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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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과학철학자 장하석(1967~)은 진보적 정합주의를 통하여 과학의 다원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석이 언급한 다원주의란 과학의 한 분야 내에서도 가능한 한 여러 가지 실천 체계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다. 실천 체계란 여러 인식활동들이 무작위로 뭉뚱그려져 합쳐진 것이 아니라, 어떤 전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조직된 것을 뜻하고, '좋다'라는 말의 의미는 과학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다는 것이다. 또한 위의 문장에서 '가능한 한'으로 여러 가지 실천 체계를 한정지은 이유는 과학이 무한정으로 많은 수의 체계를 유지 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장하석은 과학자들이 패러다임 속에서 정상과학 연구를 통해 패러다임을 공고화 하는 활동을 한다는 쿤의 주장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패러다임이 충돌할 때 과학 혁명을 통해 한 패러다임만이 과학자들의 선택을 받고, 과학 혁명중인 상태가 아니라면 정상과학을 한 패러다임만이 지배한다는 쿤의 견해와는 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과학의 일원주의
장하석은 그의 다원주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반론인 과학의 일원화를 직접 언급한다. 얼핏 볼 때 과학의 발전 추세는 과학 이론이 점점 통일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하석은 과학의 그러한 통일 과정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 양자 장 이론과 쿼크이론이 슈뢰딩거 이론에 비해 화학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등을 보면 물리학 내에서도 통일이 안된 지점들이 많으며 과학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이론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꿈이라는 것이다. 러더포드는 과학에는 물리학만 존재하고, 그 외의 것들은 우표 수집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하며 물리학 제국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 이론이 점차 발전되며 통일되어 나간다는 우리의 직관과 충돌하여 다소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역사 속에서 살펴본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장하석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장하석은 패러다임 간에 싸움이 났을 때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것은 여러 가지의 가능한 결과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패러다임이 경쟁한 결과로 총 다섯 가지가 가능한데, 쿤 식의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유지될 수도 있으며 분야 자체가 분화될 수도 있다. 또한 한 분야 내에서 경쟁관계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형, 즉 잡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의 두 패러다임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두 패러다임이 변형되었다. 다원주의가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과학은 꼭 일원주의적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통일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원주의의 이점
장하석의 의견에 따르면 다원주의에 따른 이점은 크게 관용에 의한 이득과 상호작용에 의한 이득으로 나눌 수 있다.
관용의 이득
여기서 말하는 관용의 형태는 하나의 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실천체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학문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로, 관용은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는 보험 역할을 한다. 미래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지만 여러 실천체계가 존재한다면 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우딘의 '비관적 귀납'처럼, 아주 성공적인 이론도 폐기된 경우가 많고, 비록 현재에는 말도 안되는 듯한 이론이 나중에 가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두는 것은 유익하다. 둘째, 관용은 또한 지적 분업을 가능하게 한다. 한 분야 내에서도 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 자신 있는 것을 이용하여 학문을 추구하도록 해준다면 과학이 더 풍부하게 성장할 수 있다. 장하석은 화학혁명시기, 플로지스톤 이론이 사장되지 않았다면 화학이 더욱 풍부하고 훌륭한 학문이 되었을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의 공존이 실제 과학기술의 적용된 예는 로켓에서도 볼 수 있는데, 로켓을 쏘는 과학은 뉴튼역학, 양자역학, 특수상대론, 일반상대론을 모두 쓰는 과학이다. 셋째, 관용에 의하면 같은 하나의 문제도 다양한 방식으로 풀 수 있다. 고전물리학에 '라그랑쥐 식', '해밀튼 식'등의 역학이 동시에 존재하여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여러가지의 종류의 직관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듯이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르게 접근하는 것은 과학 문화를 윤택하게 한다. 넷째, 반대로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도 관용의 도움을 받는다. 과학의 목적은 하나가 아니며 다양한 실천체계가 존재한다면 그 중 적합한 것을 써서 각기 다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체계를 이용하여 같은 현상이나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효과적일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하는 데에 큰 재미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한 가지의 답을 내는 것뿐이 아닌, 여러 가지의 답을 이용하여 인간이 자연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다. 과학이 가진 여러 가지 기능을 한 가지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관용적 태도를 가지고 과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종합적으로 더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이득
상호작용의 이득은 관용의 이득과는 달리, 서로 다른 실천체계 간의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이다. 서로 다른 실천체계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닌 서로의 유익한 교류를 통해서 더욱 윤택한 과학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실천체계 간에 유익한 교류를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교류법은 서로 다른 체계 간에 융합으로 서로 다른 체계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 어떤 특정한 일을 성취할 필요가 있을 때 같이 끌어다 쓰는 방법이다. 한 가지 예로는 전근대적인 관념부터 고전역학과 몇 가지의 20세기 첨단 물리학 이론까지 전부 잘 들어간 내비게이션이 있다.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여러 이론 체계는 각기 다 독립적으로 훌륭한 정합성이 있고, 이를 통합하려 하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른다. 장하석은 자신이 상상하는 범위내에서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하나의 이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장하석은 독립적인 체계를 다원주의적으로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융합해서 응용하는 것으로 GPS와 같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교류법은 채택으로 여러 가지의 실천체계가 있을 때, 각각 이루는 성취도뿐 아니라 이루는 업적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실천체계에 좋은 것이 있다면 빌려서 쓴다는 원칙적으로는 간단한 이야기이다. 라부아지에의 화학혁명에서 프리스틀리가 실험으로 발견한 탈플로지스톤 기체를 자신의 이론으로 가져와 산소라 명명한 것이 한 사례이다. 세 번째 교류법의 형태는 경쟁이다. 서로 다른 과학적 실천체계들이 경쟁을 해서 이기고 지는데 이는 단순한 개념의 경쟁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경제적 경쟁 상호작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쟁이 없을 때 나오기 쉬운 안일함과 느슨함을 막아주는 것이 경쟁의 기본적 이득이다. 경쟁체계가 있다면 상대편에서 비판을 해올 것에 대비하여 우리 자신의 추론도 더 명확하게 하고 실험도 더 정밀성있게 실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는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이점과 포퍼가 말하는 비판정신의 이점을 둘 다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하석은 수준 높은 다원주의를 실행하려면 관용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상호작용까지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장하석은 과학의 다원주의는 사회적 다원주의의 활성화에 기여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의 우려
무정부상태 초래에 대한 우려
과학이 한 가지로 통일되지 않으면 세상이 난장판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믿고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정해서 연구한다면 과학이 완전히 혼란상태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상대주의에 관한 문제일 뿐, 다원주의는 이와 전혀 다르다. 다원주의는 한 가지만 하지 말자는 것이지 모든 체계를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몇가지 체계를 동시에 유지하여 얻을 수 있는 관용의 이점과 상호작용의 이점을 추구하자는 것 이다.우리가 판단해서 가장 훌륭하고 전망 있는 체계들을 골라내어 수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단'의 문제는 일원주의에서도 제기되어왔던 것이며, 과학자들의 합의를 어느 정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장하석은 보았다. 각 분야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우선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해야한다. 동시에 특정 가치만이 힘을 쓰는 일원주의에 맞서 균형 잡힌 다원주의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따라서 무정부상태 초래에 대한 우려는 다원주의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인식론적 무정부주의인 파이어아벤트는 학교에서 과학 뿐만 아니라 마술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된 자원에 의한 우려
우리 사회의 자원(연구비, 연구 시설, 인재 등)은 한정되어 있고 특정 과학의 분야에 지원되는 것이 무한정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분야내에서 여러 이론들을 동시에 발전시키기가 힘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이에 대해 장하석은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한 가지 실천체계만 골라서 추진해야 할 정도로 빈곤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쫓고 있다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첨단을 좇는 사람들이 모두 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 특정 분야에만 투자되고 있는 자본과 인력이 다양한 분야에 분배된다면 훨씬 더 풍부한 과학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열 초래에 대한 우려
심리적으로 볼 때 여러가지 방식의 사고를 한꺼번에 하는 것이 심한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장하석은 두가지로 반박하고 있다. 첫째, 다원주의적 관용이 목적이라면 한 개인이 여러가지 실천체계를 동시에 사용할 필요는 없다. 둘째, 한 사람이 여러가지 체계를 배우고 거기에 따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이다.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다른 실천체계를 마음 놓고 추구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려하는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서로간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공통 언어와 기본 개념(기초적 수학,측정기구와 측정단위의 정립)을 사용하여 교류함으로써 극복 할 수 있다.
겸허함의 과학
장하석은 다원주의적 과학의 기초로 겸허함의 과학을 주장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과학적 이론들이 지금은 옳다고 여겨질지 몰라도 영원히 옳은 것은 아니고, 자신이 하는 과학이 모든 정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처럼 장하석은 과학자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의 측면에서 과학 철학에 접근하였다.
과거 유명 과학자들은 자신의 발견을 통해 연구 분야의 모든 퍼즐을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뉴턴의 고전 물리학도 발표되었을 당시 만물의 운동의 이치를 설명해 준다고 여겨졌지만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인 상대론에 의해 잘못 된 생각임을 알게 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과학 연구가 성숙하고, 연구의 양상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것은 적합한 목표가 아니라고 장하석은 밝히고 있다.
우주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도 전부알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과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칫 회의주의로 빠지기 쉽지만, 다원주의를 통해 서로 협력하여 알아낸 부분부분을 비교, 토의해 나가며 탐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뭔가 하나를 발견할 때 그로써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여러가지를 볼 수 있게 된다. -프리스틀리-
정치적 다원주의와의 연결
지금 사회에서는 단 하나의 정당이 아닌 여러 정당들이 각각의 정체성과 고유한 색깔을 가지며 존재함으로써 다원주의가 잘 유지되고 있다. 국가 권력을 집단으로 분할함으로써 집단의 자유ㆍ자율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정치, 사회적으로 다원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과학의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과학이 포함된 나머지 사회의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모순이다. 단하나의 절대적인 정당이 존재할 수 없듯이, 과학에서도 절대적인 과학적 진리를 갖고자 하는 희망은 떨쳐내라고 장하석은 주장했다. 장하석은 과학의 독재 또한 독재라고 주장하며 전문가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봉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우리의 일상생활과 정치행태에 아직도 팽배해있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더욱 권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교육적 효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을 다원주의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러한 다원주의가 사회뿐만 아니라 과학에서 성장하기 위해서 철학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은 일상에 쓸모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기존의 생각들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는 사회와 과학에 있어 경직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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