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th Doesn't Explain Much (번역)

번역

진리가 설명하는 것은 많지 않다

낸시 카트라이트 (정동욱 옮김)


도입

과학 이론은 우리에게 자연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말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 둘이 완전히 다른 기능이며 [따라서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보통 이 둘은 혼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후자는 전자의 부산물로 여겨진다. 과학 이론은 실재(reality)를 기술함으로써 설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기술(description)의 임무가 완수되면, 과학은 이제 쉬어도 된다. 할 일은 그게 전부다. 자연을 기술하는(자연의 법칙, 보편상수값, 질량분포 따위를 얘기하는) 일 그 자체가 자연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정해주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건대, 이는 오해이다. 이는 설명에 대한 포괄-법칙 모형(covering-law model)으로 인해 발생한 오해이다. 포괄-법칙 모형에 따르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연 법칙들(과 거기에 약간의 논리와 어쩌면 약간의 확률 이론 정도를 더한 것)뿐이며,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떤 요인이 다른 어떤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예컨대, 가장 간단한 법칙-연역(deductive-nomological, 이하 D-N) 버전[1]의 포괄-법칙 모형에 따르면, 하나의 요인이 다른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주어진 자연 법칙 하에서 후자의 발생이 전자의 발생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D-N 모형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여기서의 내 주장과 관련하여, 최근 과학철학에서 제시된 대부분의 설명 모형은 포괄-법칙 모형이다. 이는 헴펠(Hempel) 자신의 귀납 통계적 모형(inductive statistical model)뿐만 아니라,[2] 패트릭 수피즈(Patric Suppes)의 확률적 인과 모형,[3] 웨슬리 샐먼(Wesley Salmon)의 통계적 유관성 모형도 포함하며,[4] 심지어는 벵트 핸슨(Bengt Hanson)의 맥락주의적 모형(contextualistic model)까지도 포함한다.[5] 이 모든 모형들은 설명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인들을 골라내는 데 자연 법칙에, 아니 오직 자연 법칙에만 의존하고 있다.

헴펠이 처음 제시했던 형태의(original) 포괄-법칙 모형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됐었다. 그 비판들의 상당수는 이 모형이 지나치게 방만하다(let in too much)는 점을 지적했다. 헴펠식으로 하자면, 남자인 헨리의 불임은 그의 (여성용) 피임약 복용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며, 또 폭풍은 기압계 눈금의 하락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비판은 이와 정반대이다. 포괄-법칙 모형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let in too little). 포괄-법칙 모형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 예컨대 유전형질의 대물림 과정에서 DNA가 하는 역할이나 태양빛이 빗방울에 굴절할 때 무지개가 형성되는 현상 같은 것들조차도 말이다. 포괄-법칙 모형으로는 이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는데,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그 현상들을 포괄하는 법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포괄 법칙(covering law)이란 극히 드물다.

과학적으로 완벽하고도 훌륭하게 설명이 되는 많은 현상들은 어떤 법칙들로도 포괄되지 않는다. 참인 법칙에 의해서는 절대로. 그 현상들은 기껏해야 세테리스 파리부스 일반화(ceteris paribus generalizations: 특정한 조건 하에서, 보통은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만 성립되는 일반화)에 의해서나 포괄될 수 있을 뿐이다.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다른 것들이 똑같을 때’이지만, ‘다른 것들이 적절할(right) 때’로 읽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인 양 행동하다. 우리 마음속에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에 대한 ‘임시 대역(understudy)’ 그림이 있다. 이에 따르면,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은 진짜 법칙이며, 우리가 알아내려고 하는 법칙이 이용 불가능할 때 대역을 맡아 동일한 모든 기능을, 아주 잘은 아니지만,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말이 안 된다. ‘세테리스 파리부스’라는 수식어(modifier) 없이 문자 그대로 읽었을 때, 세테리스 파리부스 일반화는 거짓이다. 그것은 그냥 거짓이 아니라, 우리가 거짓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포괄-법칙 그림 하에서는 거짓인 법칙이 무언가를 설명한다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반면, 그 수식어가 달린 세테리스 파리부스 일반화는 참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조건들이 적절한(right) 그런 극히 드문 경우만을 포괄하게 된다. 대체로, 법칙은 다음의 둘 중 하나이다.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자 하나 그것이 거짓으로 알려졌기에 설명 능력이 없는 법칙, 아니면 포괄하는 영역이 없는 법칙. 어느 경우든 포괄-법칙 그림에는 나쁜 소식이다.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법칙

내가 포괄 법칙이 극히 드물다는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나는 “예외 없는 일반화는 없다”라는 말로 나의 관점을 요약하려 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는 어때?”라고 물었다. 그녀가 옳았다. 나는 물리학의 방정식에 너무 몰두해 있었다. 좀 더 그럴듯한 주장이 되려면, 물리학에서 예외 없는 정량적 법칙은 없다고 했어야 했다. 실제로 예외 없는 법칙이란 없으며, 사실 우리가 가진 최상의 후보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는 모든 이론은 논박된 채 태어난다라는 포퍼주의 논제와 같은 것이다. 물리학에 등장했던 어떤 이론도, 가장 견고하게 지켜지던 때조차, 특정한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이것이 물리 이론 내의 모든 정밀 정량 법칙에 대해서도 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아니다. 어떤 법칙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예외 없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반면, 다른 [어떤] 법칙들은 “책에” 남아 있더라도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광선의 입사각과 굴절각에 대한) 스넬의 법칙은 후자의 좋은 예이다. 내가 참조하는 광학 교과서(Miles V. Klein, Optics)[6]에서, 그 법칙은 21쪽에 처음 등장하는데 제약조건은 보이지 않는다.

스넬의 법칙: 유전체 매질들의 경계에서, 두 번째 매질에는 굴절된 광선 하나가 입사면 위에 생기는데, 이는 수직선과 각도  를 이루며, 스넬의 법칙을 따른다.
 
여기서,   는 두 매질에서의 전파 속도이고,   는 굴절률을 뜻한다.

이 법칙이 “빛에 대한 완전한 전자기 이론”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얘기는 500쪽 가량 뒤에야 나오는데, 그제서야 우리는 21쪽에 언급된 스넬의 법칙이 오직 등방성(等方性, isotropic)의 광학적 성질을 가진 매질에서만 참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방성(異方性, anisotropic) 매질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진행파(transmitted waves)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사실 21쪽에 제시된 스넬의 법칙이 아니라 수정된 스넬의 법칙이다.

수정된 스넬의 법칙: 광학적으로 등방성인 임의의 두 매질에 대해, 두 유전체의 경계에서, 두 번째 매질에는 굴절된 광선 하나가 입사면 위에 생기는데, 이는 수직선과 각도  를 이루며, 다음을 따른다.
 

클라인(Klein)의 책 21쪽의 스넬의 법칙은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 즉 특정한 상황─이 경우, 매질이 모두 등방성일 때─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의 한 사례이다. 분명 21쪽에 적힌 클라인의 진술은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관대하게도, 우리는 수식어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그 앞에 놓아 그것을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세테리스 파리부스라는 수식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포괄 법칙 모형의 통계적 버전(헴펠의 I-S 모형, 새먼의 통계적 유관성 모형, 또는 수피즈의 확률적 인과 모형)의 눈으로 보면, 수정되지 않은 스넬의 법칙은 문자 그대로의 보편 법칙으로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통계적 법칙으로 의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명백한 후보는 다음과 같은 조야한(primitive) 형태의 통계적 법칙이다. 대체로, 유전체 매질들의 경계에서, … 굴절된 광선 하나가 …. 그러나 이는 말이 안 된다. 대개의 매질은 광학적으로 이방성이며, 이방성 매질에서는 두 개의 광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만족스러운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이 참된 법칙이고자 한다면, 그것과 일반적으로 동일시될 수 있는 통계적 법칙은 없다.

법칙이 극히 드문 경우

스넬의 법칙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더 정확하게 수정된 형태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왜 스넬의 법칙을 책에 계속 두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분명한 교육상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진정 과학적인 이유는 없을까? 나는 그것이 있으며, 그 이유가 설명이라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요인들이 다른 어떤 것들과 설명적으로 유관한지 일일이 명기하는 일은, 자연 법칙들을 그려 내는 일에 포괄되지 않는 과학의 한 과업이다. 자연 법칙들이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어떤 요인들이 설명에 쓰일 수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우리의 설명적 관심(explanatory commitments)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무슨 종류의 설명이 허용되는지 말해준다. 수정된 스넬의 법칙으로부터, 우리는 모든 등방성 매질에서 굴절각이 방정식 sin θ / sin θt = n2 / n1에 따라, 입사각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을 배운다. 수정되지 않은 스넬의 법칙을 책에 남겨둔 것은 같은 종류의 설명이 어떤 이방성 매질에 대해서도 주어질 수 있다는 징조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상적인 상황으로부터 유도된 설명 패턴은 이상적인 조건에 못 미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우리는 순수히 등방성인 매질에서 광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리허설 해봄으로써, 거의 등방성인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은 미묘한(delicate) 가정이다. 이는 포괄-법칙 모형보다는 (내가 8장에서 주장할) 설명에 대한 그림자 견해(simulacrum account)에 보다 잘 맞아떨어진다. 우선 나는 이것이 하나의 가정이라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단, 이 가정은 자연의 사실에 관한 우리 지식의 한도를 훨씬 넘어서는 ('완전한 전자기 이론'과 같은 것에 선행하는) 가정이다. 우리는 등방성 매질에서 굴절각이 방정식 sin θ / sin θt = n2 / n1을 따라 입사각에 의존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방성 매질에서 두 개의 굴절 광선이 이루는 각에 대해 같은 식으로 설명할 것을 결정한다. 그 결정에는 좋은 이유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매질이 거의 등방성인 경우라면 두 광선은 서로 매우 근접해 있을 것이며 스넬의 법칙이 예측한 각도에도 근접해 있을 것이라거나, 또는 물리적 과정의 연속성을 믿거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결정은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 지식에 의거해 이끌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스넬의 법칙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제2의 수정, 즉 이방성 매질에서의 [굴절]각들이 스넬의 법칙에서 주어진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함축하는 수정이 책에 있다면, 분명히 위의 결정은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법칙들은 극히 드물며, 대개의 경우 덜 이상적인 조건하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말해주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괄-법칙 이론가들은 설명에서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세테리스 파리부스 설명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참된 법칙에 의해 수행되는 진정한 포괄 법칙 설명의 축약된 형태이다. 거짓으로 알려진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을 사용할 때, 포괄-법칙 이론가들은 참된 법칙이 어떤 형태를 취할지에 대해 우리가 내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예컨대, 수정되지 않은 스넬의 법칙을 계속 두는 것은 이방성 매질에 대한 (당시엔 알려져 있지 않은) 법칙이 원래의 스넬의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것과 '충분히 가까운' 값을 이끌어낼 것이라 내기를 거는 셈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이야기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 번째는, 사실 내가 믿고 있는, 극단적인 형이상학적 가능성에 기인한다. 포괄-법칙 이론가들은 자연이 상당히 규칙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 모든 사실을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물이 사회 속의 사람들과 무척 흡사하다고 상상한다. 그들의 행동은 몇몇 특정한 법칙과 한 줌의 일반 원리에 의해 구속받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결정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통계적으로도 말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아무런 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내가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은 이 그림이 다른 대안만큼이나 충분히 그럴듯하다는 것이다. 신은 몇 개의 법칙만을 쓰다가 지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잘 정돈된 우주 속에 살고 있는지 어지러운 우주 속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어느 우주에 살고 있든, 설명을 제공하려는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활동은 이치에 닿아야 한다.

포괄-법칙 견해의 축약 버전에 대한 두 번째 어려움은 보다 평범하다. 축약된 설명은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설명이 주어져야 한다는 확신에 불과하다. 완전한, 그리고 옳은 D-N 설명에 나타날 법칙은 우리의 이론에 있는 법칙도 아니고, 말로 표현하거나 따로 검사할 수 있는 법칙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포괄-법칙 설명이 있을 수는 있다. 단, 그 설명은 우리의 설명이 아니다. 또한 그 알려지지 않은 법칙은, 거의 등방성인 매질에서 "sin θ = k이므로, sin θtk (n2 / n1)"라고 말하기 위한 우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다만 무엇이 그것에 해당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만 주장하겠다. 자연 법칙은 안 된다. 어떤 시점에서든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은 그 시점에서 어떤 종류의 설명이 주어질 수 있는지 말해주는 데 충분치 않다. 이에는 결정이 필요하다. 포괄-법칙 이론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법칙의 존재에 대해 내기를 할 때 하는 일은 바로 이러한 결정이다. 우리가 이 알려지지 않은 법칙의 존재를 믿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는 어떠한 통상적인 근거도 없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시험받지도 않았고, 더 높은 수준의 이론으로부터 도출되지도 않았다. 그것을 믿을 근거는 그에 부합하는 설명적 전략을 채택하기 위한 근거만큼만 적절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법칙들이 충돌하는 경우

나는 여기저기를 두루 포괄하기에 충분한 법칙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왜? 이 관점은 내가 과학에 대해 일찍이 언급했던 그림에 의존한다. 과학은 여러 구별되는 영역으로 쪼개진다. 유체 역학, 유전학, 레이저 이론, …. 개개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상세하고도 정교한 이론은 많이 있다. 그러나 영역들의 교차 구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이론은 거의 없다.

도식적으로, 우리가 가진 법칙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and
 

예컨대, (세테리스 파리부스) 물에 소금을 첨가하면 감자 조리 시간이 짧아진다. 물을 높은 고도로 가져가면 조리 시간이 길어진다. 세련되게, 좀 더 조심스럽게 얘기한다면 우리는 대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고도를 동일하게 유지한 채 물에 소금을 첨가하면 조리 시간이 짧아진다. 반면 소금 농도를 동일하게 유지한 채 고도를 높이면 그 시간이 길어진다.” 또는 다음과 같다.

 
and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소금을 첨가하고 동시에 고도를 높이면 어떻게 될지 말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아마도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이, 민간 상식의 범위에 속하진 않더라도, 있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다음 장에서 이를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대개의 실제 경우는 원인들의 어떤 결합이 관련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복잡한 경우에 벌어지는 일을 기술하는 일반 법칙은 언제나 이용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 양자 모두 고도로 상세하고 정교하게 발달되어 있다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상대론적 양자 역학 이론은 없다. 수송 이론(transport theory)에 대한 더 상세한 예는 다음 장에 나올 것이다. 그 일반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이론이 교차하는 곳에서, 법칙은 보통 통용되기 어렵다.

어쨌든 설명이 가능한 경우

여태까지 나는 문제의 반쪽 부분만을 얘기했다. 나는 포괄 법칙이 극히 드물며,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은 참된 법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직 남은 주장은, 그럼에도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이 근본적인 설명적 역할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쉬운 얘기인데, 왜냐하면 우리의 대부분의 설명은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에 의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예를 들어 보겠다. 작년 나는 내 정원에 동백나무를 심었다. 나는 동백나무가 비옥한 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나는 그것을 심으면서 퇴비도 주었다. 반면 퇴비는 꽤나 따뜻했는데, 나는 동백나무의 뿌리가 고온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점에서 완벽하게 돌보았음에도 동백나무들이 많이 죽었을 때, 나는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알았다. 그 동백나무들은 뜨거운 땅에 심었기 때문에 죽었다.

이는 확실히 적절한(right) 설명이다. 물론, 나는 이 설명이 옳은(correct) 설명인지는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질소 부족이나 식물에 어떤 유전적 결함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했거나 유관성조차 밝혀지지 않은 어떤 요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은 설명의 경우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의 문제(matter of fact)에 대한 판단이라면 어디에나 따라다니는 그런 불확실성일 뿐이다. 우리는 실수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 동백나무에 대한 다른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해 합당한 노력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적절한 설명이라 어느 정도는 자신해도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내 동백나무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참된 포괄 법칙을 통한 설명이 아니다. 내 동백나무와 똑같은, 즉 뜨거운 동시에 기름진 땅에 심은, 동백나무가 죽는다고 말해주는 법칙은 없다. 반대로, 나무들이 모두 죽은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튼튼하게 자랐는데, 그것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그것을 심은 땅이 비옥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경우를 하나의 포괄 법칙으로 묶어줄 어떤 구별 요인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비옥하고 뜨거운 땅에서, 어떤 종류의 동백나무는 죽고, 다른 종류는 튼튼하게 자란다고 말이다. 나는 그러한 포괄 법칙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이러한 평범한 설명을 제공하는 우리의 능력이 그 법칙에 대한 우리 지식에 앞선다는 것만 반복하겠다. 심판의 날(Day of Judgment)에, 모든 법칙이 알려질 때, 이 법칙들은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데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우리는 분명 설명을 제공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설명이 허용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과학의 과업이다.

사실 나는 더 강한 논제를 주장하고 싶다. 만약 세계가 잘 정돈된 결정론적 체계가 아니라면, 실제로 이는 가능한데, 그렇다면 과학의 기술적인(descriptive)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에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해주는 일은 여전히 [과학이 해야 할 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동백나무에 관한 사실이 환원 불가능한 방식으로 통계적일 경우(나는 실제로 그렇다고 추측한다)를 상상해 보라. 이때, 동백나무에 대해 알아야 할 일반 법칙적 사실들을 모두 알 수는 있다. 예컨대, 내 동백나무와 같은 환경에 있는 모든 동백나무 중 62%는 죽고 38%는 산다고 말이다.[7] 그러나 그렇다고 내 정원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땅의 이 식물을 말려 죽이고 비옥함이 식물을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당신은 여전히 『해질녘 정원 가꾸기(Sunset Garden Book)』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결론

대부분의 과학적 설명은 세테리스 파리부스 법칙을 사용한다. 이 법칙은 문자 그대로의 기술적인 진술(descriptive statements)로서 보면 거짓이다. 단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사용의 맥락에서도 거짓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통합적인 법칙을 원한다.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일은 변화무쌍하고 다양할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는 현상들을 조금이나마 조직화할 수 있다. 최선의 조직화 원리가 참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으며, 참인 원리가 현상을 잘 조직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1. Carl G. Hempel, “Scientific Explanation,” in 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 ed. C. G. Hempel (New York: Free Press, 1965)를 보라.
  2. Carl G. Hempel, “Scientific Explanation,” ibid를 보라.
  3. Patrick Suppes, A Probabilistic Theory of Causality (Amsterdam: Noerth-Holland Publishing Co., 1970)를 보라.
  4. Wesley Salmon, “Statistical Explanation,” in Statistical Explanation and Statistical Relevance, ed. Wesley Salmon (Pittsburgh: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1971)를 보라.
  5. Bengt Hansson, “Explanations─Of What?” (mimeograph, Stanford University, 1974)를 보라.
  6. Miles V. Klein, Optics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1970), p. 21. 강조는 내가 추가했음. θ는 입사각을 뜻한다.
  7. 많은 논자들, 특히 수피즈(Suppes, 각주 3)와 샐먼(Salmon, 각주 4)은 더 정교한 통계적 사실이 설명에 사용될 요인을 결정해줄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1장에서 주장했듯이, 나는 이 주장이 실현될 거라 믿지 않는다.

관련 항목

How the Laws of Physics Lie

Table of Contents of Nancy Cartwright's How the Laws of Physics Lie (1983)

  1. Causal Laws and Effective Stragegies
  2. The Truth Doesn't Explain Much
  3. Do the Laws of Physics State the Facts?
  4. The Reality of Causes in a World of Instrumental Laws
  5. When Explanation Leads to Inference
  6. For Phenomenological Laws
  7. Fitting Facts to Equations
  8. The Simulacrum Account of Explanation
  9. How the Measurement Problem is an Artefact of the Mathematics

다른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