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학의 철학적 이해 : 2017년 1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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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 질문이 있습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3월 17일 (금) 15:17 (KST)

과학이란 무엇인가

  • 포퍼가 이야기 하는 반증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단순히 그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가 발견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포퍼는 이론의 핵심가설이나 주변가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건가요? 하지만 교수님께서 사례로 들어주셨던 천왕성 궤도와 같이 겉으로는 기존 이론과 반대된 현상이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이론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인 경우도 많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포퍼는 이런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기존 이론의 정당성을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 건가요? 만일 그렇다면 포퍼의 이론에 허점이 많아 보이는데 포퍼가 본인의 주장의 단점을 인정한 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뭔가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포퍼의 이론에 허점이 많다고 느껴져서요ㅠㅠㅠ실제 현대 과학자들도 핵심가설까지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포퍼의 의견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이론을 확장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쿤의 이론을 더 따르기가 편하고 위험 부담이 적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 이론의 예측에 부합하지 않는 관찰이 나타났을 때, (관찰을 문제 삼지 않는 한) 예측에 사용된 가설들 중 일부는 분명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론이지요. 천왕성의 사례의 경우, 뉴턴의 운동법칙들과 보편 중력 법칙을 핵심가설로 놓았을 때, 천왕성의 궤도를 예측하려면 천왕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천체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보조가설로 이용해야 합니다. 처음의 예측에서는 "천왕성 바깥에는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주는 다른 행성이 없다"는 보조가설을 암묵적으로 사용했지만, 그 예측이 관측과 불일치하자 과학자들은 "천왕성 바깥에는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주는 다른 행성이 있다"는 보조가설로 교체함으로써 핵심가설을 구제한 것입니다. 일종의 "반증에 의한 가설 수정"이 일어난 것이지요.
    • 다만 핵심가설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포퍼는 이를 마냥 좋은 일로 보진 않을텐데요. 포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천왕성의 궤도가 수정된 보조가설을 통해 뉴턴 역학에 포섭됐다고 해서 천왕성의 궤도에 대한 관측이 뉴턴역학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시험을 통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구제책을 통해 뉴턴 역학은 그 과학적 지위가 하락했을 것이다."
    • 실제로 과학 : 추측과 논박에서 포퍼는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참된 시험이 가능한 이론들 중 어떤 것들은, 거짓임이 드러났을 때에도, 그 신봉자들에 의해 계속 지지를 받는다. 예컨대, 임시 방편의 보조 가설을 도입하거나, 임시 방편으로 논박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이론을 재해석하곤 한다. 그러한 절차는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론의 과학적인 지위를 파괴하거나 적어도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논박으로부터 그 이론을 구제할 수 없다(후에 나는 이 구제 조치를 ‘규약주의적 왜곡’ 또는 ‘규약주의적 전략’으로 기술했다)."
    • 즉 포퍼는 핵심가설 대신 보조가설을 수정함으로써 이론을 구제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쿤과의 토론에서 "‥‥ 나는 이런 유의 태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태도는 엔지니어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로 훈련된 사람들에게도 있다. 나는 다만 그런 태도 속에,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 속에, 내가 전문화의 경향 속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커다란 위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것은 실로 과학에 대한, 우리 문명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핵심 가설을 고수하는 태도가 현실에 많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이 계속 지속된다면 결국 발전의 가능성을 닫을 위험이 있다고 경계를 했던 것입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3월 9일 (목) 14:20 (KST)


  • 포퍼는 반증이 가능한 이론만이 과학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쿤은 패러다임 이론을 이용해 정상과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결국 과학의 다른 면에 대해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떠한 이론이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론에 불과하므로 그 이론을 끊임없이 시험해야 한다는 것을 과학을 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고, 패러다임 이론은 과학의 '발전 경향성'에 대한 것이니 두 사람의 의견을 결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과학적 탐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일정한 틀은 존재하되, 패러다임의 틀 내에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날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 또는 변형된 패러다임으로의 교체가 가능하다는 식으로요.
    • 포퍼는 반증을 통해 진실로 다가간다고 했고, 쿤은 정상과학을 하는 행위를 통해 패러다임이 현실을 더 포함한다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둘은 쉽게 합쳐질 수 없습니다. 쿤 또한 정상과학을 하며 패러다임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 '태도'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고, 포퍼는 반증을 통해 진실로 다가가는 과학의 발전을 얘기했기 때문에 '발전 경향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님의 말씀처럼 둘의 의견을 적절히 합치려는 시도는 개인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17941 박경일
    • 포퍼와 쿤을 절충하려는 시도는 많이 존재했습니다. 연구 프로그램 방법론을 주장한 라카토슈는 전통에 기반한 연구 활동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평가 방법은 연구 프로그램(정상과학)의 추이를 보는 것입니다. 그의 견해는 과학과 사이비과학이란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파이어아벤트와 장하석 등은 쿤과 포퍼의 또다른 절충안으로 다원주의를 제시합니다. 그의 견해는 앞으로 수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3월 29일 (수) 10:29 (KST)
  • 쿤의 정상과학이라는 것이 포퍼가 비판하는 종교나 철학과 다른건 책에서 나온 것처럼 단순히 결과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반증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포퍼의 주장처럼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론을 포기할 것인가?에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과학은 반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된 반증인지 검토하는 것 아닌가요? 해왕성의 발견을 예로 들자면, 포퍼라면 뉴튼역학의 반증이라고 생각했을 천왕성의 궤도가 사실은 반증을 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것 아닌가요? 포퍼가 정상과학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정상과학=종교 수준으로 극단적인 가정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상과학자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이론은 '절대로'틀리지 않았다고 가정하나요?Pauluhill (토론) 2017년 4월 14일 (금) 21:26 (KST)
    • Pauluhill님의 얘기처럼, 천왕성의 궤도에 대한 관측 자료는 결국 뉴턴 역학에 대한 반증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정상과학자는 어떤 사례를 발견해야 패러다임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수성의 궤도에 대한 관측 역시 뉴턴 역학의 예측과 맞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불칸'이라는 행성이 수성 안쪽에 있다고 가정하여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뉴턴 역학이 반증되었다고 생각했을까요? Zolaist (토론) 2017년 4월 16일 (일) 10:30 (KST)
  • 합리주의와 선험적 방법 사이에서 헷갈리는 것이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각보다 뛰어나고 이성으로 연역적으로 알게된건(ex:물체는 현재의 운동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경험과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옳다.'라는 것인데, 데카르트는 과학과 관련해서 제 1원칙에서부터 출발하는 연역적인 방법을 지지하고, 귀납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귀납이라는 것도 지금까지의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선험적 방법인데 ppt에 나온 '선험적 방법의 약점들'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서 선험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인가요? Pauluhill (토론) 2017년 4월 15일 (토) 14:34 (KST)
    • 귀납적으로 알아낸 미래에 대한 지식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될까요? 귀납주의자들은 그 지식이 결국에는 우리의 경험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 지식의 원천 또는 토대는 경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귀납적 방법을 선험적 방법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험적 방법'에 대한 언급들은 모두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4월 16일 (일) 10:30 (KST)

과학혁명

  •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 바뀐 후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이전의 패러다임보다 객관적 혹은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해한 "공약 불가능성"이란, 패러다임 간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패러다임이 더 우수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각각의 패러다임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특정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입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화학에서 편재화 전자 모형과 비편재화 전자 모형의 사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현대적인 시점에서는 비편재화 전자 모형이 실재에 더 가깝다고 할 지라도, 편재화 전자 모형은 화학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편재화 전자 모형이 실재에서 더 멀다고 생각될지라도, 두 패러다임이 각각의 큰 의미를 갖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틀렸다 혹은 우세하다 라고 할 수 없는것이 진정한 공약불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강의 중 "뉴턴의 역학은 틀렸고 양자역학이 맞았다.", "에테르라는 틀린 개념을 기반으로 패러다임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혹은 "특정 패러다임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지고 다음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을 맞이한다." 와 같은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과학혁명을 겪은 후의 패러다임은 틀렸다 라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책을 찾아보니, 책에서는 공약불가능성을 '두 패러다임 간의 경쟁이 일어날 때'의 개념으로 한정짓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가 생각하고 있던 진정한 공약불가능성의 의미와는 대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결국 패러다임 간의 우수성을 따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가 현재 속한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패러다임 간의 우수성을 따질 수 있는 것인가요?

(물론 저는 완벽한 공약불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뉴턴역학과 양자역학의 예도 양자역학이 뉴턴역학을 포함한다는 입장이 더 설득력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약불가능성의 엄밀한 의미가 혼동되어 질문 남깁니다!)서준원 (토론) 2017년 5월 15일 (월) 21:32 (KST)서준원

  • 답변
    • 첫째, 일단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다"는 식의 얘기는 모두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가 생략된 표현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과거의 이론에 대해 "틀렸다"는 말은 자주 하긴 했지만, 현대의 이론에 대해 "맞았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과거 이론의 특정 버전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례에 의해 "틀렸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이론의 핵심을 유지한 채 보조가설만 수정하여 그 반례를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그러한 시도가 포기된 경우에는 관례상 그 이론에 대해서 "틀렸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5월 19일 (금) 12:58 (KST)
    • 둘째, 공약불가능성을 저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각각의 패러다임에게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경쟁 중인 패러다임 중에서 모든 점에서 우월한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에서 어느 한쪽이 승리한 이후에는, 승리한 패러다임에 기초한 연구를 통해 승리한 패러다임의 장점은 점점 많아지고 단점은 줄어들게 됩니다. 한참 지난 후에 두 패러다임을 비교해보면, 사람들이 아무리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승리한 패러다임의 (장점-단점)이 패배한 패러다임의 (장점-단점)보다 훨씬 크다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패배한 패러다임의 (장점-단점)이 승리한 패러다임의 (장점-단점)보다 크다고 느끼는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즉 혁명이 종결되고 난 후에도 공약불가능은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더이상 패배한 패러다임은 승리한 패러다임을 위협할만한 적수가 되지 못할 뿐입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5월 19일 (금) 12:58 (KST)
    • 셋째, 과학의 목표를 진리로 둘 경우, 패배한 패러다임은 이미 진리의 후보가 되지 못하는 반면, 승리한 패러다임은 여전히 진리의 후보가 된다는 점에서 둘이 차별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장하석이 주장한 것처럼 과학의 목표를 다양하게 설정할 경우, 패배한 패러다임도 승리한 패러다임에 비해 더 유용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하는 셈이 됩니다. Zolaist (토론) 2017년 5월 19일 (금) 13:09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