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살생에서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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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2015), 7장 중에서 발췌.

본문

살생에서의 혁신


데이비드 에저턴(David Edgeron)

정동욱, 박민아 옮김


20세기 살생에 있어 혁신 중심의 역사는 곤충, 식물, 미생물 살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는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농사와 관련이 있었다. 1900년 무렵에 농부가 쓸 수 있는 살생 기술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그들에겐 몇몇 종의 살충제나 살균제에 제초제가 있었을 뿐이었다. 20세기에는 작은 생물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새로운 화학약품이 등장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는 특히 혁신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에 IG 파르벤의 한 화학자는 유기인산염 살충제를 발견했다. 이 유기인산염들은 전후 유기살충제의 주요한 한 종류였는데, 다른 중요한 종류로는 염화유기화합물들이 있었다. 그중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유명했던 살충제가 DDT였다. 이와 모기를 죽이는 데 처음 사용된 이후, DDT는 다목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된 살충제가 되었다. 수많은 살충제들이 뒤를 이었고, 이 살충제들은 DDT가 1970년대부터 점차적으로 사용 제한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화학제초제도 1940년대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주로 사용된 신제품은 2,4-D였는데, 이것은 동시발견의 놀라운 예로, 영국에 있던 두 그룹과 미국에 있던 두 그룹 등 별개의 네 그룹이 이 물질을 발견했다.

DDT나 유기인산염들과 함께 2,4-D와 여타 제초제들은 부유한 나라의 녹색혁명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었다. 이들의 사용은 생산과 경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제초제들로 인해 원치 않는 잡초들은 대거 사라지고 논밭에는 단일 작물만 남았다. 곤충들은 살충제뿐 아니라 제초제 때문에도 고통 받았다. 이런 강력한 화학약품들은 농촌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위험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20세기 훌륭한 과학 행동주의 서적 중 하나인, 자연학자이자 과학저술자였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1962년 작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폭로되었다.

그림 22. 발진티푸스를 예방하기 위해 DDT를 이용해 이를 죽이는 방법을 설명하는 모습. DDT는 북부 아프리카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발진티푸스의 발생을 예방했다.

살충제와 농약은 전쟁에서도 그 용도를 찾았다. DDT는 우리가 본 것처럼 2차 세계대전 중 전쟁 지역에서 말라리아 모기를 없애는 데 널리 사용되었고,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를 억제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미국의 화학전 부대는 2,4-D에서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찾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수행된 수많은 작전 중에서, ‘랜치 핸드 작전(Operation Ranch Hand)’이라 불렸던 계획은 베트콩의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고 은신처를 없애기 위해 1960년대 내내 25대에 달하는 항공기를 동원해서 1900만 갤런의 제초제를 투하했다. 악명 높은 ‘고엽제(agent orange, 오렌지 작용제)’는 2,4-D를 비롯한 평범한 상업용 제초제들을 특정한 비율로 섞은 것에 불과했다.

20세기에는 미생물 살생에서도 상당한 혁신이 일어났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인체 내 박테리아를 죽이는 새로운 화합물들로, 1930년대 개발된 술폰아미드 종류인 살바르산(Salvarsan)이나 1940년대 개발된 가장 중요한 페니실린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런 화합물들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 몸 속의 박테리아에도 사용되어, 새로이 등장한 산업화된 축산에서 빽빽이 들어찬 동물들의 질병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다른 용도도 있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불확실하지만, 1940년대에 페니실린은 닭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생산된 전체 항생제의 1/4이 동물 사료에 들어갔다. 1990년대에는 항생제 생산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도 동물 사료에 들어간 항생제가 전체의 약 1/2을 차지했으며, 그 대부분은 성장 촉진용이었다.

20세기는 항바이러스제의 혁신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1950년대에는 포진, 소아마비, 천연두의 치료제가 개발됐다. 뒤의 경우들은 예방주사에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1970년대에는 아시클로비르(Acyclovir)[1]가 나왔고, 1980년대에는 HIV/AIDS에 대하여 AZT가 나왔다. 항균제 치료법은 1957년 니스타틴(Nystatin)의 등장으로 큰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 물질은 공공 기관, 여기서는 뉴욕주 보건부에서 일하던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특허를 낸 이례적인 물질이었다(니스타틴이란 이름은 바로 그들이 일한 New York State에서 온 것이다). 1960년대에는 닥타린(Daktarin)이 등장했다. 팔루드린(paludrine)이나 클로로퀸(chloroquine)과 같은 새로운 항말라리아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의 대규모 목적 지향형 연구 노력을 통해 나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독약으로 인해 죽은 전세계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곰팡이, 아메바, 곤충, 식물의 수를 헤아려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등 동물의 살생을 다룬다면, 혁신 중심적인 전시관은 그다지 보여줄 것이 없을 것이다. 닭을 잡는 경우처럼 일부에서는 그 기술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핵심적인 살생 기술은 여전히 칼날로 목을 베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여전히 그물에 낚여 올라온 후에 질식사했고, 고래는 작살에 찔려 죽었다. 예전에 일어났던 이러한 중대한 혁신들은 굉장히 놀라운 기술이었다.

살인 분야에서의 혁신의 역사는 더 잘 알려져 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겨자가스나 포스진(phosgene) 같은 물질을 사용하는 화학전이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에는 핵전쟁과 박테리아전이 뒤를 이었다. 이 모든 영역에서는 혁신들이 이어졌다. 1930년대에는 유기인산염 살충제들이 인간에 극도로 유독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효과적인 ‘신경가스’로 이어졌다. 타분(Tabun)과 사린(Sarin)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들에 의해 제조되었는데, 1950년대에 사린은 표준적인 신경가스가 되었고, 그 생산지 중에는 영국도 있었다. 1950년대에 ICI사는 새로운 유기인산염 살충제를 도입했는데,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유독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으로 건너온 이 물질은 새로운 종류의 화학 무기, 바로 ‘V 작용제(V-agents)’의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런 작용제들 중 하나인 VX는 미국과 소련의 무기고를 채운 핵심적인 무기였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폭탄은 다양한 종류의 더욱 강력한 융합 무기로 이어졌고, 물건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도록 고안된 중성자 폭탄과 같은 것들로도 이어졌다. 갖가지 섬뜩한 생물작용제들 역시 개발되었다. 또다시 장기 호황기는 매우 생산적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전쟁을 벗어나면, 혁신 중심적인 이야기에는 기준이 될 만한 지점이 별로 없다. 우선 1920년대 미국에서 도입된 가스실이 있고(전기의자는 19세기 후반의 혁신품이었다), 1980년대 또 미국에서 도입된 독물 주사가 있다. 또 다른 한 나라만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바로 독일이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에서 치클론 B(Zyklon B)로 자행된 살생은 인간을 죽이는 중대한 혁신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혁신 중심의 관점은 아우슈비츠를 거대한 현대적 살인 공장으로 보게 한다.

살생에 대한 혁신 중심의 역사는 살생에 대해 현재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상당한 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살생의 경우는 특히 혁신 중심적인 접근이 갖는 결점이 매우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오래 전에 자리잡은 살생 방법이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인간이나 고등 동물의 경우, 의식용 도살용 칼이나 교수대, 교살틀(garrotte)[2], 단두대, 전기의자가 죽 사용되어 왔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살생 기술은 오래 지속되다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고 확장되는 ‘구식’ 기술들의 많은 사례를 제공해 준다. 이 점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살생의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번역자 주

  1. 포진 치료용 항바이러스제
  2. 사람을 의자에 앉힌 후 목을 묶은 줄을 점점 조여 죽이는 사형 도구

관련 항목

데이비드 에저턴 지음, 정동욱, 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2015).

  1. 중요성 (가장 중요한 것) / 발췌 : 말라리아
  2. 시간 (낡은 것과 새로운 것)
  3. 생산 (황금시대의 작은 기술들)
  4. 유지관리 (정비사의 탄생)
  5. 국가 (‘우리나라’의 기술)
  6. 전쟁 (20세기 전쟁의 비극)
  7. 살생 (살생의 시대) / 발췌 : 살생에서의 혁신
  8. 발명 (발명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