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 힘은 어떻게 전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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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2010),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Chapter I.


자석은 그 주위에 있는 철을 끌어당긴다. 머리를 빗던 빗은 근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과학책을 보면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긴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이러한 현상들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어떻게 서로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 힘이 전달될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모든 물체 사이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교과서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 법칙을 이용해 수많은 문제를 풀었지만, 그 법칙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왜’나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설사 ‘힘의 전달’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나는 그것을 쓸데없는 공상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의 전달’이라는 문제는 절대로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다. 실제로 텔레비전이나 휴대폰과 같이 전파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은 힘이 전달되는 특정한 방식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 보낸 전파를 수신하여 텔레비전을 본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물리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이는 방송국의 전기 회로에 흐르는 전류의 변화에 따른 힘이 전자기 파동(전파)을 통해 전달되어 우리 집의 텔레비전 회로에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텔레비전이 작동하는 원리 속에는 방송국의 송신 장치와 우리 집의 텔레비전처럼 멀리 떨어진 물체들 사이에 힘이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고찰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살펴볼 두 주인공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바로 ‘힘의 전달’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여, 물체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장’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서로 떨어진 물체들이 힘을 ‘직접’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정착시켰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다.

뉴턴의 만유인력 : 힘은 ‘직접’ 작용한다

1687년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Principia)》를 통해,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안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들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그의 생각은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마술에서나 적용될 법한 신비한 관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판가들이 보기에 뉴턴의 만유인력 개념은 합리적어야 할 과학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에게 그 힘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라고 주문했다.

사실 뉴턴도 이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신실했던 뉴턴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전지전능한 신을 동원했다. 그의 추측에 따르면, 물체들 사이의 작용은 공간 구석구석까지 편재한 신에 의해 매개되었다. 매 시간마다 수많은 물체 사이의 작용을 동시에 연결해주느라 뉴턴의 신은 무척이나 바빴을 테지만, 우주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진정한 멀티태스킹 능력의 소유자로서 신은 이를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은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뉴턴은 되도록 이에 대한 질문을 피하려고 했다.

난처한 질문을 피하고자 했던 그는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아예 “자연철학[과학]의 임무”를 “운동의 현상들로부터 자연의 힘을 탐구하고 그 힘으로부터 다시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만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동하는 원인이나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그와 같은 법칙으로부터 행성의 운동이나 조석 현상 등의 수많은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이렇게 법칙 하나로부터 수많은 현상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었던 뉴턴의 이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가들을 압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만유인력 개념은 명백한 사실로서 수용되었다.

이렇게 수용된 뉴턴의 만유인력 개념은 힘에 대한 두 가지 특징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었다. 하나는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의 힘이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 작용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 힘을 주고받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뉴턴의 힘은 멀리까지 전달되기 위해 어떠한 매개물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물체가 놓이는 즉시 저 멀리에 있는 모든 물체에까지 곧바로 작용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뉴턴의 힘 개념은 ‘원거리 작용(action at a distance)’ 또는 ‘원거리 직접 작용(direct action at a distance)’으로 불렸다.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 개념이 수용되었다는 것은 그와 함께 ‘원거리 직접 작용’이라는 개념도 수용되었음을 의미했다.

뉴턴의 이론이 수많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엄청나게 성공적이라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은 유럽의 학자들은 뉴턴의 성공을 다른 분야에까지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학자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Charles Augustin de Coulomb, 1736-1806)은 정교한 측정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과 똑같은 형태의 ‘역제곱 법칙’이 전기와 자기 현상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다. 그의 정교한 실험에서, +전하를 띤 물체와 -전하를 띤 물체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겼으며, 같은 전하끼리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를 밀어냈다. 자석의 N극과 S극도 마찬가지의 ‘역제곱 법칙’에 따라 서로를 끌어당겼으며, 같은 극끼리는 밀어냈다. 뉴턴을 이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학자들은 이 전기력과 자기력이 뉴턴의 만유인력처럼 ‘원거리 직접 작용’이라 생각했다. 즉 전하와 전하끼리, 자극과 자극끼리는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 힘을 주고받으며, 그 힘을 주고받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공간에 펼쳐진 ‘장’ : 힘은 ‘장’에 의해 매개된다

그림 1. 철가루 패턴을 통해 볼 수 있는 자석 주위의 자기력선. 출처 : Faraday, ERE 3, plate 3.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뉴턴의 ‘원거리 직접 작용’과는 다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늘날 멀리 떨어진 물체들 사이의 모든 작용은 공간에 펼쳐진 ‘장’에 의해 매개되는 것으로 얘기된다. 예컨대 자석이 놓이면 그 주위 공간에는 자기력선들로 채워진 자기장이 형성된다. 만약 이 자기장에 철이 놓이게 되면, 그 철은 그 자리의 자기장과 상호작용하여 이동하게 된다. 즉 자석이 철을 직접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석에 의해 형성된 자기장이 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을 매개로 힘을 주고받든, ‘원거리 직접 작용’에 의해 힘을 주고받든, 멀리 떨어진 물체들이 힘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똑같은 것 아닌가? 자석이 철을 직접 잡아당긴다고 말하나, 자석이 만든 자기장에 의해 철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나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철이 자석을 향해 움직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장’을 매개로 힘이 전달된다는 생각과 ‘원거리 직접 작용’이라는 생각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장’을 통해 힘이 전달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지구로부터 10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북극성에 의한 중력 작용은 지구에 전달되는 데 약 1000년이 걸린다. 만약 지금 당장 북극성에 사고가 생긴다면 그에 따른 중력의 변화는 1000년 후에나 지구에 영향을 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텔레비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방송국 송신 장치에 의한 전자기 작용이 우리 집 텔레비전의 회로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아주 약간이지만 시간이 걸린다. 즉 우리가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화면은 언제나 영점 몇 초 전에 방송국에서 내보낸 화면이라는 것이다.

패러데이와 맥스웰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장’ 개념은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패러데이와 맥스웰에 의해 고안되고 발전되었다. 패러데이는 전자기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거리 직접 작용’을 버리고 힘이 ‘힘의 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달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으며, ‘장’이라는 단어도 그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맥스웰은 이를 발전시켜 모든 전자기 현상을 역학적 매질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인 ‘전자기장’ 이론을 완성했으며, 힘이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패러데이의 추측도 정확한 전달 속도 값을 통해 드러내 주었다.

그렇다면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어떠한 연유로 ‘원거리 직접 작용’이라는 뉴턴의 공고한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의 ‘힘의 전달’을 고민하게 되었을까? 또 그들은 ‘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그들의 개념은 어떤 변화 과정을 겪어 완성되었을까? 이 책의 본문에서는 총 다섯 장에 걸쳐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삶과 연구를 좇으면서, ‘장’ 개념이 처음 등장하고 발전해 가면서 점점 원숙한 과학의 개념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완성된 과학의 모습이 아닌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오늘날 과학의 ‘장’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1장에서는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성장 과정과 과학적 훈련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그들이 받은 교육과 과학적 훈련 과정은 그들의 연구 주제와 연구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의 연구에서 사용하게 될 방법과 개념들을 미리 엿볼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힘의 선’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고안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패러데이는 공간에 펼쳐진 ‘힘의 선’이라는 개념을 전자기 회전과 전자기 유도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고안했다. 그 연구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함으로, 전자기 현상의 어떤 특징이 패러데이로 하여금 ‘원거리 직접 작용’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는지, 그리고 패러데이의 어떤 연구 스타일이 그로 하여금 ‘힘의 선’을 그리도록 이끌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패러데이가 ‘힘의 선’ 개념을 입증하기 위해 수행했던 실험들을 검토하면서, 그 과정에서 그의 ‘힘의 선’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힘이 전달되는 경로’에 가까웠던 ‘힘의 선’ 개념이 ‘힘을 직접 전달하는 운반자’로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힘의 선’의 실재성에 대한 패러데이의 믿음 또한 그와 함께 공고해져가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힘의 선’을 발전시켜 ‘전자기장’ 이론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을 다룰 것이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관하여”, “물리적 ‘힘의 선’에 관하여”, “전자기장의 동역학 이론” 세 편의 논문을 통해 자신의 전자기장 이론을 발전시켰다. 세 편의 논문을 차례차례 검토함으로써,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힘의 선’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교한 이론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어떠한 도구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도구가 ‘전자기장’ 개념에 다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5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장’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정리하면서, 맥스웰 이후의 변화도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장’ 개념은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차린 밥상에 얹은 아인슈타인의 숟가락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 숟가락이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장’ 개념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사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연구는 ‘장’에 대한 연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패러데이는 벤젠을 발견하거나, 압력에 따른 물질의 상태변화를 발견하는 등 화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발견을 이루었고, 맥스웰은 열-통계 역학의 토대를 닦았으며, 빛의 3원색을 밝혀내어 컬러 사진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자동 제어 이론에 관한 선구적인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패러데이에서 맥스웰로 이어지는 ‘장’ 개념의 발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와 관련이 적은 다른 연구들은 빼거나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이제 패러데이와 맥스웰을 만나러 가보자.

패러데이 & 맥스웰의 목차

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