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전통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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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중국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전통과학」,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흔히 “why not?” 질문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 즉 “왜 중국에서는 (혹은 한국에서는) 그 뛰어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도 그런 문제 중의 하나이다. 중국 과학사 연구 초기에 제기되었던 이 질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 전통의 자연관과 기술적 성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김영식의 「중국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전통과학」은 중국과학사 연구에서 “why not?” 질문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재고찰 하는 글이다. 김영식은 이 질문을 좀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것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과학사 연구에 유의미한, 즉 중국과학사 연구에서 가치 있는 성과들을 끌어낼 수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본문

중국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전통과학


김영식

안기택 옮김


1. 머리말 : why not 질문의 여러 형태

사람들이 중국의 과학과 자연철학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른바 why not 질문이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든가 “왜 중국에서는 독자적으로 근대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는가?”라는 형태로 제기되는 질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따금씩 우연히 사람들에게 나의 전공이 중국과학사라고 이야기 할 때마다:그 사람들이 나에게 맨 처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why not 질문을 맨 처음 제기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굴복했던 당시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서구와 같은 식의 과학과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많은 중국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자강(自强), 부강(富强)을 이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자신들이 과학과 기술을 애초에 발전시키지 못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why not 질문을 훨씬 극단적인 형태로 제기하기도 하였다. 풍우란(馮友蘭)이 “왜 중국에는 과학이 없는가?”라는 논문을 쓴 경우가 그런 예라고 하겠다.[1]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에도 서양 못지않은 세련된 고도의 과학, 기술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된 why not 질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과학의 성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인 조셉 니담(Joseph Needham)의 경우 “왜 중국은 1400년 동안이나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앞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근대과학을 이룩해 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2]

모습을 달리한 why not 질문들은 이 밖에도 많이 있으며 그중 몇몇은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다. 몇몇 학자들은 중국의 과학활동이 단절되고 널리 확산되지도 못한 이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물음을 던졌다. 철학자인 로버트 코헨(Robert S. Cohen)의 경우가 한 예인데, 그는 “중국은 지극히 세련되고도 자랑스러운 과학전통을 발달시켜 근대적인 과학, 기술의 문턱에까지 도달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왜 못했을까?”라고 물었다.[3] 철학자 아놀드 코슬로(Arnold Koslow)가 제시한 물음은 “고대 및 중세의 중국에서 상당 수준에 도달했던 광학(optics), 음향학(acoustics), 수학(mathematics)과 같은 분야의 전통들은 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었는가?”였다.[4] 과학혁명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플로리스 코헨(H. Floris Cohen)은 “갈릴레오와 같은 사람이 중국에 출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그의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라고 물었다.[5] 때때로 이 질문에 잠정적인 대답이 why not 질문의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즉 “왜 과학활동은 유럽에서만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제도화되었으며, 중국이나 여타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못했을까?”[6] 아마도 가장 중립적이지만 별로 흥미롭지는 않은 형태는 내가 제기한 질문인 “왜 중국인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그들이 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유럽인들이 근대과학을 발전시킨 형태로는 발전시키지 않았던 것일까?”[7]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why not 질문을 다시 묻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 질문을 묻고 대답하는 행위에 따르는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문제점들을 검토해 볼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을 살펴보고 그러한 비판들이 가지는 타당성을 고찰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소개한 why not 질문을 “왜 A문화권에서 E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의 한 예로 간주하고, 특정한 사건 E와 문화권 A가 가진 구체적인 특징들이 사람들이 그 질문을 다루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일 것이다. 문제점들은 비단 질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고 발견해 낸 대답들에도 있다. 나는 그런 문제점들도 함께 고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질문과 대답들이 많은 문제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유용할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유용해 왔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덧붙여 나는 “한국판 why not 질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 논문을 갈무리할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나의 목적은 why not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 why not 질문이 지닌 잠재적인 문제점이 널리 인식되면서 중국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제 이따금 그 질문의 정당성을 고찰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토론하기에 정당하지 않은 질문으로 결론짓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문적인 토론의 장에서 누구라도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것을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다 보면 유감스럽게도 결국 why not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수반되는 위험을 다루는데 그나마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갖춘 전문과학사학자들이 더 이상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 가운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질문을 제기하고 대답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2. why not 질문의 대상

우리가 why not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것을 아무 문화권에 대해서나 묻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why not 질문을 제기하는 경우라면 보통 ① 해당 문화권의 과학이 과학혁명에 매우 근접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과학혁명으로 넘어가는 “문턱”을 넘지는 못했을 때라든가 ② 해당 문화권의 다른 영역이 아주 진보해 있어서 사람들이 왜 그 과학은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는지 궁금해 하게 될 때에 해당한다. 실제로 중국, 인도, 이슬람 이외의 문화권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스케일이 큰 질문이 제기되진 않는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why not 질문이 아주 빈번히 제기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중국은 위의 두 기준에 확실히 부합한다. ① 중국의 역사에서 매우 오랜 시기동안 고도로 발달한 과학 및 기술의 전통이 있었다. 천문역법(calendrical astronomy), 수학, 의학, 본초학(pharmacology), 율(harmonics), 그리고 다양한 기술들을 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② 중국은 과학 이외의 문화영역에서도 매우 활발한 활동과 인상적인 업적을 보여주었다. 철학, 기예(arts), 통치제도(government), 산업, 경제[8]와 같은 분야의 성취를 보면 알 수 있다.

why not 질문은 때때로 17세기의 중국과 같은 훨씬 더 제한된 범위를 대상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세종시기의 한국, 도쿠가와 막부시기의 일본처럼 다른 문화권들도 why not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다.[9] 때때로 why not 질문은 “왜 정체되었는가?”, “왜 쇠퇴하였는가?”의 질문으로 바뀌기도 한다. “왜 어떤 문화권에서는 과학이 정체(혹은 쇠퇴)하였는가?”라는 식의 질문이 그것이다. 이런 질문은 고대 그리스, 이슬람, 명, 세종이후의 조선 등에 대해서 제기된다.[10]

3. 질문이 안고 있는 문제점

몇몇 사람들은 질문 자체에 문제점이 있음을 알고 그것이 과연 의미있는 질문인지를 의심하기도 한다.

3.1 질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질문이 함축하고 있는 가정들

“과학혁명이 중국에서는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그 속에 들어있는 모든 요소들, 즉 “과학혁명이“, ”중국에서는“,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가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많은 사람들은 “과학혁명”이라는 말에 대해 회의적이며, 그것이 서양에서조차 의미 있는 용어인지 의심한다.[11] 또한 어떤 사람들은 “중국과 서양”을 가르는 “거대한 분기(Grand Divide)”가 존재한다는 관념이 역사적 분석의 준거로서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12] 이런 회의적인 생각들이 최근에 들어 크게 각광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잠시 접어둔 채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언급할 수 있고, 중국과 서양의 역사를 아무렇지 않게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그레이엄(A. C. Graham)은 과학혁명을 화재에 비유하였다. 그레이엄은 어떤 집에 불이 났을 때 사람들은 다른 집들에 대해서 일일이 왜 불이 나지 않았는지를 묻지 않는데, 과학혁명의 경우 어딘가에서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물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반문한다. 그는 질문이 필요한 것은 어딘가에서 “과학혁명이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난 곳, 즉 유럽에서 “왜 일어났는가?”라고 말한다.[13]

여기서 제기되고 있는 비판을 좀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사건 E가 왜 일어나지 않은지를 묻는 질문 속에는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정이 암묵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의 예에서는 과학혁명이 모든 문화권에서 특정한 과학발달의 단계에서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레이엄이 지적하듯이 이 세계의 어디에서도, 심지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서구에서조차 과학혁명은 당연히 일어나야하는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위와 같은 가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2 “why E”=“why not (not E)”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비판은 우리가 why not 질문을 완전히 회피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위와 같은 가정 없이도 why not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게다가 만약 누군가 why not 질문과 유사한 형태의 물음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에 근거해서 오직 긍정적인 질문 즉 why 질문만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똑같이 논리적인 반박을 제기할 수 있다. 어떤 why 질문이라도 그것은 why not 질문으로 바꿔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why 질문과 why not 질문 사이의 엄밀한 논리적 구분은 불가능한 것이다.

“why E”=“why not (not E)”

우리는 why E 질문을 묻는 이들에게, 그들이 why not 질문 즉, why not (not E)라는 질문을 묻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not E라는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이유(또는 E라는 사건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해야 하는가?

위의 공식은 비록 얼핏 보기에 아주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건 E가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지 않는 not E가 더 자연스러운 경우에는 매우 그럴듯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사람들은 not (not E)라는, 즉 사건 E가 일어났다는 덜 당연한 사실에 대한 이유를 물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과학혁명은 어디서라도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왜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그런 예로 간주할 수 있다. 사실 어떤 문화권에서건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why not (not E) 질문을 물을 수 있다. 즉, “왜 서구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의 흥미로운 한 예로 윌리엄 테오도르 드 베리(William Theodore de Bary)의 다음과 같은 비평을 들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얼핏 보기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문을 담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여기서 내가 지적하는 바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 비서구적인 관념을 담은 용어들을 적절히 사용해서(이 경우에는 동아시아의 표준인 신유학적 언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왜 서양은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에서 행해지는 문명화된 행동양식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가? 왜 중국, 일본, 한국처럼 성숙하고 지각있게 자신들이 정착한 지역에서 질서를 이루며 머물러 있질 못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문제나 일으키고 다녔는가?[14]

사실 역사상의 많은 사건들이 이와 같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만약 역사상의 특정사건 E1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거나 혹은 심지어 모든 문화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not E1)이 더욱 있음직한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E1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정하고 why not (not E1)을 묻는 것이 E1이 일어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정하고 why not E1을 묻는 것보다 더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why E1을 묻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그 속에 암묵적인 가정(사건 E1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why not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why not [not E1])

3.3 과학혁명이라는 사건이 갖는 특징

위와 같은 논의를 하면서 why not E라는 형태의 물음을 던지고 대답을 찾는 일이 사건 E의 속성에 상당부분 의존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어나지 않은 어느 특정한 사건의 속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왜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는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왜 E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물을 때 사건 E는 그것만 따로 떼어놓고서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수한 문화적 상황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이다. 즉, “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실제로 “왜 A문화권에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물음의 의미는 질문이 제기되는 문화권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를테면 “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물으면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으면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문화권과 사건 E가 전혀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던 문화권을 구분할 수 있다. 혹자는 이슬람과 중국이 이런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건 E를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고 한다면 이슬람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고 중국은 후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슬람 문화권은 과학혁명이 실제로 일어난 서양과 학문적인 기초를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지적된다.[15] 만약 이점을 받아들인다면 중국, 이슬람의 두 비서구문화 중 이슬람 문화의 경우에는 서양문화와의 상호이해를 통해 쉽게 서양의 상황과 비슷하게 되었을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앞 절에서 비판했던 것과 같은 가정들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과학혁명을 오직 16~17세기의 유럽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으로 간주하여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생각을 지나치게 밀고 나가지 않고 그것이 근대초기(early modern)의 유럽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어떤 종류의 “과학혁명”을 염두에 두는 것일까? 그것은 서구(B문화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과학혁명(사건 E)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가 사건 E가 B문화권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서 “왜 A문화권에서는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왜 A문화권에서 [B문화권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것일까? 즉, 사건 E는 오직 하나의 특정한 형태만 있으면서(실제로 B문화권에서 일어났던 E라는 사건의 형태) 세계의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즉 B문화권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형태의 사건 E가 A문화권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사건 E는 다른 형태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예를 들면 B문화권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구체적인 사건 E와는 다른 형태의 사건 E가 세계의 다른 어디선가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비록 실제로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과학혁명이 지닌 한 특징은 주의를 기울여 볼 만하다. 유럽에서는 과학혁명시기에 도달했던 과학발달의 정점 뒤에 경직화, 정체, 또는 쇠퇴와 같은 상황이 뒤따르지 않았다. 경직화, 정체, 쇠퇴 등의 상황은 과학이 만개했던 거의 역사적인 모든 시기, 모든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고대 그리스, 중세 이슬람, 송대 중국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패턴, 즉 정체, 쇠퇴의 시기들 사이에 나타나는 간헐적인 성장의 패턴은 과학혁명 이후 유럽에서 일어났던 상황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과학발달이 번영의 시점에서 정점에 달한 얼마 후 수백 년간의 완만한 쇠퇴가 뒤따랐던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유럽의 과학혁명기간 동안 시작되었던 발전은 계속 유지되었고 심지어 가속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상의 나머지 다른 지역들로 확산되기까지 하였다.[16]

3.4 과학혁명에 대한 잘못된 이해

당연하게도 “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면서 사건 E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많은 문제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례로 과학혁명 이전과 그것이 일어나는 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과 관계된 모든 종류의 잘못된 생각을 낳았다. 그런 오해들 중에서 가장 빈번히 나타나는 유형은 지구상의 모든 문화권들의 전통과학이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4, 15세기까지는 서로 비슷했었다는 가정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중세의 서양과학과 전통시대 중국과학 사이에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논의된 맥락에서도 실제로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차이점 중에서 두드러지는 것 하나는 중세 서양에서는 자연철학이 대학에서 받아들여져 교과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토론은 빈번히 이루어졌고 종종 스콜라철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통시대 중국에서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자연세계를 다루는 주제들이 중국의 지적인 주류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것들은 받아들여졌다. 혹은 적어도 배척받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전통중국의 사상가들에게 자연현상이나 자연적인 대상들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도 자연현상은 중요한 것이었다. 서양과 달랐던 점은 자연현상이 별달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연적 대상 및 현상들은 배척받지 않았지만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에 따라 단순히, 관찰되고, 보고되고, 기록된 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통 중국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윤리적, 사회적 문제은 열띤 토론과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반면 자연현상은 그만큼 많이 논의되지 않았다. 자연철학은 그들이 열정을 갖고 연구한 주제에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17]

모든 전통과학이 비슷한 상태에 있었다는 식의 오해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근대과학이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의 채택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믿음이다. 예를 들어 니담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근대과학이 수학과 실험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18] 물론 우리는 실제로 상황이 상당히 복잡했음을 알고 있다. 다른 유형의 잘못된 이해로 과학의 연속적인 발달이 결국 과학혁명을 가져왔다는 믿음도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코슬로가 제기한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설령 중국의 과학전통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외연이 확대되고,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고 하더라도 왜 꼭 근대과학이 되어야만 하는가?”[19] 과학발전(혹은 과학혁명)과 기술발전(혹은 기술혁명)을 혼동하는 것 또한 잘못된 이해의 한 예이다. 많은 요인들이 기술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지만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는 요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지역들처럼 중국에서도 과학과 기술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벤자민 넬슨(Benjamin Nelson)이 지적했듯이 과학지식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데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20]

이것들은 과학혁명시기 일어난 일들에 관한 오해들 중에서 흔히 보이는 사례일 뿐이다. 그러한 오해들은 why not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쓴 글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호도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다고 해서 why not 질문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만이 옳은 건 아니다. 위의 오류들은 단지 “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why not 질문을 제기할 때 사건 E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3.5 “왜 정체되었는가?” 또는 “왜 쇠퇴였는가?”를 묻는 질문

원칙적으로 “왜 정체되었는가?”, “왜 쇠퇴였는가?”를 묻는 질문은 why not 질문과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유형의 질문을 생각할 때는 문화권 전반의 번영, 쇠퇴 여부와 그 문화권에 속한 과학의 번영과 쇠퇴가 어떤 연관을 갖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모든 문화영역이 쇠퇴하는 가운데 과학이 계속 번영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고대 로마의 경우처럼)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문화의 다른 갈래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특징을 갖는 한 갈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21] 그러나 우리는 또한 반대의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문화의 다른 영역이 모두 번성하는데 과학만이 쇠퇴할 수 있는가? 우리가 2절에서 보았듯이 why not 질문을 묻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다른 측면은 과학의 정체, 쇠퇴가 종종 외부 요인에 의한 배제와 억압의 결과일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종종 정체, 쇠퇴는 적극적인 배제, 억압의 결과이기 보다는 단순한 무관심, 무시의 결과일 때가 있다. 때때로 그것은 수용에 뒤이은 고립과 안정(isolation, stabilization)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슬람의 과학과 송대 이후의 중국과학을 각각 고립과 안정화에 의한 쇠퇴의 예로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과학은 사회 변방의 고립된 지식인 그룹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졌고, 후자의 경우 과학적 지식은 광범위하게 집대성된 학문체계의 일부로 들어가게 되어 학문활동의 주류집단에 의해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졌다.[22]

4. 대답 속에 들어있는 문제들

질문 속에만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찾으려고 노력했던, 그리고 더러는 찾아내기도 했던 대답들에서도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4.1 why not 질문에서 요구하는 대답들

why not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즉, 질문이 요구하는 대답이 어떤 종류여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생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why not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엄밀한 인과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원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로리스 코헨은 이런 생각이 지닌 문제점을 고대 그리스 과학에 대한 why not 질문으로 고쳐서 보여주었다. 즉 “그리스 과학에서는 근대초기 과학(early modern science)으로 이행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어떤 요인이 없었는가?”[23]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가 why not 질문을 물으면서 찾고자 하는 것은 인과적 원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왜 A문화권에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물으면서 우리는 사건 E가 일어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즉 A문화권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A문화권에서 사건 E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혹은 A문화권에서 not E를 야기시킨) 것들을 찾지 않는다.[24] 무엇보다 우리는 역사에서 “왜”라는 질문을 물으면서 그런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는가?”, “왜 명제국이 멸망하였는가?”와 같은 질문에서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질문에 대답하면서 제시하는 답들도 필요충분조건이라기보다는 영향, 촉진(reinforcement), 연관(correlations), 연결(connection), 연쇄(linkage), 우연의 일치(coincidences)와 같은 다양한 것들이다. 결국 우리가 why not 질문을 던지면서 명확한 인과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굳이 이야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2 방해요인에 대한 문제

why not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려는 많은 시도들은 한 가지 문제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방해요인”을 찾으려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요소가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중국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거나 혹은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었는데 방해요인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억제요인으로 꼽는 것들이 특정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제시된 방해요인으로는 인과성(causality), 자연법칙, 창조자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 및 증명, 형식논리, 기하학, 대수학, 실험 등의 몇몇 방법론적인 요소들, 그리고 자본주의, 도시화, 상인계급, 노예, 대학, 조직화된 종교, 개인주의, 관용 등의 사회, 문화적 요소 등이 중국에 없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25] 그러나 방해요인으로서 무언가의 부재를 취하는 것은 결국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어떤 사건을 그곳에 없었던 어떤 요인이 방해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26] 즉 한 요인의 부재가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4.3 잘못된 가정과 다른 문제점들

why not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된 대답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비교과학사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것으로서, 하나의 요소, 측면 또는 상황이 모든 문화권에서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가정, 특히 서양의 과학발달에서 중요했던 요인들은 중국의 과학의 발달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why not 질문의 대답으로 제시된 것들과 비슷한 많은 측면들, 또는 상황들이 과학혁명 이전의 서양에도 존재했지만 그곳에서는 근대과학이 발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27]

흔히 중국에서 과학발전이 없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중국이 서양과 몇몇 문화적 요소나 측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경향은 명백히 위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유형의 가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 많다. 중국의 순환적 시간 개념과 서양의 단선적 시간개념, 어미변화가 없는 중국어와 어미변화가 있는 서양언어, 해석학 위주의 중국 수학과 기하학 위주의 서양 수학, 물리학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국의 파동이론에 대한 편향과 서양의 입자이론에 대한 편향 등등이 그것이다.[28]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있을 것이다. why not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행위에 내포된 문제들에 대한 흥미로운 철학적 분석을 통해, 로버트 코헨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졌다. “다른 층위에서의 생각, 감정 또는 행위로 인해 어느 특정한 사회적 행위의 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연관인가?”[29] 예를 들어 그는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에 있는 문화적 변수들을 비교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why not 질문에 대한 대답들의 “모호함(fuzziness)”, 즉 대답들에 담겨져 있는 “문화적 변수에 대한 부정확한 성격규정과 설명적 지위”를 비판한다. 이러한 변수들 중 몇몇은 단지 지금은 유용할지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 대체되어야 할 “중개(仲介) 변수(intervening variables), 혹은 편리한 개념적인 대리물”일 뿐이고, 또 몇몇은 다시 why 질문과 why not 질문의 대상 될 것이다.[30] 그는 또한 이러한 논의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가 “인과적 조건 논변들”(causal conditional arguments)이라고 부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31]

이 절에서 논의한 문제점들을 통해서 why not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직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을 알 수 있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가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호도되었다. 하지만 문제점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질문을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why not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는 단순하고 쉬운 답을 찾으려 하는 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5. why not 질문의 공헌

why not 질문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가장 유별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투성이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모두 문외한인 것도 아니다. 많은 학자들 또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중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길 시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 질문을 던지지 말라고 설득할 수도 있다. 또는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얻기에 충분할 정도로 중국과학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그 질문은 사라지진 않을 것이며,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묻고 대답할 것이다. 왜 사람들이 why not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 적어도 why not 질문을 계속 던지는 사람들은 그 질문이 중국 혹은 다른 지역에서의 과학발달, 과학적 탐구의 속성, 중국문화 일반, 또는 다른 어떤 것들을 더 잘 이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과연 why not 질문이 사람들의 이해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쉽게 말해버리고 그 질문이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느낌을 마냥 무시해도 괜찮은가? 과연 중국의 과학학 분야에 그 질문이 실제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그 질문의 기여를 평가하는데 그렇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why not 질문의 부인할 수 없는 기여 중의 하나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과학에 흥미를 가지도록 자극하며, 이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그들이 의식하건 안하건 중국과학사로 뛰어들게 만든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why not 질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에 담긴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 질문과 한참 씨름한 다음에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대답을 시도한 이후에야 과학혁명이 모든 문화의 어느 단계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가정에 내포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why not 질문이 가져다준 또 하나의 기여는, 많은 중국과학사학자들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동안, 중국문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맥락까지 고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why not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 그 자체에서 보다는 지적, 사회적, 제도적 그리고 다른 문화적 요소들과 같은 외적인 요인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믿음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중국의 과학발달에 그런 외적 요인 끼친 역할들을 연구하는 작업을 촉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why not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비교과학사를 연구하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why not 질문에 대한 답은 보통 다른 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교분석에 기초하며 때론 그에 의해 검증되기 때문인데, 보통은 과학혁명이 실제로 일어난 유럽과 비교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비교는 신중하게 수행된 경우 두 문화 사이의 다양한 차이점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가능하게 했고, 결국 두 문화 각각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개념, 언어, 수학의 특징 등등에서 보이는 두 문화사이의 차이점들은 그러한 비교분석의 성과이다.[32]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공헌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도달한 대답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에는 그래야 하는 것이다. why not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어떠한 문제점을 가졌건 간에, 전통중국의 과학, 사회, 문화 속의 수많은 요소, 측면 또는 상황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다.[33] 물론 어떠한 하나의 요소(factor), 측면(aspect), 상황(situation)도 그 자체로는 완전한 대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각각의 요소들은 적어도 어느 범위 안에서는 과학적 발전이 없었던 이유나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특정한 하나의 요소가 중국의 과학발달 또는 다른 어떤 곳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 요소는 전통중국의 문화와 사회의 구체적이고 특정한 (고유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의 발달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그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함께 발현한 결과, 그리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함께 조합하여 작용한 결과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특정한 방식으로 중국의 과학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why not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중국이 서구와 다른 모든 요소, 모든 측면, 모든 상황을 긁어모으는 것으로 끝맺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모든 요소들을 조합하여 대답을 제시하면서 결국 하게 되는 것은, 넬슨의 표현을 빌자면 아마도 서로 다른 “문명의 조건(civilizational setting)”, “문화적 성향(cultural orientation)”, “삶의 방식(life-way)”을 찾아내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34] 즉, 그 대답은 결국 근본적으로 “중국은 서양과 여러 모로 달랐고 바로 이러한 차이들 때문에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또는 좀더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심지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수 도 있다. “중국은 서양과 달랐기 때문에 과학혁명은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런 뻔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why not 질문을 하거나 답을 찾으려고 힘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대단치 않아 보이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우리의 궁극적인 결론이 정말 이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결국 이것이 바로 훌륭하면서도 중요한 역사적 질문들이 갖는 기능이 아닐까?

6. 후기: 한국판 why not 질문

한국과 관련된 비슷한 질문을 고찰하면서 이 논문을 끝맺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판 why not 질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데, “15세기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었던 한국과학은 왜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 쇠퇴하였는가?”라는 것이다.[35] 물론 이 질문은 중국과학에 대해 제기된 why not 질문의 예에서 나타났던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추가적인 문제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세종 이후 시기의 한국과학과 기술의 “정체”와 “쇠퇴”를 다루면서 역사가들이 동시대 중국의 상황을 무시할 수 있는가? 세종시기 한국인들이 채택했던 중국의 과학적 아이디어와 기술의 수준은 어떠했는가? 그것들이 이후 중국에서는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만약 중국의 과학과 기술이 정체했거나 쇠퇴하였다면 한국인들이 독자적으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한국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이는 학자들이 꽤 있는데, 원칙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에서 과학이 쇠퇴하는 동안 주변부에서는 계속 발전하거나 심지어 번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국의 why not 질문은 중국의 why not 질문의 일부로 환원될 것인가?[36]


주석

[1] Fung (1922). 호머 덥(Homer H. Dub)도 중국이 “철학체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Dub (1928).

[2] 예를 들면 Needam (1974), p. xxii. 물론 니덤은 여러 다른 형태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살 레스티보(Sal P. Restivo)는 니덤이 제기한 why not 질문의 12가지 “유형”(formulations)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Restivo (1979), pp. 43-44를 볼 것.

[3] Robert S. Cohen (1973), p. 104.

[4] Koslow (1975), p. 185.

[5] H. Floris Cohen (1994), p. 483.

[6] Restivo (1979), p. 29.

[7] Kim (1982), p. 103.

[8] 특히 宋이 중국을 지배하던 11세기가 매우 두드러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시기를 “조기 근대”(the early modern)로 규정하기도 한다. Reischauer and Fairbank (1958), pp. 220-225.

[9] 예를 들면 Sivin (1973); Chŏn (1966), pp. 23-25; Bartholomew (1976)과 같은 경우.

[10] 이런 류의 질문과 관련한 논의에 대해서는 H. F. Cohen (1994), Section 4.2; Sabra (1987); Hart의 근간논문; Pak (1995), esp. 165-166 등을 보라. 이런 질문들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쇠퇴와 정체가 과학혁명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한 사회의 과학은 혁명적인 도약을 겪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11] Shapin (1996), “Introduction”; Lindberg (1990).

[12] Hart (1999). 케린 체믈라(Karine Chemla) 또한 본 논문의 과거 구두 발표용 원고를 논평하면서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13] Graham (1973). “불난 집” 유비는 51쪽에 나와 있다.

[14] de Bary (1988), p. 68.

[15] H. F. Cohen (1994), p. 143.

[16] 확실히 이탈리아나 영국과 같은 각각의 나라들의 경우를 들여다 본다면 실제로 정체와 쇠퇴의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과학이 번성해 있었다. 유럽이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과학발달의 속도를 유지하거나 더 빠르게 하는데 유리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17] 이를테면 신유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지는 주희(朱熹, 1130-1200)와 같은 사람이 자연현상에 대해 논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연현상 자체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주희는 특정한 윤리적 혹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일상적으로 쉽게 체험할 수 있으면서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연현상을 거기에 대비시켰다. 이런 유비를 통해 복잡하면서도 어려운 사회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연현상에 대해 그 자체의 흥미를 가지고 논의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 자세한 논의를 보고 싶다면 Kim (2000a), pp. 3-4를 보라.

[18] 예를 들면 Needham (1959), p. 185.

[19] Koslow (1975), p. 185.

[20] Nelson (1974), p. 463.

[21] 비슷한 예를 하나 꼽자면 엘리트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는 스포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과학 혹은 과학의 어느 한 측면이 그런 스포츠와 유사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22] Sabra (1987); Kim (2000a), pp. 6-8; Kim의 근간 논문.

[23] H. F. Cohen (1994), P. 242.

[24] 이슬람의 과학에 대해 고찰한 후 플로리스 코헨은 과학의 발달에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4가지 요인을 제시하였다. 그중 셋은 과학혁명이 일어나는데 대한 필요조건으로서 ① 과학은 적어도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체계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끼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되며, ② 과학에 종사하는 것이 매우 존엄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신념을 굳게 유지해 나가는 최소한 전문가집단에 준하는 과학자 사회가 존재해야 하고, ③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사회가 파괴되지 않도록 평화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회가 초기 근대과학(early modern science)의 기반을 마련함에 있어 결정적인 이점을 줄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것이다. H. F. Cohen (1994), p. 417을 보라.

[25]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 그리고 여기서 제시한 것 이외의 다른 방해요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Needham (1969); Bodde (1991); H. F. Cohen (1994), Section 6.5를 보라. 본문에서 제시한 것들과는 달리 중국에 존재했었던 것들 중에서도 방해요인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료주의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과학발달에서 관료주의가 했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보고자 한다면 앞에서 제시한 글들에 덧붙여 Kim (2000b)을 참고하라.

[26]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네이선 시빈(Nathan Sivin)은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 연구하는데 흔히 나타나는 “두 개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즉 ① 한 문화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상황을 무조건 “필요조건”으로 간주하는 것과 ② 다른 문화권에서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방해”의 결과로 생각하는 것이다. Sivin (1982)를 참조할 것.

[27] 시빈은 이러한 관점을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나타나지 못하게 한 방해요인으로 흔히 제시되는 문인관료계급(scholar-bureaucrat class)의 예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발생하던 때를 돌아보면, 책속에 파묻혀서 과거에 눈을 돌리고 있으면서 자연을 지향하기 보다는 인간세계의 제도들에 관심을 갖는 스콜라철학자나 대학교수들이 학문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전 유럽을 휩쓴 거대한 변화를 막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역사학자라면 스콜라철학이 없었을 경우 그러한 변화가 더 일찍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Sivin 1982, p. 57.)

[28] 이와 같은 논의로는 Needham (1969); Bodde (1991); 그리고 H. F. Cohen (1994) 등을 들 수 있다.

[29] R. S. Cohen (1973), p. 106.

[30] R. S. Cohen (1973), pp. 108-109.

[31] R. S. Cohen (1973), p. 111. 로버트 코헨의 논문에 대한 코슬로의 논평도 아울러 참고하라.(Koslow 1975.)

[32] 최근에 로이드(G. E. R. Lloyd)는 중국과 서양 두 문화권이 지적인 논의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권위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서양의 경우에는 논쟁적인 토론을 선호한다. Lloyd (1996)을 볼 것.

[33] 살 레스티보(Sal P. Restivo)는 니담의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한군데에서만 “중국과 서구에서 근대과학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한” 29개의 방해요인과 “근대과학이 출현하도록 이끌어주는” 33개의 요인을 찾아내었다. Restivo (1979), pp. 44-47(Appendixes B와 C)를 보라.

[34] Nelson (1974), pp. 460-463. 넬슨은 근대유럽사회의 온상으로 일컬어지는 12, 13세기의 도시, 대학, 전문직업, 신분 등을 살펴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 시기에 양심, 자아, 개인, 사회, 우주, 행위, 정의, 통치형태, 법제도 그리고 학습에 대한 새로운 이상과 지평이 이후 서구세계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주요한 새로운 특징을 갖도록 하는 하나의 전반적 틀이 마련되었다.” (p. 164)

[35] 전상운 (1966), 23-25쪽; 박성래 (1995), 159-164쪽.

[36] 이것은 사실 한국전통과학사와 중국전통과학사의 관계에 얽힌 풀리지 않은 난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 때문에 나는 한국의 전통과학사를 일반적인 견지에서 다루려고 할 때마다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난제들은 한국의 전통과학과 기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국의 과학적 아이디어와 기술적 산물들이 가지는 절대적 중요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한국과학사에 있어서 그것들은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과학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들이 중국과학으로부터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한국에 고유한 것들만을 연구해도 되는 것인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과학적 아이디어나 기술적 유산들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에서 논의되고 행해졌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중국과학, 기술의 그것과 다른 것이 전혀 없는 학설이나 기술활동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이런 학설과 기술 활동은 “한국”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채 중국문화 속의 지엽적인 한 부분으로서만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Kim (1998), p. 6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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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항목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 읽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2013).

제1부 과학혁명의 또 다른 면모

제2부 실험의 권위

제3부 생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제4부 20세기 과학

제5부 동아시아 사회 속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