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mulacrum Account of Expla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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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매우 적은 수의 교량 원리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근본 이론의 설명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물리학은 물리적 과정의 다양한 양상들을 모형화하기 위해 보통 적은 수의 잘 이해된 원리들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는 물리학의 근본 법칙이 실제 세계의 대상이 아니라 모형 속의 대상만을 지배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결국,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설명에 대한 적절한 견해는 '시뮬라크럼(sumulacrum)'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설명한다는 것은 이론의 기본 틀에 맞는 현상에 대한 모형을 구성한 다음 그것의 현상 법칙에 해당하는 유사물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설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설명에 대한 모든 철학적 의문을 해소해주진 못한다. 다만 자연 자체와 이론을 통한 설명이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해줄 뿐이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트라이트가 사용하는 "교량 원리"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트라이트는 이 개념을 전통적 철학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책 7장 Fitting Facts to Equations를 미리 숙지한 후 읽기 바란다.

요약

도입

쿤은 "19세기 물리과학의 수학화가 문제 선택의 대단히 정제된 전문적 기준을 제공함과 동시에 전문적 검증 과정의 효율성을 대폭 향상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1] 카트라이트는 (물리학이) 적은 수의 교량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능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하고자 하는 현상은 끝없이 복잡하다. 집단 연구를 위해서, 그 집단은 모형의 유형을 한정지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현상을 지적으로 짜맞추는 방법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면, 모형 구성 작업은 완전히 혼돈에 빠질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합의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교량 원리의 제한은 이론적 설명과 모형 구성에 대한 합의를 제공해 준다. 이는 또한 문제 선택을 위한 날카로운 기준을 제공한다. 모형에 대한 구성, 평가, 제거를 가능한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교량 원리 덕분이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반실재론적인 귀결을 낳는다.

카트라이트는 여기에 중요한 얘기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교량 원리의 제한은 이론의 설명력에 핵심적이다.

교량 원리와 '실재론적' 모형

좋은 이론은 가능한 적은 수의 원리(교량 원리도 포함)를 가지고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물리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해밀토니안을 필요로 하는 것은 나쁜 이론이다. 양자 역학의 탁월한 설명력은 광범위한 경우를 포괄하는 데 적은 수의 잘 아는 해밀토니안을 적용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만약 새로운 상황마다 1:1로 새로운 수학적 표현을 매치시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실재론적 관점에 대한 비판

교량 원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반실재론적인 귀결을 가진다. 그러나 실재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 적은 수의 교량 원리만 필요한 이유는 자연에 오직 적은 수의 기본적인 상호작용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우라고 해서 새로운 교량 원리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복잡한 상황에 대한 표현은 기본 요소에 대한 표현의 조합을 통해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트라이트는 이러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관점이라 지적한다. 우선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물리학을 하지 않는다. 이는 이미 익숙한 얘기이다. 더구나 그러한 방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도 아니다. 각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작업은 무진장 복잡하다. 현대 물리학의 아름다움과 힘은 간단한 모형─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방정식은 쓰여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근사를 통해 풀 수도 있는─을 간단히 취급하는 능력에 있다. 조화 진동자 모형은 양자 역학에서 매우 빈번히 사용되는데, 이는 엄밀히 진동으로 간주되기 어려운 경우에조차 사용된다. 예컨대 수소 원자는 전자 진동자로, 전자기장은 양자화된 진동자 집합체로, 레이저는 van der Pol 진동자로 그려진다. 똑같은 기술은 반복적으로 설명력을 제공한다.

'실재론적'의 두 가지 의미

구체적인 예로, 윌리엄 루이셀(William Louisell)의 기체(e.g., 헬륨-네온) 레이저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자. 루이셀은 레이저를 양자화된 전자기장과 상호작용하는 3-레벨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상상한다. 또한 원자와 전자기장은 모두 damping reservoir와 상호작용한다. 이를 표현한 루이셀의 방정식은 아래와 같다.

루이셀은 이 방정식에 대해, "첫 번째 항은 인과적 행동을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항은 장과 reservoir의 상호작용을 기술한다. 마지막 항은 원자와 pumping and damping reservoir의 상호작용을 기술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첫 번째 항은 나머지 항과 대비하여 "인과적 행동"을 기술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원자-장 상호작용은 실재론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reservoir 상호작용에 대한 항들은 단지 현상론적이다.

카트라이트는 루이셀의 표현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실재론적"이라는 표현을 여러 의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가지 방식은 "실재론적"을 "이상화된"과 대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루이셀의 원자-장 사이의 "인과적 행동"에 대한 모형(첫 번째 항)은 그리 실재론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루이셀의 원자들은 원자끼리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이상화되어 기술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두 번째 방식은 "실재론적"을 "현상론적"과 대비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루이셀 방정식의 첫 번째 항은 레이저의 실제 구성물인 원자와 장을 언급하고 그것들 사이의 (양자 역학적) 상호작용을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그 해로서 상태를 도출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론적이다. 반면, 나머지 항들은 reservoir가 실제로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항들은 reservoir의 행동(기능)을 직접 수학적으로 표현해줄 뿐, 실제로 무엇이 그 행동(기능)을 일으키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양자 역학이라는) 설명적 이론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항들은 이론적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로서) 도출된 항이 아니다. 그 항들은 (현상적) 상태를 그냥 직접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방식은 (양자 역학이라는) 설명적 이론의 입장에서 볼 때 비실재론적이다. 그 항들은 계의 행동을 기술하긴 하지만, 무엇이 그 행동을 일으키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실재론적'의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다른 수준에서 작동한다. 첫 번째 의미는 모형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서 의존한다. 이 경우 모형은 만약 그것이 모형화하려고 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실재론적이다. 두 번째 의미는 모형과 수학 사이의 관계에 의존한다. 근본 이론은 무엇이 설명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텐데, 그 기준에 비추어 만약 모형이 수학적 표현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모형은 실재론적이다.

'실재론적'의 두 가지 의미는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루이셀의 레이저 모형이 reservoir의 상세한 (내부) 구조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 모형이 두 번째 의미에서 비실재론적일뿐만 아니라 첫 번째 의미에서도 비실재론적이라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전부가 아니다. 만약 reservoir가 정말 원자들을 decay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time correlations는 정확히 0이 되어야 한다. 이는 루이셀의 가정이다. 그러나 이는 첫 번째 의미에서 매우 비실재론적이다. 슈뢰딩거 이론 하에서 그런 상황은 일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상황을 왜곡시키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왜곡(e.g.,reservoir의 행동에 대한 왜곡)은 우리의 당장의 관심거리인 계(e.g., 원자-장 상호작용 계)에서 어느 정도를 거리를 두고 이루어진다. 만약 우리가 원자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장(field)에 왜곡을 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장에 대해서도 연구하고자 한다면, reservoir를 이루는 레이저 공동의 벽과 주변 환경에 zero time correlation과 같은 왜곡을 가한다.

소결: 현상론적 항의 필요성과 교량 원리의 반복적 사용

이로부터 우리는 교량 원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두 번째 의미에서 실재론적인 접근은 많은 수의 교량 원리를 사용할 것이다. 양자 통계적 접근은 레이저 빛의 정밀한 광자 통계를 예측하기 위한 매우 복잡미묘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급 접근에서조차 그 작업의 상당 부분은 교량 원리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상론적 항을 통해 수행된다. 예컨대 루이셀의 현상론적 항들은 damped system의 일반 이론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 항들은 무엇이 그런 damping을 만들어내는지에 상관없이 같은 패턴을 보이는 현상에는 반복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카트라이트는 7장에서 자신이 든 예들이 교과서에 나온 초보적인 예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교량 원리의 수가 매우 적으며, 그것이 이론적 성공의 핵심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루이셀 방정식은 그것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루이셀 방정식의 첫 번째 항은 퍼텐셜에 대한 기술을 교량 원리를 통해 매치시킨 진짜 해밀토니안 항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슨 해밀토니안인가? 그것은 원자와 radiation 장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하기 위해 페르미가 1932년에 개발했던 (교과서에 나오는) 해밀토니안이다. 루이셀이 변경한 것은 그 헤밀토니안을 공동 내 모든 원자에 대해 합한 것뿐이다. 즉 양자 통계적 접근의 성공은 (새로운 현상에 관련된) 새로운 원리를 사용한 데서 온 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오히려 잘 알려지고 잘 이해된 원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다.

설명에 대한 '시뮬라크럼(Simulacrum)' 견해

D-N 견해에 따르면, 설명이란 현상이 (보다 근본적인) 법칙으로부터 따라나온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현상을 다룰 때 첫 번째 의미에서 실재론적일 것을 요구하며, 만약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두 번째 의미에서도 실재론적일 것을 선호하게 된다. 카트라이트는 D-N 모형의 대안으로서 앞서 묘사했던 물리학에서의 설명 관행(practice)에 보다 가까운 설명 모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듀앙의 관점에 기초해 있다.

이 책은 원래 근본 법칙의 사실성을 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법칙의 사실성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주된 논증 중 하나는 그것의 광범위한 설명력과 예측에서의 성공이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대부분의 성공적인 설명 또는 예측은 (첫 번째 의미에서도 두 번째 의미에서도) 실재론적이지 않다. (두 번째 의미에서의) 지나친 실재론적 접근은 설명력을 중단시킨다. 오히려 (방정식의 모든 항을) 상세하게 '인과적'으로 구성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상론적' 항을 사용하는 것이 이론의 적용범위를 확장시켜준다. 왜냐하면 현상론적 항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그 특성이 잘 알려진 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한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현상을 이론의 기본틀에 (끼워) 맞춘 모형을 찾아 그 현상에 대해 참인 지저분하고 복잡한 현상론적 법칙의 유사물을 도출하는 것이다. 모형은 주어진 목적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현상을 이론의 수학적 틀을 통해 '보려' 하지만, 문제에 따라 강조점은 달라진다. 우리는 특정 양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대신에 정확도는 떨어지더라도 광범위한 행동을 모사하고 싶을 수도 있다. 때로 우리는 현상을 일으키는 인과적 과정을 그려내고 싶을 수 있는데, 이 때 우리는 인과적으로 유관한 요소들을 가능한 실재론적으로 다루는 모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경우 다른 요소들은 실재론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실재론적인 모형이 우리의 목적을 가장 잘 수행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형의 "반실재론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카트라이트는 설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시뮬라크럼" 견해라고 부른다. 시뮬라크럼의 사전적 의미는 "그 실체나 본질(qualities)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것의 형태나 외양만을 가진 무언가"이다. 이는 카트라이트가 '모형'에 대해 주장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담고 있다. 헬륨-네온 레이저가 van der Pol 진동자처럼 행동한다고 할 때, 헬륨-네온 레이저는 진짜 van der Pol 진동자가 아니다. 레이저는 직류 회로의 트라이오드(triode) 진동자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트라이오드 진동자를 위한 van der Pol 방정식을 가지고 레이저를 다룬다면, 우리는 (threshold 위에서) 레이저의 행동을 훌륭히 모사할 수 있을 것이다. 모형의 성공은 그것이 진행되는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정확히 모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즉 모형의 실재성은 관건이 아니다.

모형은 픽션이다. 모형 내에서 대상에 부여된 속성들 중 일부는 실제 대상의 진짜 속성이겠지만, 어떤 속성들은 단지 (수학적 이론의) 편의를 위한 속성에 불과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실재의 극한적 경우로 간주되는 '이상화'된 속성들로, 무한 퍼텐셜(infinite potentials), zero time correlations, 완전 강체, 마찰없는 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때로 어떤 속성들은 순전히 허구이기도 하다.[2]

모형에 대한 기존 논의들과의 비교

과학에서 쓰이는 모형에 대한 논의는 이전에도 이루어져 왔다. 마리 헤세(Mary Hesse)와 윌프리드 셀라스(Wilfrid Sellars)는 모형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헤세는 모형은 실제 현상과 일부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셀라스가 보기에, 모형과 실재가 주되게 공유하고 있는 것은 속성이 아니라 속성들 사이의 관계이다. 헬륨-네온 레이저는 실제 트라이오드(triode) 진동자는 아무 속성도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똑같은 van der Pol 방정식에 의해 잘 기술될 수 있다. 카트라이트의 입장은 셀라스에 가깝다.

그러나 카트라이트는 셀라스의 실재론적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셀라스가 보기에, 현상 법칙은 (각종 복잡한 상황이 개입되기 때문에) 일반성이 떨어지고 예외를 허용하는 반면, 근본 법칙은 간단하고 일반적이며 예외가 없다. 이런 이유로 셀라스는 근본 법칙을 자연의 기본 진리로 놓는다. 그러나 카트라이트는 근본 법칙의 일반성과 예외 없음이 잘못된 근거에 기초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근본 법칙이 진리라고 할 때, 그것은 모형 안에서만 그러하다.

카트라이트는 "Fitting Facts to Equations"에서 이론 도입의 두 단계를 구분한 바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현상에 대해 수학적 이론으로 다룰 수 있는 형태의 기술(모형)을 준비하며, 이론 도입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 준비된 기술(모형)을 교량 원리를 통해 이론의 방정식으로 변환한다. 카트라이트가 보기에, 실재론자들의 착각은 두 번째 단계에만 주목한 결과이다. 사실 모형은 그 근본 법칙이 참이게끔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모형에서 근본 법칙이 참인 것은 당연하며 매우 사소한 문제이다. 문제는 이론 도입의 첫 번째 단계에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현상에 대해 이론에 맞는 기술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실재론적이지 않은 모형을 구성하게 된다. 법칙은 모형 내에서 참이더라도 실제 현상에서까지 참일 수는 없다.

최근 과학철학 내에서도 모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은 여전히 모형을 불완전한 것 또는 부정확한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3] 그에 비해 카트라이트는 모형을 좀더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가 보기에, 모형─즉 대상 계에 대해 특별히 준비된, 보통은 허구적인 기술─은 수학적 이론이 실재에 적용될 때면 언제나 동원된다.

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견해와의 비교

시뮬라크럼 견해에서, 모형은 이론에 핵심적이다. 모형 없이 이론은 실재와 연결되지 않는다.[4] 시뮬라크럼 견해에서 모형은 현상에 대한 이론이다. 이는 반 프라센(Bas C. van Fraassen) 등의 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견해와 상당히 닮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강조점이 다르다.

The Scientific Image에서 반 프라센은, 우리가 관찰가능한 것만 믿을 자격이 있으며 관찰에 의해 입증될 수 없는 이론적 주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agnostic) 한다고 주장한다. 모형은 관찰가능한 하부구조와 이론적 상부구조로 나뉘며, 세계와 정확히 일치해야 (또는 동형적이어야) 하는 부분은 전자뿐이다.

반 프라센은 분명 반실재론적인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실재론자인 셀라스와 공유하고 있는 점이 있다. 둘 모두 이론이 관찰가능한 현상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카트라이트가 보기에 좋은 이론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론의 관찰 귀결은 우리가 참으로 간주하는 것과 꼭 정확히 매치될 필요가 없다. 목적에 따라 이론의 관찰 귀결은 실제 관찰되는 현상과 거칠게 매치되어도 좋다. 우리가 더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기술적 정확성 목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현상에 대한 단정한 조직화를 일부 포기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현상 법칙을 산출해낼 수도 있다.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반 프라센은 관찰가능한 것과 관찰불가능한 것을 명확히 가르는 데 관심이 있는 반면, 카트라이트는 그에 큰 관심이 없다.[5] 대신 카트라이트는 (추상적 또는 이상적 모형과 대비하여) 구체적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심이 있으며, 엄밀히 볼 때 그것이 근본 법칙에 의해 벌어지는 일과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이 있다.[6]

현재 설명 이론의 한계들

시뮬라크럼 견해는 잘 정식화된 견해가 아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모형을 만들고 그 모형 내에서 현상적 행동과 일부 매치하는 여러 법칙들을 '도출'해낸다. 그러나 여기서 '도출'의 의미는 D-N 견해에서 말하는 도출이 아니다. 그렇다고 명료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인과를 다루는 방법이 카트라이트에게 아직 없다는 데 있다. 최선의 이론적 작업으로 현상 법칙을 상당수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이론적 작업은 적절한 인과적 이야기도 말해 주어야 한다. 어떤 작업을 위한 이상적 모형은 보통 다른 작업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간단한 모형을 통해 인과적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그 인과적 원리는 보다 복잡한 모형에도 흔히 그냥 이입되곤 한다.

예컨대 파인만은 교과서 1권에서 단순한 매질(저밀도 기체) 모형을 통해 굴절율의 원리를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후에 2권에서 복잡한 매질(e.g., 액체)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 방법은 문제를 풀 수 있게 해주긴 하지만, 굴절율의 물리적 원천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카트라이트는 파인만의 교과서에서 굴절율에 대한 인과적 이야기를 말해주는 이론적 부분은 어디인지 묻는다. 카트라이트는 그 부분은 분명 1권이라고 생각하며, 파인만이 저밀도 매질 모형을 통해 인과적 설명을 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이론은 아직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통적인 D-N 설명 이론도 카트라이트 본인의 시뮬라크럼 설명 이론도 별 쓸모가 없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For Phenomenological Laws"에서 밝혔듯이, 근본 법칙은 이론적 도출 과정에서 수정이 가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또 "Do the Laws of Physics State the Facts?"에서 보였듯이, 많은 이론적 작업은 다른 이론과 다른 영역에서 온 법칙을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는 설명의 연역적 성격을 훼손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설명 이론은 현재 없다. 시뮬라크럼 설명 이론도 이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이다.

시뮬라크럼 설명 이론은 다음의 점만을 명확히 해줄 뿐이다. 일반적으로 자연 스스로는 우리의 수학적 이론에 딱 맞는 상황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론과 그것이 적용될 대상 모두를 구성한 다음, 일어난 일을 (때론 매우 정확하게) 도출하면서 그것을 조금씩 실제 상황과 매치시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든 사실을 단번에 구할 수는 없다. 근본 법칙은 실재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배하는 것은 실재의 외양일 뿐이며, 그 외양은 실재 자체보다 훨씬 단정하며 훨씬 통제되어 있다.

각주

  1. Thomas S. Kuhn, "A Function for Measurement in the Physical Sciences," in The Essenstial Tension, ed. T. S. Kuh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7), p. 220.
  2. 복사계(radiometer)
    카트라이트는 고전 통계역학에서 가정되는 (맥스웰) 확률 분포가 순전히 허구라고 주장한다. 통계역학 이론에서 그 확률 분포는 핵심적이며, 현상을 조직화하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때로 통제된 실험실에서는 그에 대한 구현과 조작도 어느 정도 가능하며 그에 대한 테스트도 가능하다. 그러나 통계역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거기에 어떤 진정한 확률 분포가 있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된다. 맥스웰의 확률 분포는 순전히 허구이며, 그 확률 분포를 가진 매질(medium)은 단지 이상적 모형에 불과하다. 실제 매질에서는, 예컨대 맥스웰이 실제로 사용했던 복사계(radiometer)들에서는 대류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전도나 마찰 등의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의 크기는 복사계 안의 기체 종류나 밀도, 바람개비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이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른 요인들의 효과는 무시할 정도로 작으며 복사계들 속의 진짜 확률 분포는 맥스웰이 의도한 확률 분포에 충분히 근접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괄 법칙 모형 하에서, 맥스웰의 이론이 복사계 바람개비의 회전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그 복사계는 특정한 확률 분포 함수를 가져야 하며 그 함수는 복사계의 여러 조건들과 법칙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맥스웰의 이론은 그러한 법칙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복사계의 조건들은 무한히 다양하고 무한히 복잡하며 명시적으로 적을 수도 없다. 따라서 맥스웰의 설명을 구제하려면 고도로 복잡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법칙들이 가정되어야 한다. 카트라이트는 이 법칙들이 완전한 허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적을 수 없으며, 그 법칙들을 검사하기 위해 실험을 구성할 수도 없다. 단지 설명에 대한 포괄 법칙 모형만이 그 법칙들의 존재를 주장할 뿐이다.

    (맥스웰의) 거의 모든 복사계들은 맥스웰의 확률 분포를 가지지 않는다. 다른 요인들이 완전히 제거된 이상적인 상황 하에서는 (또는 우연히) 맥스웰의 확률 분포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즉 복사계의 매질과 (맥스웰이 제안한) 확률 분포 사이의 교량 법칙은 단지 케테리스 파리부스 하에서만 작동한다. 실제 복사계들 내의 진짜 확률 분포가 맥스웰의 확률 분포에 충분히 근접한 경우, 이상적 매질에 대한 맥스웰의 설명은 각각의 실제 복사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의 대역(proxy)이 된다. 그러나 이 대역 설명은 포괄 법칙 관점에서 볼 때 전혀 설명이 아니다. 포괄 법칙 관점에서 진정한 설명을 위해서는 각 복사계의 조건에 따라 정확한 확률 분포를 결정해주는 모든 교량 법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교량 법칙은 없다. 결국 포괄 법칙 설명은 작동하지 않는다.

    확률 분포는 일차적으로 (현상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는다. 다른 '편의를 위한 속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을 통제된 실험실 밖의 실제 상황에 적용할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방 분자들의 확률 분포는? 이 펜 끝의 전기장 벡터값은? 이러한 질문들엔 답이 없다. 이 질문들은 실제 세계의 실제 대상은 가지고 있지 않은, 모형 속 대상만 가지고 있는 그런 속성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도된 추론에 의해 오도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 주어진 모형에 대해, 어떤 실제 현상의 주된 특징이 바로 그 모형 속에서 언급된 특징인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예컨대, 저밀도 헬륨은 통계역학의 당구공 모형의 관점에서 거의 이상 기체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그 모형을 실재에 대한 정확한 모사(replica)로 생각해서 그 모형의 진짜 속성들뿐 아니라 편의를 위한 속성들까지 실제 현상에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의) 연속성에 근거하여 그 편의를 위한 속성들이 복잡한 상황에도 잘 적용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겐 상당수의 추상적 이론적 속성들은 복잡한, 실제 경우들에 적용할 근거가 없다. 연속성에 근거하여, 그 속성들은 이상적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없다.

  3. Michael Redhead, "Models in Physics",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31 (1980), pp. 145-163; James Cushing, "Models and Methodologies in Current Theoretical High Energy Physics", Synthese 50 (1982), pp. 5-101.
  4. 슈뢰딩거 방정식은 무언가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그에 사각-우물 퍼텐셜이나 2체 쿨롱 상호작용 등의 경우마다 무슨 해밀토니안을 적용할지 말해주는 원리를 덧붙이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 속의 루비 레이저 또는 벤젠 분자 결합 등에 대한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그 현상에 대한 모형이 필요하다. 실제 현상을 수학적 이론 내의 기술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모형이다.
  5. 카트라이트는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와 인과적 과정(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믿는 편이다. 이렇게 보면 카트라이트는 셀라스와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관찰불가능한 것들이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단지 관찰가능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한 답을 구하기 위해 여전히 그 현상들의 관찰불가능한 원인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6. 카트라이트의 시뮬라크럼 견해는 보다 강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연의 근본 법칙들이 실제로 그 결과들을 산출해낸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근본 법칙 아래 떨어지는 (즉 그에 의해 포괄되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이론의 필요에 의해 준비된) 모형의 허구적 상황일 뿐, 실제 지저분한 상황이 아니다. 근본 법칙이 적용되는 상황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상황은 매우 세심하게 통제된 실험하에서 구성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보통 그런 상황을 인심 좋게 내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실재론자들은 이론의 성공으로부터 이론적 법칙의 참을 주장하곤 한다. (이런 추론 방식을 인정하더라도) 그 참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례가 필요하다. 한 줌의 실험적 성공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재론자들은 이론의 광범위한 적용에서의 성공 사례(e.g., 레이저, 트랜지스터, 등등)를 필요로 하지만, 아쉽게도 각종 적용사례들은 (성공적이라 할지라도) 실재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종 이론적 적용 사례에서, 이론적 법칙은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읽을거리

Table of Contents of Nancy Cartwright's How the Laws of Physics Lie (1983)

  1. Causal Laws and Effective Stragegies
  2. The Truth Doesn't Explain Much
  3. Do the Laws of Physics State the Facts?
  4. The Reality of Causes in a World of Instrumental Laws
  5. When Explanation Leads to Inference
  6. For Phenomenological Laws
  7. Fitting Facts to Equations
  8. The Simulacrum Account of Explanation
  9. How the Measurement Problem is an Artefact of the Mathema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