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생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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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 프롤로그.

우리는 자연에 대한 지식을 주로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교과서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현상들이 잘 정돈되어 있으며, 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과 법칙들도 깔끔하게 소개되어 있다. 교과서만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척이나 조화롭고 정연한 질서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자연의 세계는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 않다. 아침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질서는 쉽게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대개의 질서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자연이라는 책의 맨 뒷장을 펼친다고 정답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머리를 빗을 때 빗에 내 머리카락이 딸려 올라가는 일과 비 올 때 치는 번개가 ‘전기’라는 동일한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은 ‘자연스럽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넋 놓고 보고만 있으면 자연은 그저 어지럽기만 한 혼돈 상태로 보일지 모른다.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깔끔한 현상과 법칙들은 혼돈스러운 자연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추출되어 갈고 닦여진 것들이다. 정답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고 정답지도 따로 없기 때문에, 자연에서 질서를 찾는 일은 어렵고, 찾은 후에도 그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안 서 애를 먹기도 하며, 서로 다른 답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교과서에는 그러한 과정이 드러나 있지 않은 채 최종 완성품만이 소개된다. 그런 깔끔한 완성품들은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을 쉽고 빠르게 가르쳐주긴 하지만, 그 지식을 찾아내는 방법은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에는 여전히 아직 교과서에 담기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산적해 있으며, 현재의 교과서에는 잘못 알려진 사실도 적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오류를 수정하여 이후 만들어질 교과서의 개정판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지식을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에 있는 오류를 찾아내고 새로운 지식을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즉 남이 만든 지식을 ‘공부’하는 법뿐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에 관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을 보는 것보다 지식 생산의 현장인 대학 연구실에서 교수와 선배들의 활동을 잘 보고 따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오늘날에는 접할 수 없는 19세기 영국의 지식 생산 현장과 함께 그 안에서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새로운 전자기학 지식을 생산하던 상세한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경험을 오늘날의 과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이 과학 지식 생산의 상세한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년 4월

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목차

정동욱, 『패러데이 & 맥스웰 :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