포퍼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도 한다.
  3. www.doopedia.co.kr(두산백과사전) '칼 포퍼' 참조
  4. 장하석,『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플러스, 2014) 1장 참조
  5. 이 예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 이론은 어떻게 반증이 가능할까요?
  6. 장하석,『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플러스, 2014) 1장 참조
  7. 《과학철학의 이해, Understanding Phiosophy of Science》, 제임스 레디먼(James Ladyman) 저, 박영태 역, 3장 참조.
  8.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 원리와 지식의 성장 이론에 관하여>, 홍창성, 철학논구 Vol.16, pp.211-227.
  9. K.R.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s, p.233.
  10. 《칼 포퍼의 점진적 정치공학과 법가의 정치기획》, 최연식 유능한 공동 저, 2장 닫힌 사회와 유토피아적 정치공학:포퍼의 비판 참조.
  11.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Wittgenstein%27s_Poker&oldid=767023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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